총공회 교단과 총공회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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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총공회 교단과 총공회노선 |
| 내용 | 1.신앙노선과 교단의 관계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는 법을 마9:17에서 가르쳤습니다. 여기 새 포도주는 예수님의 교훈을 말하고 새 부대는 신약교회를 말하는 것이니 포도주는 신앙사상이요 부대는 교회체제입니다. 어느 교단이 새술이며 어느 교파가 낡은 부대인가 살피는 것은 다른 기회에 살피고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안내하는 것은 신앙사상과 신앙체제는 따로 가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다른 교단에서 이 교훈과 이 노선을 좋아하게 되면 부대와 포도주가 맞지 않은 격이니 일반 교단에서 이 노선을 제대로 깨닫고 실행하려면 피차 많은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이 신앙노선이 꼭 옳다고 확정이 된다면 교회 소속도 이 신앙노선 교회가 원칙입니다. 반대로 총공회 교단 안에 소속한 교인 중에서도 일반 교단을 꼭 좋아하는 분들이 계신데 그분들의 고통은 실로 크며 또한 공회 교회들도 고통을 많이 겪습니다. 자라가는 과정이면 성장통을 앓는다고 보면 되지만 신앙의 근본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자기 신앙성향을 찾아 나가야 할 분들도 있습니다. 2.실무적으로 안내하면 총공회 현재 소속 교인은 이 노선을 엄하게 지키고 원래 노선에 충실한 것이 옳지만 외부 교단에 속한 분의 소속 변경은 신중하게 심각하게 많이 생각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이 노선의 일부만 보고 좋아서 왔다가 이 노선의 다른 면을 보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리 되면 원래 교회에 분란과 불편을 던진 것이 되고 그들에게 이 노선에 반감을 심고 자기조차 이 노선에 실망하여 공연히 소속을 옮겼다고 후회하는 경우를 허다히 봤습니다. 이렇게 되는 과정은 시간이 좀 지나야 하기 때문에 소속을 옮긴 뒤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따라서 모든 면으로 신중하게 생각하여 정말 이 노선 아니면 안 되겠다고 확정이 되고 이 노선으로 걷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손해나 문제점을 다 희생하겠다고 단정이 되고 이 노선으로 걷는 여생에 되돌아서지 않을 자신과 확신과 판단이 서게 되면 그때는 당연히 소속을 옮기는 것이 맞습니다. 이 노선에서 외부 다른 노선으로 소속을 옮기는 것도 그러하고 외부 다른 노선에서 이 노선으로 소속을 바꿀 때도 같은 원칙입니다. 차선으로 소속 변경 없이 현재 소속 교회에서 다른 신앙노선으로 신앙생활을 하시려면 현 소속 교회에서 다른 노선을 외부에 자꾸 드러내고 인용하게 되면 소란만 생기니까 조용히 본인이 좋아하는 노선 사상대로 살아서 본이 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도록 하시면 자연스럽게 그 노선의 걸음을 걷는 사람을 통해 그 노선의 좋은 면이 번져나갈 것입니다. 3.경우에 따라 어떤 분에게는 전부를 주셨고 어떤 분에게는 일부만 주신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소속과 걸음을 함께 주셨고 어떤 분은 따로 주신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일찍 주시기도 하고 어떤 분은 많은 과정과 절차를 걸쳐 주시기도 합니다. 어떤 분을 통해 어느 순간에 무슨 역사를 해나가실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자기 현실에서 모든 면으로 가장 좋은 여건을 만들어 갈 의무가 있으므로 교단 소속과 신앙노선은 최대한 하나로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옳습니다. 다만 어떤 분에게는 그런 은혜를 주지 않기도 하며 그리 하려 해도 막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구약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 안에서 모든 구원을 준비하도록 하셨으나 이것은 일반론이고 요셉과 모세와 다니엘은 가나안 밖에서도 역사에 없는 큰 구원 역사를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가나안에 들어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지 그곳이 좋아서 있었던 것은 아니며 요셉은 후손들에게 자기 해골이라도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4.윗글에서 질문하신 내용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안내하면 ①여러 가지 비유 주님과 우리를 부부, 머리와 몸, 주인과 종, 왕과 신하, 목자와 양... 등 여러 가지로 비유했습니다. 그 비유들은 비유마다 특별한 면이 있으므로 그 면을 가르치기 위해 말씀한 것입니다. 앞서 믿는 사람과 뒤따르며 배우는 사람 사이에도 여러 가지 관계로 가르쳤습니다. 주로 보호와 인도 면을 가르칠 때는 목자와 양으로 비유하고 모르는 것을 가르쳐 나가는 면을 말할 때는 선생과 제자로 가르쳤습니다. 목자와 선생의 공통점은 양과 제자에 비하여 앞서 있으므로 도울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점은 목자는 생활 속에서 보호 인도를, 선생은 주로 모르는 것을 가르치는 면입니다. 따라서 이 홈에서 답변 글을 통해 배웠다면 배운 그 면만을 두고 말한다면 선생과 제자 사이가 될 것입니다. 다만 신앙세계의 선생과 제자란 한번 담임을 했으면 평생 사제가 되는 세상과 달리 어떤 면으로는 이 사람이 선생이고 다른 면으로는 저 사람이 선생이 될 수 있습니다. ②교회 담임목사가 목자와 선생 중에 한 가지 역할만 할 수 있는가? 이론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보호하고 인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알기는 하지만 힘이 없거나 희생정신이 없어 다른 사람을 인도하지 않는 경우는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바로 알았다면 그 아는 범위 내에서는 다른 사람을 보호 인도하지 않을 수 없고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돕고 인도했다면 우연의 일치거나 오해일 것입니다. 신앙의 궁극적인 면에서 본다면 지행은 합일이므로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일치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선생노릇과 목자노릇은 거의 비슷하게 가는 것이지만 우리가 다 부족하고 서로 자라가는 도중이므로 두 가지 면 중에 하나만 하는 사람이 있는 듯 보일 때가 많습니다. ③양과 목자는 한 교회 목사와 교인 사이에만 존재하는가? 한 집에 살 때는 부모가 자식을 보호하고 인도하기 쉬운데 군에 간 아들에게는 어렵습니다.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는 보호와 인도가 쉬우나 떨어져 있으면 어렵습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어렵다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한 교회의 목사와 교인 사이라야 목자와 선생 역할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입니다. ④칼빈 목회의 경우 그는 제네바시에서 외쳤으나 그를 따라 당시의 세계는 정말 무섭게 개혁이 되었습니다. 기독교강요 한 권의 책이 오늘 개신교 우리 전체 교회의 중심이 되었다 할 정도입니다. 칼빈은 그의 얼굴을 보지도 못한 모든 이들에게 그의 깨달음을 통해 선생이 되었습니다. 물론 목자의 의미를 확대하게 되면 목자 노릇도 되겠지만 교사와 목자 둘을 가지고 둘 중에 하나로 분류를 하라면 선생과 제자 사이가 될 것입니다. 이 홈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그 배운 면만 가지고 본다면 이 홈과 배운 사람의 사이는 선생과 제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이 홈의 답변자에게 직접 선생과 제자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면 답변자는 누구에게든지 개인적으로 직접 그런 표현을 듣는 것은 늘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 홈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백목사님을 선생으로 모시고 배운 것입니다. 이 홈에서 바로 전한 것은 백목사님께 배운 것을 그대로 옮겨 소개한 것이기 때문이며 혹시 이 홈에서 잘못 전하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답변자 수준이 그래서 그렇습니다. 답변자는 이 노선의 도서 관리인에 해당 되는 사서 또는 도로 안내원이라 생각합니다. 사서에서 좀 나아지면 독서 지도사라는 직업이 있습니다. 그 정도일지 모르겠습니다. ⑤노선과 소속이 다른 곳에서 백영희신앙노선으로 걸어가려면 일단 입에서 이 노선을 직접 표시하여 떠드는 일을 삼가하셨으면 합니다. 이 노선의 가치가 적거나 약점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감정 때문입니다. 시기도 있고 입맛이 다르므로 훼방도 있는데 이 노선을 좋아하는 이들이 너무 소리를 내면 뒷감당이 대개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노선을 다 아는 것도 아니고 또 이 노선을 외칠 만큼 본이 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다만 조용히 번져나가도록 전하고 행동으로 보이는 것은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⑥기본구원에 확고히 서는 방법은 출생한 아이가 부모의 은혜를 알고 효자가 되는 방법과 같으니 어떻게 날 낳으셨는지 얼마나 고생 고통하셨겠는지를 자꾸 '되새기는' 것입니다.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나중에는 누가 말을 시키면 부모의 은혜를 며칠이라도 말을 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하고 그렇게 말할 기회가 없다면 부모 생각 하나에 눈물이 앞을 가려야 할 것입니다. 육의 부모에 대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이 은혜는 죽는 날까지 그리고 영원무궁토록 우리는 그 은혜를 되새기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감사를 느끼는 것은 눈물이 더 이상 날 수 없도록 눈물의 샘이 말라야 합니다. 믿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 순간 무슨 짓을 하며 살고 있었을까? 믿지 않았더라면 어떤 고통을 어떻게 영원히 당했을까? 믿게 하려고 주님이 어떤 고난을 어떻게 당하셨던가? 쪼개고 나누고 따지고 살펴서 마치 현미경을 들고 세포를 관찰하는 생물학자처럼 그 깊은 속에 파들어가야 합니다. 받은 구원에 대한 되새김이 기본구원에 확고하게 서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건설구원에 모든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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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