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 순간의 바로 그 첫 신앙 모습도, 건설구원에 속한 것이니 중생 이후의 행위입니다.

문의답변      


중생 순간의 바로 그 첫 신앙 모습도, 건설구원에 속한 것이니 중생 이후의 행위입니다.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교리-구원론-건설구원-]


--------------------------------------------------------------------------------------------


1.깨달아 기쁜 마음은 곧 반론에 의하여 다시 숙제로 바뀌며 평생 반복하게 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어색하고 이상하고 신기하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중생되기 이전 불신자 시절에는 누구나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자기는 그런 집단에 들어갈 것 같지 않았는데 어느날 그 안에 주저 앉아 모처럼 고향 찾은 사람처럼 제 집처럼 반갑고 기쁘게 예배보는 자기가 된 것은 사람이 해서 될 일이 아니라 객관의 성령이 우리를 중생시켰고 우리 마음을 열어 젖혀 일어나게 된 현상입니다.


교회 가는 것만으로 좋았고 강단에 서신 분은 그냥 좋아 보였던 시절을 조금 지나게 되면, 저 분은 무엇을 먹고 사는가 라는 의문이 생기고 알고 보니 월급을 얼마 받는다더라 하는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요즘은 드물겠지만 지금 노년층이 처음 교회 다닐 때는 강단 위에 서신 분들은 천사들이어서 신령하게 먹고 사는 줄로 알았습니다. 알고보니 매주 내는 연보를 모아서 목회자 식구들이 생활비로 사용한다는 것이고 이 때문에 너무도 강단이 실망스러웠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리 설교 생활 등 모든 면에서 이전에 몰랐던 것을 처음 알아가며 기뻤던 때가 있고 잠시 후 다른 말을 들어 시험에 들 때도 있고 실망할 때도 있으며 때로는 자기 마음 속에 자문자답을 통해 그냥 의문이 제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문제가 해결이 되어 깨달아지면 갑자기 어느 산 봉우리 위에 서게 된 듯 갑자기 모든 세계가 아래로 보이며 진리의 깨달음 세계의 맛을 순간이라도 보게 되는데 이런 좋은 순간이 그냥 고착되는 경우는 없고 평생을 계속 반복하게 됩니다. 이 현상은 바로 신앙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살아있는 신앙에게는 이런 저런 변동이 있으나 완전히 잠든 신앙은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자는 자는 근심도 걱정도 계획도 건설도 감정도 감각도 없이 그냥 누워만 있는 상태입니다.


2.중생 자체는 기본구원입니다. 어떤 신앙인물이라도 중생의 양과 정도와 크기는 꼭같습니다.


중생을 양으로 길이로 표시한다는 것은 모순이지만 예를 들면 그렇습니다. 중생은 죽었던 영을 살리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살리는 것이고 우리는 살릴 때 살아난 것까지가 중생입니다. 베드로도 우리도 성자도 더럽게 믿다 가는 분들이라도, 안 믿다가 믿게 되는 첫 순간 그 중생의 그 순간은 우리의 노력이나 소원이나 마음자세에 이르기까지 어떤 인간 요소는 개입되지 않고 오직 밖에 계시던 성령이 우리 영을 그냥 외부에서 살려놓고 들어오시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중생' 자체는 기본적으로 근본적으로 꼭 같습니다. 그러나 그 받아가진 중생을 가지고 어떻게 그 이후에 움직이고 순종하며 활동했는지만 다른 것입니다. 중생 이후의 움직임은 꼭 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이 다 다르기 때문에 각 개인의 차이는 건설구원에만 있는 것입니다.


중생된 순간부터 힘있게 믿어가는 형제가 있고, 중생은 된 것 같은데 너무도 흐미하여 중생이 있었는지도 의심스러운 상태로 가냘프게 근근 신앙을 이어가는 경우, 이 두 분의 경우를 비교한다면 이 두 분이 불신자로 있다가 믿게 된 그 순간, 죽었던 영이 중생되는 그 자체는 이 두 분에게 역사한 성령도 진리도 대속의 피공로도 꼭같은 바로 그분의 것이며 이 은혜가 그 두 사람에게 임하는 즉시 그들은 중생이 되었으니, 여기까지가 믿는 사람에게 꼭같이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구원이라 하여 '기본구원'으로 표현하며 여기까지는 차이가 전혀 없다는 점을 한번 더 확정해 두셨으면 합니다.


3.중생을 두고 전기줄과 그 전기줄에 흐르는 전기로 비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발전소를 하나님이라고 비유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연결된 전선을 통해 인간이 모든 은혜를 받고 살았다가 죄를 지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집 안으로 들어오는 외부 전선을 벤찌로 끊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이 끊어진 전선을 다시 연결시켜 복구했습니다. 전선 복구공사가 끝난 뒤에 이제 전기를 시험가동하여 봅니다. 이런 공사 끝에 자기 집 안에 TV든지 형광등이든지 무엇이든지 전기기기에 불이 들어왔다면 그 전기가 들어온 것은 순간이라도 이미 어딘가 끊어졌던 부분이 이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한전의 공사는 이어놓은 것이 다시 끊어질 수 있으나 우리 구원은 한번 구원은 영원 완전 단번 구원이기 때문에 한번 이어진 중생은 다시 죽거나 끊어지는 수는 없다는 것을 단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순간에라도 진정 믿는 믿음의 그런 행위나 감동이나 그 무슨 표시라도 이것은 비록 적지만 믿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고 나타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현상이 나타났다면 그 사람은 그때 그 순간을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이 그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끊어진 전선이 복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복구가 바로 중생이니 중생은 그 이후 어떤 경우에라도 다시 끊어지는 경우가 없으니 이 사람은 중생된 사람이요 이 사람은 적어도 천국 갈 기본구원까지는 받은 자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까지는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일한데, 문제는 중생 그 순간부터 백목사님처럼 외양간에서 놓인 천리마처럼 달리는 분들도 있고 어떤 사람은 너무도 가녀린 신앙으로 죽는 날까지 계속하는 분도 있으니, 요약한다면 중생의 증거를 가진 사람치고 만일 차이가 난다면 바로 그 차이가 나는 부분 전부는 중생 이후에 해당되는 일이고 이것을 건설구원의 차이라고 한다고 요약하셨으면 합니다.


4.중생하는 그 순간에 차이나는 것도 건설구원에 속한 것입니다. 중생 자체는 아닙니다.


질문의 오해는 믿는 바로 그 순간 그 자체도 어떤 사람은 강하게 나타나고 어떤 사람은 약하게 표시가 되는 차이가 있다는 말씀으로 질문 내용을 읽었습니다. 중생 자체는 하나님의 외부 공사이기 때문에 이 시공으로 살아나는 것이지 우리 인간의 주관적 반응은 중생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이미 인간이 신앙의 반응을 일으켜 표시가 나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는 건설구원입니다.


외부에서 전기를 가정에 넣어준 것까지는 같고, 이제 외부에서 들어온 전기를 가지고 어떤 반응 어떤 작업 어떤 활동이 어떻게 일어나느냐는 것은 중생된 바로 그 순간에 나타나는 첫 반응에서부터 각각 다 다른 것이니 이 부분이 건설구원이라는 뜻입니다.
[기본구원/건설구원] 중생에 대해서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교리-구원론-건설구원-]


--------------------------------------------------------------------------------------------


아래 635번의 목사님 답글에 대하여 다시 한번 여쭙겠습니다.


목사님의 글중에......

3.교회를 다닌 이후, 한번이라도 믿어지는 마음이 있었다면 이는 작은 표시지만 큰 확정입니다


한번이라도 믿어지는 마음 = 작은표시지만 큰 확정.......


그믿어지는 마음이

어떤사람은 믿는 마음의 강도가 큰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서서히...조금씩 조금씩 믿어져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아주 강렬하게 믿었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각각 그믿는 마음이 다를 것입니다.


한번 중생된후 여러번 거듭 중생되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를 한다면

처음 중생된 것은 매우 중요할 것이고 그렇다면 그중생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본다면 중생되는 것도 차등이 있겠습니까?

그차등은 건설구원과 관계가 있다고 봐야 할까요?

건설구원은 차등이 있다고 이해하지만 기본구원은 믿은 사람이라면 모두 똑같은 조건이고 평등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사실 처음 믿는 마음이 각 사람마다 위같이 다른데..... 똑 같다고 보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처음 믿을때 너무나 확신을 가지고 믿은 사람은 주를 위하는 일이라면 목숨까지도 버릴 신앙이지만 한편으로는 돌아서버리면...... 가롯 유다와 같은 신앙이지만


믿음에 의심을 가지지만 차츰 차츰 그신앙이 자라가는 사람은..... 아무래도... 평생 변하지 않고 그믿음을 가지고 간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 이렇게 각 사람마다 다른데 기본구원이 모두다 같다고 할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깨달음은 들어가면 갈수록 어 어려워 지는 것 같군요.....


글의 표현이 좀 서툴러서 목사님께 바로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635번의 답변글을 읽고 기뻐한지 며칠이 지나.... 이렇게 또 한번 여쭙게 됨을 양해 하시기 바랍니다.
---------------------------
쓰기 문의답변 초기목록
(1) 항목별 검색 주제별 | 가나다별 | test 주제별 정리
(2) 게시판 검색
(3) 통합 검색
번호제목이름날짜
  • 13938
    성도A
    2026.02.23월
  • 13937
    외부교인
    2026.02.20금
  • 13936
    교인
    2026.02.16월
  • 13935
    LA
    2026.02.15일
  • 13934
    재독
    2026.02.14토
  • 13933
    학생
    2026.02.12목
  • 13932
    성도A
    2026.02.11수
  • 13931
    도봉
    2026.02.10화
  • 13930
    교인
    2026.02.10화
  • 13929
    배우는 이
    2026.02.05목
  • 13928
    성도A
    2026.02.04수
  • 13927
    학생
    2026.02.02월
  • 13926
    성도A
    2026.02.02월
  • 13925
    공회교인
    2026.01.23금
  • 13924
    학생
    2026.01.21수
  • 13923
    학생
    2026.01.16금
  • 13922
    반사
    2026.01.16금
  • 13921
    학생
    2026.01.15목
  • 13920
    반사
    2026.01.13화
  • 13919
    성도A
    2026.01.12월
  • 13918
    신학도
    2026.01.12월
  • 13917
    부족한교인
    2026.01.06화
  • 13916
    성도A
    2025.12.26금
  • 13915
    돌아온탕자
    2025.12.23화
  • 13914
    믿는 자
    2025.12.2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