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한 가지에 치우치지 마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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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2.한 가지에 치우치지 마셨으면 |
| 내용 | 중학교에 들어가면 과목별 담당 교사들이 자기 과목에 대하여 얼마나 중요한지 난리들입니다. 대학의 교수들이 자기 전공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학교도 교수들이 자기 과목에 대하여 강조를 하는데 그 한 마디도 틀린 것은 없고 과목 중에서도 교수 별로 특별히 강조하는 대목이 따로 있어 목소리를 높힙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으나 왼팔이 지나치게 돋보이면 왼팔의 기능이 특별하다 하지 않고 장애자라고 합니다. 왼팔이 없거나 움직일 수 없어도 장애자지만 왼팔이 다리만큼 크다면 이것도 문제입니다. 마치 태어난 아이가 온 몸이 고루 자라는 것처럼 신앙의 모든 면을 고루 보셨으면 합니다. 역사적으로 천주교와 종교개혁의 두 노선은 이미 결판이 났고 알미니안과 칼빈주의도 그렇습니다. 오늘에 과거 노선 분열의 역사적 사실을 잊어도 안 되지만 수백 년 전에 결판 난 일을 오늘 진행 되는 사안을 대하듯 전력하면 오늘에 급한 문제를 집중하지 못하게 됩니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에 대하여서는 역사신학 시간에 확고하게 비교하고 원인과 진행 과정을 살펴 기억하시되 오늘 우리가 걸어갈 걸음은 칼빈주의 노선에서 더 자라 앞으로 나갈 자기 성화문제입니다. 질문자는 칼빈주의를 그렇게 외치고 있으나 오늘 칼빈주의가 있습니까? 오늘 칼빈주의는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한국으로 말하면 칼빈주의는 장로교 신학교들 안에 가장 많이 남아 전해지고 있으나 가장 극단적인 칼빈주의라고 하는 고신 합신 총신 ... 등에도 칼빈주의는 볼 수 없습니다. 칼빈주의는 플래카드 선전하고 밴드에 장단 맞추고 주일날 불신 체육관 빌려 예배드리지 않습니다. 칼빈주의는 주일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장로 집사로 세우거나 매관매직을 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를 비교하면서 칼빈주의를 사수하려고 노력할 때가 아니라 조상들이 이미 지켜서 내려준 칼빈주의를 칼빈주의 안에서 다 내다버리고 있으니 칼빈주의가 정말 제대로 발전을 했다면 현재 모습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하여 오늘의 칼빈주의 걸음을 걸어야 정말 칼빈주의가 되고 알미니안을 진정으로 이기는 것인데 칼빈주의 이름만 써먹고 역사적 논쟁만 재구성하고 있지 그렇게 하는 이들의 실제 걸음걸이는 알미니안으로 나가고 그보다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1500년대의 칼빈주의는 1600년대에 나타나 가로막던 알미니안주의의 장벽을 가볍게 넘어선 다음 1900년대에 이르러 백영희신앙노선이라는 날개를 달고 지금은 창공을 솟구치고 있습니다. 역사적 칼빈주의를 오늘까지 질주시켜 오늘 걸어갈 칼빈주의 발전 과정에 서야 하는데 과거 칼빈주의의 지식만을 가지고 무한반복기능을 가진 녹음기를 돌리듯 하거나 과거 칼빈주의 행동을 오늘에도 지킨다며 박제된 보수주의를 외치는 것은 칼빈주의의 발전적 진행에서 본다면 칼빈주의의 질주에 브레이크 노릇을 하는 꼴입니다. 질문자께서 신학교를 다니면서 신학강좌 중에서 특히 감명깊게 그리고 은혜롭게 받은 말씀에 사무쳐 지금 두 노선을 자꾸 깊이 연구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지식적으로는 현재 질문자 정도라면 답변자를 가르칠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충분하므로 앞으로는 오늘의 발전적 걸음에 전력하시기를 원합니다. |
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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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