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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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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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내용1.예정론은 삼위일체나 신인양성일위 교리와 함께 성급하게 주장을 펴기 보다 먼저 내적으로 오랜 시간 연구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우리가 믿지 않던 시절에 벽에도 올라가지 못하면서 천당을 올라간다는 말이 그렇게 우스웠고 볼 수도 없는 천국이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모인 사람들이 그렇게 우스꽝스러웠습니다. 그때 안 믿던 우리가 교회 다니는 아이들의 논리보다 우수했기 때문에 수도 없이 놀렸지만 지금은 우리가 그렇게 우습고 말도 되지 않는 논리를 믿고 심지어 목숨도 바칠 각오가? 있을 것입니다. 교리적으로 한 시대의 모든 신학이 인정하는 통설이 형성된다 해도 그 통설 전체가 긍정적으로 말하면 발전을 위해서라도 보충되며 깊어져야 하는 것이고 그 통설 전체가 잘못 짚어서 고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여 통설은 가장 믿을 만하지만 동시에 절대는 아니라는 생각에서 조심스럽게 이 노선을 한번 조용하게 살펴봐 주셨으면 합니다. 현재까지는 일단 이 노선의 내용 자체를 다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아직 단정하며 서둘러 결판내는 듯이 말씀하시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2.일원론은 그 어떤 이유로도 기독교가 하나님의 자존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고 만일 간접 책임으로 돌아서려면 빌라도가 손을 대지 않고 오히려 손을 씻었지만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했던 바 지옥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시고 장차 타락할 천사가 아담을 죄짓게 할 줄 아시면서 '유기'하셨다면 그리고 불택자들이 지옥 가도록 '유기'하셨다면 이 죄는 비록 적은 죄라도 죄가 아닐까? 불신자 둔탁한 그들의 강퍅한 심령에도 이런 경우에 분명히 책임을 묻습니다. 3.영의 경우는 지금 단어의 범위와 의미 자체를 잘못 파악하고 잘못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신중하게 다시 살펴주시기를 구합니다. 수도 없는 분들의 실수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분설의 '영' '영혼'을 가지고 삼분론의 '영'을 논하게 되면 마치 일본의 '총리'를 가지고 한국 '총리'의 격과 임무 등을 논하면 참으로 곤란해집니다. 참고로 질문자께서 신학과 신앙 배경을 스스로 말씀해 주셔서 참고가 되었습니다. 혹시 이 홈이 맹목적 백영희 노선 추종 홈처럼 보일까 해서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답변자는 국내에서 신학할 기회는 전혀 없었고 대신 법학만 공부했습니다. 1984년 Covenant 신학교에서 윗글 질문자께서 설명하신 모든 논리를 포함하여 백영희 신앙노선과 일반 교리의 차이점과 장단점 등을 2년간 비교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교리사와 조직신학을 중심으로 석사과정을 밟았으며 답변자가 원하는 내용을 집중적으로 살펴봤기 때문에 비록 2년이지만 여러 분야를 전체적으로 공부하는 분들에 비하여 이 노선 관심 분야에 대한 연구 검토는 충분하게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질문자 윗글 설명은 신학교 강의실과 교재에서 거의 외우다시피 반복해서 들었고 읽었습니다. 기독교회사에서 예정론이란 부인과 인정 두 가지 큰 흐름이 있고 예정론을 어떤 차원에서 접근하느냐는 것은 수도 없는 개인 학설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질문자께서 설명해 주신 내용이 보수 정통 신학에서는 가장 무난하게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자 질문에서 더 나가도 덜 나가도 무조건 틀렸다 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너무 많은 학설이 많은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차라리 질문자께서 설명한 내용은 교회사에서 보수정통신학의 가장 무난한 통설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백영희신앙노선은 그렇게 오랜 세월 내려온 통설이 좀더 강화 될 이유가 없느냐? 질문자와 Covenant에서 그토록 반복하는 예정론은 이미 오랜 세월 흘러내려왔는데 오로지 반복만 해야 할 교리인가 아니면 세월 속에 몇 가지 난제가 나타났고 그런 문제에 대하여 좀더 살펴봐야 할 여지란 눈꼽만큼도 없느냐? 이렇게 반문하면서 다시 한번 이 노선 관련 자료를 신중하게 그리고 면밀하게 살펴볼 기회를 갖기 원하고 이 문제에 관한 한 많은 시간을 갖고 발언해 주시기를 요청하고 싶습니다. Covenant에는 Buswell이라는 철학에 깊은 조직신학자가 유명하여 그분 조직신학 영향이 깊은 곳입니다. 죄론 예정론과의 관계 등에 대하여 총신에서 강의를 하다 연구 과정으로 오셨던 분 등과 나눈 대화도 많습니다. 질문자 소개한 내용에 대하여 답변자는 이미 오랜 세월 많은 검토와 확인이 있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총공회 입장에 대한 질문자의 이해 역시 공회가 설명하는 내용을 바로 파악하신 다음, 공회의 시각에서도 한번 살펴볼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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