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를 넓히고 묵상해 보셨으면
| 분류 |
|---|
yilee
0
2007.07.23 00:00
예정론에 대하여서는
이 홈에서 이미 오간 자료를 통해 충분하게 안내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윗글의 질문도
앞서 나온 문답의 범위 안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성경을 믿는다면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이 홈에서 안내하는 예정론 외에 다른 주장은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논리적으로 맞다 해도
실감이 되어 정말 확신에 이르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열어 주셔야 하는 문제이니
마음을 열어주시라는 기도와 함께 조용하고 세밀히 따져보는 묵상을 권합니다.
참고로
-운명론 숙명론이 아닌가?
운명론이나 숙명론이라는 것은
예정이라는 존재를 알아 차린 사람들이
그 예정의 목적과 이유를 알지 못하여 자포자기를 할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칼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고 칼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 나쁜 것처럼
예정이 옳기는 옳은데 예정으로 역사하는 이유를 잘못 오해한 것이 운명론 숙명론입니다.
따라서
운명론이나 숙명론을 비판할 때 주의할 점은
예정 자체를 부정하거나 예정을 제한예정이나 상대예정이라고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판의 방향은 예정의 목적을 잘못 파악하고 상대하는 그 자세를 비판해야 합니다.
-절대예정론은 자유의지를 부인하는가?
절대예정이므로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지 않느냐고 결론짓는다면 일차원적 시각입니다.
면적은 없고 선만 있는 1차원 세계인 철로 위에 두 기차가 마주온다면 충돌 뿐이지만
여러 선이 합쳐 면적을 가진 2차원인 고속도로는 마주 오는 차량이 충돌을 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하나님만 가진 절대 자유 차원의 자유로 보게 되면
질문자 지적이 맞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그 '자유성'이라는 표현이 어떤 차원에서의 자유인지를 살펴보면
절대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란 둘 중에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합니다.
-컴퓨터 게임의 프로그램에는 사용자 의지에 따라 다양성이 있다 하셨는데...
좁게 보면 사용자가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 같지만
넓게 보면 컴퓨터 프로그램은 사용자가 선택할 모든 가능성을 미리 예정해 두었습니다.
사용자의 두뇌 파악이 미치지 못해서 사용자 마음대로 게임을 전개하여 나가는 것 같으나
모든 컴퓨터 게임을 사용하는 사람은 점 하나의 움직임까지도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습니다.
-지옥에 던지는 예정은 '사랑의 하나님'을 생각할 때 모순이 아닌가?
사랑의 의미를 1차원의 단선으로만 정의하셨기 때문에 생긴 오해입니다.
지옥을 만든 것도 지옥 갈 사람을 만든 것도 하나님의 사랑 중 하나입니다.
양의 새끼를 잡아 자기 집 아이를 먹이는 것을 두고 우리는 부모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물론 양의 입장에서 보면 살인마들이겠습니다.
기준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이 모든 표현들은 다 달라집니다.
-넓은 울타리는 예정이고 그 안에서의 활동은 자유라고 한다면?
큰 예정이 참으로 예정 되려면
그 큰 예정을 구성하는 작은 예정도 한치의 오차가 없어야 합니다.
시계 안에 큰 톱니바퀴들이 예정이면 작은 톱니바퀴들도 틀림없이 예정입니다.
작은 바퀴들이 자유롭게 움직인다면 큰 톱니바퀴만 예정대로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까칠한 질문에 대하여
이 홈은 이 홈 스스로 '연구'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가볍고 유쾌하고 즐겁게 대화하고 싶은 홈들은 '카페'라는 식으로 이름을 붙일 것이나
이 홈은 스스로 '연구'라는 이름을 표시했으므로 머리가 깨지도록 살펴보자는 곳입니다.
어떤 일이 있다 해도
신앙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근본 방향을 살피거나 실제 걸어가는 데 있어 필요한 것을
진지하게 전념하겠다는 뜻입니다.
이 홈에서 이미 오간 자료를 통해 충분하게 안내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윗글의 질문도
앞서 나온 문답의 범위 안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성경을 믿는다면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이 홈에서 안내하는 예정론 외에 다른 주장은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논리적으로 맞다 해도
실감이 되어 정말 확신에 이르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열어 주셔야 하는 문제이니
마음을 열어주시라는 기도와 함께 조용하고 세밀히 따져보는 묵상을 권합니다.
참고로
-운명론 숙명론이 아닌가?
운명론이나 숙명론이라는 것은
예정이라는 존재를 알아 차린 사람들이
그 예정의 목적과 이유를 알지 못하여 자포자기를 할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칼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고 칼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 나쁜 것처럼
예정이 옳기는 옳은데 예정으로 역사하는 이유를 잘못 오해한 것이 운명론 숙명론입니다.
따라서
운명론이나 숙명론을 비판할 때 주의할 점은
예정 자체를 부정하거나 예정을 제한예정이나 상대예정이라고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판의 방향은 예정의 목적을 잘못 파악하고 상대하는 그 자세를 비판해야 합니다.
-절대예정론은 자유의지를 부인하는가?
절대예정이므로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지 않느냐고 결론짓는다면 일차원적 시각입니다.
면적은 없고 선만 있는 1차원 세계인 철로 위에 두 기차가 마주온다면 충돌 뿐이지만
여러 선이 합쳐 면적을 가진 2차원인 고속도로는 마주 오는 차량이 충돌을 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하나님만 가진 절대 자유 차원의 자유로 보게 되면
질문자 지적이 맞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그 '자유성'이라는 표현이 어떤 차원에서의 자유인지를 살펴보면
절대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란 둘 중에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합니다.
-컴퓨터 게임의 프로그램에는 사용자 의지에 따라 다양성이 있다 하셨는데...
좁게 보면 사용자가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 같지만
넓게 보면 컴퓨터 프로그램은 사용자가 선택할 모든 가능성을 미리 예정해 두었습니다.
사용자의 두뇌 파악이 미치지 못해서 사용자 마음대로 게임을 전개하여 나가는 것 같으나
모든 컴퓨터 게임을 사용하는 사람은 점 하나의 움직임까지도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습니다.
-지옥에 던지는 예정은 '사랑의 하나님'을 생각할 때 모순이 아닌가?
사랑의 의미를 1차원의 단선으로만 정의하셨기 때문에 생긴 오해입니다.
지옥을 만든 것도 지옥 갈 사람을 만든 것도 하나님의 사랑 중 하나입니다.
양의 새끼를 잡아 자기 집 아이를 먹이는 것을 두고 우리는 부모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물론 양의 입장에서 보면 살인마들이겠습니다.
기준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이 모든 표현들은 다 달라집니다.
-넓은 울타리는 예정이고 그 안에서의 활동은 자유라고 한다면?
큰 예정이 참으로 예정 되려면
그 큰 예정을 구성하는 작은 예정도 한치의 오차가 없어야 합니다.
시계 안에 큰 톱니바퀴들이 예정이면 작은 톱니바퀴들도 틀림없이 예정입니다.
작은 바퀴들이 자유롭게 움직인다면 큰 톱니바퀴만 예정대로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까칠한 질문에 대하여
이 홈은 이 홈 스스로 '연구'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가볍고 유쾌하고 즐겁게 대화하고 싶은 홈들은 '카페'라는 식으로 이름을 붙일 것이나
이 홈은 스스로 '연구'라는 이름을 표시했으므로 머리가 깨지도록 살펴보자는 곳입니다.
어떤 일이 있다 해도
신앙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근본 방향을 살피거나 실제 걸어가는 데 있어 필요한 것을
진지하게 전념하겠다는 뜻입니다.
전적예정론은 운명론(숙명론)과 무엇이 다른가요?
연구실의 정리 자료를 보던 중 이 사실이 궁금했습니다.
1. 마음이라는 것은
영의 소유격이며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선택은 택자는 중생된 자기 영을 따르거나 악령을 따르며
불택자는 악령을 따른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2. 전적예정론을 보자면
하나님께서 건설구원의 성화까지 일거수 일투족 호흡 하나까지 예정하셨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3. 전적예정에 따르면 운명론과 다를 바가 없다.
창세전에 이미 우리 인간들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 호흡까지
게임 프로그램을 만들듯이 모두 정해졌다고 한다면, 운명론이며 숙명론이 됩니다.
그러나 사실 게임 프로그램도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조건들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프로그램의 다양한 개연성이 존재하며 10명이면 10명 모두 다른 결과를 낳고 게임을 이끌어 갑니다.
따라서 전적예정은 작가의 머리에서 나온 한편의 영화로 비유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렇게 되면 불신자들도 모두 운명지어진 존재이며
하나님께서 지옥으로 던지시는 것은 사랑의 하나님으로는 너무 모순적입니다.
4. 좀더 정확한 예정론은
죄에 대한 인간의 자유의지는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유의지는 택자나 불택자나 만인이 있지 않습니다.
비록 택자 일지라도 다 양같아서 자기 갈길로 가지만
하나님께서 목적하시는 방향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진정한 예정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들판에서 풀을 뜯는 양들에게 자유가 있고 그 양들을 울타리 안으로까지 인도하는
목자가 곧 인간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비유가 될 듯합니다.
5. 마음의 자유선택권과 전적예정론은 너무 모순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답변들도 일부 살펴보았지만,
서로 이치가 맞지 않는 교리는 우리와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하기 보다는
뭔가 교리상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정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저의 짧은 지식으로 질문을 드렸습니다.
항상 친절하신 목사님께 까칠한 질문만 드려서 송구스럽습니다.
---------------------------
연구실의 정리 자료를 보던 중 이 사실이 궁금했습니다.
1. 마음이라는 것은
영의 소유격이며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선택은 택자는 중생된 자기 영을 따르거나 악령을 따르며
불택자는 악령을 따른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2. 전적예정론을 보자면
하나님께서 건설구원의 성화까지 일거수 일투족 호흡 하나까지 예정하셨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3. 전적예정에 따르면 운명론과 다를 바가 없다.
창세전에 이미 우리 인간들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 호흡까지
게임 프로그램을 만들듯이 모두 정해졌다고 한다면, 운명론이며 숙명론이 됩니다.
그러나 사실 게임 프로그램도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조건들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프로그램의 다양한 개연성이 존재하며 10명이면 10명 모두 다른 결과를 낳고 게임을 이끌어 갑니다.
따라서 전적예정은 작가의 머리에서 나온 한편의 영화로 비유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렇게 되면 불신자들도 모두 운명지어진 존재이며
하나님께서 지옥으로 던지시는 것은 사랑의 하나님으로는 너무 모순적입니다.
4. 좀더 정확한 예정론은
죄에 대한 인간의 자유의지는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유의지는 택자나 불택자나 만인이 있지 않습니다.
비록 택자 일지라도 다 양같아서 자기 갈길로 가지만
하나님께서 목적하시는 방향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진정한 예정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들판에서 풀을 뜯는 양들에게 자유가 있고 그 양들을 울타리 안으로까지 인도하는
목자가 곧 인간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비유가 될 듯합니다.
5. 마음의 자유선택권과 전적예정론은 너무 모순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답변들도 일부 살펴보았지만,
서로 이치가 맞지 않는 교리는 우리와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하기 보다는
뭔가 교리상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정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저의 짧은 지식으로 질문을 드렸습니다.
항상 친절하신 목사님께 까칠한 질문만 드려서 송구스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