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신앙의 '일반 생활관' - 관련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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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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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8 00:00
1.신앙인의 생활
성경을 읽고 신구약을 비교해 본다면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를 공부해 본다면
교회사를 통해 기독교가 새롭게 출발하던 5백년 칼빈의 시대를 살피게 된다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영국과 미국의 청교도 운동을 지금도 살펴본다면
그리고 우리의 신앙 양심으로 생각해봐도
믿는 사람은
외모보다는 내면을, 복잡보다는 단순을, 절차보다는 효율을
비상보다는 평범을, 소비보다는 절약을 중시하고 노력하는 것이 본능이며 당연한 일입니다.
2.신앙의 알맹이와 껍데기
속에는 아무 것도 없는 돌과 나무로 부처를 만들고 섬기는 불교인처럼 미신인들처럼
모든 이방종교인들은 그들 신앙 안에는 아무런 생명이 없기 때문에
'외모' 가꾸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비상'한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어 사람을 호립니다.
절에서 천주교에서 미신과 무당들 그리고 유교 제사에 이르기까지
필요없는 일에 '소비'하는 일을 많이 만들어 어지럽게 해야 종교가 유지됩니다.
참 하나님을 모신 우리는
내 속에 그 분 모시고 그 분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찾아서 순종하면 그것이 전부이므로
불교처럼 복잡하게 유교처럼 어지럽게 무슨 형식 절차 외모를 가질 것이 거의 없고
주일 하나 지키고
예배 때 성경 하나면 되고
형식 절차를 꼭 하나 지키는 것이 있다면 세례 성찬 정도 뿐입니다.
아무 복잡할 외모도 형식도 절차도 필요 없으니 낭비 소비 되는 일도 없습니다.
쉽게 간단하게 단순하게 아주 자연스럽게 말씀대로 살면 되는 길입니다.
겉보기는 아주 단순하고 밋밋하고 아무 그럴 듯해 보이는 것이 없는데도
하나님이 말씀대로 사는 우리 속에서 역사하고
그 역사가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이 참 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3.공회의 일상 생활관
현재 교계의 예배 절차와 형식과 모임과 무슨 행사나 행정에 밟아야 하는 절차가
마치 천주교나 불교를 닮는 것처럼 복잡하여 어지러울 정도입니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웅장한 예배당과 분위기 좋은 인테리어에 듣기 좋은 목소리와 찬양이
성도들의 눈과 귀에 와닿는 효과는 탁월하지만
염불은 없고 제밥만 남은 불교를 따라
천주교가 하나님과 진리는 없고 역사와 성당 건축물과 세계적 조직과 돈만 남았듯이
오늘 기독교는 이 노선에서 따로 말하지 않아도 일반 신학교 교과서와 신학강좌가
초대교회에서 시작하고 종교개혁기에 새롭게 출발한 원래 기독교는 아니라
단정하고 있습니다.
4.공회 신앙노선은
아다시피
고신이나 합동측 교단들과 같이 말로만 보수니 정통이니 순교적 신앙이니 그렇게 하지 않고
옳으면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면 교단 내 국가의 주일시험 보는 사람이 없고
주일에 매매하지 않는 것이 옳다면 주일에 그렇게 하는 이들은 집사도 시키지 않습니다.
교계 제일의 보수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교단들이
그렇게 원칙을 지키려면 실제 교세를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고 타협하는 것과 달리
이 노선은 혼자서 믿고 혼자 걸어가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는 신앙 노선입니다.
생활 면에 있어
이 노선은 예배를 포함 결혼과 장례식까지 간단하게 한다든지
교회 내 모든 운영이 신앙 내용에 중심을 두고 복음에 유익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데
질문하신 의식주 생활 문제까지도 같은 원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5.공회 목회자들의 의식주 생활은
- 목회 활동에 필요한 만큼 먹고
- 목회 활동에 지장 없을 정도로 입고
- 목회 활동에 필요한 정도 숙소를 가지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런 원칙을
가깝게는 미국과 영국의 청교도라는 이름이 바로 이런 원칙에서 살았고
멀리는 칼빈의 종교개혁 시기의 상식이었으며
원래는 사도행전의 초대교회가 바로 이렇게 살았습니다.
강단은
성경을 올려놓을 수 있으면 되고 교인들이 설교하는 사람 얼굴 보기 편한 정도였으며
예배당은
비나 바람을 피하며 사시사철 예배드리는데 불편 없는 정도면 좋은 예배당인데
천주교가 건축물의 웅장과 예술성에 그들 신앙 중심을 바쳤듯이
현재 교계의 전체 움직임은 이런 문제에 있어 지극히 큰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옷은
교인들을 상대할 때 불편이 없는 정도면 되고
옷의 비용은 최저생활 수준의 일반인들이 보통 사용하는 옷 정도면 될 것이므로
어떻게 하면 간단하게 검소하게 옷 입는 문제를 처리하여 목회에만 전념할까
이것이 원칙입니다.
양복의 색깔이 달라지면 와이샤쓰나 넥타이 구두 양말까지 달라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한 가지 색깔을 가진 것보다 소비가 많을 것이고
옷이 그렇게 되다보면 생활의 다른 면도 그렇게 균형을 맞추어야 하므로
한 가지 색깔로 맞추어 간단히 해결한 것이 검정양복입니다.
6.참고로, 공회 신앙노선의 '생활관'
①내면화
'외모'보다 '내면'을 향하여 주력하는 것이 성경이며 초대교회며 공회 노선입니다.
음식을 담기 위해 그릇이 필요한데 음식보다 그릇에 치중하게 될 때 외식이라고 합니다.
바리새인의 신앙노선을 가지고 성경은 신앙 걸음에서 주의할 것을 말씀하셨는데
'바리새인'이라는 말은 잘 믿으려 노력하거나 오래 된 교회라는 뜻입니다.
신앙은 내면이 중요하고 외부 모습은 내면 신앙에 필요한 최소한에 그치는 것이 맞습니다.
주일학교로 예를 들면
반사할 의지가 있고 열심이 있고 시키면 정말 반사할 수 있는 사람이냐는 내면이 중요한데
교사자격증이나 대학생이나 인물이나 언변이나 교회를 다닌 경력은 외모가 될 수 있습니다.
②실효화
'절차'보다 '실효'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절차를 밟지 않으면 훗날 쌓아올린 것이 무너지기 때문에 절차란 중요한 것인데
이런 절차 문제가 세월이 가면 절차를 위한 절차가 되고
절차가 실제 그 절차 때문에 얻으려는 효력보다 더 큰 문제가 되고
결국은 절차만 남고 원래 목표한 효력은 간곳이 없게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주일학교로 예를 들면
반사를 양육한다고 반사 양성 프로그램을 교회마다 다 운용하고 있는데
그 절차는 대개 그 절차 전체가 왜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고 그 절차
③단순화
'복잡'보다 '단순'한 것이 옳기 때문에
축도문이나 예배의 순서나 임직 장례식 등 기타 절차들을 포함하여
모든 면으로 천주교식의 복잡한 것을 다 없애버리고
오직 성경과 자기 신앙양심을 가지고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신 하나님을 찾는 데만 주력하고 있습니다.
④평범화
'비상'보다 '평범'이라는 원칙도 있습니다.
각자에게 주신 자기 현실 속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고
하나님의 인도는 전능이므로 인간 눈에 보기에 무슨 특별한 것이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니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 현실이 하나님의 현실인도라고 믿고 있으므로
자기 현실 속에서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순종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⑤절약화
'소비'보다 '절약'이라는 원칙은 경제 외에 모든 생활에 적용됩니다.
자기가 번 자기 돈이라 해도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계산할 날이 있으므로
꼭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정이 있기 전에는 매사를 조심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과 신앙의 외모 외부 형식 절차에 들어갈 비용과 재료를 최대한 아껴
신앙의 실제 내면 건설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이 신앙의 원래 모습니다.
성경을 읽고 신구약을 비교해 본다면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를 공부해 본다면
교회사를 통해 기독교가 새롭게 출발하던 5백년 칼빈의 시대를 살피게 된다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영국과 미국의 청교도 운동을 지금도 살펴본다면
그리고 우리의 신앙 양심으로 생각해봐도
믿는 사람은
외모보다는 내면을, 복잡보다는 단순을, 절차보다는 효율을
비상보다는 평범을, 소비보다는 절약을 중시하고 노력하는 것이 본능이며 당연한 일입니다.
2.신앙의 알맹이와 껍데기
속에는 아무 것도 없는 돌과 나무로 부처를 만들고 섬기는 불교인처럼 미신인들처럼
모든 이방종교인들은 그들 신앙 안에는 아무런 생명이 없기 때문에
'외모' 가꾸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비상'한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어 사람을 호립니다.
절에서 천주교에서 미신과 무당들 그리고 유교 제사에 이르기까지
필요없는 일에 '소비'하는 일을 많이 만들어 어지럽게 해야 종교가 유지됩니다.
참 하나님을 모신 우리는
내 속에 그 분 모시고 그 분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찾아서 순종하면 그것이 전부이므로
불교처럼 복잡하게 유교처럼 어지럽게 무슨 형식 절차 외모를 가질 것이 거의 없고
주일 하나 지키고
예배 때 성경 하나면 되고
형식 절차를 꼭 하나 지키는 것이 있다면 세례 성찬 정도 뿐입니다.
아무 복잡할 외모도 형식도 절차도 필요 없으니 낭비 소비 되는 일도 없습니다.
쉽게 간단하게 단순하게 아주 자연스럽게 말씀대로 살면 되는 길입니다.
겉보기는 아주 단순하고 밋밋하고 아무 그럴 듯해 보이는 것이 없는데도
하나님이 말씀대로 사는 우리 속에서 역사하고
그 역사가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이 참 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3.공회의 일상 생활관
현재 교계의 예배 절차와 형식과 모임과 무슨 행사나 행정에 밟아야 하는 절차가
마치 천주교나 불교를 닮는 것처럼 복잡하여 어지러울 정도입니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웅장한 예배당과 분위기 좋은 인테리어에 듣기 좋은 목소리와 찬양이
성도들의 눈과 귀에 와닿는 효과는 탁월하지만
염불은 없고 제밥만 남은 불교를 따라
천주교가 하나님과 진리는 없고 역사와 성당 건축물과 세계적 조직과 돈만 남았듯이
오늘 기독교는 이 노선에서 따로 말하지 않아도 일반 신학교 교과서와 신학강좌가
초대교회에서 시작하고 종교개혁기에 새롭게 출발한 원래 기독교는 아니라
단정하고 있습니다.
4.공회 신앙노선은
아다시피
고신이나 합동측 교단들과 같이 말로만 보수니 정통이니 순교적 신앙이니 그렇게 하지 않고
옳으면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면 교단 내 국가의 주일시험 보는 사람이 없고
주일에 매매하지 않는 것이 옳다면 주일에 그렇게 하는 이들은 집사도 시키지 않습니다.
교계 제일의 보수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교단들이
그렇게 원칙을 지키려면 실제 교세를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고 타협하는 것과 달리
이 노선은 혼자서 믿고 혼자 걸어가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는 신앙 노선입니다.
생활 면에 있어
이 노선은 예배를 포함 결혼과 장례식까지 간단하게 한다든지
교회 내 모든 운영이 신앙 내용에 중심을 두고 복음에 유익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데
질문하신 의식주 생활 문제까지도 같은 원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5.공회 목회자들의 의식주 생활은
- 목회 활동에 필요한 만큼 먹고
- 목회 활동에 지장 없을 정도로 입고
- 목회 활동에 필요한 정도 숙소를 가지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런 원칙을
가깝게는 미국과 영국의 청교도라는 이름이 바로 이런 원칙에서 살았고
멀리는 칼빈의 종교개혁 시기의 상식이었으며
원래는 사도행전의 초대교회가 바로 이렇게 살았습니다.
강단은
성경을 올려놓을 수 있으면 되고 교인들이 설교하는 사람 얼굴 보기 편한 정도였으며
예배당은
비나 바람을 피하며 사시사철 예배드리는데 불편 없는 정도면 좋은 예배당인데
천주교가 건축물의 웅장과 예술성에 그들 신앙 중심을 바쳤듯이
현재 교계의 전체 움직임은 이런 문제에 있어 지극히 큰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옷은
교인들을 상대할 때 불편이 없는 정도면 되고
옷의 비용은 최저생활 수준의 일반인들이 보통 사용하는 옷 정도면 될 것이므로
어떻게 하면 간단하게 검소하게 옷 입는 문제를 처리하여 목회에만 전념할까
이것이 원칙입니다.
양복의 색깔이 달라지면 와이샤쓰나 넥타이 구두 양말까지 달라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한 가지 색깔을 가진 것보다 소비가 많을 것이고
옷이 그렇게 되다보면 생활의 다른 면도 그렇게 균형을 맞추어야 하므로
한 가지 색깔로 맞추어 간단히 해결한 것이 검정양복입니다.
6.참고로, 공회 신앙노선의 '생활관'
①내면화
'외모'보다 '내면'을 향하여 주력하는 것이 성경이며 초대교회며 공회 노선입니다.
음식을 담기 위해 그릇이 필요한데 음식보다 그릇에 치중하게 될 때 외식이라고 합니다.
바리새인의 신앙노선을 가지고 성경은 신앙 걸음에서 주의할 것을 말씀하셨는데
'바리새인'이라는 말은 잘 믿으려 노력하거나 오래 된 교회라는 뜻입니다.
신앙은 내면이 중요하고 외부 모습은 내면 신앙에 필요한 최소한에 그치는 것이 맞습니다.
주일학교로 예를 들면
반사할 의지가 있고 열심이 있고 시키면 정말 반사할 수 있는 사람이냐는 내면이 중요한데
교사자격증이나 대학생이나 인물이나 언변이나 교회를 다닌 경력은 외모가 될 수 있습니다.
②실효화
'절차'보다 '실효'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절차를 밟지 않으면 훗날 쌓아올린 것이 무너지기 때문에 절차란 중요한 것인데
이런 절차 문제가 세월이 가면 절차를 위한 절차가 되고
절차가 실제 그 절차 때문에 얻으려는 효력보다 더 큰 문제가 되고
결국은 절차만 남고 원래 목표한 효력은 간곳이 없게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주일학교로 예를 들면
반사를 양육한다고 반사 양성 프로그램을 교회마다 다 운용하고 있는데
그 절차는 대개 그 절차 전체가 왜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고 그 절차
③단순화
'복잡'보다 '단순'한 것이 옳기 때문에
축도문이나 예배의 순서나 임직 장례식 등 기타 절차들을 포함하여
모든 면으로 천주교식의 복잡한 것을 다 없애버리고
오직 성경과 자기 신앙양심을 가지고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신 하나님을 찾는 데만 주력하고 있습니다.
④평범화
'비상'보다 '평범'이라는 원칙도 있습니다.
각자에게 주신 자기 현실 속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고
하나님의 인도는 전능이므로 인간 눈에 보기에 무슨 특별한 것이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니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 현실이 하나님의 현실인도라고 믿고 있으므로
자기 현실 속에서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순종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⑤절약화
'소비'보다 '절약'이라는 원칙은 경제 외에 모든 생활에 적용됩니다.
자기가 번 자기 돈이라 해도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계산할 날이 있으므로
꼭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정이 있기 전에는 매사를 조심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과 신앙의 외모 외부 형식 절차에 들어갈 비용과 재료를 최대한 아껴
신앙의 실제 내면 건설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이 신앙의 원래 모습니다.
의복의 대하여
이영인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부공? 교회를 다니는 청년입니다...
제가 항상 궁금했던것을 처음으로 질문합니다,,,
우리공회 목회자들은 왜 검정양복과 검정넥타이를 매는지요?
검정넥타이나 검정양복을 입지아니하면 속화입니까...
그래서 교역자님들은 항상 검정넥타이와 양복을 입는것입니까...
이영인 목사님도 항상 검정넥타이와 양복을 입으시는것 같던데
상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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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인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부공? 교회를 다니는 청년입니다...
제가 항상 궁금했던것을 처음으로 질문합니다,,,
우리공회 목회자들은 왜 검정양복과 검정넥타이를 매는지요?
검정넥타이나 검정양복을 입지아니하면 속화입니까...
그래서 교역자님들은 항상 검정넥타이와 양복을 입는것입니까...
이영인 목사님도 항상 검정넥타이와 양복을 입으시는것 같던데
상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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