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역사 - 예배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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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성령의 역사 - 예배를 중심으로 |
| 내용 | 1.예배와 삼위일체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나뉠 수 없고 나눌 수 없으니 삼위일체 하나님 중 어느 분을 빼고 어느 분만 상대로 예배드린다는 것은 오해입니다. 식사시간에 밥을 지어 밥상을 차린 분은 어머니시지만 그 밥 마련을 위해 뼈빠지게 고생한 분은 아버지시므로 밥을 먹을 때 부모님께 감사하는 것이 철이 든 자식이고 만일 어머니께만 감사한다면 그것은 어려서 그런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목적 예정 창조 섭리 구원 성화의 은혜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과정에서 어떤 단계는 성령이 앞서고 어떤 단계는 성자가 전적 책임을 지고 나타나지만 삼위일체는 항상 내면으로 하나이며 함께 하셨습니다. 단지 사안 별로 한 분이 앞서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 드릴 때 삼위일체 하나님 어느 한분이 더 강조되거나 덜 강조되는 것은 곤란하며 단지 예배 때마다 특별하게 더 가르치기 위해 더 강조하기 위해 이런 저런 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2.성령 역사에 대한 문제점 믿는 우리 신앙양심을 통해 역사하는 모든 역사가 다 성령의 역사이므로 사실 정상적으로 믿는 분들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소홀히 될 수가 없고 잊혀질 수가 없으며 신약 우리의 모든 신앙이 전부 성령역사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순복음식 성령만 성령인 줄 알기 때문에 고장이 났고 어떤 분들은 발전하는 세상 속에 자기 속에 성령이 계시는 것을 깜빡 잊고 자기 생각만으로 만사를 해결하려 하지 자기 속에 만유주 하나님이 성령으로 와 계시므로 이 분과 대화하고 이 분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교회가 성령을 너무 말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면 동의합니다. 혹 성령을 강하게 말하는 곳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순복음식 성령이고 그렇지 않은 교회들은 성령으로 동행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면 무슨 불건전한 신비주의 대하듯 합니다. 현재 우리에게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를 줄여서 '영감'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우리 마음에 감화와 감동을 통해 하시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데 이런 표현조차 성경기록영감만 영감이라고 생각하여 비판과 정죄가 즉각 일어나고 있는 정도입니다. 성령에게 따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또 예배를 드릴 때 내면에서는 성령이 우리 마음을 붙들어 말씀을 깨닫게 하므로 예배의 은혜를 받게 하시는 것이 '성령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며 예배를 통해 받는 성령의 은혜'입니다. 3.소개하신 '베니힌 목사님'의 책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안녕하세요 성령님`이라는 책제목에서 그분이 성령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면이 보이지만 동시에 신앙세계를 그렇게 장난삼아 쉽게 우습게 상대하는 태도는 성령을 진정으로 만나 동행해 본 내면이 없고 단지 신학적으로 남들이 치중하지 않은 분야를 발견하여 남보다 앞서 성령의 역사를 외치는 것으로 무슨 인기몰이나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정도로 읽혀집니다. 지금 세상도 만화로 수학이나 역사를 배운다면서 성경도 만화로 그려내고 신앙의 모든 면을 인간 재미에 맞추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자세는 일대 마귀역사라고 생각하고 조심하는 것이 옳습니다. 4.'성령이 모든 것을 가르치신다는 요일2:27' 말씀은 믿는 모든 이들이 조금만 조심해서 살펴보면 분명한 사실이며 이런 사실이 사실로 믿어지지 않는다면 그 신앙은 정말 갓난아이 수준입니다. 예배의 시간이나 순서 등을 미리 고정시키는 것은 성령역사에 제한이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동감합니다. 다만 무조건 예배시각이나 시간이나 순서의 고정이 무조건 성령제한이라 하는 것은 좀 지나칠 것 같습니다. 무조건 다 달라야 한다는 것도 지나치고 그렇다고 무조건 천주교처럼 판에 박게 된다면 이 역시 성령은 없고 인간의 계획만 있다 하겠습니다. 지방교회 또는 형제교회라고 알려진 분들에게 들은 기억이 있는데 그분들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누구든지 설교하고 시간이나 형식에 매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취지와 동기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신앙이 어린 이들이 볼 수 없는 성령의 역사를 실제 바로 붙들고 움직이지 못하고 자기 주관이며 자기 착각을 전부 성령 역사로 돌릴 수 있는데 그렇게 되어 어지러움의 하나님을 만들고 자기 생각을 성령에 붙들렸다는 것을 오랫동안 강조하다 보면 성령에게 자기가 붙들려 자기가 성령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고 그 반대로 성령을 자기 생각으로 가지고 놀고 제단까지 하게 되어 나중에는 자기가 성령이 되고 성령은 내쫓아 버리는 결과까지 나갈 수 있음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린 이들은 예배시간을 어느 정도 정해놓고 그 시간을 지키려 하면서 동시에 내적으로는 성령이 진정 그 시간보다 좀 일찍 아니면 좀 더 늦게 예배시간을 인도하시는지 살펴, 자기가 자라가면서 성령에 붙들리는 사람이 되도록 하면 좋다고 생각됩니다. |
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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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