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사경회)에 대한 전반적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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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사경회)에 대한 전반적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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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집회~]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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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목사님의 연중 계속되던 집회 인도


①백목사님의 집회인도 역사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백목사님의 타처 교회 집회가 시작됩니다. 평양감옥을 출옥했던 주남선목사님의 적극적 주선으로 거창지방에서부터 시작되어 전국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같은 출옥성도인 이인재목사님과 여타 고신측 중진들의 소개로 아직 교역자 인허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부흥강사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고, 1950년 고려신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는 고신교단의 간판부흥사가 되어 고신의 진리운동의 제일 선봉에 섰습니다. 1959년 고신에서 제거된 후부터는 주로 고신을 제외한 초교파적 사경회를 인도하며 1963년까지 계속하게 됩니다. 감리교를 포함 장로교 각 교단을 망라했으며, 지역적으로도 서울 경기 강원 충청 경북 대구 전남까지 다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②외부 집회를 중단하고 양대집회를 확립하게 된 이유


당시 교계에서는 백목사님이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고 생각하였던 차에 고신에서 제명되었고 또한 이후 중생교리 때문에 박윤선목사님과 대립하게 되자 교계는 백목사님을 백파 이단으로 정죄하고 나서게 됩니다. 일일이 다 찾아다니며 해명할 수 없는 유언비어와 조직적인 모략을 집중적으로 받게 되자, 이를 해명하고 다닐 수도 없고 또한 말씀을 접하게 된 교회와 교인들에게 주변에서 돌려세우기 위해 너무 지나친 활동을 하게 되어 자신들의 신앙 이상으로 환란을 겪게 되어 결국 신앙에 파선을 가져 오는 경우들을 보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첫째, 백목사님은 교계에 파장을 일으키며 전하는 것은 결국 이 말씀으로 돌아올 사람들에게 길이 더 막히게 될 것이라는 점, 둘째는 발로 뛰어다니며 전하는 것보다 가만히 앉아서 전해도 옳은 것은 전파될 것이라는 점, 셋째는 전국 몇 곳에서 주기적 집회를 가지게 되면 꼭 듣고 싶은 이들은 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 넷째로는 서부교회와 공회 교인들이 백목사님 설교를 따라 다니며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내부 교인들이 집회 참석을 더 사모하게 된 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기간에는 집회가 월요일부터 다음 주 월요일 새벽까지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서부교인들은 거의 집회 참석을 하지 못하였으며 삼봉산집회에도 서부교인이 1-2명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③거창 삼봉산, 부산 금정산, 서울 삼각산 등 3곳으로 확정된 집회


이제 교회 단위로 집회를 인도하는 것은 전면 사절하게 되고 북쪽 남쪽 중간지역으로 생각할 수 있는 3곳에서 통합하여 집회를 하여 조용히 듣고 조용히 일어서서 저절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말씀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대부흥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꼭 와서 들을 사람은 반대를 무릎쓰고 오는 정도라야 받은 말씀을 뺏기지 않고 또 듣고 귀만 즐겁게 하고 지나가는 일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이후 27년간 교계에서는 그를 보았다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게 된 것입니다.


1960년에 삼봉산집회와 금정산집회가 정식으로 출발하게 됩니다. 이전에도 삼봉산집회는 이미 1957년에 거창지방교회들이 제1회 집회로 기록한 뒤 해마다 열려왔고 금정산집회도 백목사님이 70인바위로 기도를 다니다가 1958년부터는 산집회로 시작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백목사님 노트에는 1960년에 '제1회집회'라고 일부러 적고 관리한 것을 보아, 그전 집회는 전국 집회 인도 중 하나로 보았다는 뜻이 되겠고, 1960년도부터는 전국적 집회를 염두에 두고 모았으며 1963년부터는 외부 교회로 집회를 나가지 않게 됨으로 자연스럽게 오늘처럼 전국집회만 남아 전해오게 된 것입니다.


한편 서울삼각산집회는, 우이동에서 교역자들을 중심으로 사경회를 하는 등 서울지방에도 집회장소를 생각하고 있었고 그 중심지역으로 삼각산집회를 유지하게 됩니다. 거창과 부산집회 뒤가 되는 1961년에 제1회집회로 정식 출발시켜 장소로는 3곳, 모이는 횟수로는 1년 4회 체제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1965년 김현봉목사님이 돌아가시게 되자 아현교회를 이병규목사님이 주관하게 되면서 서울지역에서 백목사님의 활동에 대하여 일부 불편한 표시를 하게 되자 백목사님은 이병규목사님에게 서울쪽에서 복음운동을 하라고 권하고 또 자신은 남쪽에서 복음운동을 하겠다고 하여 서울에서 활동을 중단하게 됩니다. 원래 서울에서 백목사님이 교역자수양회 등을 인도하게 된 배경에는 전쟁 후 수복된 서울로 돌아간 이병규목사님이 백목사님을 초빙하는 등 많은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백목사님이 서울에서 계속 활동하게 되면 아현교회와 이병규목사님측은 활동하는 공간이 겹쳐지게 되어 불편하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역을 가지고는 다툴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서울쪽으로는 대외활동을 하지 않게 되어 이 집회는 목사님 가실 때까지 다시는 열리지 않게 됩니다.


④한편 삼봉산집회와 금정산집회는 각각 5월 대구집회와 8월 거창집회로 자리잡게 됩니다.


거창의 삼봉산은 비포장시절이었던 당시 교통이 너무도 불편하였고 또한 집회장소로서는 협소하여 결국 16km 정도 내려온 현재 도평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9월 집회가 8월로 들어오게 되었고 8월 중에서도 날짜가 뒤에 있었던 것이 농번기나 방학 등을 고려하여 결국 현재와 같이 8월 첫주 지난 월요일부터 금요일로 확정이 됩니다.


부산 금정산집회 역시 장소도 협소하지만 전국 규모로 모이는 위치를 생각하여 5월집회로서 1969년부터 대구 노곡동으로 확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5월집회 기간도 처음에는 5월 뒷쪽에 있다가 농번기 등을 고려 현재와 같이 첫주 지난 월요일로 금요일까지로 확정됩니다.


양대집회는 1970년대까지는 핵심교인 위주로 모였고 혹 데리고 다니는 학생들이 간혹 참석하는 정도였습니다만, 1980년부터는 중간반과 주일학생의 대거 참석으로 방향을 잡게 됩니다. 당시 최고 절정에 있던 주일학교는 그 학생들에게 장년반예배 참석을 강조하게 되었고 집회는 그 절정이었던 것입니다.


2.연2회 집회를 살필 때, 먼저 알아두어야 할 각 교회별 지역집회


①공회 전체적으로 본다면, 백목사님의 2번 집회와 지방공회별 2-3회 집회가 있었습니다.


공회 전체 집회는 인도할 수 있는 분이 백목사님 뿐이었으니 강사를 고려할 때 그 이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방에서 교회별로 자체집회를 하게 되고 또 그 집회에는 부근 교회들이 함께 참석하기 때문에 겨울철이 되면 2-3회 정도 집회를 참석하는 것이 공회 교회들의 일반적 현상이었습니다.


즉, 어느 한 교회를 두고 연중 2회 집회가 적당하다는 제시는 거의 없었습니다. 대개 지역적으로 공회 교회들은 5월과 8월은 전국규모 집회로 참석하지만 겨울방학기간에는 2-3년에 한번씩 교회 자체 집회를 가지게 되고 이때 지방공회 소속 교회들이 지역적으로 함께 모여 참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지역적 집회는 그 교회에 대한 필요보다는 주로 목회자들을 부흥강사로 기르는 목적도 함께 있었고, 초기 교역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너무 약한 목회자가 교회를 맡는 경우에 백목사님이 직접 가지는 않아도 앞선 교역자들을 보내 차선으로 교회의 은혜면을 북돋우게 했던 것입니다. 백목사님의 강력한 지도로 전국교회가 일사분란하게 지역적으로 집회가 계속되어 공회 교회의 부흥과 목회자 양성에 큰 성과가 있어 공회 전체 부흥 성장에도 크게 기여를 하게 됩니다.


②양대 집회 외의 개교회 집회가 전면 금지되던 1987-89년


그러나 지역적으로 교회들이 집회를 개최하는 것은 1987년에 들어서면서 전면 금지로 돌아서게 됩니다. 양대 집회 외에 개최되던 각 교회의 자체집회에 문제점이 심각해졌기 때문입니다.


첫째, 백목사님이 1987년부터는 공회 행정 일선에서 현저하게 물러날 때입니다.


이전과 같으면 집회 강사와 교회선정을 목사님이 여러 상황을 보고 직접 지시하였지만 이제 교회 숫자도 많아졌을 뿐 아니라 목사님이 가실 때를 생각해서 일부러 공회 행정에 뒤로 물러나며 지켜보는 자세로 바꾸었습니다. 그렇다면 백목사님 평생 가르친 것을 참고하여 개교회 집회가 은혜롭게 계속될 수 있는 원칙을 지켜야 할 것이나 목사님이 각 교회나 교역자들에게 자체적으로 맡기게 되자 이를 감당할 실력이 되지를 않았기 때문입니다. 개교회에서 꼭 하겠다면 말리지는 못하나 공회적으로 전체적으로 개교회 집회들을 하도록 권하고 시행할 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집회인도를 통해 공회내 세력을 형성하는 등 부작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회 강사로 간 교역자는 그 교회가 듣기 싫어해도 전할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교역자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그 교회 교인들을 자신의 계열로 만드는 자기 중심 집회를 하는 사례가 급증하게 됩니다. 인기 위주 설교, 목회자끼리 높혀주는 대접유도 설교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당시는 말씀 은혜에 묻히는 듯 해도 장래를 두고는 감당못할 정도로 그 폐해가 보이게 되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개교회 집회에는 부근 교역자들이 모이게 되면서 은혜위주의 교역자들은 예배 후에 기도하고 회개하느라고 사람을 만날 기회도 제대로 없는 데 비하여 인간사교 중심으로 나가는 교역자들은 개교회 집회가 백목사님 보지 않는 곳에서 백목사님 허락을 받고 마음껏 사교를 할 수 있는 기회로 변질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말 한마디가 오가도 받은 말씀으로 회개하는 새김질은 없어지고, 그대신 농담과 세상 소식으로 서로 친목을 다지고 집회를 개최하는 교회 경제로 음식대접을 하여 그동안 세상재미를 갖지 못하고 타교단 교역자들의 친목회를 부러워만 하다가 그런 육체의 기회로 삼게 됩니다. 급기야 교역자들이 여러 갈래로 모여 제주도로 휴양가는 단체관광을 시도하게 되고 이미 육지내로 놀러다니는 것은 지역 교회들의 다반사가 되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원인 중 중앙에는 지방기도실과 함께 집회가 있었고 이 문제는 장차 공회가 수정노선으로 가야한다는 주장을 하게 되는 분들의 결사체가 되기까지 합니다.


셋째, 집회가 소리없이 이렇게 되어지다 보니 해당 교회 교인들의 은혜면에도 피해가 생겼습니다.


개교회에서 집회를 하게 된다면, 그 교회 내에서 가장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새로운 은혜로 또 다시 충성할 힘을 얻어야 하는 것이 집회의 큰 목적인데 은혜가 가장 필요하고 또 한 사람이 살면 여러 많은 사람을 살려낼 교회 내 중진 교인들이 찾아오는 교역자들을 귀빈으로 대접을 하기 위해 지나치게 소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집회 핑게를 대고 교역자들의 잔치가 대판으로 벌어지게 되는 이면에는 그 교회 중심 교인들은 예배 전후하여 또는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하는 등으로 힘을 그곳에 다 빼버리고 정작 예배시간에는 졸거나 지각하거나 예배 마치기 전에 나가는 등의 행태가 아주 일반화되고 있었습니다.


1987년이 시작되면서 각 교역자는 타교회 집회를 참석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만일 가는 경우 식사대접을 받지 말고 말씀만 듣고 오든지 도시락을 싸가든지 하라고 지시를 하였으나, 여러가지 이유를 붙여 결국 시행이 되지 않게 됩니다.


③백목사님이 집회를 두고 마지막 정리한 것은, 개교회집회의 방향전환입니다.


첫째, 개교회집회는 개교회 교역자 자신이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외부에서 강사를 모셔놓고 해야 할 특수한 경우도 있지만, 이제 그런 환경이 주어지던 때는 공회적으로 끝이 났다는 것입니다. 공회 전체 교회와 교역자의 장단점을 계산하여 집회를 조정할 수 없는 시대에는 외부 강사를 청빙하게 되면 거의 다 탈선하게 되는 위험성 때문에 유익보다는 손해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말씀으로 은혜가 되지 않고 또 교회가 장기간 침체에 빠져 강력한 영양보충이 필요하게 되었다면, 그 교회를 책임진 교역자 자신이 해결해야 교역자도 살고 교인도 살게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교역자가 자기 교회에서 특별한 은혜를 끼치려면 자기를 모르는 다른 교회에 가서 은혜를 끼치는 것보다 얼마나 더 어렵게 됩니다. 그러니 죽을 힘을 다해서 은혜를 끼치도록 기도할 것이고 이런 기도 때문에 교역자 자신이 살고 교인도 자기 교역자에게 은혜를 받고 자라야 자기 친모의 젖을 먹고 자라는 건전한 교인이 되어 이웃교회나 다른 교역자에게 눈을 돌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집회 감정으로 일시 교회를 일으키려 하지말고 평소 계속해서 힘을 써라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 앞에 동일한 말씀으로 나아가 교회를 꾸준하게 부흥시키고 교인들을 지도해야지 놀고 안일하여 가라앉혔다가 한번씩 행사를 통해 불끈 일으켜 세우는 것은 올바른 목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시대적으로 하나님께서 부흥회를 대규모로 일으키는 때도 있고 교회별로 특별한 영양보충이 필요할 때도 있으나 이제 1987년 이후 앞날의 총공회는 각 교회의 교역자가 자기 교회의 나갈 길을 하나님 앞에 단독으로 책임져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어떤 단체 속화에 타락될지 모른다는 경고를 주고 있었습니다.


④1989년 백목사님 사후 집회들의 실상


100%라고 할 수 없지만, 답변자가 아는 대로는 1989년 이후 공회의 개교회 집회는 과연 정치집회 결사집회 단합대회 등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력한 교회의 목사님들은 자기 휘하에 교회들을 인솔하고 또 추가시키기 위해 마치 조직확대를 위해 발로 뛰는 세상정치가들과 같았고, 유력한 목회자가 작은 교회를 맡고 있는 경우는 자신이 대형교회를 맡을 수 있다는 점을 홍보하는 집회였으며, 공회별 투쟁이 있는 경우는 집회를 앞에 걸고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의 결전장과도 같았습니다.


대구와 거창집회로 요약되는 양대집회 마저도 부산공회는 서부교회 담임목회자를 사수하기 위해서 또는 담임목회자로 입성하기 위해서, 설교자의 자격이 아니고 사회자의 자격으로 세워놓았으나 이름부터 '강사'로 변질되고 사회만 봐야 할 목회자들이 본 설교에 앞서 있는 고성을 다 질러 자신을 내세움으로 정작 본 설교은혜를 삭감시키고 있었습니다. 그 사회자들이 앉아있는 교인을 상대로 내 설교에 은혜를 좀더 받게 되라고 외치는 열정만큼이 이후 10여년 계속되는 부산공회 투쟁의 전의(戰意)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집회 사회자 자리를 뺏으면 공회를 접수하는 것이 되고 이 집회 사회자 자리를 빼앗기게 되면 공회의 신앙노선이 타락하는 것이라고까지 보고 전쟁을 하였으니 집회는 교권투쟁의 기회로 내려앉게 된 것입니다. 그 집회 강사님들이 개별교회의 자체집회 강사로 다녔으니 그들이 가서 인도하는 교회의 집회 내용은 더 이상 살필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집회 강사에게 자기가 왔다는 인사를 해 두어야 하고, 자기가 따르는 집회 강사에게는 기세를 더해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그 집회 참석으로 목사 안수받을 사람들의 사전 선거운동이 되기도 하고 다음번 교역자이동에 자리 부탁도 되어졌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교인들은 자기들이 모르는 넓은 세계가 자신들을 어디로 끌고가는지도 모르고 따라갔다가 현재 소속 공회에 앉아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말하자면, 백목사님 사후 집회는 양대집회와 개교회집회 모두가 완전히 붕괴되었다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물론 100에 1정도로 진정 은혜 중심으로 진행된 집회도 있을 것이나 이곳의 답변은 공회 전체를 보고 내리는 단정입니다. 꼭 은혜 받은 면이 있다고 강변한다면, 그것은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순복음교회에도 집회가 있고 부흥과 은혜와 진정한 말씀이 있으며 감리교와 성결교에도 그러합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끌고 가시는 신앙걸음의 전체향방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 때에도 죄인이 있었고 아합 때에도 의인이 있었으나 다윗 때와 아합 때의 전체 분위기는 하나는 살았고 하나는 죽었던 때이며, 하나는 복받은 시대이며 하나는 태어남으로 그 자체가 저주였던 시대였습니다.


3.백목사님 생전 마지막에 확립한 양대집회의 원칙


①꼭 거창 대구 양대집회가 원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과거 백목사님 생전 양대집회의 은혜를 생각하는 이들이 그때를 잊지 못해 대구와 거창으로 양대집회를 참석하고 있지만 대개는 습관과 형식에 매여 자유하지 못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입니다. 집회 역사 자체가 시대마다 연중 수십번도 있었고 3-4차례도 있었고 또 2차례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 사후에는 1차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집회 역사 전체를 통해 우리가 확고하게 잡아야 하는 것은 오늘 이 시대 우리 교회와 우리 공회는 몇 번의 집회가 어떤 방법으로 진행되는 것이 교회와 교인 전체에게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양대집회로 계속한 것이 가장 최근이었고 그 은혜스런 결과가 참으로 엄청난 것이었으니, 두말할 것 없이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집회장소 안에서 집회기간 중에 삐라가 나뒹굴고 강사선정을 두고 양측이 힘으로 충돌을 하며 강단을 철책으로 막아놓고 상대측 강사가 진입하는 것을 막으려 하고 또 그 방어를 뚫으려 하는 경우라면, 두말 없이 집회 장소와 횟수 방법 전부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백목사님 생전 최후의 집회가 은혜스러웠던 것은 대구 거창이라는 장소에 있지 아니했고 5월과 8월이라는 시기에 있지 아니했습니다. 지금 서부교회가 동대신1가 382번지 상의 대지와 부동산을 두고 끝없는 투쟁을 반복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개척나가는 측이 그 누구이든 은혜를 사모하는 측일 것입니다.


집회 장소 뿐 아니라 그 시기가 왜 2회가 되어야 하는지도 이런 의미에서 다시 심각하게 살펴볼 일입니다.


②강사 문제로만 말한다면 5월 8월에 이어 겨울집회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백목사님 생전 집회가 연 2회로 된 것은 강사인 백목사님의 일정과 건강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참석하는 교인들의 전체 동원이 겨울철이라야 하는 점도 고려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는 강사문제가 없고 각 공회가 집회를 분리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동원숫자와 그 시설에 대한 부담이 적습니다. 당연히 겨울집회를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문제에서 대구나 서울공회와 같이 일반 교단식 집회로 변형된 분들에게는 해당이 없을 것입니다.


③강사문제가 없다해도, 전국규모의 집회는 연 2회가 역량에 적절할 것입니다.


앞으로 가면 좀 더 조절이 되겠지만, 전국규모의 집회는 그 준비와 여러 제반 문제들이 교회로서는 연중 최고 행사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치르기가 어렵습니다. 참석하는 교인들의 직장 학교 가정환경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백목사님 생전에 연2회를 유지한 것은, 겨울을 시설과 동원 등의 문제로 전국규모 집회를 갖기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고 8월외에는 봄 밖에 없는데 봄철에 직장과 학교를 두번씩 빠지는 것은 어린 교인들에게 어렵다고 본 것입니다. 한번 정도라면 집회 전후에 다른 면으로 힘을 쓰게 되면 어린 교인이라도 충분히 감당한다고 본 것입니다.


시설이나 동원문제가 그렇게 결정적인 사유가 되는 것은, 8월집회 같은 경우는 날씨가 너무 가물어 냇가에 물이 없으면 집회를 할 수 없다며 시냇가의 물을 백목사님이 계속 챙기는 정도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물없이 집회할 소수의 중심교인들도 있고 또 교회를 그렇게 길러가야겠지만, 전국 집회라는 점에서 살펴야 하는 어린 교인의 어린 형편까지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④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5월과 8월집회 말씀이면 일년 감당이 충분했습니다.


오늘도 재독으로 집회를 하고 있는 바, 중요한 것은 앞으로 진행될 세월 속에서 변화되는 현실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고, 또한 우리에게는 과거 말씀을 재독하는 방편으로 나갈 것인데, 연중 2회 집회가 1년을 살아갈 수 있는 집회로 충분하겠는가 라는 문제가 집회를 2번 개최하는데 가장 큰 원인이 됩니다.


4.이제 연중 집회가 2회인 이유와 목적을 두고 요약하자면


집회를 두고 백목사님은 한번씩 목욕하는 것과 같아서 본 교회에서 매일 듣는 말씀과 신앙생활을 매일의 세수라고 한다면, 한번씩 대청소나 목욕으로 때를 벗길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수도 물로 씻는 것은 같지만 며칠동안 세상과 격리되어 한 계통의 말씀으로 꾸준하게 반복이 되면 짧은 설교로 매일 참석하는 예배가 아무리 많아도 이룰 수 없는 정리와 회개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과연 집회를 통해 평생을 살아가기에 넉넉한 말씀을 받아 지금도 단독이 신앙을 지켜나가는 경우는 적지 않습니다.


교회에서는 겨우 물 데우다가 예배가 끝나곤 하니 정작 한번도 씻어볼 기회가 없었지만, 집회 때는 첫 시간에 데운 물을 다음 시간에 바로 사용하여 아직도 온기가 있는 상태에서 씻기 때문에 집회시간은 평소 예배시간을 합한 단순한 총합으로 그 은혜를 계산할 수 없다는 설명입니다.


이런 모든 면을 고려하여 오늘 말씀 중심으로 배우되, 깊이 배움으로 평소에 깊이 들어갈 수 없었던 은혜세계에 들어가려면 횟수와 기간과 분위기를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는 당시마다 각공회와 교회가 별도로 정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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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관련 자료)


/연구실/자료실/116번, [생애]52"-63", 141개 사경회 기록 01/01/31

/연구실/문답방/ 84번, [노선]지나간 10년 집회모습.... 00/08/12

/연구실/문답방/ 38번, [공회]집회에 대한 바른 입장 00/05/03
[집회] 백목사님의 집회가 연 2회로 유지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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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사님의 총공회 집회가 연 2회로 열리게 된 동기와 목적이 무엇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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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26금
  • 13915
    돌아온탕자
    2025.12.23화
  • 13914
    믿는 자
    2025.12.2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