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면으로 기록해 주신 성경의 명령들 - 고전7:5-12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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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면으로 기록해 주신 성경의 명령들 - 고전7:5-12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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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0
1.성경에 기록된 단어와 표현의 중요도


첫째,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한 부분은 붉은 글 등으로 표시해서 특별히 귀하게 상대하고

둘째, 제자들이 설명한 부분은 같은 성경이라 해도 예수님 말씀보다는 비중을 조금 덜고

셋째, 질문자 예를 드신 것처럼 사도바울이 '내가 말하노니'라고 표현된 곳은 훨씬 덜고

넷째, 마4장처럼 악령이 한 말을 기록한 부분은 성경 안에서도 아주 하찮다는 것이 일반적 경향인데


성경 66권에 기록된 말씀들은 그 어떤 단어나 표현이라도

첫째, 하나님께서 제자들을 붙들고 직접 기록해 주셨다는 점에서 동일한 말씀이고

둘째, 우리 구원에 필요한 면에서도 동일하고

셋째, 그 내용의 정확무오까지도 동일한 말씀입니다.


모든 성경의 말씀들은

성경에 기록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관련 모든 사람들 붙들고 그렇게 말하도록 했고

많은 말 중에서 성경에 기록되는 말들은 하나님께서 일일이 그 말들이 기록되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중간에 누가 어떤 의도로 어떻게 말을 했느냐는

'말한 모습'

'말한 과정'

'말한 내용'은 다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성경 말씀 전체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서는 동일합니다.

성경에 기록되니 모든 단어와 표현은 정확하게 같은 가치를 가진 말씀입니다.


2.예를 들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부분도 있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진실이라는 말을 두번 말한 곳도 있으며

어떤 성구들은 이런 표현이 전혀 없는 곳도 있습니다.


진실로 말한다는 말씀을 한번 했다 해서 더 정확하다고 생각해도 오해고

진실로 말한다는 말씀을 두번 했다 해서 더 중요한 말씀이라고 줄을 그어도 오해입니다.

진실로 말한다는 표현이 없다 해도 꼭 같이 정확하고 중요한 말씀인데


다만 인간들이 인간 수준에서 생각할 때 설마 그렇겠느냐 하고 잘 믿지 않으려 할 말씀이기 때문에 '진실로'라는 맹세를 주님께서 하시면서 말씀하신 것이고, 두번 거듭 그렇게 인간들에게 맹세를 하실 때는 정말 인간으로서는 믿기 어렵고 또 믿을 리가 없을 정도의 내용이므로 하나님 말씀을 우습게 생각하는 인간의 강퍅 때문에 우습게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를 한번 더 한 것입니다.


성경의 권위성, 진리성, 정확무오성 등을 표현할 때는

성경의 66권 말씀 처음부터 끝까지, 그 말씀 전체의 일점일획을 전부 포함한 의미입니다.

만일 이 표현에서 하나라도 더하거나 뺀다면 그것은 정통 기독교가 아닙니다.

이단이라고 표현을 해야겠지만 이 정도만 표현해 두겠습니다.


3.질문하신 '고전7:12'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기록해 주신 말씀인데

바울을 통해 마치 바울의 개인 생각인 것처럼 기록해 주셨습니다.

질문자께서 지적하신 대로 고전7:12 말씀은 '주의 명령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자기 개인 차원에서 말한 것이니 해도 되고 말아도 되는 것처럼 본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이 부분은 바울이 하나님께 붙들려 성경을 기록하다가 중간에 잠깐 자기 생각을 끼워넣은 것처럼 되어 있으나, 그런 표현법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왜 그런 표현법을 사용했으며 그 부분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문제는 별도로 생각할 부분이고 일단 질문하신 내용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습니다.


사도바울의 개인 생각인 것처럼 그렇게 성경기록의 외부 표현은 되어 있지만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그런 식으로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 말씀'입니다.


4.성경이 강제로 명령한 것과 알아서 하라고 권면한 내용으로 섞여 있는 것은


우리가 연약하므로 모든 말씀을 한번에 전부 다 행할 수 없으며

또한 한 말씀씩 실행한다 해도 지키기 쉬운 말씀부터 시작하여 점점 자라가야 하므로

믿는 처음에 무조건 지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 있고

신앙이 자라게 되면 그 다음에 지키도록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전7:6에 '이 말을 함은 권도요 명령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무조건 지킬 것은 '명령'이고, 하기 싫으면 말라고 표현한 것이 '권도'입니다.


출20장의 십계명은

꼭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계명'이라고 표현하여 믿는 사람은 믿는 첫날부터

무조건 지켜야 할 명령으로 기록해 두셨고


민6장의 나실인이나 고전7장의 이혼법은

꼭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권면'이나 '권도'라고 읽히게 우리에게 기록했습니다


출20장의 십계명들이나 민6장의 나실인의 법이나

성경에 기록되었으므로 말씀들은 꼭 같은 하나님 말씀이고 절대로 지켜야 할 말씀들이지만


출20장의 십계명은

믿는 처음부터 무조건 지켜야 그 다음 신앙으로 자라갈 수 있기 때문에

십계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긴급명령으로 성경에 기록하였고


민6장의 나실인의 경우는

십계명을 지켜 신앙이 점점 자라게 되면 십계명은 신앙 출발에 누구든지 지킬 최소한이고

이제 십계명만 지킨 신앙에서 더 나아가 나실인의 법으로 자신을 전부 하나님께 바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이니, 이 단계는 앞서 나가는 사람도 있고 뒤따라 갈 사람도 있으니 신앙의 형편과 개인마다 주신 현실에 따라 모든 사람이 다 각각 그 단계나 정도가 다를 수 있으므로 '권면' 또는 '권도'의 형태로 우리에게 기록해 주셨습니다.


죽는 날까지

출20장의 십계명은 철저히 지켰고 나실인으로는 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명령은 다 지켰고 해도 되고 말아도 되는 것은 하지 않았으니

하나님 앞에 어떤 죄도 없고 흠도 실수도 없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그 사람의 주관으로 그렇게 본 것이고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같이 온전한 사람이 되라'고 명령한 법을 가지고 성경 전체를 다시 읽는다면 '성경의 모든 권면은 권면이 아니고 명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가야 할 사람입니다.


고전7장에서 사도바울이 이혼법을 설명한 것은 권도라고 일단 기록해 주셨지만 성경 전체를 읽고 그 말씀을 다시 한번 더 새긴다면 결혼과 가정 그리고 이혼과 재혼 문제를 두고 우리들은 신앙이 어리든 장성하든 지금 당장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이 있으니 이런 문제들이 성경에 '계명'이나 '명령'으로 기록된 내용들이고, 성경에 해도 되고 말아도 되는 것으로 기록했으나 그 내용을 잘 읽으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좀더 신앙에 낫고 유익된지는 우리가 알 수 있는데 그런 내용들은 각자 신앙에 따라 자기 자라가는 과정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는 권면 정도지만 자기에게는 가장 시급한 명령이 되는 일이 있으니, 이런 내용들은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권면 정도로 기록했습니다.


고전7장에서는 '사도바울의 입을 빌려 사도바울의 생각처럼' 기록해 주셨으나

성령이 사도바울을 붙들고 우리에게 명령하신 내용입니다.

다만 이 명령은 십계명과 달리 자기 신앙 수준과 발전 단계에 따라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로 긴급성 있게 요구하느냐는 것을 따로 살펴 새길 명령입니다.
고전7:12, 바울의 개인적 권면
/연구실/쉬운문답/3701번/ 질문은 자세한 답변이 필요하여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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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고전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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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1)이 말씀은 주님의 명령이 아니라 권면이나 당부와 같이 그 말씀의 구속력과 심판의 차이를 두고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2)주의 명령이 아니라 개인의 명령이라는 말은 성경이 아니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데 그렇지 않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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