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이 시대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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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귀한 이 시대의 종 |
| 내용 | 1.사람을 평가할 때 한 가지 논점을 가지고 토론을 할 때는 그 주제에 대하여 옳고 그른 것이 있습니다. 그 주제를 옳게 말했다고 그 사람의 다른 주장이 다 옳은 것은 아니며 그 주제에 틀렸다고 그 사람의 다른 모든 주장이 다 틀렸다 할 수는 없습니다. 비교적 유명하다고 알려진 사람을 평가할 때 우리는 같은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조용기목사님이 한번 실수 했다는 것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 전체를 취소하거나 조용기목사님이 세계 최대 교회를 건설했다는 한 가지 때문에 그의 모든 활동과 주장을 다 옳고 좋게 본다면 서툰 일일 것입니다. 2.박윤선목사님의 경우 한국의 보수 정통 교단들은 박윤선에 대한 평가를 절정에 놓고 있습니다. 그의 신학이 한국교회를 이렇게 지켜냈다는 면에서는 그 평가가 맞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분의 신학적 수고 때문에 그 분의 목회실력을 그렇게 본다면 실수입니다. 그분은 목회에 아주 서툰 분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분은 한국교회사적 인물입니다. 3.척 스미스 목사님의 경우 소개한 내용이 맞다면 척 스미스 목사님은 목회 뿐 아니라 그 분의 신학적 입장도 아주 굉장합니다. 일선 목사님들의 경우 자기가 소속한 교단의 신학 입장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사실 자기 교단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암송하듯 주장합니다. 그런데 척 스미스 목사님 교회의 입장을 정리한 내용에서는 비록 신학에서 최상이거나 최고 수준을 가지지는 못했을지라도 그것은 그 분 외에 모든 목회자들이 속으로는 다 그 정도 신학에 머물고 있을 뿐인데 그 분은 목회에 있어 은혜와 충성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앞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은 교회 하나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우리 일반 목회자들이 자기 신학교 교수의 요약된 칼빈주의 5대 강령만 외우면서 그것을 모르거나 부인하는 척 스미스 목사님을 비판한다면 그 비판 자체는 맞는 것 같지만 우습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그 신학생이 칼빈주의 5대 강령을 자기 신학교 교수가 강조를 하니까 외워서 반복하고 있지 그 신학생이 칼빈주의 5대 강령을 정말 이해했거나 깨닫고 그 강령으로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할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척 스미스 목사님의 신학을 두고 칼빈주의 5대 강령을 그대로 다 따르지 않는 것은 그 분의 신학이 칼빈만큼은 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수준에서 솔직하게 믿는 바를 말한 것입니다. 그대신 척 스미스 목사님은 자기가 신학이 어리므로 적게 깨닫고 있지만 자기가 깨닫고 있는 범위에서는 충성을 다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4.칼빈주의 5대 강령이란 어느 한 교파의 주요 교리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칼빈이나 루터는 스스로 어느 한 교파를 창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사는 평생 충실하게 하나님과 동행했고 자기들 할 일만 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사후 그들을 따라 바로 믿으려 했다는 이들이 실제로는 그들과 다르게 믿으면서 그들 이름을 자기들의 조상으로 자꾸 사용을 하고 있어, 오늘의 루터파가 루터를 그리고 오늘의 장로교가 칼빈을 자기들의 조상이라 하지만 그들이 오늘까지 살아 있었다면 칼빈은 오늘의 장로교와 다른 모습의 교회를 지도하고 있었을 것이고, 루터 역시 그랬을 것입니다. 칼빈주의 5대 강령을 그대로 지키는 교파들에 대하여서는 특별하게 공부하거나 살펴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 원칙대로 살려는 근본주의 신앙에 철저한 교회들이라면 결국은 그 5대 강령으로 깨달아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척 스미스 목사님이 지옥 갈 자들에 대한 예정 등을 거부한 것은 그 분의 성경 깨달음이 칼빈만큼 되지를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칼빈 가르치는 것을 무조건 암기만 하고 실제로는 자기가 그 교리를 믿는지 안 믿는지도 모르고 또 그 교리는 믿는다 해도 그 교리대로 살아가며 충성하는 정도를 가지고 살핀다면 척 스미스 목사님과 비교할 분은 그렇게 많지를 못할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한국교회의 성자들이 된 출옥성도들의 전기를 읽어보면 한결같이 신사참배를 하게 되면 지옥을 가게 된다고 두려워하면서 투쟁을 한 발언들이 나옵니다. 만일 이 내용을 가지고 이 노선의 주일학생들이나 주일학교 반사선생님들에게 평가를 부탁한다면 아주 틀린 주장을 했다며 사정없이 비판을 할 것 같습니다. 그런 비판에 대하여 이 홈에서는 시인하기도 어렵고 부인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차분하게 설명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비판하는 이들에게 '너희들의 비판은 너희 신학이 아니라 백목사님 신학을 빌린 것이고, 그대신 신앙으로 말하면 너희들은 출옥성도의 신발 벗은 곳에도 이르지 못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5.말세관에 대하여서는 일반적으로 미국의 보수 장로교들이 예수님 오시기 전에 천년왕국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노선은 예수님 재림이 먼저 있고 그 후에 천년왕국이 올 것으로 단정하고 있습니다. 소개한 글에서는 척 스미스 목사님이 이 노선과 같은 말세관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휴거란, 그 단어 사용을 이 노선에서는 잘 하지 않습니다. 보통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한다는 한글 성경 표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노선과 같은 깨달음이라고 읽었습니다. '전천년설' '후천년설'이라는 단어 사용은 천년왕국을 기준으로 예수님의 재림이 앞이냐 뒤냐고 표현하는 것으로 일반 신학의 용어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노선은 천년왕국보다 예수님 재림을 기준으로 삼아서 천년왕국이 예수님 재림 앞에 있는지 뒤에 있는지를 전천년 후천년이라고 표현합니다. 따라서 일반 교리와 이 노선은 천년왕국 관련 표현은 단어를 정반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척 스미스 목사님의 성경 깨달음이 칼빈의 5대 강령을 거부한 것이 아쉽습니다. 그러나 그 분 신앙 다른 면 전체를 고려한다면 이는 신학의 차원이 칼빈에 이르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으로 호평하고 싶습니다. 좋은 자료를 참고해서 감사하고 좋은 면으로 살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
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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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