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주의와 개별 성장주의를 구별하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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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주의와 개별 성장주의를 구별하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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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진리는 시대와 사람과 형편에 상관 없이 항상 하나입니다.


세상과 타협했다면 이미 타락이고

사람에 따라 진리 적용이 달라진다면 이것도 변질입니다.

이 홈은 형편과 사정과 현실 때문에 달라질 수 있는 길은 외부 일반 교계에 맡겨놓고

역사를 통해 시대와 사람과 현실 여건에 따라 변질되지 않은 신앙 노선을 구하고 있습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변치 않고 걸어가야 할 길을 찾고 그 길을 걷다가 주님을 뵙겠다는 것이

이 홈이 집중 연구하고 있는 이 노선입니다.


질문자께서 염려하고 지적하시는 취지가

이 홈과 이 홈이 집중하는 이 신앙 노선에서 말씀하셨다고 생각되어 반갑습니다.


이번 답변 역시

급할 때마다 임시 변통하는 변명이 아니라 다 함께 확고하게 잡고 가야 할 진리를 구하여

어느 한 사람의 주관에 갇히지도 말고 또한 연구 범위를 좁혀 진리가 역리가 되지 않도록

잘 안내하는 글이 되기를 구합니다.


2.주일의 경우로 예를 들면


①원칙은 변할 수 없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형편의

어느 누구라 해도

주일을 지키는 원칙은 꼭 같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심신의 세상일은 완전히 중단하고

내부적으로는 심신이 말씀으로 변화 받는 일만 해야 합니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진리이며 어느 누구에게라도 무조건 적용되는 절대 원칙입니다.


②그러나 주일 원칙의 적용은 개인 신앙 발전에 따라 달라집니다.


주일 원칙을 철저히 지키면 신앙이 철저한 사람이고

주일 원칙을 애매하게 피해가면 신앙이 아직은 애매한 사람이고

주일 원칙을 정면으로 어기느 사람이 있다면 신앙이 아주 어린 사람입니다.

주일 원칙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불신자급이라고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유치원 아동이라면 주일날 돈 사용 정도를 금하게 하는 외부적 주일 성수만 가르치게 되고

10대 정도라면 주일날 남는 시간에 성경 몇 장을 더 읽게 하는 내부 주일성수도 강조하지만

20대 신앙이라면 주일날 외부 내부면을 다 온전할 수 있도록 강하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아동과 청소년과 청년이라는 나이에 따라 주일성수의 원칙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연령별로 주일성수 원칙을 어느 정도까지 가르치고 지키게 할 것인지 적용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22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직접 거느리고 다니실 때는 부족함이 없었다고 하셨고

이제 제자들 스스로 살아갈 앞날에는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고 하셨으며

그 말을 듣고 제자들이 검 2자루를 내놓을 때 예수님은 '족하다'고 하셨으나

베드로가 예수님을 잡으러 온 말고의 오른 귀를 쳐서 잘랐을 때

예수님께서는 검을 가지는 자는 검으로 망하리라고 말씀하였다가

엡6:17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검이라고 밝히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참 우리의 검이지만

신앙이 어리면 어린 정도로 자라면 자란 정도로 그리고 장성하면 장성한 정도로 가르쳐서

마침내 진리의 한 길에 세우게 됩니다.


예수님이 전능의 말씀을 가지고 제자들을 가르칠 때

그때 제자들은 그 말씀으로 주시는 육체의 떡만 먹었지 그 떡을 만들어 내는 그 말씀의 신령한 능력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는 이제 예수님 대신 제자들이 직접 말씀을 무기로 삼아 살아야 하므로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급하게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겉옷을 포기해서라도 말씀의 능력을 가지는 사람이 되라고 한 것인데 제자들은 아직도 육체의 떡과 육체의 칼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주님이 '족하다' 하신 것은 사람의 귀를 벨 수 있는 칼이 맞다는 진리를 확인한 것이 아니고, 그들 신앙이 아직 신령한 무기가 되는 말씀을 알아채지 못하는 신앙 단계이므로 그 단계에서 그렇게 말하는 그들의 신앙 상태를 알았다는 말씀이고 그대신 그들이 훗날 더 신앙으로 발전하게 되면 그날에 말씀한 뜻을 알게 될 것을 미리 아시므로 그 자리에서 가르치는 것은 그것으로 족하다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훗날 말씀이 바로 검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히4:12 엡6:17 등에서 그들 밑에서 자라나오는 또 다른 제자들을 가르칠 때는 사람의 귀를 베는 칼이 아니라 말씀을 칼처럼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것이 복음 전도인의 실제 능력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진리는 하나이며 변할 수 없으나

그 진리를 배우고 그 진리로 자라가는 사람은 한 번에 다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나이에 따라 육체가 성숙해지는 것처럼 신앙도 자라가는 건설의 단계가 있으니

각자 신앙의 단계에 따라 앞에 할 말이 있고 훗날 맡겨놓을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③직업이 어떠하든지


주일은 말씀으로 새로 배우고 자기를 변화시켜 복과 성화를 받는 것만 집중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이런 신앙 내면의 중요한 일을 위해서 세상 모든 일은 무조건 쉬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자라가는 신앙과 개인별 직업과 개별 현실에 따라 주일날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선을 제시하고 어디까지 금해야 할 선을 제시하는 것은

진리 원칙을 가르치는 교리 교훈 차원이 아니라, 어린 신앙을 길러가는 목회 차원에서 다르게 말할 수 있습니다.


술 한 말을 먹고 폐인이 된 사람에게는 주일 아침 술 한 잔만 마시고 오라 할 수 있고

술 한 잔씩 건강을 위해 마시던 사람에게는 술을 완전히 끊고 교회 나오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렇게 권하는 말을 듣고

술 한 잔은 교회가 허용할 수 있는 원칙으로 들었다거나

아니면 술 한 잔이라도 하는 사람은 교회를 나와서 안 된다고 들었다면

누구에게 어떤 경우에 어떤 선을 가르치는지 심방하는 말의 범위를 살펴야 할 일이지

주일의 원칙은 진리인데 진리를 바꾸었다고 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것입니다.


3.군인과 의사의 경우


주일에 전투를 하고 있는 일선의 군인에게

군인의 전투행위는 일반인의 직업과 주일 문제가 다르다고 말을 하고


의사에게 주일날 입원환자를 살피고 교회를 나오지 못할 때

의사의 의료행위는 생명 관련 긴급한 일이므로 일반인의 직업 행위와 다르다고 말을 하는데


이런 특수 직업의 주일 문제를

주일에 대한 변치 않는 원칙이라고 생각했다면 잘못입니다.


소아마비 환자가 주일 오전 1회 예배당에 온 수고라면

멀쩡한 다리를 가진 일반인이 주일 오전 오후 2회 교회 온 수고보다 낫다는 것인데

소아마비 환자가 이 말을 듣고 주일 예배 한 번을 빼도 된다고 들었다면 오해입니다.

소아마비 환자가 주일날 1회 교회 나온 것은 일반인 2-3회 보다 하나님께서 더 기뻐합니다.

만일 소아마비 환자가 주일날 2회 3회 교회를 출석했다면 일반인이 그렇게 한 것보다 낫고

그보다 다른 소아마비 환자가 1회 교회 나온 것보다 몇 배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의사가 주일날 입원 환자나 응급 환자 때문에 교회를 나오지 못했다면

평범하게 교회를 다니는 일반인들이 자기 아내가 주일 아침에 아이를 해산하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이 도울 수가 없게 되어 교회를 나오지 못하는 경우와 같다 할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놀면서 교회를 나오지 않는 경우나 돈을 번다고 출장 갔다가 교회를 나오지 못하는 경우에 비할 때 보통 교회 교인들 전체를 놓고 가르칠 때는 평범하게 그럴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의 출산이 다가오면 사람을 미리 사두어서라도 자기가 주일날 아이 때문에 교회 가지 못하는 경우가 없도록 준비했다면 훨씬 하나님께서 기쁘하실 것이고, 의사라면 자기가 입원환자를 아예 받지 않아버리면 수입은 줄어들지라도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니 더 귀한 신앙이 될 것입니다. 또한 수련 과정의 인턴이나 레지던트 시절에는 출퇴근도 제대로 못하고 당직을 서야 한다고 하지만 대학병원의 급을 낮추면 얼마든지 자유할 수 있는 길이 있고, 굳이 낮추지 않아도 정상적으로 믿는 사람이 평일 6일 동안 남달리 노력하고 또 마음 속으로 기도하며 진실되이 주님께 매달려 기도했다면 천하 없이 다 주일을 못지키는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아래 위 옆의 모든 사람을 감동시켜 그에게 신앙자유를 준다는 것은 성경이며 기독교 역사이며 이 노선 총공회 수도없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각기 현실에서 체험한 바이며, 또한 공회 내에서는 의사가 거의 없지만 신앙의 사람들은 질문자 지적대로 최고의 의과대학에서 최고의 길을 걸으면서도 유유하게 주일을 다 지키며 신앙 자유를 했던 예가 있습니다.


4.결론적으로


이 홈은 타협주의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다만 이 홈이 지도하는 분들 또는 이 홈의 답변에 귀를 기울이는 분들이 계신다면 그 분들에게


우리는 죽어도 주님 명령 어길 수 없는 사람들이며

우리는 주님만 기뻐하신다면 기꺼이 죽어드리고 싶은 사람들이니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더 주를 위해 살까 하는 이 단심밖에 없는 사람들인데

다만 현재 자기 신앙에서 어느 정도까지 지켜 나갈 수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과거 신앙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믿던 많은 분들을 접하며

그분들이 열심이 충천하던 그때는 신앙으로 크게 싸워 이겨 나가는 사람이 되다가 얼마 가지 못해서 크게 넘어지고 그 뒤의 신앙은 과거보다 더 손해를 보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신앙 초기의 젊은 사람들이나 그냥 열심만 있지 만사를 차분하게 살피지 못하는 분들이 자기 신앙의 수준과 세상 박해의 어려운 정도를 생각하지 못하고 힘에 넘치게 무리할까 하여 일반적으로 각자 걸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현상유지 또는 일반 신앙의 사례를 들어서 모든 분들에게 지도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답변자가 잘 아는 주변 사람들 중에

진정 자기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고 그렇게 포기한 후에도 후회하지 않고 자기 현실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위에서 일반적으로 지도하고 가르쳐 준 것과는 아주 다른 차원 높은 길을 안내하는 데에도 서슴치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 홈을 통해서 접하게 된 사람 중에서는 그럴 정도의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여 이 홈에서 그동안 안내 한 것은 일반 신앙 지도 차원이었을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5.혹시 신앙으로 감당할 사람들이 이 홈의 지도 때문에 미혹을 받았다면?


그것은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왕하2장에서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 가려 할 때 엘리야는 힘써 못오게 막았고

엘리사는 바로 자기 지도자가 힘껏 오지 못하게 막는 그 지도를 밀치고 나아갔습니다.


신앙 지도자에 대한 거역이나 반항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신앙으로 나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므로 지도하는 사람은 남들에게 가자고 권할 길이 아니라 오히려 이 길을 걸어갈 때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를 바로 가르쳐 후배의 신앙 수준에서 고려해야 할 상황을 다 알려 주는 것이 옳고 그렇게 가르쳐 주다 보니까 마치 오지 못하게 막은 것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따라가야 할 사람은 자기 눈 앞의 사람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의 성령을 따라 가는 길이므로 지도자는 지도자로서 이 길을 걸을 때 어려움을 세세하게 알려 주는 것이 그의 할 이라면 따라가는 사람은 어느 누가 막아도 이 길을 걸어가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그의 자세입니다.


군인과 의사의 직업이 일반 교인과 일반 상황에서 비교한다면 응급 상황이므로 구덩이에 빠진 소나 양을 구해 내는 것처럼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더욱 신앙이 있다면 구덩이에 빠진 소나 양 한 마리를 손해 보더라도 그 돈을 후회하지 않고 주일날 바로 지켜 은혜 받는 것이 더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므로 응급 상황을 가지고 주일을 2등급으로 지키지 않고 모든 물질 인간 대우 자기 경제 직업 환경을 다 포기하고 최고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 홈의 주일 관련 일반 안내를 들을 때

그 지도는 일반 신앙에게 해당된 것이니 어린 사람들은 그렇게 지도를 받으며 앞날을 위해 신앙을 배우고 힘을 비축하며 자라가는 것이 급하고, 이미 신앙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확신있게 따라 나선 사람이라면 젖먹이에게 우유병을 준다고 그 줄에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밥을 해서 퍼먹고 힘을 내서 힘있게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6.중요한 내용이므로


우선 생각나는 대로 중요한 몇 가지를 대충 적었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다시 훗날을 위해 참고할 수 있도록 재정리를 하겠습니다.

토론으로 나갈 수 있는 재질문까지도 환영합니다.


지금까지 이 시대 교회와 교인들의 연약함을 늘 먼저 생각하다 보니까

이번 질문자 지적을 들을 때까지 답변자도 모르게 신앙 어린 사람만 배려했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마치 질문자 지적처럼 결과적으로 더 힘있게 믿을 사람들의 힘까지도 빼놓았다는 결과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노선에서 원래 정상적으로 믿고 나온 과거 많은 사례들이 있고 여전히 그렇게 믿어야 옳다는 것을 이 게시판에서 또렷하게 적어 두어야 앞으로 주일 관련 참고하실 분들에게 양면을 고루 보며 자기에게 맞는 사례를 참고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주일문제와 타협주의
총공회 교단은 누구라도 주일을 꼭 같이 지키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이 홈은 군인 의사를 일반인과 다르니 주일 근무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가르칩니다.


신앙 변질을 부추기는 것이 아닙니까?


공회 교인들은 퇴학을 당하고 직장에서 사표를 내도 주일을 다 지켰습니다.


군대 가서 영창에 가더라도 주일을 엄하게 지켰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공회 의사는 대학병원 수련 과정에서도 주일을 다 지킨 것으로 압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다른 교회가 다 변해도 우리는 변하지 않는 신앙이 아닙니까?


군인이나 의사는 전쟁이나 응급환자를 다루기 때문에 일반 직업과 주일문제가 다르다면


어떤 직업에서나 응급한 일이나 비상시기라는 것은 있기 마련인데


그때도 주일날 예배를 빼고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지금 추석이라서 불신 가정에서 믿는 분들은 제사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박해가 있어도 제사 문제를 무조건 막았는데 이 홈에서는 타협을 가르칩니다.


엄하게 가르쳐도 신앙이 자꾸 약화되고 변질되는 세상인데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끝까지 이 길을 지키려는 신앙에게 이 홈은 힘을 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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