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과 '복'의 혼용은 구별사용하기 보다, 일반적 의사소통 차원에서 보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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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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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19 00:00
제목분류 : [~설교록~]
내용분류 : [-설교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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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축복'이라는 단어는, 하나님께 다른 사람을 복 주시라고 빈다는 말입니다.
질문하신 분의 말씀은 분명히 옳습니다. 복을 주시라고 비는 것이 '빌' 축(祝), 복 복(福)'이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신다면 하나님이 누구를 보고 우리에게 복을 주라며 부탁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단어의 뜻을 안다면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기독교인의 상식일 것입니다.
2.그러나, 단어는 '절대적' 의미가 아니고 '상대적'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생각하셔야겠습니다.
단어에 대하여 의논을 하다보면, 단어 속에 깊숙히 파묻혀 단어지상주의가 되고 문법을 종교적 신념에까지 올려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법학자는 법치를, 의학자는 건강을, 영문학자는 영어를, 심지어 예술가는 선하나 색깔 하나에 인생을 다 매달고 삽니다만 여기 우리는 신앙유일주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전부 하나의 이용품일 뿐입니다.
단어 사용은 우선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절대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고대 중세 현대를 거치며 같은 나라가 아니며 같은 모습이 아니며 같은 영토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앞으로 이 나라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영역을 가지고 나갈런지 모르는 것과 같이 단어 또는 문법도 그러합니다. 따라서 단어는 절대적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마시고 상대적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현재 사용되는 가장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용법이 무엇인지를 살펴 그 정도에서 따라가면 좋을 듯 합니다.
우리 신앙은, 세상에 대하여는 앞서지도 뒷서지도 않는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믿다 보면 저절로 세상을 개량시키게 되어 있으며 또한 믿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세상일에서 빠질 때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개량시키기 위해 나서거나 무능하여 뒤쳐지는 것은 잘못입니다. 단어 사용에 대하여 신앙인이 가질 자세는 세상 사람들보다 지나치게 앞서 나가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국어애용주의 국문법수호운동 등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일반 사회생활에 불편을 줄 정도가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축복'이라는 단어에 대한 사용은 단어의 생성과정을 고고학적으로 밝혀 오늘에까지 그 정통성을 유지 계승해야 한다는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축복'이라는 단어를,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현재의 의미'로만 단순하게 사용하는 것이 백목사님의 단어사용법입니다. 단어의 갯수는 수십만개에 이르고 있으므로 반드시 그 단어를 그렇게 사용하거나 그렇게 사용해서는 안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에만 단어를 심층적으로 상대하는 것이 바른 자세일 것입니다.
3.'축복'이라는 단어는 '복'이라는 단어와 이미 혼용되어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축복이라는 단어는 '복을 주시라고 (하나님께) 빈다'는 의미로 조성되었습니다. 한국교회에서는 목회자들까지도 축복과 복을 혼용하여 사용한다는 지적이 20여년 전부터 강하게 대두되었고 아직까지도 그 주장에 대하여는 반론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현장에서는 계속 그렇게 사용되고 있어 '축복'과 '복'을 혼용해서 안된다는 분들이 여전히 이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바로 이런 객관적인 사실을 두고 2가지를 확정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첫째, 축복은 복과 혼용할 수 없는 뜻을 가진 단어라는 사실입니다.
둘째, 그러나 현재 사용되는 현실은 혼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축복과 복이 혼용되어 사용되는 현 언어체계 안에서 가장 통상적이고 일반적인 수준에서 따라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 기록의 특징 중에는 아무나 읽고 볼 수 있는 평범한 언어와 내용으로 되어 있다는 점도 참고했으면 합니다.
4.백목사님이 '축복'과 '복'을 혼용해서 사용했다는 사실은 일반의 경우와는 좀 다릅니다.
백목사님은 비록 현대문법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은 전혀 없으나 탁월한 어휘감과 표현력을 가졌으며 한학에 조예가 남달랐으며 특히 단어의 어원적 분석력에는 아무도 근접할 수 없는 탁월함을 가졌습니다. '축'이라는 글자와 '복'이라는 글자에 대하여는 제사 등 유교적 배경, 한학적 배경 등을 고려할 때 그 문제점을 너무도 잘 간파하고 있을 분입니다. 그런데도 일반적 사용례를 따라 사용했다는 것은 이미 그 단어에 대하여는 단어의 어원구성적 과정을 무시하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의미로만 상대하고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경우는 적지 않으며 설교록 중에서 문법적이나 단어적 오류는 그 예를 많이 찾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오류는 심지어 국어교과서 중에서도 많이 있어 과거 수많은 교정과 시정을 거친 적이 있습니다. 하물며 설교록은 국어문법의 표준적 사용을 가치로 삼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번 양해하셨으면 합니다.
5.'중생된 영'과 '중생한 영'의 예로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영은 하나님이 중생을 시켜 중생되어지는 피동체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영을 중생시키는 능동체입니다. 그렇다면 '중생된 영'이라는 표현이 옳고 '중생한 영'이라는 표현은 교리적으로 너무도 잘못된 것이며 이단이라고 단정을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중생한 영이라고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런 경우, 우리 국어 표현은 '피동'과 '능동', '단수'와 복수', 시간의 진행 과정 등이 원래 혼용되어 있는데 이런 점을 특별히 명확하게 표현하는 영어문법체계에 영향을 받아 이 문제가 지적이 된다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설교록을 번역하는 경우는 이런 문제를 명확하게 구별하겠으나 한글로 사용할 때는 오히려 그것을 구별하는 것이 참으로 어색하고 때로는 다른 뜻이 개재될 소지까지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표현에서는 피동이 피동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능동이 능동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수가 단수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복수를 뜻할 때도 무수히 많아 헤아릴 수 없으니 혼용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이런 표현들을 영어식 국어문법체계로 완비하여 사회적 통용이 된다면 우리는 조용히 따라 갈 것이나 지나치게 앞서거나 뒷서는 일은 주저하고 있습니다.
6.'예배당'과 '교회'문제도 신학적으로는 여간 큰 문제가 아닙니다.
과거 서부교회는 간판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서부교회예배당'이라고 적었습니다. 목사님 가시던 마지막 80년대 말에는 '예수교장로회 한국총공회 서부교회'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보이는 곳에 간판을 달 수 없는 것이 신학의 기본상식입니다. 예배당 건물은 예배당이지 교회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반 교회도 또 백목사님도 이 점을 과거 많이 강조했으나 오늘 일반 교회가 전부 예배당과 교회의 구별을 없애 버리고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으며 백목사님은 마지막까지 교회건물에 표시를 할 때 '교회'가 아니라 '예배당'으로 했으나 모든 사회 일반이 '교회'의 의미를 신학에서 사용하는 '교회'의 의미와 별개로 '예배당'을 대체하는 용어로 사용하게 되자 더 이상 뒷서지 않고 보조를 맞추게 된 것입니다. '서부교회 예배당'이라는 간판을 '서부교회'로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회와 예배당을 머리속에서나 신학적으로 혼동할 분은 아닙니다.
손양원목사님이 목회했던 애양원교회는 그 건물 돌간판에 '애양원예배당'으로 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우리 진영 옛 간판이 남아 있는 곳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교회사의 이전 교회건물들의 간판들을 보면 한결같이 '00교회 예배당'입니다. 이 점으로 같이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내용분류 : [-설교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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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축복'이라는 단어는, 하나님께 다른 사람을 복 주시라고 빈다는 말입니다.
질문하신 분의 말씀은 분명히 옳습니다. 복을 주시라고 비는 것이 '빌' 축(祝), 복 복(福)'이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신다면 하나님이 누구를 보고 우리에게 복을 주라며 부탁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단어의 뜻을 안다면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기독교인의 상식일 것입니다.
2.그러나, 단어는 '절대적' 의미가 아니고 '상대적'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생각하셔야겠습니다.
단어에 대하여 의논을 하다보면, 단어 속에 깊숙히 파묻혀 단어지상주의가 되고 문법을 종교적 신념에까지 올려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법학자는 법치를, 의학자는 건강을, 영문학자는 영어를, 심지어 예술가는 선하나 색깔 하나에 인생을 다 매달고 삽니다만 여기 우리는 신앙유일주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전부 하나의 이용품일 뿐입니다.
단어 사용은 우선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절대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고대 중세 현대를 거치며 같은 나라가 아니며 같은 모습이 아니며 같은 영토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앞으로 이 나라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영역을 가지고 나갈런지 모르는 것과 같이 단어 또는 문법도 그러합니다. 따라서 단어는 절대적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마시고 상대적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현재 사용되는 가장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용법이 무엇인지를 살펴 그 정도에서 따라가면 좋을 듯 합니다.
우리 신앙은, 세상에 대하여는 앞서지도 뒷서지도 않는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믿다 보면 저절로 세상을 개량시키게 되어 있으며 또한 믿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세상일에서 빠질 때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개량시키기 위해 나서거나 무능하여 뒤쳐지는 것은 잘못입니다. 단어 사용에 대하여 신앙인이 가질 자세는 세상 사람들보다 지나치게 앞서 나가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국어애용주의 국문법수호운동 등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일반 사회생활에 불편을 줄 정도가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축복'이라는 단어에 대한 사용은 단어의 생성과정을 고고학적으로 밝혀 오늘에까지 그 정통성을 유지 계승해야 한다는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축복'이라는 단어를,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현재의 의미'로만 단순하게 사용하는 것이 백목사님의 단어사용법입니다. 단어의 갯수는 수십만개에 이르고 있으므로 반드시 그 단어를 그렇게 사용하거나 그렇게 사용해서는 안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에만 단어를 심층적으로 상대하는 것이 바른 자세일 것입니다.
3.'축복'이라는 단어는 '복'이라는 단어와 이미 혼용되어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축복이라는 단어는 '복을 주시라고 (하나님께) 빈다'는 의미로 조성되었습니다. 한국교회에서는 목회자들까지도 축복과 복을 혼용하여 사용한다는 지적이 20여년 전부터 강하게 대두되었고 아직까지도 그 주장에 대하여는 반론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현장에서는 계속 그렇게 사용되고 있어 '축복'과 '복'을 혼용해서 안된다는 분들이 여전히 이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바로 이런 객관적인 사실을 두고 2가지를 확정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첫째, 축복은 복과 혼용할 수 없는 뜻을 가진 단어라는 사실입니다.
둘째, 그러나 현재 사용되는 현실은 혼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축복과 복이 혼용되어 사용되는 현 언어체계 안에서 가장 통상적이고 일반적인 수준에서 따라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 기록의 특징 중에는 아무나 읽고 볼 수 있는 평범한 언어와 내용으로 되어 있다는 점도 참고했으면 합니다.
4.백목사님이 '축복'과 '복'을 혼용해서 사용했다는 사실은 일반의 경우와는 좀 다릅니다.
백목사님은 비록 현대문법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은 전혀 없으나 탁월한 어휘감과 표현력을 가졌으며 한학에 조예가 남달랐으며 특히 단어의 어원적 분석력에는 아무도 근접할 수 없는 탁월함을 가졌습니다. '축'이라는 글자와 '복'이라는 글자에 대하여는 제사 등 유교적 배경, 한학적 배경 등을 고려할 때 그 문제점을 너무도 잘 간파하고 있을 분입니다. 그런데도 일반적 사용례를 따라 사용했다는 것은 이미 그 단어에 대하여는 단어의 어원구성적 과정을 무시하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의미로만 상대하고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경우는 적지 않으며 설교록 중에서 문법적이나 단어적 오류는 그 예를 많이 찾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오류는 심지어 국어교과서 중에서도 많이 있어 과거 수많은 교정과 시정을 거친 적이 있습니다. 하물며 설교록은 국어문법의 표준적 사용을 가치로 삼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번 양해하셨으면 합니다.
5.'중생된 영'과 '중생한 영'의 예로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영은 하나님이 중생을 시켜 중생되어지는 피동체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영을 중생시키는 능동체입니다. 그렇다면 '중생된 영'이라는 표현이 옳고 '중생한 영'이라는 표현은 교리적으로 너무도 잘못된 것이며 이단이라고 단정을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중생한 영이라고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런 경우, 우리 국어 표현은 '피동'과 '능동', '단수'와 복수', 시간의 진행 과정 등이 원래 혼용되어 있는데 이런 점을 특별히 명확하게 표현하는 영어문법체계에 영향을 받아 이 문제가 지적이 된다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설교록을 번역하는 경우는 이런 문제를 명확하게 구별하겠으나 한글로 사용할 때는 오히려 그것을 구별하는 것이 참으로 어색하고 때로는 다른 뜻이 개재될 소지까지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표현에서는 피동이 피동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능동이 능동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수가 단수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복수를 뜻할 때도 무수히 많아 헤아릴 수 없으니 혼용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이런 표현들을 영어식 국어문법체계로 완비하여 사회적 통용이 된다면 우리는 조용히 따라 갈 것이나 지나치게 앞서거나 뒷서는 일은 주저하고 있습니다.
6.'예배당'과 '교회'문제도 신학적으로는 여간 큰 문제가 아닙니다.
과거 서부교회는 간판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서부교회예배당'이라고 적었습니다. 목사님 가시던 마지막 80년대 말에는 '예수교장로회 한국총공회 서부교회'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보이는 곳에 간판을 달 수 없는 것이 신학의 기본상식입니다. 예배당 건물은 예배당이지 교회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반 교회도 또 백목사님도 이 점을 과거 많이 강조했으나 오늘 일반 교회가 전부 예배당과 교회의 구별을 없애 버리고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으며 백목사님은 마지막까지 교회건물에 표시를 할 때 '교회'가 아니라 '예배당'으로 했으나 모든 사회 일반이 '교회'의 의미를 신학에서 사용하는 '교회'의 의미와 별개로 '예배당'을 대체하는 용어로 사용하게 되자 더 이상 뒷서지 않고 보조를 맞추게 된 것입니다. '서부교회 예배당'이라는 간판을 '서부교회'로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회와 예배당을 머리속에서나 신학적으로 혼동할 분은 아닙니다.
손양원목사님이 목회했던 애양원교회는 그 건물 돌간판에 '애양원예배당'으로 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우리 진영 옛 간판이 남아 있는 곳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교회사의 이전 교회건물들의 간판들을 보면 한결같이 '00교회 예배당'입니다. 이 점으로 같이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설교록] '축복(祝福)'이 설교록에서도 잘못 사용되고 있는데
제목분류 : [~설교록~]
내용분류 : [-설교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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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표현이 백영희 목사님 설교록에도 많이 있습니다. 축(祝)이라는 한자는 '빈다'라는 뜻이니 '축복'은 누구에게 복을 빈다는 말이 됩니다. 한자를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다른 존재에게 우리가 복 받도록 복을 빈다는 뜻으로 알 것입니다. 설교록에 '하나님 축복'이라고 표현된 부분을 고쳐야 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민6:22-27에서 축복과 복을 분명히 구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축복'은 인간이 하나님께 복을 빌 때 사용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복'으로 구별해서 사용했습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축복을 하신다는 표현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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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설교록~]
내용분류 : [-설교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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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표현이 백영희 목사님 설교록에도 많이 있습니다. 축(祝)이라는 한자는 '빈다'라는 뜻이니 '축복'은 누구에게 복을 빈다는 말이 됩니다. 한자를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다른 존재에게 우리가 복 받도록 복을 빈다는 뜻으로 알 것입니다. 설교록에 '하나님 축복'이라고 표현된 부분을 고쳐야 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민6:22-27에서 축복과 복을 분명히 구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축복'은 인간이 하나님께 복을 빌 때 사용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복'으로 구별해서 사용했습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축복을 하신다는 표현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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