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영접한 성도들(눅1, 2장, 마1,2 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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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영접한 성도들(눅1, 2장, 마1,2 장에서)

분류
편집부 0
제목분류 : [~성경~주해~누가복음~]

내용분류 : [-성경-주해-누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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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설명은 참고하시고 이 두 설교를 많이 읽어보실 것을 권면 드립니다.


1. 82. 04. 23. 금밤. 제목 : 마리아의 신앙

2. 87. 12. 27. 주전. 제목 : 성탄 기념 - 영광, 기쁨, 평화로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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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신 누가복음 1장 2장은 순서적으로 세례요한의 출생과정과 예수님의 출생과정,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한 몇 종류의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 외에 마태복음 1장과 2장을 연결하여 예수님을 초기에 가장 가까이서 영접한 이들의 신앙을 간단하게 살펴보았습니다.


1. 요셉의 신앙


요셉의 신앙은 누가복음에는 잘 나타나 있지 않으나 마태복음 1장 18절 이하에 보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


1) 성경본문 설명(마1:18-25)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이를 가졌을 때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 사실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했습니다. 결혼하지 아니한 처녀가 아이를 잉태하는 것은 인간 출생의 이치에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요셉으로서는 마리아가 실수한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면 이미 정혼한 것을 파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마리아는 당시의 엄격한 유대교의 법에 따라서 돌에 맞아 죽게 되고 그 집안은 대대로 수치스런 집안이 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의로운 요셉은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고, 결론은 이 일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럴 때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마리아가 잉태된 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닌 성령으로 잉태된 것임을 알려주었고, 그 사실을 그대로 믿은 요셉은 마리아를 데려왔으며, 아이를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고 있다가 아이를 낳을 때 천사의 말대로 이름을 예수라 하였습니다.


2) 여기서 요셉의 신앙을 세 가지로 살펴보면


첫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의인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가 되는 천하에 다시없는 복을 받았습니다. 의로운 사람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사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자기 주관, 자기중심을 다 부인하고 전적 하나님 말씀에 순종으로만 사는 사람을 의인이라 합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요셉은 사람을 아끼는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가진 사실을 알았을 때 정혼자인 요셉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와 정혼한 처녀가 자기가 모르는 아이를 가졌다면? 어느 누가 생각해도 마리아가 실수했다는 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출생을 두고 과학적으로나 이치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역사 통계적으로 그 어느 면으로 살펴보아도 인간의 계산으로는 마리아가 실수를 하지 않고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으로서는 마리아에게 배신을 당한 셈입니다. 남자로서 있을 수 없는 부끄럽고 수치스런 일을 당한 것입니다.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사람을 아끼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조금만 일 처리를 잘못하면 마리아와 그 집안은 그야말로 멸문지화를 당하는 일이 됩니다. 7계에 대한 당시 유대교의 법이 그랬습니다. 엄격했습니다. 요셉의 말 한 마디면 마리아와 그 집안은 끝장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본의 아니게 말 한 마디 실수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요셉은 많은 고민을 했고 결국은 그 일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다. 남자로서의 자기 앞날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자기가 수치를 당하지 않으려면 그 일을 드러내야 하겠지만 사람을 아끼는 중심에서 요셉은 그 일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마리아와의 관계를 가만히 끊고자 했던 것입니다.


셋째,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역사에 한 번도 없었던, 도저히 있을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 현실로 일어났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알고 난 다음에는 조금도 의심치 아니하고 그대로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마리아의 잉태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신앙이었습니다.


3) 요셉의 신앙에서 알고 배울 것은


첫째, 하나님은 의인을 붙들고 쓰신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로 쓸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어떤 면으로든지 하나님이 붙들고 쓰시는 사람은 자기 주관을 부인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의인을 붙들고 쓰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것은 세상은 회개의 기간이기 때문에 회개의 면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지 하나님이 죄인을 기뻐한다든지 죄인을 붙들고 일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기뻐하시고 의인을 붙들고 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사람을 아끼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요셉이 마리아를 아껴 그 일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했던 것처럼, 사람을 아끼고 사람을 상하지 않게 하려는 그 사람, 그 중심, 그 일을 하나님은 대단히 만족하시고 기뻐하십니다. 물질을 손해보고 어떤 일을 손해보고, 자기가 낮아지고 천해지고 자기 속이 상해도 다른 사람에게 믿음의 상처를 주지 않고 다른 사람의 구원에 손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사람을 아끼는 그 사람을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시며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것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가장 진노하시는 것은 사람을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의 구원에 손해를 끼치는 것을 가장 진노하십니다. 자기 때문에, 자기 기분,자기 입장, 자기 감정 자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 되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구원하신 사람을 해치는, 상하게 하는, 사람의 구원을 손해케 하는 그 사람, 그 중심, 그 일을 하나님은 가장 진노하십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스라엘의 구원을 방해하다가 대대로 하나님과 원수된 구약의 아말렉 족속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믿음 있는 사람을 붙들고 일하십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이면 그를 붙들고 어떤 일이든지 하실 수가 있고, 하나님과 말씀을 의심하고 믿지 않는 사람이면, 또 말로는 믿어도 실지 생활과 행동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이면 하나님이 붙들고 쓰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붙들고 일하신다는 것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을 가장 가까이서 영접한 요셉은 이런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2. 마리아의 신앙


1) 성경본문 설명(눅1:26-38)


세례요한의 출생을 알리려고 사가랴에게 나타났던 천사 가브리엘이 여섯째 달에 마리아에게도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요셉과 정혼은 했지만 아직 결혼하지 아니한 처녀의 몸인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마리아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청천벽력의 소식이었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낳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또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실제로 생겨지면 마리아 자신은 돌에 맞아 죽을 것이고 자신의 집안은 멸문지화를 당하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사의 말을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내게 있으리이까’ 간단한 말이지만 천사의 말에 대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적의 답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에 대한 소식과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신 천사를 통해서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잉태될 수 있었습니다.


2) 마리아의 신앙


여기서 알 수 있는 마리아의 신앙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을 마리아는 가졌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전한 소식은 인간으로서는 절대 믿을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말이었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낳다니? 여자가 남자 없이 아이를 낳다니? 이는 천하 어떤 면으로 생각해도 맞지 않는 말입니다. 인간출생 이치의 과학으로도, 역사 통계로도, 상식으로도 그 어떤 면으로 봐도 천사의 말은 있을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말이었습니다. 인간 면에서 보면 이는 절대 불가한 일이었습니다. 마리아가 부인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가 전하는 말씀이 인간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천사를 통해서 하고자 하시는 일이 하나님이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마리아는 지체 없이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했습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했습니다. 이 믿음은 인간세계 전부를 초월한 믿음입니다. 인간의 모든 이치를 초월하고 인간의 모든 과학을 초월하고 인간의 모든 역사 통계를 초월한 믿음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부인하고 초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이 믿음이 마리아의 믿음입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는 말씀을 말씀 그대로 믿었고 믿은 그대로 이루어져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셨던 것입니다.


둘째, 마리아는 믿음으로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것을 완전히 부인했습니다.

만약 천사가 전하는 대로 마리아에게 이루어져서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가지게 되면 엄격한 유대교 법에 의해서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습니다. 자기 집안은 멸문지화를 당합니다. 이 일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의 전부와 자기 집안 전부, 자기와 집안의 대대의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이 모든 것을 다 초월했습니다. 다 부인해 버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전부를 완전히 부인해 버렸습니다. 이것이 마리아의 믿음입니다.


3) 마리아의 신앙에서 알고 배울 것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전능은 믿는 사람에게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전능인 하나님의 말씀이 마리아에게 전해졌고, 전능인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을 때 마리아에게는 전능의 말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도 그때와 꼭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입니다. 이 말씀은 시공을 초월한 말씀입니다. 마리아에게 전능으로 임한 그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전능으로 임하고, 마리아가 믿을 때 그에게 전능으로 역사한 그 말씀이 오늘도 믿는 사람에게 전능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독교의 말씀과 믿음의 비밀입니다.


둘째, 신약교회의 출발이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는 이런 이치로 자라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자기와 자기 전부를 부인하고 전능의 말씀을 믿을 때 말씀이 전능으로 역사하여 그에게 신약교회의 종자요 출발인 예수님이 잉태되었습니다. 이는 전능의 역사로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가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형상을 닮아 주님의 모습으로 자라가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전능을 믿는 이 믿음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자기와 자기 전부를 다 부인하고 하나님의 전능의 말씀을 믿을 때 말씀은 전능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여 우리를 주님의 모습으로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기독자가 믿음으로 자라가는 깊은 비밀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로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영접한 마리아의 신앙입니다.


3. 세례요한


1) 세례요한의 일생을 간략히 살피면


세례요한은 레위지파로 아버지는 사가랴, 어머니는 엘리사벳입니다.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났으며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난 예비자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였고, 평생을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습니다.


잉태된지 여섯째 달에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의 문안소리를 듣고 복중에서 뛰놀 만큼 뱃속에서부터 성령의 충만한 사람이었고,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했으며,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했습니다.


예수님이 일하시기 전에는 예수님이 하실 일을 예비하는 일에 주력하면서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다가, 예수님이 일하신 이후에는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면서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다 인계했습니다.


2) 세례요한의 신앙에서 특별히 기억할 것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특별한 사명이 있었기에 그의 역할이 대단히 컸지만 그중에서 우리가 특별히 기억하고 배울 것은 요3:22-30절의 일에서 29-30절에 나타난 신앙입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 말씀의 뜻을 간단히 살피면

사람을 끌어서 자기 사람을 만들지 아니하고 주님께로 붙여 주님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 세례요한의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즉 사람을 전도해서 자기 사람을 만들어 자기 권위를 세우고 자기 영광을 누리는 양 도적 같은 일을 하지 않고, 그런 일은 털끝만큼도 생각지 않고 오직 사람을 인도하여 주님께 끌어 붙이는 이 일 하나만을 자기 전부로 삼고, 이 일 하는 기쁨이 자기의 기쁨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역할이 끝나고 나면 그 사람에게는 주님만 보이고 주님만 커지고 주님만 남고 자기는 쇠하여 없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을 주님께로 끌어 붙이면서 주님과 그 사람을 붙이지 않고 제가 그 사람 옆에 붙어서 그 사람을 제 사람 만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고, 사람을 주님에게로 끌어 붙여 주님과 그 사람을 붙게 만드는 그것이 자기 역할이라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말하자면 남남인 신랑과 신부를 처음에는 중매쟁이가 가운데서 양쪽을 소개하고 붙이지만 일단 그 둘이 붙고 나면 중매쟁이는 없어지고 신랑 신부 둘만 붙어야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세례요한의 역할이었고 그는 이 역할을 잘 감당했습니다. 위의 본문에 나타난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이 신앙이 세례요한에게 가장 크고 깊은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로 사람을 인도하는 반사나 구역장 교역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4. 사가랴와 엘리사벳


세례요한의 부모로서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한 하나님 앞에 의인들이었습니다.


5. 목자들


예수님을 가장 초기에 영접한 사람들 중에 빼 놓을 수 없는 이들이 이 목자들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초기에 영접하게 된 것은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였습니다.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다가’ 천사들의 찬송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 영접했습니다.


자기가 맡은 양떼를, 추운 날씨를 아랑곳하지 않고, 밤중이라는 시간을 아랑곳하지 않고 지킬 때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양떼를 한 명이라도 맡은 사람이라면 깊이 새겨볼 말씀입니다. 자기 맡은 양떼를 심방하기 위해서 밤길도 험한 길도 먼 길도 마다않고 찾아가서 양떼를 살리는 충성스런 목자, 양떼들의 구원을 위해서 밤을 새워가며 산에서 골방에서 예배당 구석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는 참되고 진실한 목자 이런 목자들이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목동시절 아버지가 맡긴 양을 지킬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를 움키면 목숨을 걸고 그것을 지켰습니다. 거기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실력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이 나왔을 때 다윗의 잘난 형들은 다 겁을 먹고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골리앗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소리를 들은 다윗이 분개하여 나가려 하자 잘난 형들이 하는 말이 그것이었습니다. ‘들에 있는 몇 양을 뉘게 맡겼느냐’ 들에 있는 몇 양? 그들은 양떼를 그렇게밖에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골리앗을 이길 수 없는 사람들이었고, 다윗은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가 맡긴 양떼를 목숨을 걸고 지키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골리앗을 이길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이 될 실력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보잘것없는,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잘난 것 없는 목자들이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이것이었습니다. 오늘도 그때와 꼭 같습니다. 주님이 피로 구속하신 양떼들, 이 양떼를 지키기 위해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밤잠을 자지 않고, 피곤함과 속 썩임을 마다치 않고 충성하는 참된 목자 그 사람이 주님을 영접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역사 교회역사에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의 충성이 다 이러했습니다.


6. 동방박사


동방박사들에게서는 양면을 봐야 합니다.


1) 이방인들로서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 얻은 면


동방박사들은 이방인들입니다. 원래 구원이 없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경우입니다. 신앙이라기보다 그들이 이방인으로서 주님을 영접하게 된 것은 자기들이 일상적으로 하던 일에서 무심코 지나갈 수도 있는 하나의 특이한 일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혹시라도 있을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연구하고 찾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서 배울 것을 찾는다면, 우리에게 당면되는 현실의 모든 것은 작은 물건 하나, 사소한 자연현상 하나도 우리 구원과 상관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절대 예정을 따라 우리 구원을 위해서 생겨졌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까지도 우리 구원을 위해서 이용할 수 있어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 역사는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적용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현실이 다 그러합니다.


2) 동방박사들의 주관과 그 결과


박사들이 동방에서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아간 곳은 예수님이 나신 베들레헴 말구유가 아니고 예루살렘 헤롯 궁이었습니다. 왕이니까 당연히 왕궁에 있을 줄 알고 찾아갔지만 그것은 그들의 주관이었습니다. 성경 기록으로 보면 박사들이 헤롯에게 이용당해서 아기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하고 나올 때 '문득' 동방에서 보던 별이 앞에서 인도했습니다. 별의 인도를 따라 가다가 뒤에 가서 별의 인도를 보지 않고 자기들대로 갔다는 말입니다.


멀리 동방에서 별을 따라 베들레헴 근처까지는 왔지만 왕이니까 당연히 예루살렘에 있고 왕궁에 있을 것이라는 자기들의 주관을 앞세웠기 때문에 그냥 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의 그들에게는 별의 인도가 보이지도 않았고 보지도 않았습니다. 즉 별의 인도와 자기들의 주관이 같았을 때는 별의 인도를 따라갔는데 별의 인도와 자기들의 주관이 다를 때는 별의 인도를 버리고 자기들 주관대로 간 것입니다. 그 결과로 그 때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은 헤롯에게 다 죽음을 당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말씀이 가르치는 이치는 우리에게 참으로 중대하면서도 직접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내 주관이 같을 때, 즉 하나님의 말씀과 내 생각이 같고 내 판단이 같고 내 의사가 같고 내 결정이 같고 내 기분 형편 감정이 같을 때는 말씀대로 순종하지만 말씀과 내 주관이 다르면 그때는 말씀을 버리고 내 주관을 따라갈 때가 수없이 많은 우리들인데 그것이 바로 동방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따라가다가 주관을 따라 예루살렘 궁으로 들어간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 결과는 끔찍했습니다.


말씀과 자기 주관이 다를 때는 주관을 버리고 말씀을 영접해서 말씀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이 사는 길이고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동방박사들의 주관으로 인한 큰 실수에서 깨달아야 합니다.


7. 시므온과 안나


위에 기록된 사람들 외에도 시므온과 안나가 있습니다.

성전에서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시므온이었습니다.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한 계시를 보았고 성전에서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또 84년간 과부로 홀로 살며 성전에서 주야로 금식하며 주님만을 사모하던 100세가 넘었던 안나와 같은 이들의 신앙도 깊이 새겨야 합니다.


8. 성탄절에 꼭 새겨보고 싶은 말씀은 눅 2:14절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서 불렀던 찬송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예수님의 탄생을 두고 한 찬송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그 사랑, 그 희생을 두고 한 천사들의 찬송입니다.


자존하신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 주권자 하나님 만유 주 하나님이 낮고 천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는 인간이 똥구덩이에 들어가서 구더기가 되는 것보다 더 낮아지고 천해지신 것입니다. 도무지 인간의 언어로 형언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무한한 사랑에서 나온 무한한 희생의 역사입니다.


이 무한한 사랑! 이 무한한 희생! 이 한 역사로 위로 하나님께는 한없는 영광이 되어지고 아래로 땅에서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모든 사람에게 평화가 왔습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양은 달라도 주님의 사랑 같은 이 사랑을 가지고, 주님의 희생 같은 이 희생을 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교회는 천국이 될 것입니다. 그 가정은 천국이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있는 그 주변은 천국이 될 것입니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이고 많은 사람에게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성탄에 새길 것은 이것입니다. 주님이 날 사랑하여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것 다 버리고 낮고 천한 사람 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 평화가 왔으니, 주님이 가지신 이 큰 사랑을 나도 가지고 주님이 희생하신 이 큰 희생을 나도 본받아 위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뜻을 위하여, 옆으로 아래로는 형제의 구원을 위하여 내 전부를 다 내놓고 희생하리라는 이 각오와 결심을 다지고 새롭게 하는 것이 바른 성탄기념일 것입니다. 주님이 이 사랑이 없는 곳에는 천국이 없습니다. 이 사랑에서 발원된 희생이 없는 곳에는 천국이 없습니다.
[주해] 성경질문입니다..(급합니다.) -성탄 눅1-2장 설교는? :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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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부탁합니다...

학생들이 누가복음 1장과 2장을 설교해달라고 하는데

자신이 없습니다.

간곡한 부탁입니다...

이번 성탄때 학생들에게

누가복음 2장의 나오는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을

증거할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어떠한 신앙의 인물이며

마리아는 또 어떠한 신앙이며

목자들은?

동방박사들은?

사가랴는?

엘리사벳은?

이분들의 신앙의 특징과 본받을점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해주시면 정말감사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장과 2장을 이야기하듯이 설명좀해주시고

핵심적인 믿음을 증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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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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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사
    2026.01.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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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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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도
    2026.01.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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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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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온탕자
    2025.12.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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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는 자
    2025.12.2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