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당시 현실에서 그 신학은 아주 정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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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당시 현실에서 그 신학은 아주 정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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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0
제목분류 : [~인물~칼빈~]

내용분류 : [-인물-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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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칼빈신학의 정확성과 의미


칼빈 시대에 칼빈이 정리한 교리의 요약은

덜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다 할 만큼 정확하고 정교하며 교회를 살리는 특효약이었습니다.


사람이 정확무오할 수 없으므로 칼빈 스스로도 죽을 때쯤 되어 자신을 돌아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천주교에서 교회를 살려내야 하는 현실이 칼빈에게 주어졌고

칼빈이 당시 시대를 감당하는 사명을 너무 잘 감당하였다고 평가합니다.

칼빈 당시의 칼빈신학을 두고는 아직 비판할 만한 것을 발견한 기억이 없습니다.


2.칼빈신학을 두고 정말 비판을 하려면


칼빈시대의 칼빈신학 자체를 비판할 것이 아니고

칼빈이 자기 시대를 감당한 그 신앙을 배워 그 후시대는 자기 시대를 감당해야 할 것인데

5백년이 지난 지금도 칼빈 당시의 칼빈 신학을 모든 신앙에 기준을 삼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즉, 칼빈의 잘못은 그 시대를 알고 그 시대의 칼빈의 사명과 활동을 안다면 비판할 것이 없다 할 정도이고

칼빈신학이 그 이후 시대로 이어지면서 더이상 발전이 없고 고착된 것이 문제이니 그 문제는 칼빈의 문제가 아니라 칼빈 이후 시대의 문제라 하겠습니다.


3.칼빈신학 비판 중에


천주교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은

천주교를 벗어나야 할 것은 벗어나야 하지만 천주교를 벗어날 필요가 없는 것까지 벗어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은, 비판하기 이전에 어느 쪽이 옳은지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천주교가 잘못되었다고 해서 천주교가 밟고 있는 땅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 문제가 있습니다. 해방 후 재건교회는 신사참배를 했던 예배당들은 부수거나 불사르거나 아니면 내버리고 나왔습니다. 예배당 건물 자체를 부정한 것은 지나쳤습니다.


기독교강요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당시 칼빈의 시대의 교리 수준을 고려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네발로 걷기를 배울 때 칼빈은 뛰어다닌 사람입니다. 칼빈을 두고 날라다니지 못했다고 비판한다면 비판할 수 있지만 천하가 잠들었을 때 네발로 기어다닌 것만 해도 큰데 칼빈은 자유롭게 활보한 정도이니 그 정도면 비판보다는 좋은 의미로 연구하는 것이 옳고, 다만 그 이후 시대로 발전해 나가야 할 부분이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시대 우리의 책임이라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4.칼빈과 백영희


칼빈이 1900년대를 살고, 백영희가 1500년대를 살았다면

백영희는 1500년대 천주교 상황에서 개혁신앙을 출발시켰을 것이고

칼빈이 1900년대에 살았다면 500년 전에 밝혀놓은 기본구원 교리 위에서 건설구원으로 나갈 방향을 잘 요약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칼빈의 단점은 세상학문이 너무 많았고 그래서 학문적 접근이 아쉽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럽 전체 교회를 움직이려면 칼빈의 학문은 유익하게 사용될 도구였다고 생각합니다.

백영희의 장점은 세상학문을 멀리하고 말씀위주에 철저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된 것은 칼빈시대 칼빈의 정리가 장차 그를 이을 사람들에게 학문에 대하여 더 이상 훑어볼 것 없이 성경만 가지고 연구해도 될 울타리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세상학문까지도 필요한 시대를 주셨기 때문에 칼빈은 세상학문을 통달하게 하여 그 시대를 감당하게 했고 백영희는 세상학문이 필요없는 시대에 보냄을 받았기 때문에 세상학문 없이도 얼마든지 신학을 참 신학으로 잘 발전시킨 인물입니다. 각자 자기 시대를 통해 자기들이 감당할 사명을 훌륭히 감당한 귀한 인물들입니다. 아마 그들은 자기 시대 전후 수백년을 통틀어 하나밖에 없을 정도의 특이한 걸음을 걸었던 종들입니다.
[인물] 칼빈 신학의 깊이와 잘못된점
제목분류 : [~인물~칼빈~]

내용분류 : [-인물-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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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신학이 잘못됐다는 의견을 많이 접합니다.

예를들어 천주교를 벗어나지 못했다거나, 기독교강요에 잘못된

해석도 많았다고 합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나 칼빈의 성경해석 깊이는

백목사님 성경해석에 비하면 어느정도 될까요?

저의 생각으론 종교개혁 당대에는 기독교 강요가 꼭 필요한 교리서가

아니었는지 생각합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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