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얍복강가 전후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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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얍복강가 전후의 신앙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성경~주해~창세기~]

내용분류 : [-성경-주해-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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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6 Article Number : 5893 yilee (yilee@pkist.net) Lines : 5

하루 정도 답변이 늦어질 것 같습니다.


답변을 빨리 해야 하는 경우는 최대한 서둘고 있습니다. 이번 질문은 시간을 조금 가져도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다른 일정 때문에 답변이 1-2일 늦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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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05.12.9.)


1.창31:3 도망치듯 떠난 행동


야곱이 형에게 쫓겨 황급히 도망하며 벧엘에서 단을 쎃고 하나님께 약속했던 것이 있습니다. 라반의 집은 임시 머물 이방이었는데 야곱은 그곳에서 처자식에 가업을 이루고 아예 눌러 앉아버렸습니다. 라반의 집에서 세상 성공하는 것이 야곱의 성공이 아니라 구원계통의 귀한 걸음을 걷는 것이 성공이므로 하나님께서 라반을 통해 칼을 들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고 가르치는 때가 있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지만 기다리는 때가 있고

하나님께서 드디어 칼을 빼는 순간이 있습니다.


일찍 알고 돌이키면 좋고 늦었다 해도 칼을 드는 순간까지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칼을 들면 그때는 순식간에 끝이 나버립니다.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일단 주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단행이 중요합니다.


야곱에게는 바로 최종의 시점이었습니다.

한 순간 머뭇거리면 회개할 기회도 없이 죽거나 그냥 끝이 나버립니다.

이럴 때 20년 살던 곳이니 집안이니 무엇이니 해서 머뭇거리다 보면 더 혼이 납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인간 예절과 인사와 절차가 아니라

생사와 흥망을 앞두고 마지막 순종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인간관계를 주셨는데 너무 심하지 않겠는가?

이미 야곱은 20여 년 동안 충분히 작별할 기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외삼촌에게 인사 한 마디도 할 여유나 의롭고 덕이 될 행동을 할 자격도 없었습니다.

신앙의 사람이 불신 또는 일반 가족에게 인간적 인사하는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다 없애놓고 마지막 구원의 기회에 인간예법을 찾다가 하나님의 진노로 최종 기회까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소개합니다.


2.창32:25 야곱의 환도뼈 위골


우리 신앙에 대속과 진리와 성령이 빠지는 곳은 없습니다. 기본구원을 받기 전에는 그 3가지가 우리를 위해 준비하고 있고 중생되는 순간부터 영원무궁토록 우리는 그 3가지 안에서 살게 됩니다.


야곱의 얍복강가 행동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되 어느 정도까지 따라갈 것인지? 우리가 순종을 하다 보면 쉬운 것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는데, 순종하며 가다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따라가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얍복강을 건너면 에서가 바로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고 그 에서를 야곱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벧엘로 가자는 하나님의 인도와 에서의 살해 위협 사이에서 죽어도 순종하고 하나님만 따라가겠다는 100% 순종이 없어 고난하던 그날 밤이었습니다.


그날 밤 야곱은 하나님은 죽어도 가자고 하는데 살고 싶어 거부했고 그 씨름이 밤새도록 계속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거역하면 하나님께 죽는다는 표시로 야곱의 환도뼈를 쳤습니다. 말하자면 옛사람 야곱은 그날 밤 죽었습니다. 야곱 자체를 죽이면 더 이상 건설구원이 없고 다음에 이루어가야 할 단계가 중단되므로 죽이지는 않았으나 야곱은 그 순간 그 환도뼈를 치는 의미를 알았고 그날까지 살아온 야곱의 신앙생활, 즉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 해도, 또 쉬울 때는 순종해도 최종 최고 순간에는 늘 야곱 자신이 자신의 인간 생각으로 최종 결정을 하고 살아온 가장 깊은 속 자기 모습은 하나님께 영원히 진멸받을 생활이었음을 깨닫고 돌아섭니다.


이렇게 환도뼈를 맞고 돌아서게 된 것도 예수님의 대속이 근본적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이 일을 두고 가장 앞에 나타나 있는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 적용의 열심입니다. 즉, 이미 주어진 대속을 야곱에게 입히시되 야곱의 소유나 껍데기에 슬쩍 얹어놓는 식이 아니고 야곱의 가장 속에 있는 최종 중심까지 완전히 대속의 사람이 되어 자기를 완전히 죽여서 야곱의 전부가 완전히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하는 성령의 역사의 최종순간이었습니다.


3.창32:28 야곱이 이겼던 하나님과 '사람'은


야곱이 자기 주관을 꺽지 않고 하나님께 거역한 것이 하나님과 더불어 겨룬 것이고

하나님께서 여러 종류의 사람을 통해 야곱을 꺽으려 했으나 그때도 꺽이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최종적으로 하나님과 직접 겨루어서도 꺽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야곱을 꺽으려고 이용한 모든 종류의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사람'을 좀더 깊고 넓게 포함시키면

비단 야곱 밖의 사람들만이 아니고 야곱 안에 존재하는 여러 종류의 자아일 수도 있습니다.


4.창33:16-17 야곱이 숙곳으로 가다가 디나 사건이 생긴 것은


야곱이 에서의 인도를 따라 세일로 가지 않은 것은 야곱이 회개하여 이제는 하나님의 인도만에 자기 모든 것을 다 걸고 가는 걸음이었기 때문에 인간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얍복강 건너기 전이었으면 또 꾀를 내어 에서를 따돌리되 자기 주관의 계산 때문이었을 것이나 이제는 브니엘에서 새롭게 떠오른 해를 맞아 살아 가는 완전히 변화된 야곱입니다.


디나 사건은 이렇게 걸어가는 걸음이라 해도 야곱과 그 족보와 그 자녀에게 따로 징계를 받아야 할 일이 있다면 따로 징계를 받는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천주교에서 칼빈이 그렇게 위대한 개혁을 통해 교회를 완전히 살려놓았다 해도 그 교회는 아직 재림 이전 재세기간의 교회이므로 또 다시 더 자라가며 더 배워가며 더 전진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5.야곱의 씨름을 '강청한 의'라고 하는 감리교


감리교는 착 가라앉은 이론 치중 교회에 대한 반발심으로 열심을 강조하고 나섰기 때문에 무엇이든 열심있는 행동을 보면 환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감리교의 한계이며 근본 신앙의 위험성을 잘 나타내는 대목입니다.


야곱이 두려워 하나님께 기도한 그 기도 자체는 강청이었고 간절한 요청이었으므로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의 내용은 맞아 죽을 망령된 내용이었습니다. 강퍅한 야곱이 죽어 마땅할 짓을 하면서도 그래도 하나님과 대면했기 때문에 기도의 목적과 방향 자체가 잘못된 것까지 고쳐 바로 고쳐지게 되었음을 유의하여 보셔야 합니다.


인간이 욕심을 가지고 그 욕심을 이루기 위해 기도한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욕심기도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해서 돌이켜 바른 기도를 하게 만들고 바른 기도를 할 때 들어주십니다. 이런 과정에서 하나님을 상대로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다는 것까지는 우리가 늘 노력하고 본받아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내용이 잘못된 것은 죽어야 할 행동이었습니다.


요약하면

기도하지 않는 것이 가장 나쁜 것이고

기도하되 욕심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 이등이고

기도하되 바른 방향으로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 가장 옳은 일입니다.


6.야곱의 씨름은


에서를 겁냄과 축복의 약속을 씨름한 것으로 보는 것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에서의 칼이라도 순종하라 하고 야곱은 그런 순종만큼은 할 수 없다 하는 씨름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생명을 포함하여 무조건 나만 믿고 순종만 하라는 것이고, 야곱은 생명만은 빼놓고 시키라는 것입니다.


7.야곱의 이름


야곱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의 히브리어 단어입니다. 마땅히 그 단어들을 연구하게 되면 그 나라 국어학적으로 많은 뜻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이상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이니 야곱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전후를 살펴보면 성경의 단어 뜻을 찾게 됩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자기 중심으로 자기를 위해 자기 꾀를 내어 살던 이름이고

이스라엘이란 뜻은 하나님께 맞서면 죽는데 하나님 은혜로 살아났다는 뜻으로 요약하셨으면 합니다.
[주해] 창세기 31~33절에 나타난 야곱에 대한 질문
제목분류 : [~성경~주해~창세기~]

내용분류 : [-성경-주해-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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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략한 답변을 해주셔도 감사합니다.


(1)창 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2) (얍복강에서 환도뼈가 위골)


(3)창 33:16-17 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회정하고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은 고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질문]

1. 야곱은 창세기 31장 3절에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여 라반에게서 떠납니다. 그가 라반에게서 떠날 때 작별을 고하지 않고 도망치듯 떠납니다. 그리고 라반에게 죽을 뻔하다가 하나님 은혜로 살아납니다. 여기서 야곱의 도망치듯 떠난 행동은 잘한 것입니까? 잘못한 것입니까? 도망치듯 떠난 것이 의로운 행동이었는데 라반의 잘못을 하나님께서 책하신 것인지, 도망치듯 떠난 행동이 잘못된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야곱이 도망치듯 떠난 행동은 회개해야 할 행동이었는지 교인이 그 현실에서 마땅히 행해야할 순종이었는지 궁금합니다.


2. 얍복나루에서 야곱은 환도뼈가 위골됩니다. 이에 관해서 백목사님 설교를 참고했고 이해했습니다. 환도뼈를 예수님의 대속과 연결시켜 볼 수 있는 지 궁금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겼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대항했으니 죽어야 했음에도 환도뼈 위골로 회개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죽어야할 야곱이 살았다고 볼 수 있는지요?


3. 창 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이겼다’에서 ‘사람’은 누구를 의미하는가요? 에서, 라반 같은 세상에서 싸워 이겨야할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인가요?

혹시 ‘하나님과 사람’을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으로 볼 수 있는가요? 처음에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하나님이었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사람’을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으로 생각해 보니까 왠지 이단이 되는 것도 같습니다.


4. 창 33:16~17절에 에서는 세일로, 야곱은 숙곳으로 갑니다. 혹자들은 벧엘로 가야 할 야곱이 형에 대한 두려움을 아직도 느껴서 형 에서를 피해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숙곳에 갔다가 디나가 강간당하는 징계를 받았다고 합니다. 맞는 말인지요? 야곱은 이미 환도뼈가 위골되어 회개했고 브니엘이라는 뜻을 봐서도 완전히 회개한듯 싶고 백목사님 설교에서도 야곱이 환도뼈가 위골된 후 다시는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았고 실수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이 숙곳으로 간 이유가 궁금하고 숙곳으로 간 것이 죄를 진 것인지 궁금합니다. 혹 죄가 아니라면 디나가 강간당하는 사건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5. 주로 감리교에서 야곱의 씨름은 간절한 기도였고 ‘하나님에 대한 강청’의 의로움이라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야곱이 정말 무엇을 씨름했는지 ‘시간이 되신다면’ 좀 더 자세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설교록은 인용해 놓겠습니다. ‘환도뼈’로 검색해 보면 더 많은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851008교역

27절에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부를 것이 하니" 다시는 네가 아버지 어머니 밑에서 에서의 장자의 축복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안하고 취하니까 됐다. 또 밧단 아람에 가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죽자껏 힘을 쓰니까 마누라도 둘 다 욕심대로 다 취했다. 또 이래 하니까 양떼들도 많이 됐다.


이것이 버르장이가 돼 가지고 자꾸, 그때 어릴 때는 어릴 때 마지막에 얍복 강에 가 가지고도 하나님께서 '이제 가라' 간다 해 가지고 출발하기는 출발했지만 에서가 죽일라 하니까 죽어도 순종해야 되니까, 죽으나 사나 하나님이 가라고 하니까 가야 될 터인데 '못 갑니다. 안 됩니다.' 요걸 세운 것이 그것이 야곱의 마지막의 씨름입니다.


그래 가지고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고 난 다음에는, 그때는 이제 회개를 하고 출발했습니다. '예, 제가 가겠습니다.' 가면서 뭐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 함이더라"


이래서 이제 그 다음에는 네가 무엇이든지 네 주관 '내가 하면 된다. 하면 되지 안 될 게 뭐 있느냐? 내가 믿고 하면 된다. 내가 하면 된다.' 이렇게 하는 그 주장의 그런 버릇을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이 계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약속했기 때문에 '하면 된다' 하는 그런 버릇을 이제는 하지 말고, 다시는 하지 말고 *이제는* 네가 하나님이 죽으라면 죽고 살라 하면 살고 하나님이 명령하는 데에 복종하는 네가 되어지고 네 주관을 완전히 하나님 앞에 꺾어서 정복을 당해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시고, 그때부터 하나님은 가라 했는데 그 말대로 순종해서 얍복강을 건너서 갔던 것입니다.


그 전에는 세워대다가 갔습니다. 그래 이제 한 대 맞고 난 다음에 가니까 그만 어찌 됐습니까? 한 대 맞고 가니까 자기라는 사람이 완전히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꿔졌습니다. 하나님 대항하면 죽는다. 그분이 이렇다 하면 이렇고 저렇다 하면 저렇지 그분에게 대항해서 '아이고 그래도 안 됩니다. 그래도 안 됩니다.' 이렇게 대항하면 자멸하는 행위라 하는 것을 굳게 잡고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에게 꼬박꼬박 '예'로 했지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 대항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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