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뭇사람은 택자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사함받은 행동의 성화여부만을 심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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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뭇사람은 택자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사함받은 행동의 성화여부만을 심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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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

내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성경-성경일반-]/[-교리-말세론-심판-사심판-]/[-교리-교회론-신앙생활-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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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본문의 '뭇사람'은 택자와 불택자 모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택자가 중심입니다.


①모든 성경이 대개 그러하듯 본문도 택자를 중심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불택자는 경건할 수도 없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모든 불택자의 모든 행위는 전부가 불경건입니다. 성경은 불택자란 이런 죄가 있어 이런 과정으로 멸망된다는 것을 위해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불택자란 설명을 붙일 것도 없이 그러하고, 문제는 택자입니다. 택자에게는 경건과 불경건을 두고 좌우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경건에 대한 영생의 결과와 경건치 않음에 대한 영원한 심판을 두고 성경은 우리에게 경건하게 살아야 할 이유를 낱낱이 가르치고 있으며 또한 경건치 말아야 할 이유를 자세하게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②구원받은 우리도 경건을 기준으로 다시 한번 남은 평생을 검사받게 됩니다.


택자로서 경건하게 살아야 하는데도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경건치 않게 행한 일과 말,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낸 행위, 그런 행위를 만들어 낸 경건치 않은 그 사람 자체를 심판하는 것입니다. 이런 심판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을 가지고 심판을 면하고 오히려 구원얻는 사람이 되도록 힘쓰라는 것입니다.


2.사함받은 우리의 '경건치 않음'이 심판을 받는다 함은


①우선 심판은 공심판과 사심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심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지옥가도록 정죄하여 보내는 심판이 첫째 심판이니 이를 공심판이라고 합니다. 불택자를 지옥으로 보내고 택자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사해졌으니 이 공심판에서는 예수님 때문에 무사히 통과되는 것입니다.


천국을 가게 되는 우리는 예수 믿은 이후의 평생을 가지고 각각 천국으로 가지고 갈 자기 심신의 요소를 정하고 천국으로 갈 때 가지고 갈 심신의 양을 정하게 됩니다. 이것을 결정하는 것을 '그리스도의 사심판'이라고 합니다.


천국 갈 우리 자체는 공심판을 면제받고 무조건 천국으로 가게 되지만, 천국으로 갈 때 자기가 평생 가지고 사용하던 자기의 종이며 자기의 도구 노릇을 했던 자기의 마음과 몸의 요소, 기능, 실력, 경력을 검사받게 됩니다. 이 검사에서 통과되면 자기의 소지품으로 소유물로 그런 것들을 가지고 가게 되며 이 검사를 통과하여 천국에 가지고 갈 천국에 속한 의의 요소 의의 기능 의의 실력 의의 경력으로 인정된 그 양만큼이 영원한 천국에서의 우리의 실력과 영광의 차이가 되는 것입니다.


②천국을 가도록 확정된 우리에게 '경건'을 기준으로 다시 한번 우리 평생을 분류합니다.


이 검사의 기준을 여기 유다서 15절에서는 경건으로 하겠다고 우리에게 미리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중심의 행위가 하나님의 법대로 되었을 때 경건이라고 합니다. 중심이 하나님이며 그 행위의 기준이 말씀대로 된 경건에 속한 것은 믿는 우리가 천국을 갈 때 가지고 가게 되지만 비록 믿는 우리라 해도 우리가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 중심으로 움직인 것, 말씀을 어기고 해놓은 것은 지옥에 버리고 가야 합니다. 경건치 않은 사람, 행위, 일, 말 등 4가지로 나누었지만 이 4가지로 경건이 될 때 관련된 나의 모든 심신의 요소 행위 등 전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③그렇다면 천국을 가게 되는 우리의 심정은 어찌 될 것 같습니까?


우선 지옥의 영원한 고통을 생각한다면, 우리 자체가 은혜로 무조건 천국가게 된 기쁨은 한량이 없겠지요? 영원토록 계속될 것이며 이것이 모든 것을 다 덮고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 가게 된 우리가 천국으로 가지고 가야 하는데 가지고 가지 못하게 된 우리의 소유물 사용물 우리에게 속하여 우리 안에 있었던 여러 요소 그것들의 동작 그 동작들이 만들어놓았던 이력 등이 지옥으로 버림받고 불타는 고통 속에 있게 될 때 우리에게는 천국의 기쁨 속에서도 세상에서 살려 가지고 왔어야 하는데도 가지고 오지 못한 것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심정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인격은 하나입니다. 요소로는 무한하다 할 만큼 많습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우리 속의 모든 복잡한 이해득실 손익계산이 총 결산되고 나면 최종적으로 우리에게는 한 가지 마음의 한 가지 얼굴 모습을 가지게 됩니다. 주식 전광판 한 자리 앞에서 잃은 돈이 1만원짜리 몇장이고, 벌게 된 돈이 1억짜리 주식 몇 가지 5억짜리 주식 몇 가지로 그 날 결산이 났다면 그 사람의 표정을 상상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④또 다른 몇 가지 비유로, 보다 넓은 시야로 차분하게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의 기쁨이 어찌 말로 다 형용하겠습니까만 그 사람이 1문제를 틀려 2등으로 합격했다면? 한 문제를 놓친 아쉬움은 합격 이후에도 남아 있을 것이나 인생의 최고 행운을 사법고시라고 친다면 그래서 가난한 시골 농사군 집안에서 벼락출세길이 열리는 옛날로 비유를 한다면, 그 큰 경사에 그 아쉬움은 묻힐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 계산은 계산대로 남을 것입니다. 우리의 땅 위에 믿은 이후 노력은 그 아쉬움을 줄이는 노력이며 그 복된 사람의 복스러운 후회를 줄이는 일입니다.


수년 전 목숨을 걸고 일가족이 탈북하여 남한으로 들어오는 경우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수백만명이 굶어죽는 가운데 생사의 고비를 수도 없이 넘고 그 많은 식구가 한 사람도 잘못되지 않고 남한으로 들어온 감격에 온 나라가 울고 그렇게 도착한 사람들과 그 식구들의 소식은 온 나라를 달구었습니다. 그들이 도착한 감격을 '1만'이라고 한다면, 그들이 도망나올 때 혹 가지고 올 수 있었던 100불짜리 지폐하나를 잊었다고 한다면 그 아쉬움을 '1'로 잡으면 어떻겠습니까?


⑤천국에 오게 된 기쁨, 지옥에 버릴 아쉬움, 두 가지에 대한 균형이 참으로 필요합니다.


지옥의 실상을 이 땅위에서 아는 정도가 아니라 천국에서 아는 것은 있는 그대로 다 알게 되는데 그 지옥을 벗어나서 천국에 오게 된 기쁨은 측량할 수 없는 무한입니다. 그러나 이런 무한한 감격 중에서도 천국 내에서 영원히 살게 될 우리의 실력 차이는 분명히 실력 차이로 존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면을 강조하게 되면 천국을 가게 되었으니 이 땅 위에서 챙겨갈 의로운 것 경건에 속한 것 쯤이야 아무리 다 버리고 가도 상관없다는 생각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가게 된 천국인데, 그 천국으로 가게 만든 예수님이 하나님 중심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천국 올 때 다 가져 오라고 했는데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고 빈 몸으로 천국오게 된 이의 천국에서의 죄송함과 미안함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천국갈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강조하다보면 지옥갈 것이 천국가게 되는 무한한 기쁨이 자칫 축소되거나 잊어버려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천국의 기쁨과 소망에 충천함이 덜한 사람에게는 지옥갈 우리가 천국가게된 기쁨, 천국의 영생의 모습을 주로 강조하여 소망을 주게 되며, 반대로 천국을 가게되었으니까 세상에서 실컷 죄짓고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겠다는 이런 참 먹장같은 심정을 가진 믿는 이들에게는 천국 가서도 또한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을 강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은 성경이 양면을 다 기록했고 가르쳤기 때문에 우선 그리 말하게 되는 것이고, 또한 성경 전체를 살피고 믿는 우리가 당연히 믿고 살아가는 이치를 살펴도 이것이 옳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바로 알고 또 한쪽으로 치우친 면은 체계적 교리와 교훈으로 그 치우친 면을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을 입고서도 내가 저지른 경건치 않은 모든 행위들에 가슴을 치며 두려운 심판을 받게 될까' 하는 염려가 커져서 심신의 경건함을 만드는 노력에 도움되는 차원이 아니라 두려움에 떨게 되는데 나아가게 된다면 지옥에서 구원받은 우리, 믿는 사람이 무조건 가질 기쁨의 양으로 이를 덮고도 남아야 합니다. 반대로 미7:18-19의 말씀으로 위안을 받다가 그 정도가 지나쳐 이제 이렇게 죄악을 다 털어 깊은 바다에 던져 넣었으니 세상에서부터 힘껏 놀고 먹자고 안일과 나태의 죄에 빠질 정도가 되었다면 천국에서 영원한 차이를 가지고 스스로를 재촉할 일입니다.


유다서 15절은 두번째 경우를 말씀하고 있으며 성경은 전체적으로 거의 두번째 경우를 중심하고 있습니다. 중생은 단번이며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서울대를 입학한 학생이 입학 한 후 성적, 입학 한 후의 졸업문제, 그후 진로문제까지를 생각한다면 합격과 불합격도 큰 문제이지만 서울대 입학 후에도 넉넉한 실력으로 자신있게 공부를 해나갈 준비를 미리한 학생과 겨우 입학의 문만 통과한 경우로 예를 들어도 도움이 될런지요?
[죄론/심판] 여러 가지 질문들 - '죄값과 징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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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안녕하십니까?


1. 죄값과 징계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 시25:11>의 성구를 묵상하다가 죄악과 하나님의 징계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설교록 중 궁금했지만 그냥 가슴에 담아 두고 지나쳤던 부분이 있어 질문을 드립니다.

(집회 설교록인데 몇년도 설교록인지, 정확한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예정'에 연결된 질문인 것 같습니다. '환난'에 관한 설교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징계도 예정하셨는데 그것이 죄에 뒤따라 일어나서 죄 때문에 징계가 따른 것으로 보여지도록 하시는 것 뿐이다]

라는 의미의 말씀이었습니다.

정확한 문맥은 생각나지 않지만 확실히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위의 내용에 비추어 보면

인간의 시각에서는 '죄 때문에 이런 징계를 주셨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하나님 시각에서는 죄와 징계, 혹은 죄값은 상관관계없는 별개의 것들로 해석될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질문>

다른 설교록에서 불신자의 죄값과 믿는자의 징계의 차이점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위의 말씀에 비추어서 '징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죄'와 '징계'의 상관관계에 대한 말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2. 경건치 않은 행위에 대한 심판

다음 성구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주석에 의하면 거짓교사에 대한 말씀이라는데...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 유1:15'


이 성구에서 '뭇사람'이란 누구를 지칭하는 것입니까?

(불택자 모두를 말씀하심입니까?)

택자에게도 역시 해당되는 말씀이라면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도 이미 사함받은 '모든' 경건치 않은 행위도 심판의 대상(혹은 하나님의 노여움, 정죄의 대상)이 됩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대속을 입고서도 내가 저지른 경건치 않은 모든 행위들에 가슴을 치며 두려운 심판을 받게 될까요?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미가7:18-19'

와 같은 말씀으로 위안을 받다가도 위와 같은 말씀을 대하게 되면 큰 죄인이라 두려운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3. 둘째 사망

계21:14에서 말씀하신 둘째 사망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둘째 사망'과 '사심판'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4. 주일 성수

혼자 생각해도 답을 얻을 수 있는 사안임에도 굳이 질문드립니다.

모든 세상적 불이익을 무릅쓰고 엄격한 기준으로 생명걸고 주일을 지키는 총공회 입장에서는 단호한 답이 나올 수 있겠다고 충분히 예상이 됩니다만...

신약시대에도 역시 주일을 지키지 않은 죄는 '사망'에 해당될 정도로 하나님을 노엽게 해 드리는 일이 될 수도 있을까요?


아침부터 이것저것 (지적 수준이 의심되는 유치한 질문까지...) 질문드려서 죄송합니다.

많이 바쁘시리라 생각되어 간략하게 답변해 주셨으면 합니다.

혹 어떤 부분은 적절하지 않다 생각되시면 그냥 지나치셔도 상관없겠습니다.

언제나 영육간 강건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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