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선한 젊은이들을 어떻게 구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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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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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9 00:0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공회노선~]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공회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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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회가 걷잡을 수 없이 탈선하는 젊은이들을 향해 가지는 태도를 분류한다면
①탈선한 청년들이야 죽든 말든 내버려 두고 산속에서 나만 잘 믿겠다는 이들
②탈선한 청년들 속에 들어가지 않고 그 대신 밖에서 그들을 불러내려는 이들
③탈선한 청년들 속에 들어가서 그들을 데리고 복음 안으로 끄집어 내는 이들
④탈선한 청년들 속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놀다가 복음을 잊어 버리는 이들
⑤탈선한 청년들이 부러워서 그들과 함께 놀기 위해서 처음부터 작정 한 이들
이렇게 5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겠습니다.
교파 별로, 또 목회자들 별로 나누어 예를 들어 본다면
①의 경우는
기독교사에서 수도원 운동이나 염세주의로 나간 분들입니다.
허허벌판으로 가버리거나 심심유곡으로 들어가서 외부와 완전히 단절하고
인사도 편지도 안부도 연락도 일체 끊고 평생 성경과 기도로 산 분들입니다.
기독교를 가장 순수하게 바로 지켜 나왔다는 면에서는 큰 공로자들이고
자신들이 직접 전하고 가르쳐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면 불충의 죄인들입니다.
둘 중에 하나를 잡아야 한다면 생명을 붙드는 일에 먼저 노력해야 합니다.
②의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는 백영희신앙노선에서 그 예를 찾으시면 됩니다.
교회가 지키고 조심해야 하는 것은 전부 그대로 지키면서
교회가 할 수 있는 구원운동이 있다면 있는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③의 경우는
통합 합동 고신 등 일반 정통 보수측 교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교회가 복음운동도 위해 필요하다면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하되
아주 조금만 발을 들여놓자는 것이 ③번이고
한정없이 발을 들여놓자는 것이 ④번입니다.
④의 경우는
기장 등 신신학이나 진보측 등의 사회주의 기독교 계열입니다.
좀더 정밀하게 분석한다면
소위 넓게 나가고 세상인지 교회인지 모를 정도로 아주 잘 나가는 곳입니다.
앞에 설명한 ③번과 비교를 한다면 ③번은 조금만 발을 들여놓는데
이 ④번의 경우는 세상 속에 마음껏 발을 들여놓습니다.
세상 속에 너무 발을 깊이 들여놓기 때문에
처음에 잘해 보려고 시작했지만 결국 하다보면 아주 세상이 되어 버립니다.
⑤의 경우는
이름만 교회라고 붙여놓았지 일반 종교단체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경우입니다.
대개 ④번으로 시작한 교회들이 조금 세월이 흐르면 ⑤번이 되어버립니다.
YMCA 세브란스병원 등 수많은 기독교 내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들입니다.
이들이 뚜렷하게 세력을 형성하게 된 최근에는
새로 시작하는 단체들이 처음부터 이런 오래된 단체들을 흉내내면서
탈선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막판의 모습으로 출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질문자의 지적을 폭넓게 수용해서 답변드린다면
가정에는 밥그릇도 있고 쓰레기통도 있고 정화조도 있어야 합니다.
발바닥도 필요하고 입술도 필요하고 이빨도 필요하고 위장도 필요하고 대변 출구도 필요합니다. 대변 출구를 더럽다 해서 폐쇄하면 온 몸의 피부를 통해 대소변의 독소가 배출되는데 차마 눈뜨고 못볼 지경입니다. 발바닥 입술 이빨 위장 대변 출구까지 온 몸에 단 한 곳도 필요없는 곳은 없습니다. 전부가 소중한 나의 일부이며 각기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교회도 저런 교회도 다 필요해서 세상에 두고 계십니다. 이런 면을 고려한다면 세상 속에 깊숙히 들어가서 활발하게 접촉하는 교회도 필요하고, 세상과 완전히 등을 지고 산속에서 고요히 그 시대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들도 필요합니다. 또 세상과 이런 저런 거리를 계산해 가며 각 교회의 개별특성에 따라 손만 내미는 곳도 전화로 심방만 하는 곳도 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현 젊은이들의 취향을 예배 안으로 대폭 수용해서 세상에서 그들끼리 위험하게 놀게하지 않고 예배당 안에서 예배시간에 마음껏 놀게 하는 교회도 그들 교회가 맡아야 할 사명일 수 있듯이, 반대로 예배나 교회 안에는 세상 어떤 풍습도 들어오지 못하게 엄하게 선을 긋는 교회도 그 교회가 맡아야 할 그 교회의 개별 특성일 수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모조리 춤을 춰야만 하느냐?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배 시간에 절대로 춤을 추지 말아야 하느냐?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교회는 춤만 추고 살아야 할 곳도 있고
어떤 교회는 춤추는 것은 평생 한번도 하지 않을 곳도 있고
어떤 교회는 처음에는 춤을 추고 시작했다가 나중에 말씀만으로 돌아가는 곳도 있고
어떤 교회는 말씀만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춤추는 것으로 끝마치는 곳도 있고
어떤 교회는 오락가락 눈치만 보다가 죽도 밥도 아닌 교회도 있고
어떤 교회는 이 모든 것을 잘 사용하는 교회도 있을 듯 합니다.
중요한 것은
전부가 한 기능을 가진 한 교회일 수 없고
전부가 한 장소에 모인 한 교회일 수 없습니다.
이 홈 식으로 믿는 것만이 모든 교회가 본받을 모델이라는 것도 우스운 말이듯이
이 홈 식으로 믿는 교회들이 춤추고 노는 교회로 다 바뀌어야 한다는 것도 지나친 듯 합니다.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할 수 있으니, 인체의 각 요소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3.질문하신 분의 지적을 좁게 받아들인다면
한 교회는 이러하고 한 교회는 저러할 수 있다는 표현을 좀더 따져 봐야 합니다.
한 교회는 이러하고 한 교회는 저럴 수 있는 것은 그리 되어야 하나
한 교회든 다른 교회든 교회라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고 꼭 같아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한 교회는 불상을 갖다 놓고 한 교회는 마리아상을 갖다 놓고 한 교회는 불상도 마리아상도 없앴다면, 이 3가지 종류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한 몸에 붙은 여러 기관들이 각자 하는 일이 다른 것처럼 그렇게 다를 수 있다고 봐야 하는가? 아니면 그런 식으로 다르다면 그것은 한 몸에 붙은 다른 기관이어서 다른 것이 아니고 아예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남의 몸에 붙었으니 교회가 투쟁해야 할 대상인가?
어디까지는 같을 수 있고
어디까지는 다를 수 있는가?
우선
성경이 금하는 것은 각 교회가 교회의 개별성이 있다 해도 금해야 할 것이고
성경이 명하는 것은 각 교회가 교회의 개별성이 있다 해도 꼭 해야 합니다.
성경이 금하는 것과 성경이 명하는 것을 넘어선다면 그것은 이미 개별성 문제가 아니라 그 교회가 교회냐 아니냐는 문제가 됩니다.
부모에게 한식을 대접하느냐 양식을 대접하느냐는 것은 각 가정의 개별성이나
부모를 고려장 하는 가정이 부모를 잘 모시는 가정을 상대로 각 가정은 개별성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각 가정의 개별성을 잘못 이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질문자께서 예를 든 교회의 경우
이곳에서 이단이라고 정죄하지는 않겠지만
예배나 목회의 방향을 그렇게 잡으면 그 교회가 더 좋아질 수 있는 길을 버리고
그 교회가 더 악화되는 길로 걸어간다고 이곳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는 서울에 있고 이 교회는 지방에 있다는 위치 차이는 교회의 개별성입니다.
그 교회는 전씨라는 목사님이 계시고 이 교회는 이씨라는 목회자가 담임하는 것도 개별성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예배 때 남녀가 뒤섞여 강단 위에서 세상식 춤을 추고
이 교회는 예배 시간에 최대한 그런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면
이것은 교회의 개별성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각 교회가 가진 개별성을 가지고 그 교회가 악화되는 방향으로 가느냐 성화의 방향으로 가느냐는 방향 문제이니, 신앙은 갈수록 전진과 발전의 방향으로 나가야 되지 탈선과 속화의 방향으로 가면 안 되는 원칙이 있습니다. 이 원칙에 의하여 질문자께서 말씀하시는 사례는 교회의 발전으로 볼 것이 아니고 또 교회가 젊은이들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좋은 사례로 볼 것이 아니고, 교회가 젊은이들을 따라 완전히 속화되어 교회가 교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므로 이는 무조건 말려야 하는 사안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4.몇 가지 작은 부분들에 대하여
①순교자 가정 출신 목회자의 신앙성향
질문자가 예를 든 서울의 어느 목사님이 지금 비록 넓게 나간다 해도 그분 출신이 순교자 집안의 자녀라는 점에서 그분의 신앙색채는 참고할 수 있지 않느냐는 정도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점에 대하여는 분명하게 답변자의 반론을 드리고 싶습니다.
부모의 순교 사상을 비롯하여 모든 신앙노선이 그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틀림이 없으나 그 영향을 그 자녀가 받았느냐 말았느냐는 것은 전혀 별개입니다. 오히려 통계적으로 본다면 순교 신앙처럼 아주 귀한 가정의 신앙성향이 그 자녀대로 오면서 이어지는 것보다는 아주 반대로 나가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더구나 손주 대로 내려가면 원 노선이 호적상 이름으로만 남지 실제모습에서는 거의 영향을 끼치는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②현 한국 젊은이들의 타락 정도
이태원과 대학가를 가보지 않은 세월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을 통해 한번씩 분위기는 듣고 있습니다.
소돔 고모라 이상일 수 있다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그때 죄악은 상류가 되고 지금 죄악은 하류가 되어 이제 시냇가가 바다가 되었을 것입니다.
③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그런 곳에 교회가 설립된다는 가정을 하셨는데
과연 현재 우리 교회들이 있는 곳은 소돔 고모라 한 가운데라 하겠습니다.
지적하신 취업문제 경제난리 자살과 자살시도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들이 우리 젊은이들을 감싸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적하신 대로 불행히도
우리 앞서 믿는 사람들이 청교도적으로 살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그 젊은이들을 적극적으로 인도하는 일에 주저하다가 자칫 이 많은 젊은이들을
통째로 세상에 내던지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자신을 깨끗히 보존하기에만 급급하여
젊은이들을 완전히 그들 세계에 홀로 내던질 것인가?
아니면 교회를 처음 접하는 방편은 폭넓게 하고 그대신 최종적으로 복음에
이르게 하여 그들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을 끄집어 내 와야 하는가?
앞의 경우가 백영희신앙노선처럼 보이고, 두번째 경우가 최근 젊은이들이 대거 몰려가는 서울의 몇몇 교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께서는 이 노선도 서울의 그런 교회들을 참고할 시점으로 보신 것 같습니다.
이 홈은 이번 질문자와 같이 양쪽의 객관적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그 중에 어떤 길이 자기가 가야 할 길인지를 고민하는 분들을 대할 때는
가장 반갑습니다. 비록 판단을 잘못했다 해도 뒤에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위치한 교회의 할 일은 무엇인가?
비록 질문자와 다른 결론으로 답변자의 입장을 말씀드려도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도 교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롯이 그 목회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롯과 함께 출발한 신앙동지였지만 롯과 다른 방향을 잡았습니다.
아브라함과 롯 이 두 사람은
그날 이후 오늘까지 교회의 방향을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가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인 줄 알면서 그리로 갔습니다.
그곳에 사는 동안 롯이 어떻게 목회를 했는지 우리는 두 사람이 나뉜 창13장 이후 19장까지를 차분하게 살펴보면 얼마든지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번 질문을 두고 참고해야 할 가장 중요한 성구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롯의 소돔교회는 결과가 처참했습니다.
롯의 소돔교회식 목회와 그런 신앙노선은 성경이 엄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많은 면으로 살필 수 있지만 이번 문답에서 살필 부분은 그 교회의 청년목회입니다.
노년층보다 청년층 위주로 목회를 했고
노년층 발언보다 청년층 발언이 더 강했습니다.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그곳의 문화와 생활과 행동을 거부하지 않고
적당하게 뒤섞여 살았습니다.
긴급한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어도 만사 청년들의 판단과 주어진 환경으로 판단하는 것이 앞섰습니다. 너무 현실과 거리 먼 메세지가 들리면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소돔교회 청년들은
이성문제에 대하여 폭넓게 자유를 가졌고 즐겼으며
노장층은 낡아서 버려야 할 보수파라고 우습게 여기고 있었으며
그 청년들은 그들이 살고있는 곳에서 그들의 환경과 문화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나안교회는 늘 우리가 사모하고 본받을 교회입니다.
그 교회의 처음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상 모든 좋은 여건은 롯의 소돔교회가 먼저 가져갔고
아브라함의 가나안교회는 세상 모든 면으로 어려운 여건만 가졌습니다.
그들이 갈라 선 직후 창13:14 이후를 주목하면 쉽게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의 가나안교회는
신앙에 제일 앞서고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 아브라함이 중심이 되었고
그 아내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로 깍듯이 모시고 순종했으며
그 휘하의 청년남녀 모든 교인들은 아브라함 명령 하나에 생명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큰 아들 이스마엘과 둘째 이삭의 갈등이 있을 때
인정 사정 인륜 천륜 여론 ... 생각하지 않고 단숨에 신앙의 순수한 노선을 취하고
조금이라도 열등성분이 섞여 있는 쪽은 십자가에 못을 박았습니다.
모든 것이 신앙 중심이었고
신앙의 순수한 계통을 지켜 나가는 방향이었습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의 사환조차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갈 때 보면
인정이나 사정이나 그곳의 형편이나 요청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원칙 그대로였습니다.
이 두 교회를 비교하면서 반드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소돔을 없애버릴 때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하나님께 청구한 것이 있습니다.
의인 50명이 있다 해도 소돔을 없애버리겠나이까 했고 하나님은 아니라 했습니다.
마지막에 10명의 의인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여쭈었습니다.
소돔교회는 단 10명의 의인도 만들지 못했습니다.
만일 소돔에 단 2명의 의인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다면?
실패한 의인 1명은 있었지만 그 외에는 단 1명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교인을 전도하고 젊은이들을 인도하려고 깔대기를 사용할 때 조심할 부분입니다.
깔대기를 대고 빨아들여서 마지막에는 복음에 불타는 의인을 만들면 되는데
성경에 죄인들의 죄에 동참하고 허용하고 함께 용인하여 발을 디딘 후 구원한 경우가 있는가?
구원하려고 손을 내미는 이들의 불칼 같은 성결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그다음 손을 잡아 끌어들인 것은 의인으로 점점 나아가는 깔대기가 되지만
죄인을 구원하려고 그들의 죄에 함께 물들어 예배와 교회와 신앙까지
그들에게 양보하여 구원한 역사는 없습니다.
노아 하나를 깨끗이 유지시켜 천하를 건졌고
아브라함 하나를 통해 이삭 하나를 통해 야곱 하나를 통해 깨끗이 성별한 곳에서
이스라엘 12지파 뿌리가 돋아나왔으며
바로 길러 낸 모세 하나를 통해 이스라엘 전체를 구원했고
산골짝에서 끝까지 주님을 바라보고 순종한 다윗 한 사람으로 구원했습니다.
5.결론적으로 말씀 드린다면
세상에 깊숙히 취하고 죄악의 향락에 완전히 찌든 그 젊은이들이 좋아하고 호응하고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할 수 있도록 예배를 손 댄다면 이는 싸워보지도 않고 자진해서 적에게 투항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싸우다가 마지막에 힘이 없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회개하고 다시 한번 도전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술에 취한 상태로는 부족하여 마약에 취해 눈이 휘떡 돌아간 상태로 입에서는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중얼거리고 온 몸은 풀어젖혀 흐느적 거리는 상태가 이제 오늘 젊은이들에게는 마음껏 취하고 즐기는 평범한 형태가 되었는데 그런 이들의 잘못된 원인을 고치려 하지 않고 그 마약에 취해 몽롱해진 인격과 감정에게 딱 들어맞도록 예배를 맞추어주었다면, 이 노선은 그런 것을 반대하다가 죽는 것이 순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식의 예배를 깔대기라는 이론으로 설명했다면 그는 순교자의 호적상 자녀는 될 수 있겠지만 그의 이론과 행동은 그 할아버지가 순교할 때 그 순교를 비웃던 당시 일반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시대 따라 신사참배 할 때는 해 가면서 교회를 운영해야 전도가 된다고 했던 할아버지 순교의 피를 더럽다고 그 피에 침을 뱉은 사람들의 노선에 섰다고 혹평을 하고 싶습니다.
손양원목사님이 신사참배를 거부할 때, 지금 유명해진 다음에 알려진 소식들과는 전혀 반대 이야기가 수도없이 숨겨져 있습니다. 손목사님과 모든 신사참배 투쟁자들에게 대하여 당시 동역자와 교인들은 오늘 이 노선을 걷는 이들에게 대한 비판보다 더 혹독하고 가혹하게 채찍질을 했습니다. 손목사님 부친은 부산 범일동 산꼭대기 빈민가 쓰레기통을 뒤져 죽은 고양이를 삶아먹고 연명해야 했으니 제 부모를 이처럼 만들면서까지 손목사님은 옥에서 훗날의 명예를 높이려고 경력 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처자식 전부 거지로 만들고, 애양원교회와 교직자는 그 사택 가정 전부를 쫓아내버리고...
지금 질문자의 주장대로라고 한다면 비록 그 중심은 좋습니다만 그 주장의 결과를 가지고만 말한다면, 오늘 우리에게 신사참배가 다시 돌아온다면 한국교회는 과거 일제 때처럼 끝까지 투쟁하는 소수의 외고집 청교도적 신앙주의자들이 되기보다 차라리 일정 치하의 고통을 감수하고 그들에게 겉으로는 일부 타협하는 척 하면서 대책없이 버려지는 각 교회의 양떼들에게 숨어서라도 조금씩 양식을 먹여야 하는 노선을 택해야 한다는 주장이 됩니다. 바로 이 주장이 해방 후 신사참배 앞잡이 목회자들이 신사참배 회개를 거부하며 그들이 한국교계 교권을 다시 쥐어야 한다고 내세운 논리였습니다. 박형룡박사라는 유명한 분이 신사참배 했던 이들 회개하라고 했다가 이 논리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입이 쑥들어가버리고 말았습니다.
6.사랑하는 형제여!
이 문답방에서 질문자를 향해 이런 표현을 써본 기억이 없습니다. 평소에도 이런 표현을 답변자가 입에 담아본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질문자께는, 질문자의 제안에 대하여 그 중심이 너무 순수하시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시기 때문에 반갑기 그지없고, 그런데 질문자의 제안이 맺을 결과에 대하여는 반대하지 않을 수가 없어 반론을 드리게 되었는데, 질문자께서 부디 이 문제를 성급히 결론 짓지 마시고 다시 한번 잘 살펴 오늘 우리가 걸어갈 방향을 재고해 주시기를 요청하되 질문자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임을 기억해 주시라는 뜻으로 특별히 이렇게 불러보았습니다.
답변자의 진심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그 중심이 아무리 옳고 깨끗하다 해도 그 걸어가는 방향이 잘못 잡게 되면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젊은이들을 말씀으로 지도하겠다며 수많은 젊은 목회자들이 별별 아이디어와 목회기법을 총동원했고 그 결과 한국교회는 놀랍게도 젊은이들이 교회마다 복음에 뜨거운 열기를 뿜어대며 기도하고 봉사하고 말씀을 상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젊은이들이 정말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한다면 오늘은 말세가 아닙니다. 말세는 노아 때와 같이 참으로 믿는 자를 찾아보기가 희귀하다고 했는데... 성경이 틀리지는 않았을 것이고, 지금이 말세인 것은 분명히 맞다고 봐야 한다면, 오늘 우리는 노아 때를 다시 한번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노아가 120년 동안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고 방주를 준비하라고 떠들고만 다니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노아의 120년은 순전히 방주를 만드는 일에만 주력했습니다. 다른 일을 할 틈이 없었습니다. 어떤 일은 하나님이 하시고 어떤 일은 우리에게 하라고 맡깁니다. 순수한 신앙을 지켜 바로 믿고 나가려고 애쓰고 순수한 신앙을 지키는 것을 손해 보지 않으면서 전도하는 것은 해도 그 신앙의 순수를 양보하면서 전도하고 인도하는 것은 교회를 통째로 삼키는 말세의 대유혹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전도하고 그렇다면 누가 저 젊은이들을 구할 것인가? 바로 이 면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끗히 기르고 준비하다가 어느 순간 하나님이 필요하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때와 기한이 되면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폭발이 일어나면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대폭발이 일어납니다. 기독교 복음 역사는 이렇게 내려왔고, 타락한 젊은이들과 어울려 예배까지 춤판 난장판 장난판 개판으로 만들어놓고 교회가 바로 된 역사가 답변자가 아는 대로는 없었습니다.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공회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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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회가 걷잡을 수 없이 탈선하는 젊은이들을 향해 가지는 태도를 분류한다면
①탈선한 청년들이야 죽든 말든 내버려 두고 산속에서 나만 잘 믿겠다는 이들
②탈선한 청년들 속에 들어가지 않고 그 대신 밖에서 그들을 불러내려는 이들
③탈선한 청년들 속에 들어가서 그들을 데리고 복음 안으로 끄집어 내는 이들
④탈선한 청년들 속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놀다가 복음을 잊어 버리는 이들
⑤탈선한 청년들이 부러워서 그들과 함께 놀기 위해서 처음부터 작정 한 이들
이렇게 5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겠습니다.
교파 별로, 또 목회자들 별로 나누어 예를 들어 본다면
①의 경우는
기독교사에서 수도원 운동이나 염세주의로 나간 분들입니다.
허허벌판으로 가버리거나 심심유곡으로 들어가서 외부와 완전히 단절하고
인사도 편지도 안부도 연락도 일체 끊고 평생 성경과 기도로 산 분들입니다.
기독교를 가장 순수하게 바로 지켜 나왔다는 면에서는 큰 공로자들이고
자신들이 직접 전하고 가르쳐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면 불충의 죄인들입니다.
둘 중에 하나를 잡아야 한다면 생명을 붙드는 일에 먼저 노력해야 합니다.
②의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는 백영희신앙노선에서 그 예를 찾으시면 됩니다.
교회가 지키고 조심해야 하는 것은 전부 그대로 지키면서
교회가 할 수 있는 구원운동이 있다면 있는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③의 경우는
통합 합동 고신 등 일반 정통 보수측 교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교회가 복음운동도 위해 필요하다면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하되
아주 조금만 발을 들여놓자는 것이 ③번이고
한정없이 발을 들여놓자는 것이 ④번입니다.
④의 경우는
기장 등 신신학이나 진보측 등의 사회주의 기독교 계열입니다.
좀더 정밀하게 분석한다면
소위 넓게 나가고 세상인지 교회인지 모를 정도로 아주 잘 나가는 곳입니다.
앞에 설명한 ③번과 비교를 한다면 ③번은 조금만 발을 들여놓는데
이 ④번의 경우는 세상 속에 마음껏 발을 들여놓습니다.
세상 속에 너무 발을 깊이 들여놓기 때문에
처음에 잘해 보려고 시작했지만 결국 하다보면 아주 세상이 되어 버립니다.
⑤의 경우는
이름만 교회라고 붙여놓았지 일반 종교단체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경우입니다.
대개 ④번으로 시작한 교회들이 조금 세월이 흐르면 ⑤번이 되어버립니다.
YMCA 세브란스병원 등 수많은 기독교 내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들입니다.
이들이 뚜렷하게 세력을 형성하게 된 최근에는
새로 시작하는 단체들이 처음부터 이런 오래된 단체들을 흉내내면서
탈선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막판의 모습으로 출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질문자의 지적을 폭넓게 수용해서 답변드린다면
가정에는 밥그릇도 있고 쓰레기통도 있고 정화조도 있어야 합니다.
발바닥도 필요하고 입술도 필요하고 이빨도 필요하고 위장도 필요하고 대변 출구도 필요합니다. 대변 출구를 더럽다 해서 폐쇄하면 온 몸의 피부를 통해 대소변의 독소가 배출되는데 차마 눈뜨고 못볼 지경입니다. 발바닥 입술 이빨 위장 대변 출구까지 온 몸에 단 한 곳도 필요없는 곳은 없습니다. 전부가 소중한 나의 일부이며 각기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교회도 저런 교회도 다 필요해서 세상에 두고 계십니다. 이런 면을 고려한다면 세상 속에 깊숙히 들어가서 활발하게 접촉하는 교회도 필요하고, 세상과 완전히 등을 지고 산속에서 고요히 그 시대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들도 필요합니다. 또 세상과 이런 저런 거리를 계산해 가며 각 교회의 개별특성에 따라 손만 내미는 곳도 전화로 심방만 하는 곳도 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현 젊은이들의 취향을 예배 안으로 대폭 수용해서 세상에서 그들끼리 위험하게 놀게하지 않고 예배당 안에서 예배시간에 마음껏 놀게 하는 교회도 그들 교회가 맡아야 할 사명일 수 있듯이, 반대로 예배나 교회 안에는 세상 어떤 풍습도 들어오지 못하게 엄하게 선을 긋는 교회도 그 교회가 맡아야 할 그 교회의 개별 특성일 수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모조리 춤을 춰야만 하느냐?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배 시간에 절대로 춤을 추지 말아야 하느냐?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교회는 춤만 추고 살아야 할 곳도 있고
어떤 교회는 춤추는 것은 평생 한번도 하지 않을 곳도 있고
어떤 교회는 처음에는 춤을 추고 시작했다가 나중에 말씀만으로 돌아가는 곳도 있고
어떤 교회는 말씀만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춤추는 것으로 끝마치는 곳도 있고
어떤 교회는 오락가락 눈치만 보다가 죽도 밥도 아닌 교회도 있고
어떤 교회는 이 모든 것을 잘 사용하는 교회도 있을 듯 합니다.
중요한 것은
전부가 한 기능을 가진 한 교회일 수 없고
전부가 한 장소에 모인 한 교회일 수 없습니다.
이 홈 식으로 믿는 것만이 모든 교회가 본받을 모델이라는 것도 우스운 말이듯이
이 홈 식으로 믿는 교회들이 춤추고 노는 교회로 다 바뀌어야 한다는 것도 지나친 듯 합니다.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할 수 있으니, 인체의 각 요소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3.질문하신 분의 지적을 좁게 받아들인다면
한 교회는 이러하고 한 교회는 저러할 수 있다는 표현을 좀더 따져 봐야 합니다.
한 교회는 이러하고 한 교회는 저럴 수 있는 것은 그리 되어야 하나
한 교회든 다른 교회든 교회라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고 꼭 같아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한 교회는 불상을 갖다 놓고 한 교회는 마리아상을 갖다 놓고 한 교회는 불상도 마리아상도 없앴다면, 이 3가지 종류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한 몸에 붙은 여러 기관들이 각자 하는 일이 다른 것처럼 그렇게 다를 수 있다고 봐야 하는가? 아니면 그런 식으로 다르다면 그것은 한 몸에 붙은 다른 기관이어서 다른 것이 아니고 아예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남의 몸에 붙었으니 교회가 투쟁해야 할 대상인가?
어디까지는 같을 수 있고
어디까지는 다를 수 있는가?
우선
성경이 금하는 것은 각 교회가 교회의 개별성이 있다 해도 금해야 할 것이고
성경이 명하는 것은 각 교회가 교회의 개별성이 있다 해도 꼭 해야 합니다.
성경이 금하는 것과 성경이 명하는 것을 넘어선다면 그것은 이미 개별성 문제가 아니라 그 교회가 교회냐 아니냐는 문제가 됩니다.
부모에게 한식을 대접하느냐 양식을 대접하느냐는 것은 각 가정의 개별성이나
부모를 고려장 하는 가정이 부모를 잘 모시는 가정을 상대로 각 가정은 개별성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각 가정의 개별성을 잘못 이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질문자께서 예를 든 교회의 경우
이곳에서 이단이라고 정죄하지는 않겠지만
예배나 목회의 방향을 그렇게 잡으면 그 교회가 더 좋아질 수 있는 길을 버리고
그 교회가 더 악화되는 길로 걸어간다고 이곳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는 서울에 있고 이 교회는 지방에 있다는 위치 차이는 교회의 개별성입니다.
그 교회는 전씨라는 목사님이 계시고 이 교회는 이씨라는 목회자가 담임하는 것도 개별성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예배 때 남녀가 뒤섞여 강단 위에서 세상식 춤을 추고
이 교회는 예배 시간에 최대한 그런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면
이것은 교회의 개별성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각 교회가 가진 개별성을 가지고 그 교회가 악화되는 방향으로 가느냐 성화의 방향으로 가느냐는 방향 문제이니, 신앙은 갈수록 전진과 발전의 방향으로 나가야 되지 탈선과 속화의 방향으로 가면 안 되는 원칙이 있습니다. 이 원칙에 의하여 질문자께서 말씀하시는 사례는 교회의 발전으로 볼 것이 아니고 또 교회가 젊은이들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좋은 사례로 볼 것이 아니고, 교회가 젊은이들을 따라 완전히 속화되어 교회가 교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므로 이는 무조건 말려야 하는 사안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4.몇 가지 작은 부분들에 대하여
①순교자 가정 출신 목회자의 신앙성향
질문자가 예를 든 서울의 어느 목사님이 지금 비록 넓게 나간다 해도 그분 출신이 순교자 집안의 자녀라는 점에서 그분의 신앙색채는 참고할 수 있지 않느냐는 정도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점에 대하여는 분명하게 답변자의 반론을 드리고 싶습니다.
부모의 순교 사상을 비롯하여 모든 신앙노선이 그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틀림이 없으나 그 영향을 그 자녀가 받았느냐 말았느냐는 것은 전혀 별개입니다. 오히려 통계적으로 본다면 순교 신앙처럼 아주 귀한 가정의 신앙성향이 그 자녀대로 오면서 이어지는 것보다는 아주 반대로 나가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더구나 손주 대로 내려가면 원 노선이 호적상 이름으로만 남지 실제모습에서는 거의 영향을 끼치는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②현 한국 젊은이들의 타락 정도
이태원과 대학가를 가보지 않은 세월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을 통해 한번씩 분위기는 듣고 있습니다.
소돔 고모라 이상일 수 있다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그때 죄악은 상류가 되고 지금 죄악은 하류가 되어 이제 시냇가가 바다가 되었을 것입니다.
③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그런 곳에 교회가 설립된다는 가정을 하셨는데
과연 현재 우리 교회들이 있는 곳은 소돔 고모라 한 가운데라 하겠습니다.
지적하신 취업문제 경제난리 자살과 자살시도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들이 우리 젊은이들을 감싸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적하신 대로 불행히도
우리 앞서 믿는 사람들이 청교도적으로 살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그 젊은이들을 적극적으로 인도하는 일에 주저하다가 자칫 이 많은 젊은이들을
통째로 세상에 내던지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자신을 깨끗히 보존하기에만 급급하여
젊은이들을 완전히 그들 세계에 홀로 내던질 것인가?
아니면 교회를 처음 접하는 방편은 폭넓게 하고 그대신 최종적으로 복음에
이르게 하여 그들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을 끄집어 내 와야 하는가?
앞의 경우가 백영희신앙노선처럼 보이고, 두번째 경우가 최근 젊은이들이 대거 몰려가는 서울의 몇몇 교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께서는 이 노선도 서울의 그런 교회들을 참고할 시점으로 보신 것 같습니다.
이 홈은 이번 질문자와 같이 양쪽의 객관적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그 중에 어떤 길이 자기가 가야 할 길인지를 고민하는 분들을 대할 때는
가장 반갑습니다. 비록 판단을 잘못했다 해도 뒤에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위치한 교회의 할 일은 무엇인가?
비록 질문자와 다른 결론으로 답변자의 입장을 말씀드려도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도 교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롯이 그 목회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롯과 함께 출발한 신앙동지였지만 롯과 다른 방향을 잡았습니다.
아브라함과 롯 이 두 사람은
그날 이후 오늘까지 교회의 방향을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가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인 줄 알면서 그리로 갔습니다.
그곳에 사는 동안 롯이 어떻게 목회를 했는지 우리는 두 사람이 나뉜 창13장 이후 19장까지를 차분하게 살펴보면 얼마든지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번 질문을 두고 참고해야 할 가장 중요한 성구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롯의 소돔교회는 결과가 처참했습니다.
롯의 소돔교회식 목회와 그런 신앙노선은 성경이 엄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많은 면으로 살필 수 있지만 이번 문답에서 살필 부분은 그 교회의 청년목회입니다.
노년층보다 청년층 위주로 목회를 했고
노년층 발언보다 청년층 발언이 더 강했습니다.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그곳의 문화와 생활과 행동을 거부하지 않고
적당하게 뒤섞여 살았습니다.
긴급한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어도 만사 청년들의 판단과 주어진 환경으로 판단하는 것이 앞섰습니다. 너무 현실과 거리 먼 메세지가 들리면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소돔교회 청년들은
이성문제에 대하여 폭넓게 자유를 가졌고 즐겼으며
노장층은 낡아서 버려야 할 보수파라고 우습게 여기고 있었으며
그 청년들은 그들이 살고있는 곳에서 그들의 환경과 문화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나안교회는 늘 우리가 사모하고 본받을 교회입니다.
그 교회의 처음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상 모든 좋은 여건은 롯의 소돔교회가 먼저 가져갔고
아브라함의 가나안교회는 세상 모든 면으로 어려운 여건만 가졌습니다.
그들이 갈라 선 직후 창13:14 이후를 주목하면 쉽게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의 가나안교회는
신앙에 제일 앞서고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 아브라함이 중심이 되었고
그 아내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로 깍듯이 모시고 순종했으며
그 휘하의 청년남녀 모든 교인들은 아브라함 명령 하나에 생명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큰 아들 이스마엘과 둘째 이삭의 갈등이 있을 때
인정 사정 인륜 천륜 여론 ... 생각하지 않고 단숨에 신앙의 순수한 노선을 취하고
조금이라도 열등성분이 섞여 있는 쪽은 십자가에 못을 박았습니다.
모든 것이 신앙 중심이었고
신앙의 순수한 계통을 지켜 나가는 방향이었습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의 사환조차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갈 때 보면
인정이나 사정이나 그곳의 형편이나 요청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원칙 그대로였습니다.
이 두 교회를 비교하면서 반드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소돔을 없애버릴 때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하나님께 청구한 것이 있습니다.
의인 50명이 있다 해도 소돔을 없애버리겠나이까 했고 하나님은 아니라 했습니다.
마지막에 10명의 의인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여쭈었습니다.
소돔교회는 단 10명의 의인도 만들지 못했습니다.
만일 소돔에 단 2명의 의인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다면?
실패한 의인 1명은 있었지만 그 외에는 단 1명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교인을 전도하고 젊은이들을 인도하려고 깔대기를 사용할 때 조심할 부분입니다.
깔대기를 대고 빨아들여서 마지막에는 복음에 불타는 의인을 만들면 되는데
성경에 죄인들의 죄에 동참하고 허용하고 함께 용인하여 발을 디딘 후 구원한 경우가 있는가?
구원하려고 손을 내미는 이들의 불칼 같은 성결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그다음 손을 잡아 끌어들인 것은 의인으로 점점 나아가는 깔대기가 되지만
죄인을 구원하려고 그들의 죄에 함께 물들어 예배와 교회와 신앙까지
그들에게 양보하여 구원한 역사는 없습니다.
노아 하나를 깨끗이 유지시켜 천하를 건졌고
아브라함 하나를 통해 이삭 하나를 통해 야곱 하나를 통해 깨끗이 성별한 곳에서
이스라엘 12지파 뿌리가 돋아나왔으며
바로 길러 낸 모세 하나를 통해 이스라엘 전체를 구원했고
산골짝에서 끝까지 주님을 바라보고 순종한 다윗 한 사람으로 구원했습니다.
5.결론적으로 말씀 드린다면
세상에 깊숙히 취하고 죄악의 향락에 완전히 찌든 그 젊은이들이 좋아하고 호응하고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할 수 있도록 예배를 손 댄다면 이는 싸워보지도 않고 자진해서 적에게 투항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싸우다가 마지막에 힘이 없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회개하고 다시 한번 도전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술에 취한 상태로는 부족하여 마약에 취해 눈이 휘떡 돌아간 상태로 입에서는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중얼거리고 온 몸은 풀어젖혀 흐느적 거리는 상태가 이제 오늘 젊은이들에게는 마음껏 취하고 즐기는 평범한 형태가 되었는데 그런 이들의 잘못된 원인을 고치려 하지 않고 그 마약에 취해 몽롱해진 인격과 감정에게 딱 들어맞도록 예배를 맞추어주었다면, 이 노선은 그런 것을 반대하다가 죽는 것이 순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식의 예배를 깔대기라는 이론으로 설명했다면 그는 순교자의 호적상 자녀는 될 수 있겠지만 그의 이론과 행동은 그 할아버지가 순교할 때 그 순교를 비웃던 당시 일반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시대 따라 신사참배 할 때는 해 가면서 교회를 운영해야 전도가 된다고 했던 할아버지 순교의 피를 더럽다고 그 피에 침을 뱉은 사람들의 노선에 섰다고 혹평을 하고 싶습니다.
손양원목사님이 신사참배를 거부할 때, 지금 유명해진 다음에 알려진 소식들과는 전혀 반대 이야기가 수도없이 숨겨져 있습니다. 손목사님과 모든 신사참배 투쟁자들에게 대하여 당시 동역자와 교인들은 오늘 이 노선을 걷는 이들에게 대한 비판보다 더 혹독하고 가혹하게 채찍질을 했습니다. 손목사님 부친은 부산 범일동 산꼭대기 빈민가 쓰레기통을 뒤져 죽은 고양이를 삶아먹고 연명해야 했으니 제 부모를 이처럼 만들면서까지 손목사님은 옥에서 훗날의 명예를 높이려고 경력 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처자식 전부 거지로 만들고, 애양원교회와 교직자는 그 사택 가정 전부를 쫓아내버리고...
지금 질문자의 주장대로라고 한다면 비록 그 중심은 좋습니다만 그 주장의 결과를 가지고만 말한다면, 오늘 우리에게 신사참배가 다시 돌아온다면 한국교회는 과거 일제 때처럼 끝까지 투쟁하는 소수의 외고집 청교도적 신앙주의자들이 되기보다 차라리 일정 치하의 고통을 감수하고 그들에게 겉으로는 일부 타협하는 척 하면서 대책없이 버려지는 각 교회의 양떼들에게 숨어서라도 조금씩 양식을 먹여야 하는 노선을 택해야 한다는 주장이 됩니다. 바로 이 주장이 해방 후 신사참배 앞잡이 목회자들이 신사참배 회개를 거부하며 그들이 한국교계 교권을 다시 쥐어야 한다고 내세운 논리였습니다. 박형룡박사라는 유명한 분이 신사참배 했던 이들 회개하라고 했다가 이 논리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입이 쑥들어가버리고 말았습니다.
6.사랑하는 형제여!
이 문답방에서 질문자를 향해 이런 표현을 써본 기억이 없습니다. 평소에도 이런 표현을 답변자가 입에 담아본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질문자께는, 질문자의 제안에 대하여 그 중심이 너무 순수하시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시기 때문에 반갑기 그지없고, 그런데 질문자의 제안이 맺을 결과에 대하여는 반대하지 않을 수가 없어 반론을 드리게 되었는데, 질문자께서 부디 이 문제를 성급히 결론 짓지 마시고 다시 한번 잘 살펴 오늘 우리가 걸어갈 방향을 재고해 주시기를 요청하되 질문자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임을 기억해 주시라는 뜻으로 특별히 이렇게 불러보았습니다.
답변자의 진심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그 중심이 아무리 옳고 깨끗하다 해도 그 걸어가는 방향이 잘못 잡게 되면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젊은이들을 말씀으로 지도하겠다며 수많은 젊은 목회자들이 별별 아이디어와 목회기법을 총동원했고 그 결과 한국교회는 놀랍게도 젊은이들이 교회마다 복음에 뜨거운 열기를 뿜어대며 기도하고 봉사하고 말씀을 상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젊은이들이 정말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한다면 오늘은 말세가 아닙니다. 말세는 노아 때와 같이 참으로 믿는 자를 찾아보기가 희귀하다고 했는데... 성경이 틀리지는 않았을 것이고, 지금이 말세인 것은 분명히 맞다고 봐야 한다면, 오늘 우리는 노아 때를 다시 한번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노아가 120년 동안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고 방주를 준비하라고 떠들고만 다니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노아의 120년은 순전히 방주를 만드는 일에만 주력했습니다. 다른 일을 할 틈이 없었습니다. 어떤 일은 하나님이 하시고 어떤 일은 우리에게 하라고 맡깁니다. 순수한 신앙을 지켜 바로 믿고 나가려고 애쓰고 순수한 신앙을 지키는 것을 손해 보지 않으면서 전도하는 것은 해도 그 신앙의 순수를 양보하면서 전도하고 인도하는 것은 교회를 통째로 삼키는 말세의 대유혹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전도하고 그렇다면 누가 저 젊은이들을 구할 것인가? 바로 이 면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끗히 기르고 준비하다가 어느 순간 하나님이 필요하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때와 기한이 되면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폭발이 일어나면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대폭발이 일어납니다. 기독교 복음 역사는 이렇게 내려왔고, 타락한 젊은이들과 어울려 예배까지 춤판 난장판 장난판 개판으로 만들어놓고 교회가 바로 된 역사가 답변자가 아는 대로는 없었습니다.
[공회노선] 변하지 않아야 할것과 변해야 할것..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공회노선~]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공회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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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총공회를사랑하는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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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기타나 드럼치는 것은 안좋은것인가요?
거룩하지 않은것인가요?
주님을 위해 사용하면 세상 어떤것도 선하지 않은가요?
만물이 더러운것이 아니라 우리안에 있는것이 더러운 것이 아닌가요?
교회에서 말씀을 더 잘 전하기 위해 연극같은것을 하는 것은 나쁜가요?
교회성장론은 어떤가요? 앞으로의 시대는 교회성장론을 배우지 않으면
교회는 부흥할수 없다 여겨지는대요.
시대를 파악하고 시대를 분별해서..신학은 보수를 지키면서 변해야 할것은
변화시키면서 교회를 만들어 가는건 어떤가요?
변해야 되지 않을 것을 절대 지키기 위해 변할수 있는것은 모두 바꾸는건 안돼나요?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모두 지키기 위해..삼일교회 처럼 변할수 있는것은
변화시키는 것은 나쁜가요?
지금 수많은 청년들이 삼일교회에서 은혜를 받고 있는데...
하지만 총공회는 지금까지 수많은 청년들이 떠났지 않나요?
어쩌면 그것은 총공회의 진리는 옳았지만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요?
어쩌면 총공회도 변하지 않아야 할것을 지키기 위해 다른 여러가지를
변화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교회에서 기타도 치고 드럼도 치고..찬양집회도 하고..하지만 진리만은
제대로 전하면 되지않나요?
총공회의 복음을 말세지말에 전파하고 알리기 위해 변해야 할것은 변해야
하지 않을까요? 삼일교회처럼..교회성장론같은 것들을 도입해서라도..
좋은답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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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공회노선~]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공회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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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총공회를사랑하는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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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기타나 드럼치는 것은 안좋은것인가요?
거룩하지 않은것인가요?
주님을 위해 사용하면 세상 어떤것도 선하지 않은가요?
만물이 더러운것이 아니라 우리안에 있는것이 더러운 것이 아닌가요?
교회에서 말씀을 더 잘 전하기 위해 연극같은것을 하는 것은 나쁜가요?
교회성장론은 어떤가요? 앞으로의 시대는 교회성장론을 배우지 않으면
교회는 부흥할수 없다 여겨지는대요.
시대를 파악하고 시대를 분별해서..신학은 보수를 지키면서 변해야 할것은
변화시키면서 교회를 만들어 가는건 어떤가요?
변해야 되지 않을 것을 절대 지키기 위해 변할수 있는것은 모두 바꾸는건 안돼나요?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모두 지키기 위해..삼일교회 처럼 변할수 있는것은
변화시키는 것은 나쁜가요?
지금 수많은 청년들이 삼일교회에서 은혜를 받고 있는데...
하지만 총공회는 지금까지 수많은 청년들이 떠났지 않나요?
어쩌면 그것은 총공회의 진리는 옳았지만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요?
어쩌면 총공회도 변하지 않아야 할것을 지키기 위해 다른 여러가지를
변화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교회에서 기타도 치고 드럼도 치고..찬양집회도 하고..하지만 진리만은
제대로 전하면 되지않나요?
총공회의 복음을 말세지말에 전파하고 알리기 위해 변해야 할것은 변해야
하지 않을까요? 삼일교회처럼..교회성장론같은 것들을 도입해서라도..
좋은답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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