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목사님의 사망은 순직이 아니라 순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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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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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03 00:00
제목분류 : [~인물~백영희~]
내용분류 : [-인물-백영희-]/[-교리-구원론-건설구원-기능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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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목사님의 순교 소원
①순교 중에서도 값진 순교는, 순교라는 사실은 묻히고 개죽음으로 알려지는 경우
현존하는 기독교계 기록 중, 백목사님만큼 순교에 대하여 교훈이 많고 또 그 교훈의 중심이 순교에 집중되어 있는 분은 없습니다. 불신자가 자기 이름을 남기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경우가 있지만, 백목사님은 순교 중에서도 남들이 그 당시 알아주는 순교, 훗날 알려지는 순교, 순교지만 개죽음으로 인식되는 순교, 죽음 자체도 알려지지 않은 순교 등으로 그 등급을 나누고 있습니다. 가장 복된 순교로는 그 사람의 사망사실도 알려지지 않는 순교를 손꼽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의 위치에서는 그리 될 수 없는 것이니 그것을 제외한다면 백목사님의 순교는 가장 값진 순교, 즉 개죽음으로 이 시대가 기억하게 되는 형식으로 순교한 것입니다.
②백목사님의 '순교 정의'
순교란? 순교의 기준을 먼저 확정해야 순교를 논하게 될 것입니다. 순교가 좋게 들리기 때문에 해당도 되지 않는 분들에게 쉽사리 마구 붙여지고 있습니다. 현재 집사라는 이름을 그냥 남발해 버려서 교인이면 의례껏 집사가 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집사 기준은 13가지인데 새벽기도 십일조는 말할 것도 없고 술담배와 계모임까지 끊고 돈 떼먹고 비난받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백목사님의 순교 기준은 순직을 제외하고 있습니다.
살 길과 죽을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로에 서서 말씀대로 살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것이 그 1차 기준이며, 죽을 길로 걸어가되 죽음 앞에서도 내적으로는 주님과 동행하여 걸어가다가 그 동행이 죽임을 맞아 중단되는 것이 2차 기준입니다. 1차 기준만 적용시켜도 순교자의 숫자는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며, 만일 2차 기준을 적용한다면 그 숫자는 극소수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1차기준을 교계 일반에서 외적으로 발표할 때 형식적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해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은 2차기준의 내적 실질적 순교자라야 순교가 된다고 분류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2.생사의 갈림길에서, 주님 인도 따라 말씀 전하다 죽겠다는 선택
①백목사님이 살해되어야 하는 시대적 배경을 먼저 설명합니다.
1980년대 이 나라는 민주화라는 한 길을 향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2000년대를 지나고 있는 지금에는 그 정체를 좌익이라고 스스로 완전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상황은 해방 직후 1945-50년에도 지속된 적이 있었습니다.
반면 이 시기들 외에는 우익쪽에서 이 나라를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는 좌익이 아니라도 정부 정책에 반대하면 막바로 좌익으로 몰리던 때였습니다. 1950-1990에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1980-1990년은 양극단의 형편이 혼재되어 있던 때입니다.
②시대가 양극단으로 오고가면, 순수한 신앙의 사람은 양측에서 다 지목받게 됩니다.
백목사님처럼 순수하게 신앙노선에만 철저한 사람이라면 좌익이든 우익이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세상 운동에 교회를 끌어들이려고 한다면 반대를 하게 됩니다. 그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는 세상 속에 들어가서 그 한 쪽편이 되어 움직여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게 되는데, 자기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자기들을 반대하는 인물이라고 오해하게 되어 지목하게 됩니다.
백목사님은 과거 군사독재 제일주의로 나가던 시절에 한국교회가 전부 그 밑에 굴복하였을 때에도 당시 이 세상을 사로잡은 군사정권에 붙들리지 않고 하늘나라만 바라보고 걸어갔고 또한 교회가 민주화라는 이름에 앞장서서 세상 정치운동을 할 때에도 이를 비판했으니 양측으로부터 항상 지목받고 살아간 분입니다.
③백목사님은 1980년대 한국교계를 향해 정치 운동에 앞장선다고 대단히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백목사님은 이미 죽을 길을 알고 있었고 그 길로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있음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신변안전을 위해 많은 말씀을 드렸고 또한 설교 내용에 대하여도 그 설교 내용 때문에 생명을 잃겠다고 자제토록 했으나 강단에서 설교하는 말씀 때문에 죽는 순교가 가장 귀한 순교라며 전할 것만 전한다 하면서 계속했습니다. 백목사님으로서는 말씀을 계속 증거하면 죽게 되고 말씀 증거를 포기해야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알면서도 말씀에 붙들려 계속 전하고 있었습니다. 말릴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평생 걸음이 주님 인도면 삶도 죽음도 바쳐놓고 걸어갔고 이미 많은 사선을 넘었던 종입니다.
④결국 1987년부터, 교회는 백목사님의 순교를 대비하여 장례 준비를 하게 됩니다.
주변에서 모시는 실무자들은 이때부터 백목사님 장례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형태는 '순교'일 것이고, 순교이니 그 시기는 갑작스럽게 닥칠 것이며, 평화시의 순교이며 그 신앙위치를 생각한다면 초대형 장례가 될 것이므로 장례 준비는 미리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백목사님 스스로 1989. 8. 27.을 다가서면서는 수없는 준비를 했으니 다른 자료에서 한번 요약할 것입니다. 1988년에는 순교할 해로 1989년을 알고 있었고, 1989년에 들어서면서는 급하게 주변을 정리했고, 1989년 8월에 들어서면서는 며칠 남지 않은 마음으로 정리했으며, 하루 전이었던 토요일은 하루 종일 다음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순교 당일 아침 세수는 자신의 발걸음이 이날 돌아오지 않을 걸음으로 정리를 하고 나섰으니 그는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살아날 수 있는 다른 길을 수없이, 마지막 순간까지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죽으려고 죽을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는 주님이 인도하면 따라가는 것이 '종'이라고 했고, 옆에 있는 우리가 보기에는 명백한 '자살'이었습니다. 순교의 제1기준에 이 이상 정확하게 해당될 수는 없었습니다.
3.죽음을 맞되, 내적 주님동행을 외부에서 죽임으로 중단시키는, 순교의 2차기준
(1)순교를 맞이하던 모습
①이 세상에서 마지막이라며 준비하고 전했던 말씀, 그 말씀대로 마지막이 된 설교
백목사님은 자신이 죽음을 맞기 10일 전, 자신의 죽음이 어떤 성격으로 어떤 내면을 가지게 될 것인지 미리 말해두고 있습니다. 삼일예배로서는 마지막이 되던 1989년 8월 16일 예배에서, 이 세상에서 마지막 유언으로 주일학생들에게 남겨 줄 말씀이라고 생각하며 작성한 공과 설교라고 십 수차례 강조했으며, 마지막 순간이었던 8월 27일 새벽 설교에서는 심방을 가는 사람이 어떤 마음을 어떻게 가지고 가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학생을 많이 데려와야 한다는 충성까지도 오히려 주님의 근심거리이며, 그 마음 속에 생명이 되는 중요한 것은 주님의 사활에 붙들려 주님을 생각하며 심방을 가는 '주님동행'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설교를 마무리 하고 있었습니다.
②평소도 그랬지만, 특별히 그날 그시간, 그 마지막 순간은 '주님과 동행'이었습니다.
공과내용을 다 가르친 다음 이제 막 심방나갈 사람들에게 '주님동행'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되라는 내용으로 접어들 때 백목사님은 범인이 예배당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10여초 동안 범인이 강단으로 다가오는 것을 눈으로는 계속 지켜보면서 그 입에서는 '주님 사활의 대속에 연결되어 그 주님과 동행하라'는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 평생의 연습과 설교는, 사람과 말을 하면서도 마음은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과 그 대화를 의논하며 지도받아가며 상대방과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교 때도 바쁜 걸음을 가면서도 또한 복잡한 결재를 하면서도 그 속에서는 주님과 동행하는 계속이 바로 '우리의 생명'이라는 것이 그 삶의 한 가운데에 있었고 그 높은 차원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살고 있었습니다.
이미 이날 새벽예배를 인도하러 나오던 4시경, 5층에서 세수를 하면서 평소에는 세면대 옆에 두던 비누를 그날은 선반 위에 올리고 있었습니다. 엄격한 습관관리로 철저한 분임을 알기 때문에 식사와 청소를 맡고 있던 신집사님이 너무 이상하여 '목사님, 왜 오늘은 비누를 위에 올려두십니까?' 하면서 묻게 됩니다. '이제 다 썼어' 짧은 답변이었으나, 이날 새벽에 순교를 하게 되자 그 집사님 가슴에는 그제서야 마음을 강타하는 충격으로 이 한 마디가 떠오르게 됩니다.
이미 마지막 해를 내다보았고, 마지막 며칠을 알고 있었고, 마지막 토요일에는 다음날을 꼽고 있었으며, 마지막 새벽 걸음에는 마지막 순간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배 때마다 자신의 생각대로가 아니라 주님 주시는 말씀을 받아 설교하고 나온 평생이었는데 그날 주님은 마지막 유언으로 작성하게 한 공과설교를 주셨고 그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범인을 진입시키면서 그 짧은 몇 초 동안에는 그가 평생 노력했고 평생 소원했던 바로 그 모습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③강단에서 말씀을 전하고, 그 전한 말씀 때문에 강단에서 순교당하는 모습,
그런데 그가 그토록 소원했고 가르쳤던 '최고의 순교 상황'이 그 순간에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 상황으로 진행되었으며 마침내 이론과 실제가 일치되는 모습으로 마치게 됩니다. 설교의 양과 횟수를 다 계산도 못할만큼, 그의 평생 가르치고 소망했던 '성도가 가는 길', '참 신앙의 걸음'을 다시 한번 요약합니다.
'죽고 사는 사활의 대속을 마음 속에 생각하며 주님과 함께 어떤 외부의 고통과 충격이 그 동행을 끊으려 해도 웃음과 평안함으로 계속 진행하다가 그 환경이 주님 동행을 양보하지 않고 그렇게 나가는 자신의 생명을 끊으면 그 순간이 바로 순교의 최고 절정'이라는 평생 설교, 평소 설교, 바로 그 모습 그대로가 마치 설계한 대로 제작 완성되는 '작품'을 보는 듯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2)순교 장면
①예배당 뒷편에서 강단으로 이동하는 35m
백목사님은 근 1만여명에 육박하는 인원이 무릎을 세우고 예배봐야 하는 상황에서도 교인 하나하나를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가며 질문하는 분입니다. 속으로 잠든 사람, 엉뚱한 생각에 시간을 보내는 사람, 심지어 얼굴 색깔을 보고 속병이나 그동안 지내온 평상 생활을 짚어내는 것을 우리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감각기관이 특수하게 발달되어 그 면으로 드릴 에피소드 역시 적지 않습니다. 서부교회 내에서는 전 교인을 거의 파악하고 있으며 특히 새벽예배 참석하는 1천여명 교인에 대하여는 출결여부까지 챙겨가며 설교하는 분입니다.
4시 30분에 시작한 예배가 20여분 지나고 있었으니 4시 50분쯤이었습니다. 보통 예배 시작한 직후에는 찬송을 부르거나 설교를 하면서도 뒤에 들어오는 분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서성거리면 빈자리를 안내해가며 빨리 착석하도록 독촉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배가 중반을 넘어서게 되면 뒷편에서 앞쪽으로 이동하려 해도 그 부근 자리에서 얼른 앉아 예배를 드리도록 하고 다른 사람 방해되도록 앞으로 나오는 것은 막게 됩니다.
이미 예배가 끝날 때였으므로 웅크린 상태로 앞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긴급한 일을 강단에 전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강단에 전할 일이 있어 나올 사람은 웅크리던 변장을 하던 명확하게 파악하는 분이 백목사님입니다. 예배당 뒷편으로 들어오면서 바로 웅크리고 앞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사람을 백목사님은 눈을 떼지 않고 쭈욱 주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②말씀에 숨죽이고 필기하며 듣고 있던 교인들, 창밖에서 보았다면 얼어붙었던 예배당 전체
말씀에 붙들려 말씀이 전하라는 대로 말씀만 전하고 있는 강단, 그 아래 있는 교인들은 숨을 죽이고 또박또박 한 말씀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동영상으로 촬영을 한다면 미동도 없이, 전부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실은 말씀에 붙들려 있었던 것입니다. 평소 같았다면 수많은 사람 중에 아이 때문에 일어서는 사람, 또 좌석이 불편하여 좌우로 몸을 움직여 보는 사람이라도 있었을 터이나 그날 새벽은 특별했던 말씀에 온전히 사로잡혀 전부 말씀이 이끄는 대로 하늘을 향하고 있었으니 눈은 떴지만 혼이 나간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이끌고 성령으로 따라가는 전체 예배당 안에서 성령과 전혀 상관없이 악령에게 붙들려 자기 마음 먹은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단 하나 있었으니 그가 범인이었습니다. 자기는 치밀하게 행동하고 주도면밀하게 계산하였지만, 사실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그날 새벽은 주님이 마련한 잔치가 베풀어졌고 누구라도 들어오면 순교자의 생명을 앗아가는데 별 불편이 없었을 것입니다.
강단을 향해 좌석 35m를 이동하여도 눈길 하나 경계 하나 없었으니 단숨에 강단에까지 도달하였던 것입니다. 백목사님만 그를 보고 있었으며 다른 사람이 막아서면 몰라도 그날 그 순간 그의 설교는 오는 칼을 보면서도 안에서 나오는 말씀에 붙들려 자신의 딴 생각을 개입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죽음에 떨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위협에 놀랄 사람이었다면 35m 밖에서 자기를 향해 바로 달려오는 이를 향해 외마디 한 마디만 뱉었더라도, 아니면 설교하는 음성에 변화만 주었더라도 순식간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사방을 향했을 것이고 그 많은 사람 중에 범인을 제지할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서부교회 예배당 복도는 한 사람이 발을 걸기만 해도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곳입니다. 단련된 몸이나 숙달된 기술이 필요 없습니다.
③범인은, 청중이 보는 낯선 강단 위에서 차분하게 원하는 행동을 순식간에 마무리했습니다.
백목사님은 80에도 불구하고 30대 청년의 혈관과 근육과 기민한 순발력을 가진 분입니다. 철봉에 매달리면 그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철봉을 잡은 두 손에 의지하고 수직 물구나무를 선 상태로 몸을 세웠다가 앞으로 뒤로 움직였던 젊은 시절이 있었고, 십 수명의 청년을 거뜬하게 눕힐 수 있는 힘과 동작이 있었습니다. 칼을 사용할 줄 알았으며 무엇보다 순간 판단력이 탁월하여 어떤 급박한 상황에서도 가장 경제적이고도 효과적인 결과를 향할 수 있는 상황 제압력이 있는 분입니다. 주변에서 모시고 움직여 보았던 이들이 한결같이 감탄하는 그분의 육체 실력인데. 전하던 말씀을 끊고 막으려면 충분한 시간과 거리, 인원과 방법을 가지고 있었던 그 강단에서 코앞에까지 범인이 당도하도록 보고만 있어야 했던 것은 말씀에 붙들린 그 날 새벽 설교와 그 설교 내용을 공과로 작성했던 10일전 공과설교가 아니면 해석될 수 없습니다.
④칼을 치켜들고 살해 행동을 개시했을 때, 목사님은 비로소 범인을 향해 마주 대하고 있었습니다.
손양원목사님과 같이 인민군에게 잡혀가서 둘러 쌓이게 되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죽음을 맞이하는 길입니다. 백목사님과 같이 평화시 예배당 안에서 설교하는 순간에 상대방이 들어오게 되면 그 대응이 달라집니다. 앞자리로 와서 앉으려는 들어오는 사람을 그 자리에서 불러 조사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예배 진행을 위해서는 교인들의 행동을 강단에서 지도할 수 있지만 그날은 평소와 달리 처음부터 예배 진행에 대한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었고 오로지 전달하는 말씀에 붙들려 전하는 일만 하였습니다. 따라서 예배 진행의 일반적 제재로는 범인에게 더 이상 들어오지 말라고 할 수도 있었으나 그날은 예배 진행을 위한 발언을 하지 않고 말씀만 전하도록 인도하는 성령에게 붙들려 있었습니다. 예배당 내 예배 시간 도중에는 있을 수 없는 행동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칼을 드는 순간까지는 그 무례와 횡패를 보고만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순간까지 그는 그의 마지막 설교 내용이 되는 '..... 이러니까 오늘 가면서 사활의 대속의 이...' 라는 말씀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살기 위해 그 자리를 피하거나 다가오는 사람을 막도록 할 수 있는 선택의 순간은 넘어갔기 때문에 이미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⑤칼이 심장을 찌른 직후 10여초, 백목사님이 말씀을 할 수 있었던 생존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십여명 청년들이 범인을 덮쳐 강단 밑으로 밀쳐냈고, 목사님 옆에는 연구소 직원 이선생님이 목사님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하라'는 첫 말과 함께 청년들에게 붙들린 범인을 측은하게 보는 시선은 가룟유다를 보던 예수님의 시선을 느껴 알게 하고 있었습니다. 이선생님이 상처부위를 확인해 보았으나 출혈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혹시 생명은 유지 될는지 싶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이선생님에게 찔린 곳을 보자고 확인해 보셨고 이어 조용하게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확인해 보며 그토록 바라던 순교 순간을 자신이 증거하던 말씀대로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서둘러 이선생님은 목사님을 업게 됩니다. 그는 불과 16일 전 마지막 8월 집회를 마치고 목사님을 모시고 부산으로 오는 길에 목사님께서 주남선목사님 묘소를 보고 가겠다고 하여 길 안내를 했었는데 작은 개울이 하나 있어 목사님을 업어 드렸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어지간한 청년으로는 목사님을 업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처럼 상처를 입고 힘을 쓰지 못하게 되면 더 무거울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업었습니다. 강단 아래로 나오던 이선생님은 여반 복도 중간을 지나면서 업혔던 분이 축 늘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심장 대동맥이 절단되어 출혈이 체내에서 대량으로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목사님을 모시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큰 출혈이 있었던 것입니다.
업혔던 분이 완전히 쳐지게 되자 목사님을 편안하게 업어 드릴 수가 없겠다고 생각하여 앞에 있는 백익인집사님을 불러 대신 업게 하고 2층 계단을 내려오자 바로 연구소 그레이스 차량에 모시게 됩니다. 옆문을 열고 좌석에 눕히고 부산대병원 응급실로 향했으나 이미 의사 검진 이전에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차량 시트에는 다량의 피가 고이며 차밖 예배당 마당으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마당 수위실 앞에서부터 대로로 질주하는 차량을 따라 피가 계속 길바닥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이미 내부 출혈로 절명에 이르렀고 그 출혈이 차에서부터는 몸 밖으로 흘러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4.백목사님은 평소에도 순교의 극적인 장면을 자세하게 여러 시각에서 예상하고 설명한 적이 적지 않습니다.
변판원선생님의 순교 순간을 비롯하여 지나간 분들의 순교 소식을 하나만 전해 들어도 이를 재구성하여 완벽하게 재생하였던 것은 그는 차원 높은 순교자들의 그 심리 세계를 알아보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페인트칠하는 도색공이 밑그림과 바탕색깔이 어찌되었던지 자기 마음대로 칠해버리면 그 외부색칠로 모든 것을 덮어 가릴 수 있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또한 백목사님은 순교의 마지막 장면을 여러 가지로 예상하며 그 예상 가능한 상황을 하나 하나 짚어가며 집회 때, 또는 평상의 설교시간에도 우리가 걸어갈 길을 지도했었습니다. 개싸움에서 깽 소리 하나 나오면 지는 것을 예로 들면서 우리의 육체에 극심한 고통을 줄 때 외부에서 주는 고통에 피동되면 실패요, 그 외부고통을 받으면서도 내적으로는 하나님께 붙들려 자기 감정과 감각을 다스리고 그것들 위에다 말씀의 감격을 더하여 감사와 기쁨으로 그 마지막 순간을 통과해야 진정한 순교라는 것이 백목사님의 신앙세계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이 십자가에 못박혀진 그 우주적인 고통 중에서 그 신경 세포 하나가 고통에 피동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내적 역사에 피동된 것은 그의 평생 설교입니다.
백목사님의 순교 당하던 그 순간의 미세한 움직임에 대하여는 이미 준비 중인 그의 전기에서 정리할 것입니다만, 그의 평생 목회와 평생 설교와 평생 생활을 아는 사람에게는 단 10여초로 지나가는 마지막 급박한 순간과 그 직후를 중심으로 여기서 설명하는 내용에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강단의 설교와 실제 생활이 같지 않은 이들과 달리 평소와 평생에 걸쳐 그 말씀과 생활이 함께 했던 백목사님입니다. 메모해둔 당시 기록들과 따로 보관하고 있는 자료들이 많기 때문에 이를 하나씩 들추어본다면 은혜로운 내용은 한없이 길어질 것이지만, 읽는 이들에게 감동이 잘 전달될 수 있는 표현을 가지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는 할 말이 많으며 앞으로 다른 기회에 더 많은 참고 내용을 드렸으면 합니다.
백목사님은 순교 2주전, 8월집회를 마치고 부산으로 오는 길에 주남선목사님 묘소를
방문하게 됩니다. 이때 목사님을 업었던 연구소 직원과 목사님 모습입니다. 입은 옷은
달라도 자세는 정확하게 같았습니다.
내려온 하늘을 업었던 감격!
하늘로 떠나가는 분을 업었던 심정!
그 감격과 그 슬픔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고 간 것은 육체뿐입니다.
전해놓은 말씀이 있어 오늘도 모든 감정과 충격을 봉인해두고 이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사진은 냇가를 건너고 있는 모습입니다.
순생으로 살아간 분이 바로 주남선목사님입니다. 백목사님을 생명처럼 아꼈던 분.
그는 그렇게 순교로 맺기를 원했으나 하나님이 주지 않아 받지 못했습니다. 그분의 묘소를
방문하는 길이었고 작은 개울을 하나 건너야 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 하늘로 가야 할 시점을 거의 받아 놓았던 8월 11일 오전, 백목사님은
순생으로 살아온 그 마지막 부름심이 주목사님과 같은 자연사(死)일지 아니면 순교사(死)
일지? 백목사님 평생 설교에서 주목사님은 '죽지못한 순교자'였습니다.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원함으로 되지 않는 것이 순교인데, 이날 걸어간 이 모습에서 그의
이 땅위 육체는 생명을 멈추었으며 그 생명을 멈추도록 인도한 것은 말씀 증거였습니다.
그는 그 말씀 증거를 따라 생사를 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마침을 순교로 정했습니다.
내용분류 : [-인물-백영희-]/[-교리-구원론-건설구원-기능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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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목사님의 순교 소원
①순교 중에서도 값진 순교는, 순교라는 사실은 묻히고 개죽음으로 알려지는 경우
현존하는 기독교계 기록 중, 백목사님만큼 순교에 대하여 교훈이 많고 또 그 교훈의 중심이 순교에 집중되어 있는 분은 없습니다. 불신자가 자기 이름을 남기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경우가 있지만, 백목사님은 순교 중에서도 남들이 그 당시 알아주는 순교, 훗날 알려지는 순교, 순교지만 개죽음으로 인식되는 순교, 죽음 자체도 알려지지 않은 순교 등으로 그 등급을 나누고 있습니다. 가장 복된 순교로는 그 사람의 사망사실도 알려지지 않는 순교를 손꼽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의 위치에서는 그리 될 수 없는 것이니 그것을 제외한다면 백목사님의 순교는 가장 값진 순교, 즉 개죽음으로 이 시대가 기억하게 되는 형식으로 순교한 것입니다.
②백목사님의 '순교 정의'
순교란? 순교의 기준을 먼저 확정해야 순교를 논하게 될 것입니다. 순교가 좋게 들리기 때문에 해당도 되지 않는 분들에게 쉽사리 마구 붙여지고 있습니다. 현재 집사라는 이름을 그냥 남발해 버려서 교인이면 의례껏 집사가 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집사 기준은 13가지인데 새벽기도 십일조는 말할 것도 없고 술담배와 계모임까지 끊고 돈 떼먹고 비난받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백목사님의 순교 기준은 순직을 제외하고 있습니다.
살 길과 죽을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로에 서서 말씀대로 살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것이 그 1차 기준이며, 죽을 길로 걸어가되 죽음 앞에서도 내적으로는 주님과 동행하여 걸어가다가 그 동행이 죽임을 맞아 중단되는 것이 2차 기준입니다. 1차 기준만 적용시켜도 순교자의 숫자는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며, 만일 2차 기준을 적용한다면 그 숫자는 극소수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1차기준을 교계 일반에서 외적으로 발표할 때 형식적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해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은 2차기준의 내적 실질적 순교자라야 순교가 된다고 분류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2.생사의 갈림길에서, 주님 인도 따라 말씀 전하다 죽겠다는 선택
①백목사님이 살해되어야 하는 시대적 배경을 먼저 설명합니다.
1980년대 이 나라는 민주화라는 한 길을 향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2000년대를 지나고 있는 지금에는 그 정체를 좌익이라고 스스로 완전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상황은 해방 직후 1945-50년에도 지속된 적이 있었습니다.
반면 이 시기들 외에는 우익쪽에서 이 나라를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는 좌익이 아니라도 정부 정책에 반대하면 막바로 좌익으로 몰리던 때였습니다. 1950-1990에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1980-1990년은 양극단의 형편이 혼재되어 있던 때입니다.
②시대가 양극단으로 오고가면, 순수한 신앙의 사람은 양측에서 다 지목받게 됩니다.
백목사님처럼 순수하게 신앙노선에만 철저한 사람이라면 좌익이든 우익이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세상 운동에 교회를 끌어들이려고 한다면 반대를 하게 됩니다. 그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는 세상 속에 들어가서 그 한 쪽편이 되어 움직여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게 되는데, 자기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자기들을 반대하는 인물이라고 오해하게 되어 지목하게 됩니다.
백목사님은 과거 군사독재 제일주의로 나가던 시절에 한국교회가 전부 그 밑에 굴복하였을 때에도 당시 이 세상을 사로잡은 군사정권에 붙들리지 않고 하늘나라만 바라보고 걸어갔고 또한 교회가 민주화라는 이름에 앞장서서 세상 정치운동을 할 때에도 이를 비판했으니 양측으로부터 항상 지목받고 살아간 분입니다.
③백목사님은 1980년대 한국교계를 향해 정치 운동에 앞장선다고 대단히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백목사님은 이미 죽을 길을 알고 있었고 그 길로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있음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신변안전을 위해 많은 말씀을 드렸고 또한 설교 내용에 대하여도 그 설교 내용 때문에 생명을 잃겠다고 자제토록 했으나 강단에서 설교하는 말씀 때문에 죽는 순교가 가장 귀한 순교라며 전할 것만 전한다 하면서 계속했습니다. 백목사님으로서는 말씀을 계속 증거하면 죽게 되고 말씀 증거를 포기해야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알면서도 말씀에 붙들려 계속 전하고 있었습니다. 말릴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평생 걸음이 주님 인도면 삶도 죽음도 바쳐놓고 걸어갔고 이미 많은 사선을 넘었던 종입니다.
④결국 1987년부터, 교회는 백목사님의 순교를 대비하여 장례 준비를 하게 됩니다.
주변에서 모시는 실무자들은 이때부터 백목사님 장례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형태는 '순교'일 것이고, 순교이니 그 시기는 갑작스럽게 닥칠 것이며, 평화시의 순교이며 그 신앙위치를 생각한다면 초대형 장례가 될 것이므로 장례 준비는 미리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백목사님 스스로 1989. 8. 27.을 다가서면서는 수없는 준비를 했으니 다른 자료에서 한번 요약할 것입니다. 1988년에는 순교할 해로 1989년을 알고 있었고, 1989년에 들어서면서는 급하게 주변을 정리했고, 1989년 8월에 들어서면서는 며칠 남지 않은 마음으로 정리했으며, 하루 전이었던 토요일은 하루 종일 다음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순교 당일 아침 세수는 자신의 발걸음이 이날 돌아오지 않을 걸음으로 정리를 하고 나섰으니 그는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살아날 수 있는 다른 길을 수없이, 마지막 순간까지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죽으려고 죽을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는 주님이 인도하면 따라가는 것이 '종'이라고 했고, 옆에 있는 우리가 보기에는 명백한 '자살'이었습니다. 순교의 제1기준에 이 이상 정확하게 해당될 수는 없었습니다.
3.죽음을 맞되, 내적 주님동행을 외부에서 죽임으로 중단시키는, 순교의 2차기준
(1)순교를 맞이하던 모습
①이 세상에서 마지막이라며 준비하고 전했던 말씀, 그 말씀대로 마지막이 된 설교
백목사님은 자신이 죽음을 맞기 10일 전, 자신의 죽음이 어떤 성격으로 어떤 내면을 가지게 될 것인지 미리 말해두고 있습니다. 삼일예배로서는 마지막이 되던 1989년 8월 16일 예배에서, 이 세상에서 마지막 유언으로 주일학생들에게 남겨 줄 말씀이라고 생각하며 작성한 공과 설교라고 십 수차례 강조했으며, 마지막 순간이었던 8월 27일 새벽 설교에서는 심방을 가는 사람이 어떤 마음을 어떻게 가지고 가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학생을 많이 데려와야 한다는 충성까지도 오히려 주님의 근심거리이며, 그 마음 속에 생명이 되는 중요한 것은 주님의 사활에 붙들려 주님을 생각하며 심방을 가는 '주님동행'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설교를 마무리 하고 있었습니다.
②평소도 그랬지만, 특별히 그날 그시간, 그 마지막 순간은 '주님과 동행'이었습니다.
공과내용을 다 가르친 다음 이제 막 심방나갈 사람들에게 '주님동행'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되라는 내용으로 접어들 때 백목사님은 범인이 예배당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10여초 동안 범인이 강단으로 다가오는 것을 눈으로는 계속 지켜보면서 그 입에서는 '주님 사활의 대속에 연결되어 그 주님과 동행하라'는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 평생의 연습과 설교는, 사람과 말을 하면서도 마음은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과 그 대화를 의논하며 지도받아가며 상대방과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교 때도 바쁜 걸음을 가면서도 또한 복잡한 결재를 하면서도 그 속에서는 주님과 동행하는 계속이 바로 '우리의 생명'이라는 것이 그 삶의 한 가운데에 있었고 그 높은 차원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살고 있었습니다.
이미 이날 새벽예배를 인도하러 나오던 4시경, 5층에서 세수를 하면서 평소에는 세면대 옆에 두던 비누를 그날은 선반 위에 올리고 있었습니다. 엄격한 습관관리로 철저한 분임을 알기 때문에 식사와 청소를 맡고 있던 신집사님이 너무 이상하여 '목사님, 왜 오늘은 비누를 위에 올려두십니까?' 하면서 묻게 됩니다. '이제 다 썼어' 짧은 답변이었으나, 이날 새벽에 순교를 하게 되자 그 집사님 가슴에는 그제서야 마음을 강타하는 충격으로 이 한 마디가 떠오르게 됩니다.
이미 마지막 해를 내다보았고, 마지막 며칠을 알고 있었고, 마지막 토요일에는 다음날을 꼽고 있었으며, 마지막 새벽 걸음에는 마지막 순간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배 때마다 자신의 생각대로가 아니라 주님 주시는 말씀을 받아 설교하고 나온 평생이었는데 그날 주님은 마지막 유언으로 작성하게 한 공과설교를 주셨고 그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범인을 진입시키면서 그 짧은 몇 초 동안에는 그가 평생 노력했고 평생 소원했던 바로 그 모습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③강단에서 말씀을 전하고, 그 전한 말씀 때문에 강단에서 순교당하는 모습,
그런데 그가 그토록 소원했고 가르쳤던 '최고의 순교 상황'이 그 순간에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 상황으로 진행되었으며 마침내 이론과 실제가 일치되는 모습으로 마치게 됩니다. 설교의 양과 횟수를 다 계산도 못할만큼, 그의 평생 가르치고 소망했던 '성도가 가는 길', '참 신앙의 걸음'을 다시 한번 요약합니다.
'죽고 사는 사활의 대속을 마음 속에 생각하며 주님과 함께 어떤 외부의 고통과 충격이 그 동행을 끊으려 해도 웃음과 평안함으로 계속 진행하다가 그 환경이 주님 동행을 양보하지 않고 그렇게 나가는 자신의 생명을 끊으면 그 순간이 바로 순교의 최고 절정'이라는 평생 설교, 평소 설교, 바로 그 모습 그대로가 마치 설계한 대로 제작 완성되는 '작품'을 보는 듯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2)순교 장면
①예배당 뒷편에서 강단으로 이동하는 35m
백목사님은 근 1만여명에 육박하는 인원이 무릎을 세우고 예배봐야 하는 상황에서도 교인 하나하나를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가며 질문하는 분입니다. 속으로 잠든 사람, 엉뚱한 생각에 시간을 보내는 사람, 심지어 얼굴 색깔을 보고 속병이나 그동안 지내온 평상 생활을 짚어내는 것을 우리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감각기관이 특수하게 발달되어 그 면으로 드릴 에피소드 역시 적지 않습니다. 서부교회 내에서는 전 교인을 거의 파악하고 있으며 특히 새벽예배 참석하는 1천여명 교인에 대하여는 출결여부까지 챙겨가며 설교하는 분입니다.
4시 30분에 시작한 예배가 20여분 지나고 있었으니 4시 50분쯤이었습니다. 보통 예배 시작한 직후에는 찬송을 부르거나 설교를 하면서도 뒤에 들어오는 분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서성거리면 빈자리를 안내해가며 빨리 착석하도록 독촉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배가 중반을 넘어서게 되면 뒷편에서 앞쪽으로 이동하려 해도 그 부근 자리에서 얼른 앉아 예배를 드리도록 하고 다른 사람 방해되도록 앞으로 나오는 것은 막게 됩니다.
이미 예배가 끝날 때였으므로 웅크린 상태로 앞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긴급한 일을 강단에 전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강단에 전할 일이 있어 나올 사람은 웅크리던 변장을 하던 명확하게 파악하는 분이 백목사님입니다. 예배당 뒷편으로 들어오면서 바로 웅크리고 앞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사람을 백목사님은 눈을 떼지 않고 쭈욱 주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②말씀에 숨죽이고 필기하며 듣고 있던 교인들, 창밖에서 보았다면 얼어붙었던 예배당 전체
말씀에 붙들려 말씀이 전하라는 대로 말씀만 전하고 있는 강단, 그 아래 있는 교인들은 숨을 죽이고 또박또박 한 말씀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동영상으로 촬영을 한다면 미동도 없이, 전부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실은 말씀에 붙들려 있었던 것입니다. 평소 같았다면 수많은 사람 중에 아이 때문에 일어서는 사람, 또 좌석이 불편하여 좌우로 몸을 움직여 보는 사람이라도 있었을 터이나 그날 새벽은 특별했던 말씀에 온전히 사로잡혀 전부 말씀이 이끄는 대로 하늘을 향하고 있었으니 눈은 떴지만 혼이 나간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이끌고 성령으로 따라가는 전체 예배당 안에서 성령과 전혀 상관없이 악령에게 붙들려 자기 마음 먹은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단 하나 있었으니 그가 범인이었습니다. 자기는 치밀하게 행동하고 주도면밀하게 계산하였지만, 사실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그날 새벽은 주님이 마련한 잔치가 베풀어졌고 누구라도 들어오면 순교자의 생명을 앗아가는데 별 불편이 없었을 것입니다.
강단을 향해 좌석 35m를 이동하여도 눈길 하나 경계 하나 없었으니 단숨에 강단에까지 도달하였던 것입니다. 백목사님만 그를 보고 있었으며 다른 사람이 막아서면 몰라도 그날 그 순간 그의 설교는 오는 칼을 보면서도 안에서 나오는 말씀에 붙들려 자신의 딴 생각을 개입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죽음에 떨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위협에 놀랄 사람이었다면 35m 밖에서 자기를 향해 바로 달려오는 이를 향해 외마디 한 마디만 뱉었더라도, 아니면 설교하는 음성에 변화만 주었더라도 순식간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사방을 향했을 것이고 그 많은 사람 중에 범인을 제지할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서부교회 예배당 복도는 한 사람이 발을 걸기만 해도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곳입니다. 단련된 몸이나 숙달된 기술이 필요 없습니다.
③범인은, 청중이 보는 낯선 강단 위에서 차분하게 원하는 행동을 순식간에 마무리했습니다.
백목사님은 80에도 불구하고 30대 청년의 혈관과 근육과 기민한 순발력을 가진 분입니다. 철봉에 매달리면 그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철봉을 잡은 두 손에 의지하고 수직 물구나무를 선 상태로 몸을 세웠다가 앞으로 뒤로 움직였던 젊은 시절이 있었고, 십 수명의 청년을 거뜬하게 눕힐 수 있는 힘과 동작이 있었습니다. 칼을 사용할 줄 알았으며 무엇보다 순간 판단력이 탁월하여 어떤 급박한 상황에서도 가장 경제적이고도 효과적인 결과를 향할 수 있는 상황 제압력이 있는 분입니다. 주변에서 모시고 움직여 보았던 이들이 한결같이 감탄하는 그분의 육체 실력인데. 전하던 말씀을 끊고 막으려면 충분한 시간과 거리, 인원과 방법을 가지고 있었던 그 강단에서 코앞에까지 범인이 당도하도록 보고만 있어야 했던 것은 말씀에 붙들린 그 날 새벽 설교와 그 설교 내용을 공과로 작성했던 10일전 공과설교가 아니면 해석될 수 없습니다.
④칼을 치켜들고 살해 행동을 개시했을 때, 목사님은 비로소 범인을 향해 마주 대하고 있었습니다.
손양원목사님과 같이 인민군에게 잡혀가서 둘러 쌓이게 되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죽음을 맞이하는 길입니다. 백목사님과 같이 평화시 예배당 안에서 설교하는 순간에 상대방이 들어오게 되면 그 대응이 달라집니다. 앞자리로 와서 앉으려는 들어오는 사람을 그 자리에서 불러 조사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예배 진행을 위해서는 교인들의 행동을 강단에서 지도할 수 있지만 그날은 평소와 달리 처음부터 예배 진행에 대한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었고 오로지 전달하는 말씀에 붙들려 전하는 일만 하였습니다. 따라서 예배 진행의 일반적 제재로는 범인에게 더 이상 들어오지 말라고 할 수도 있었으나 그날은 예배 진행을 위한 발언을 하지 않고 말씀만 전하도록 인도하는 성령에게 붙들려 있었습니다. 예배당 내 예배 시간 도중에는 있을 수 없는 행동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칼을 드는 순간까지는 그 무례와 횡패를 보고만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순간까지 그는 그의 마지막 설교 내용이 되는 '..... 이러니까 오늘 가면서 사활의 대속의 이...' 라는 말씀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살기 위해 그 자리를 피하거나 다가오는 사람을 막도록 할 수 있는 선택의 순간은 넘어갔기 때문에 이미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⑤칼이 심장을 찌른 직후 10여초, 백목사님이 말씀을 할 수 있었던 생존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십여명 청년들이 범인을 덮쳐 강단 밑으로 밀쳐냈고, 목사님 옆에는 연구소 직원 이선생님이 목사님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하라'는 첫 말과 함께 청년들에게 붙들린 범인을 측은하게 보는 시선은 가룟유다를 보던 예수님의 시선을 느껴 알게 하고 있었습니다. 이선생님이 상처부위를 확인해 보았으나 출혈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혹시 생명은 유지 될는지 싶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이선생님에게 찔린 곳을 보자고 확인해 보셨고 이어 조용하게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확인해 보며 그토록 바라던 순교 순간을 자신이 증거하던 말씀대로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서둘러 이선생님은 목사님을 업게 됩니다. 그는 불과 16일 전 마지막 8월 집회를 마치고 목사님을 모시고 부산으로 오는 길에 목사님께서 주남선목사님 묘소를 보고 가겠다고 하여 길 안내를 했었는데 작은 개울이 하나 있어 목사님을 업어 드렸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어지간한 청년으로는 목사님을 업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처럼 상처를 입고 힘을 쓰지 못하게 되면 더 무거울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업었습니다. 강단 아래로 나오던 이선생님은 여반 복도 중간을 지나면서 업혔던 분이 축 늘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심장 대동맥이 절단되어 출혈이 체내에서 대량으로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목사님을 모시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큰 출혈이 있었던 것입니다.
업혔던 분이 완전히 쳐지게 되자 목사님을 편안하게 업어 드릴 수가 없겠다고 생각하여 앞에 있는 백익인집사님을 불러 대신 업게 하고 2층 계단을 내려오자 바로 연구소 그레이스 차량에 모시게 됩니다. 옆문을 열고 좌석에 눕히고 부산대병원 응급실로 향했으나 이미 의사 검진 이전에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차량 시트에는 다량의 피가 고이며 차밖 예배당 마당으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마당 수위실 앞에서부터 대로로 질주하는 차량을 따라 피가 계속 길바닥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이미 내부 출혈로 절명에 이르렀고 그 출혈이 차에서부터는 몸 밖으로 흘러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4.백목사님은 평소에도 순교의 극적인 장면을 자세하게 여러 시각에서 예상하고 설명한 적이 적지 않습니다.
변판원선생님의 순교 순간을 비롯하여 지나간 분들의 순교 소식을 하나만 전해 들어도 이를 재구성하여 완벽하게 재생하였던 것은 그는 차원 높은 순교자들의 그 심리 세계를 알아보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페인트칠하는 도색공이 밑그림과 바탕색깔이 어찌되었던지 자기 마음대로 칠해버리면 그 외부색칠로 모든 것을 덮어 가릴 수 있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또한 백목사님은 순교의 마지막 장면을 여러 가지로 예상하며 그 예상 가능한 상황을 하나 하나 짚어가며 집회 때, 또는 평상의 설교시간에도 우리가 걸어갈 길을 지도했었습니다. 개싸움에서 깽 소리 하나 나오면 지는 것을 예로 들면서 우리의 육체에 극심한 고통을 줄 때 외부에서 주는 고통에 피동되면 실패요, 그 외부고통을 받으면서도 내적으로는 하나님께 붙들려 자기 감정과 감각을 다스리고 그것들 위에다 말씀의 감격을 더하여 감사와 기쁨으로 그 마지막 순간을 통과해야 진정한 순교라는 것이 백목사님의 신앙세계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이 십자가에 못박혀진 그 우주적인 고통 중에서 그 신경 세포 하나가 고통에 피동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내적 역사에 피동된 것은 그의 평생 설교입니다.
백목사님의 순교 당하던 그 순간의 미세한 움직임에 대하여는 이미 준비 중인 그의 전기에서 정리할 것입니다만, 그의 평생 목회와 평생 설교와 평생 생활을 아는 사람에게는 단 10여초로 지나가는 마지막 급박한 순간과 그 직후를 중심으로 여기서 설명하는 내용에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강단의 설교와 실제 생활이 같지 않은 이들과 달리 평소와 평생에 걸쳐 그 말씀과 생활이 함께 했던 백목사님입니다. 메모해둔 당시 기록들과 따로 보관하고 있는 자료들이 많기 때문에 이를 하나씩 들추어본다면 은혜로운 내용은 한없이 길어질 것이지만, 읽는 이들에게 감동이 잘 전달될 수 있는 표현을 가지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는 할 말이 많으며 앞으로 다른 기회에 더 많은 참고 내용을 드렸으면 합니다.
백목사님은 순교 2주전, 8월집회를 마치고 부산으로 오는 길에 주남선목사님 묘소를
방문하게 됩니다. 이때 목사님을 업었던 연구소 직원과 목사님 모습입니다. 입은 옷은
달라도 자세는 정확하게 같았습니다.
내려온 하늘을 업었던 감격!
하늘로 떠나가는 분을 업었던 심정!
그 감격과 그 슬픔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고 간 것은 육체뿐입니다.
전해놓은 말씀이 있어 오늘도 모든 감정과 충격을 봉인해두고 이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사진은 냇가를 건너고 있는 모습입니다.
순생으로 살아간 분이 바로 주남선목사님입니다. 백목사님을 생명처럼 아꼈던 분.
그는 그렇게 순교로 맺기를 원했으나 하나님이 주지 않아 받지 못했습니다. 그분의 묘소를
방문하는 길이었고 작은 개울을 하나 건너야 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 하늘로 가야 할 시점을 거의 받아 놓았던 8월 11일 오전, 백목사님은
순생으로 살아온 그 마지막 부름심이 주목사님과 같은 자연사(死)일지 아니면 순교사(死)
일지? 백목사님 평생 설교에서 주목사님은 '죽지못한 순교자'였습니다.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원함으로 되지 않는 것이 순교인데, 이날 걸어간 이 모습에서 그의
이 땅위 육체는 생명을 멈추었으며 그 생명을 멈추도록 인도한 것은 말씀 증거였습니다.
그는 그 말씀 증거를 따라 생사를 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마침을 순교로 정했습니다.
[인물] 두 가지 질문 (백영희목사님의 순교에 대하여 - 관리자)
제목분류 : [~인물~백영희~]
내용분류 : [-인물-백영희-]/[-교리-구원론-건설구원-기능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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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으로 올린 이곳의 글은 당사자의 요청으로 익명처리하였습니다. - 2001.11.12.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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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질문:
백영희목사님이 순교하셨다고 하는데 순교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순교의 조건이 성립 안 됨을 알 수 있습니다. 1) 믿음에 대한 박해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2) 그 괴한은 법적으로 정신병자였다는 말입니다.(이 이야기는 자세히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그 괴한이 법적으로 형을 받지 않고 석방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른 교단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우리 공회에서는 그 사람을 위대한 순교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궁금합니다.
이런 순교자라는 명칭이 그 분의 아름다움을 헤치는 표현이 아닐까요(?) 그냥 그분이 설교하시다 칼에 찔려 돌아가셨다는 표현이 더 아름답지 않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공회를 벗어나면 순교자라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또 많은 공회원들이 이 '죽음'을 순교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일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누가 어떻게 이런 순교 용어를 썼는지도 궁금합니다. 이렇게 결정을 내린 자료가 있으면 (회의 등) 한 번 밝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질문 :
기능 구원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 기능 구원은 기존 성경 해석에 관한 새로운 도전이 되는 아주 위험한 교리라고 봅니다.또 이 위험이 진리며, 그 속을 밝혀내면 또 한번의 개혁이 있겠지만...
공회 내에서도 이 기능 구원에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양분된 교리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분들의 주장을 한번 듣고 싶습니다.이 기능구원을 유사하게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성화의 기독론적-성령론적 바탕' 고려신학대학원 박영돈 교수, 개혁신학과 교회에서의 글에서는 다르게 접근하고 있습니다.차이점을 한 번 밝혀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기능 구원에 대한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내용을 책으로 한 번 밝혀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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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인물~백영희~]
내용분류 : [-인물-백영희-]/[-교리-구원론-건설구원-기능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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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으로 올린 이곳의 글은 당사자의 요청으로 익명처리하였습니다. - 2001.11.12.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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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질문:
백영희목사님이 순교하셨다고 하는데 순교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순교의 조건이 성립 안 됨을 알 수 있습니다. 1) 믿음에 대한 박해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2) 그 괴한은 법적으로 정신병자였다는 말입니다.(이 이야기는 자세히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그 괴한이 법적으로 형을 받지 않고 석방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른 교단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우리 공회에서는 그 사람을 위대한 순교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궁금합니다.
이런 순교자라는 명칭이 그 분의 아름다움을 헤치는 표현이 아닐까요(?) 그냥 그분이 설교하시다 칼에 찔려 돌아가셨다는 표현이 더 아름답지 않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공회를 벗어나면 순교자라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또 많은 공회원들이 이 '죽음'을 순교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일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누가 어떻게 이런 순교 용어를 썼는지도 궁금합니다. 이렇게 결정을 내린 자료가 있으면 (회의 등) 한 번 밝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질문 :
기능 구원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 기능 구원은 기존 성경 해석에 관한 새로운 도전이 되는 아주 위험한 교리라고 봅니다.또 이 위험이 진리며, 그 속을 밝혀내면 또 한번의 개혁이 있겠지만...
공회 내에서도 이 기능 구원에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양분된 교리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분들의 주장을 한번 듣고 싶습니다.이 기능구원을 유사하게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성화의 기독론적-성령론적 바탕' 고려신학대학원 박영돈 교수, 개혁신학과 교회에서의 글에서는 다르게 접근하고 있습니다.차이점을 한 번 밝혀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기능 구원에 대한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내용을 책으로 한 번 밝혀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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