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에 대한 기본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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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 대한 기본 상식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집회~]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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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을 두 차례로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집회'란 총공회 노선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할만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백영희목사님이 직접 목회를 하였던 서부교회의 입장에서는 보충적 은혜 기간이었고, 백목사님 말씀을 직접 접할 수 없었던 지방의 총공회 소속 교인들에게는 1년 2차례의 집회가 평생의 자신들 신앙을 지켜갈 수 있는 절대적 은혜의 기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집회 자체를 부인하고 나서는 분들도 산하 교인들의 심리적 동요를 막으려고 이 집회는 당장에 폐지하지를 못할 만큼 총공회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위치를 가진 것이었습니다. 총공회 신앙 노선 내부의 사람이라면 한번쯤 '집회'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먼저 간단히 질문에 답하고, 그다음 집회라는 문제를 하나의 중요한 신앙현장이라는 입장에서 체계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집회란


1)집회라는 이름


집회의 횟수나 기간은 특정할 수 없다고 해야겠습니다. 그러나 한 주간을 세상과 절연하고 말씀에 붙들려 보는 것이 필요하여 과거는 사경회로 그리고 부흥사경회로 요즘은 주로 부흥회로 이름이 바뀌고 있습니다. 사경회라면 말씀을 살펴 말씀으로 일어서야 한다는 면을 말했고, 부흥사경회라면 심령과 교회의 부흥을 위해 사경회로 모이자는 부흥에 많은 중심이 있는 표현이며, 요즘은 거의 '부흥회'로 통칭이 되고 있는데 이는 말씀으로 살펴보는 것이 딱딱하고 또 힘들게 느껴지며 동시에 가볍게 마음이 기쁘고 즐겁도록 그래서 교회 다닐 마음이 나도록 한다는 의미로 통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필요하지만 성격에 의해 붙이는 이런 이름들 대신에 총공회는 '교인들이 모이는 것'이라고 단지 '집회'라는 무성격의 이름을 주로 사용해오고 있었습니다.


2)집회의 필요성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날짜 별로 본다면, 주일은 한 주간에 필요한 모든 은혜를 받는 날이며 이 날에 부족한 것과 또 살면서 새로 당하는 문제들은 수요일 또 금요일 밤 예배로 감당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의 경우로 본다면 하루의 시작은 늘 새벽기도로 준비하게 되기 때문에 이 정도의 예배는 모든 교인들의 신앙생활에 표준으로 정해놓은 것입니다.


매일 씻어도 한번씩 목욕이 필요한 것처럼 매주일 정상적으로 신앙생활을 한다해도 세월이 지나가면서 크게 한번 말씀으로 새롭게 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평소의 세상연줄을 정리해버리고 말씀 받는 일에만 전념케 하고 그럼으로 다시 한번 현실을 말씀으로 살아갈 능력을 받도록 함입니다.


3)집회의 역사


①집회기간

초기에는 여러 주위 교회들이 함께 모여 강사를 모시고 집회가 필요한 교회를 중심으로 자리를 함께 하였고, 또 집회 기간도 월요일 밤부터 다음 주 월요일 새벽까지로 8일을 이었습니다. 그러나 각 교회에 남아있는 신앙 어린 교인들의 주일문제가 있어서 월요일로 토요일까지로, 또 주일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느껴지면서 주일을 준비하는 토요일까지를 본 교회들에게 지장이 없도록 하여, 백목사님의 마지막 집회 모습은 월요일 밤부터 금요일 새벽까지로 이어졌었습니다.


②집회시간

초기에는 저녁예배시간이 다음날 새벽예배까지 이어지는 때도 있었고, 새벽 4시 30분에 시작한 예배가 아침식사시간을 넘어서게 계속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창과 대구 두 곳에서 계속되는 집회에서는 매 예배시간이 3-4시간으로 되었고, 1980년이후 중간반 또는 주일학생들의 참석이 대규모가 되면서는 1시간 30분에서 2시간 30분 정도로 줄었습니다.


③예배모습

항상 집회는 말씀이 위주였고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초기 집회에는 찬송으로 강단이 부셔지는 정도가 빈번했고 또 밤새 찬송이 계속되거나 통성기도가 집합되면서 기절하는 사람이 이어질 정도로 은혜의 표현이 넘쳤었습니다. 그러나 거창 대구 집회로 이어지면서 예배전 30분 정도의 박수 없는 준비찬송에 나머지는 설교로만 계속하고 기도는 각자 조용한 장소를 택하는 정도로 내려왔었습니다.


④참석강도

집회의 은혜는 참석했던 이들마다 자신들의 평생의 길을 바꾸고 수개월 또는 수년의 세월을 힘있게 살아갈 정도의 양식이 넘쳤기 때문에 가정파탄 또는 직장 퇴직 학교 처벌 등의 어려움까지를 감수하면서 참석하는 분위기가 대부분이었으며, 그러나 집회 참석의 결과가 주위의 사람들에게 덕이 될 정도로 인격의 변화가 있어 집회의 참석은 그 외형에까지 꾸준히 배증을 하여 갔었습니다.


⑤참석교인

1957년 제1회 거창집회는 참석 교인 40여명이었으며 그후 꾸준히 증가하여 마지막 1989년 백목사님의 마지막 집회는 단일 장소에 1만 수천명에 이르렀었습니다.


4)집회의 성격


집회참석의 모습은 전국 총공회 관련 교인들의 뚜렷한 특색이 되었고, 일반 교회의 우스갯소리 섞는 가벼운 모임이나 행사적 운동 아니면 한쪽으로 치우친 불건전성 등의 단점들과 뚜렷이 비교가 되면서 총공회적 신앙모습이 형성되는 총공회 정기 예배가 되었습니다. 총공회 신앙노선이 맞고 좋은 사람은 참석 않는 사람이 없다할 만큼 되었고, 또 총공회적 신앙성격을 가지지 못한 교인들에게는 하루 3시간씩 3회의 설교가 이어지는 육체적 절제를 견딜 수 없어 참석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총공회 신앙의 전국적 회집이 되었던 것입니다.


2.백목사님 사후의 집회


1)노선의 분리


현재 총공회는 백목사님 사후 두 가지 큰 흐름으로 집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는 목사님 대신 다른 목사님들이 맡아 집회를 계속해야 한다는 자유주의 노선의 흐름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백목사님의 생전 집회는 그 말씀의 내용이 여러 번 반복하면서 들어보아야 그 깊이를 알게 되며 따라서 생전의 녹음 녹화된 설교를 재독하는 보수주의 노선이 있습니다.


다른 목사님의 설교로 대신해야 한다는 주장은 또 다른 종들이 자라나와야 되며, 또 자라나올 수 있게끔 집회라는 대규모 교인의 갈급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그렇지 않더라도 시대마다 새로운 종들에게 새로운 말씀을 맡기기 때문에 그러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말씀의 반복, 재독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백목사님 집회시 말씀은 그 양이나 그 말씀의 깊이 정도가 적어도 수십년의 세월 이상을 통해 장기간 이 시대를 감당할 정도의 말씀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듣고 알았으니 넘어가는 것은 교양이나 상식의 수준에서 말씀을 접하는 것이니 말씀이란 들어서 바로 아는 데 이르는 것만도 수 차례가 반복되어야 할 정도이며 그 지식이 자기 자체와 행위를 만들어 생활에까지 말씀이 들어앉도록 하는 말씀의 실상은 사람 따라 다르겠으나 상당히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미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을 향해 외친 말씀이라 생각하고 이미 들은 말씀에라도 확고하게 자신의 것이 되도록 많은 세월 속에 복습을 하고, 들은 말씀이 지식에서 그쳐 교만에 이르지 않고 들은 말씀이 자신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기까지 계속 새겨 보자는 주장입니다. 새로운 말씀을 많이 듣지 못해 탈이 아니라 한번이라도 들은 말씀이 진정 자신의 말씀으로 변화가 되어야 된다는 주장입니다.


2)10년에서 20년 정도 이전에 말씀으로는 오늘의 현실을 살기에는 문제가 있지 않겠는가?


교훈은 그 성격에 따라 전해질 범위와 해당될 현실이 특별할 수 있지만, 또한 시대를 반복하며 많은 사람에게 해당될 장구성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믿은 이후에 힘쓸 일이 건설구원이며, 마음이 물질이며 영물은 영이라는 백목사님의 삼분론, 또한 지식 위주로 나간 현세 교회가 하나님의 실체적 능력을 빼다보니 종교간 혼동이 나오게 되는 이런 혼란기가 이 시대를 휩쓸며 남은 세월에도 더욱 더 심해질 것입니다.

백목사님의 교훈은 바로 이런 면에서 전체적으로 해결이 될 수 있는 교리를 가졌고 따라서 앞으로 상당 세월 이 교훈이 뚜렷히 지키고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백목사님이라는 한 자연인, 한 인간의 유무와 상관없이 이 말씀은 이 말씀이 해당될 현실, 시급히 맡고 나설 그런 현실을 하나님이 주시는 한 계속 반복되며 연구될 일이라 믿는 것입니다.


3)집회의 장소가 여러 곳이라는 점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모일수록 은혜가 넘치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 주관의 감정이 넘쳐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으나 말씀을 사모하는 심령들의 기도가 미리 모여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목사님 생전은 그 분에게 받는 말씀의 은혜면을 사모하는 심령이 전부가 하나였기 때문에 모일수록 유익되었다고 봅니다.

지금은 집회의 모습에서부터 내용까지 또 총공회 신앙의 노선 자체에 대한 의견까지 여러 길로 나뉘고 있는 때입니다. 마음이 다른데 장소가 한 곳이면 오히려 필요 없는 논란과 소란이 우려되며 그런 경우가 있게 되면 말씀 은혜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말씀을 받는 방법과 각도에 따라 마음이 모여질 수 있는 분들이 작든 많든 지금은 조용히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바쁠 때라 생각합니다.

목사님이 거창에서 8월에 집회를 가진 것은 1957년이 처음이며, 실은 해방 직후 1946년, 또 그후 몇차례의 봉산교회 집회와 그때 집회의 역사가 컸기 때문에 그후 봉산교회 윗쪽 산능선에서 산집회로 이어지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으며, 5월의 대구집회는 부산에 부임했던 목사님께서 금정산집회로 이어오시다가 장소의 협착, 전국적 회집의 어려움 등으로 대구로 그 장소를 옳겼던 것입니다. 이외에도 집회가 많았으나 다른 집회는 전부 축소하시고 목사님의 형편이나 전국 교인의 형편을 보아 두 번 집회로 이어오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장소는 횟수 또는 5월과 8월의 첫주 월요일부터라는 등의 모든 모습들은 처음부터 은혜받을 교인의 형편을 따라 일부 조정하였습니다.


4) 집회를 통해서 우리가 어떤 은혜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가?


집회는 많은 사회적 가정적 희생을 각오해야 되는 기간입니다. 현재 주신 내 현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 따라 가는 나를 그 현실을 통해 만들겠다고 하시니, 집회에서는 집회 오기 이전의 내 현실, 또 집회 후 다시 찾을 내 현실이 집회에서 받는 말씀을 따라 올 수 있도록, 받은 말씀이 주장하고 나는 그 말씀대로 내 현실을 다스리고 지킬 수 있도록 자기를 향한 말씀의 은혜를 받아야겠습니다.
[공회] 집회에 대한 바른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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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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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5월 집회 준비로 한참 바쁘시겠습니다.


한번씩 주위에서 집회에 대해 물어볼 때에 어떻게 대답할까 곤란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바른 입장을 정리해야 될 필요성을 느껴 문의를 드립니다.


1) 집회라는 것이 왜 필요한가?


2) 백영희 목사님이 가신지 10년 넘게 지났는데 그때 설교만 가지고 다시 재독으로 집회를 한다면 그 당시의 현실과 오늘의 현실의 차이로 말씀의 공감대가 떨어지게 되는데 과연 은혜가 되겠는가?


3) 백영희 목사님이 1년에 2차례, 대구와 거창에서 집회를 하셨는데 지금은 각각 여러 곳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4) 집회를 통해서 우리가 어떤 은혜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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