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단의 글들에 대한 상식 한 두 말씀 먼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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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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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14 00:0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이단~안식교~]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이단-안식교-]/[-교리-교회론-신앙생활-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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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단들은 2가지 방법으로 대개 포교활동을 하며 반론을 구성하고 나옵니다.
하나는, 짧은 구호를 선호합니다.
마치 공산주의 식입니다. 그들의 구호는 섬뜻하게 그러나 인상깊게 남아 있어 그 사람 머리에서 두고 두고 자동 반복 기능이 작동하도록 합니다. 이단들의 IQ로 가지고는 그런 발명을 할 정도는 아닙니다만 귀신에 씌이면 귀신의 힘으로 나오기 때문에 평소 없던 힘이 나오고 수준 이상의 글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지성인을 향한 폭넓은 논리 전개입니다.
이런 경우, 주도면밀하게 대형 교단 또는 교계의 주류 논리를 연구하여 그 대응 이론을 구성하고 고위직에서 아래 활동교인에게까지 탐독하게 합니다. 교회는 이런 이론적 대응에 있어서는 신학자들의 학설 중심으로 상대하기 때문에 대개 일방적으로 당하거나 아니면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위에 있는 주일 비방의 글도 신학에 깊숙히 빠져 있는 교계를 상대로 한 것이며, 우리는 신학 자체를 신앙의 기본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반론할 수 있다고 보입니다.
2.이단들을 상대할 때 한 가지 주의 말씀을 올립니다.
질문하신 분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오랫만에 보는 장문의 이단 논리이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단은 상대 자체를 하지 말라는 충고를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러나 얼핏 들었지만 자기 머리 속에 개운하게 해결이 되지 않고 틀렸다는 명확한 깨달음이 없게 되면 신앙의 혼동이 깊은 마음 속에 자리 잡게 됩니다. 잘못하면 그 사람 신앙의 암이 되어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틀린 이단을 일일이 상대하여 그 틀린 것을 다 반박하려다 보면 평생이 부족합니다. 또한 건설 중심이 아닌 파괴 주변을 맴돌게 되어 이단을 이기고도 지게 되는 생각못한 결과를 많이 봅니다.
한국교회의 이단 감별은 탁명환, 박영관, 최삼경 등 3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한국교회의 이단 대처가 어려웠겠는가?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들 스스로 자기 신앙건설에서는 너무 손해를 많이 보았으니 그들의 출간된 책들의 내용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최삼경목사님은 최근 스스로 소속 교단에서 이단인지 심사를 당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곳은 이단에 대처하는 방법도 그 정도도 그 인식도 다른 곳과 달리함을 살펴주셨으면 합니다.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이단-안식교-]/[-교리-교회론-신앙생활-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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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단들은 2가지 방법으로 대개 포교활동을 하며 반론을 구성하고 나옵니다.
하나는, 짧은 구호를 선호합니다.
마치 공산주의 식입니다. 그들의 구호는 섬뜻하게 그러나 인상깊게 남아 있어 그 사람 머리에서 두고 두고 자동 반복 기능이 작동하도록 합니다. 이단들의 IQ로 가지고는 그런 발명을 할 정도는 아닙니다만 귀신에 씌이면 귀신의 힘으로 나오기 때문에 평소 없던 힘이 나오고 수준 이상의 글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지성인을 향한 폭넓은 논리 전개입니다.
이런 경우, 주도면밀하게 대형 교단 또는 교계의 주류 논리를 연구하여 그 대응 이론을 구성하고 고위직에서 아래 활동교인에게까지 탐독하게 합니다. 교회는 이런 이론적 대응에 있어서는 신학자들의 학설 중심으로 상대하기 때문에 대개 일방적으로 당하거나 아니면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위에 있는 주일 비방의 글도 신학에 깊숙히 빠져 있는 교계를 상대로 한 것이며, 우리는 신학 자체를 신앙의 기본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반론할 수 있다고 보입니다.
2.이단들을 상대할 때 한 가지 주의 말씀을 올립니다.
질문하신 분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오랫만에 보는 장문의 이단 논리이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단은 상대 자체를 하지 말라는 충고를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러나 얼핏 들었지만 자기 머리 속에 개운하게 해결이 되지 않고 틀렸다는 명확한 깨달음이 없게 되면 신앙의 혼동이 깊은 마음 속에 자리 잡게 됩니다. 잘못하면 그 사람 신앙의 암이 되어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틀린 이단을 일일이 상대하여 그 틀린 것을 다 반박하려다 보면 평생이 부족합니다. 또한 건설 중심이 아닌 파괴 주변을 맴돌게 되어 이단을 이기고도 지게 되는 생각못한 결과를 많이 봅니다.
한국교회의 이단 감별은 탁명환, 박영관, 최삼경 등 3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한국교회의 이단 대처가 어려웠겠는가?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들 스스로 자기 신앙건설에서는 너무 손해를 많이 보았으니 그들의 출간된 책들의 내용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최삼경목사님은 최근 스스로 소속 교단에서 이단인지 심사를 당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곳은 이단에 대처하는 방법도 그 정도도 그 인식도 다른 곳과 달리함을 살펴주셨으면 합니다.
[이단]주일은 이방인의 태양신 숭배일로 유래되었다는 글을 반론해 주셨으면 (e-mail)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이단~안식교~]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이단-안식교-]/[-교리-교회론-신앙생활-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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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안식교의 안식일에 대한 대표적인 주장이며, 이단 글은 가급적 기재를 배제하나
이 논리는 대부분의 교인들이 신앙생활 중에 접할 수 있는 것이므로 교인들이 마음속으로
혼동이 되다가 시험에 빠질까 해서 전체를 수록하여 정면으로 다루었습니다.
- yilee -
제목: 일요일 예배의 기원과 역사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하나님의 귀하신 축복과 예수님의 크신 사랑이 늘 함
께 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성경상 전혀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일
요일을 성서에도 없는 주일이란 이름으로 지키고 있는 사실에 대해 궁금증을 가
져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예수님, 바울 사도, 주님의 제자들, 성서에 나오는 모
든 주의 백성들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왜 현 시대의 많은 개
신 교도들이 성경에 단 한 마디 단서도 찾을 수 없는 일요일을 준수하고 있는
지 그 이유를 아십니까?
지금부터 일요일 준수의 기원과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
직 모든 일에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평강이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의 가슴에 충
만하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이 글을 드립니다. 마음의 문을 여시고 하나님의 음
성에 귀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드리는 목적은 오직 우리의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바르게 경배하며,
우리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자"하는 데 있음을 말씀드리
면서 추호라도 오해는 없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오직 예수님의
순전한 사랑밖에 없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요일을 주일로 옹호하는 대표적인 현대 신학자인 주이트(Jewett) 자신이, 자신이 옹호하고 있는 일요일이 왜, 어떻게 그리고 언제 예배일이 되었는 지 그 근거와 기원을 알 수 없다고 한 것은 정직한 증언이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그것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모르면서 지키고 모르면서 옹호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온 세상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거나 예배하는 일요일이 까닭없이 그렇게 되었을 리가 없다. 그 이유와 과정을 성경과 역사에서 살펴,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 부당한 부활의 기념 - 그리스도의 부활이 일요일 예배의 근거라고 하지만 그것은 성경적으로 인정될 수 없는 논증이다.
첫째, 성경 어디에도 매주 일요일 혹은 매년 부활절 단위로 부활을 기념하라는 말씀이 결코 없다. 새로운 제도인 성만찬, 침례, 세족의식에 관하여 명백한 명령이 있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둘째, 신약 성경에는 일요일을 "부활의 날"이라고 부른 적이 결코 없고 언제나 안식 후 첫날 또는 매주의 첫날로 불렀다.
셋째, 부활은 그리스도의 지상 봉사를 끝낸 사건이 아니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요19:10)는 선언으로 지상 봉사의 끝을 알리셨다. 성경은 부활을 날짜로 기념해야할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
넷째, 부활을 성만찬과 관련시켜 일요일에 의의를 부여하려고 하는데 일요일에 성만찬을 거행할 신학적인 이유도 없고 시작부터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마26:20-29, 고전11:18-25). 성만찬은 부활의 기념이 아니라,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고전11:26)이다.
다섯째,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성만찬으로 기념하듯, 부활은 침례로
기념하도록 성경에 명시되었다(벧전3:21, 롬6:4-5).
이상의 이유를 보더라도 일요일 준수가 부활에 기초했다는 논증은 선경적인 것도 아니며 논리적인 것도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예수님의 부활은 중요하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그 날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만일 그 날에 의미가 있다면 분명히 성경에 말씀하셨으리라. 하나님께서는 결코 하나님 말씀 외에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더하거나, 하나님 말씀 중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빠뜨리지 말라고 하셨다.
(계 22:18-19) "내가 이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 말씀을 읽고도 어찌 하나님 말씀외에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더하며, 있는
것을 사람의 형편에 따라 없는 것처럼 제하여 버릴 수 있단 말인가!
* 일요일 준수의 기원과 배경 - 콘스탄틴 황제의 일요일 휴업령(A.D. 321)
2세기에 들어서면서 로마인들의 태양신 숭배열이 높아지고, 같은 때에 유대인
의 제2차 반란으로 로마제국에 의하여 불법종교가 된 유대교와 구별되기 위하여
그리스도교, 특히 로마교회가 앞장 선 서방교회는 동방교회의 반대를 무릎쓰고 로마의 태양 숭배의 분위기를 수용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때마침 동서로 나뉘었던 로마 제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콘스탄틴 대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을 내려 종교 자유를 허용하는 극적인 일이 일어난다. 잇달아 그리스도인과 교회에 온갖 특전을 제공하는 일련의 정치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의 더할나위 없는 환심을 사게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황제는 321년 3월 7일에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칙령을 내린다.
"존경스러운 이 태양의 날에 모든 판사들과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장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휴업하도록 하라. 그러나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하늘이 마련해 준 혜택을 상실하지 않도록 씨를 뿌리거나 포도 나무를 재배함에 있어 그토록 적합한 때가 없는 수가 있으므로 적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 날에 자유롭게 농경에 종사하도록 하라"
콘스탄틴 황제가 휴업하도록 명령한 날의 대상인 "존경스러운 태양"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황제 자신을 포함한 로마인들이 섬겨 온 "무적의 태양" 곧 "미드라"태양신이었다.
국내에서 발간된 '기독교 대백과 사전'에도 이 사실을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그리스도교 시대 초기에 로마 제국에서, 특히 로마 군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수많은 동방 종교들 가운데 하나가 폐르샤로부터 수입된 미드라 종교였다. 미드라는 태양신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미드라 종교는 일요일을 성일로 간주했다. 이러한 이교적인 종교의 추종자들이 이 날을 숭배한 것은 콘스탄틴 황제가 일요일을 제국의 휴일로 선정하는 데 공헌하였다."
'대영 백과사전'에도 일요일이 세계적인 휴일이 된 데 대해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유세비우스(260-340)에 의하면 일요일을 합당하게 준수하도록 하는 법을 최초로 제정한 사람은 콘스탄틴인데 그는 전 로마 제국이 일요일을 규칙적으로 축하하도록 명령하였다. 서기 321년 콘스탄틴이 일요일을 일반적인 공휴일로 선포했을 때 그는 그리스도인과 이교도들을 함께 마음에 두었다. 태양의 날은 이교도 추종자들에 의하여 숭배를 받았고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도 영광을 받았으므로, 이로써 이교와 그리스도교의 상충하는 관계를 연합시킨 것이 황제의 정책이었다."
이러한 경향을 부채질한 사람이 바로 가이샤라의 감독으로 콘스탄틴과도 가깝게 지낸 교회사의 비조 유세비우스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유세비우스는 안식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음을 다음의 인용에서 보게 된다.
"우리 교회는 안식일에 관한 모든 의무는 그것이 무었이든 간에 다 주일로 옮겼는데, 이는 이 날이 유대인의 안식일보다 더 권위가 있고, 높이 존경을 받고, 순서에서도 첫번이고 더 영예롭기 때문이다."
도대체 하나님이 만드신 안식일을 한낱 피조물인 인간이 이토록 교만스럽게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이토록 참람되고 모독적인 뒷받침들을 통하여 촉진되어온 교회 내에서의 일요일 준수가 마침내 364년 경에 열린 "라오디게아 종교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인준되기에 이른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대화하여 안식일에 게으르지 말아야하며, 그 날에 반드시 일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일요일을 특별히 존중히 여겨, 그리스도인으로서 가능하면 이 날에 일하지 말라. 그런데도 만일 그들이 유대화한다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를 받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사실은 1910년 1월 25일 교황 피우스 10세로부터 "사도적인 축복"을 받은 '회심자를 위한 카톨릭 교리 문답서'에서 아래와 같이 확인할 수 있다.
문: 어느 날이 안식일인가?
답: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문: 우리는 왜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가?
답: 카톨릭 교회가 "라오디게아 종교회의"에서 그 존엄성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이다.
이제 진상이 확연히 드러났다. 로마 황제 콘스탄틴은 제국 내의 이교와 그리스도교를 정치적으로 연합시키는 일을 위해 일요일을 활용하였고, 로마 교회는 정치적인 권익을 제공하는 일요일을 발판으로 회심하지 아니한 이교도들을 그리스도교에 입문시켜 마침내 중세기를 지배하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입지를 확보한 것이다. 이 얼마나 교만하기 이를 데 없는 처사인가! 감히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하여 짓밟고 하나님 위에 군림하다니!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일요일에 정성을 모아 하나님을 경배하는 수많은 주의 신실한 백성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흔히 소위 '주일'이라고 불리우는 일요일이 더러운 태양신을 숭배하는 날이었으며 우상 숭배하는 날 하나님을 그야말로 헛되이 경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실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것은 우리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마른 막대기보다 나을 것이 없는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우리가 어찌하여 사람의 전통을 따르기 위해 하나님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우리가 어찌 성서에도 없는 일요일에, 우상 숭배의 날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우린 한순간도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이심을 잊어서는 안되며 매일같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이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셨으며 지키라 명령하셨을 뿐 아니라 귀한 축복의 언약을 가슴에 간직하게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만 을 드높이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님께서 친히 모본을 보여 주셨건만 우린 왜 예수님을 버리고 한결같이 사람의 전통에 치우친단 말인가!
* 카톨릭의 증언
"만약 당신이 성경만을 따른다면 당신은 토요일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그날이야말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거룩히 지키도록 지시하셨기 때문이다. 일요일을 지킴으로써 비카톨릭 신자들은 1800년간 성경의 제도가 아닌 카톨릭 교회의 전통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신자들처럼 토요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이 점에서 그들의 덜미를 잡고 있는 것이다. 성경만을 유일한 지침으로 주장하고 있는 개신교회는 일요일 준수에 대한 아무 보증이 없다. 이 점에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만이 일관성이 있는 유일한 교회이다"
형제님! 자매님! 신앙이란 "하나님과 나"사이의 순전하고 아름다운 "끝없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벌레만도 나을 것이 없는 우리를 눈동자처럼 보살피시는 것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실로 입으로도 글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넘치는 사랑을 이미 받았으며 하나님의 사랑은 그 빛이 바래지도 변하지도 않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각자 고요히 머리 숙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친히 우리의 창조주 되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오직 우리를 위해 당하신 그 많은 고난과 인간으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치욕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성경을 읽으시면서 참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셨으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그리고 자매님! 이제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 일요일 교회에도 수많은 주의 신실한 제자들이 있으며 함께 하늘 나라에서 만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그저 말로만 예수님을 믿노라하고 세상 사람들과 꼭같이 행동하는 성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말로만 주의 사랑을 부르짖고 가슴에는 이미 사랑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님께서는 세번째 물으셨습니다.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세 번 "네가 진정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신다면 우린 세 번 모두 "내가 진정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베드로처럼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전혀 마음에 거리낌 없이 그렇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의 가슴에 참으로 예수님의 사랑이 있는 지 그리고 우린 그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지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삶의 주인은 과연 누구입니까? 우리는 사람의 외모를 중시하지만 하나님의 오직 우리의 중심을 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운 우리 주님이 오실날도 이제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항상 깨어 기도하여 등만 준비할 것이 아니라 기름까지 넉넉히 준비하여 기쁘게 우리 주님을 맞이하십시다.
사랑하는 형제님! 자매님! 저와 여러분의 가슴속에 예수님의 사랑이 늘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주의 청년들이 되십시다. 감사합니다.
-우리의 구원,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가진 것 오직 주의 사랑 뿐-
-Yours Truly 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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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이단-안식교-]/[-교리-교회론-신앙생활-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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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안식교의 안식일에 대한 대표적인 주장이며, 이단 글은 가급적 기재를 배제하나
이 논리는 대부분의 교인들이 신앙생활 중에 접할 수 있는 것이므로 교인들이 마음속으로
혼동이 되다가 시험에 빠질까 해서 전체를 수록하여 정면으로 다루었습니다.
- yilee -
제목: 일요일 예배의 기원과 역사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하나님의 귀하신 축복과 예수님의 크신 사랑이 늘 함
께 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성경상 전혀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일
요일을 성서에도 없는 주일이란 이름으로 지키고 있는 사실에 대해 궁금증을 가
져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예수님, 바울 사도, 주님의 제자들, 성서에 나오는 모
든 주의 백성들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왜 현 시대의 많은 개
신 교도들이 성경에 단 한 마디 단서도 찾을 수 없는 일요일을 준수하고 있는
지 그 이유를 아십니까?
지금부터 일요일 준수의 기원과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
직 모든 일에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평강이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의 가슴에 충
만하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이 글을 드립니다. 마음의 문을 여시고 하나님의 음
성에 귀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드리는 목적은 오직 우리의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바르게 경배하며,
우리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자"하는 데 있음을 말씀드리
면서 추호라도 오해는 없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오직 예수님의
순전한 사랑밖에 없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요일을 주일로 옹호하는 대표적인 현대 신학자인 주이트(Jewett) 자신이, 자신이 옹호하고 있는 일요일이 왜, 어떻게 그리고 언제 예배일이 되었는 지 그 근거와 기원을 알 수 없다고 한 것은 정직한 증언이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그것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모르면서 지키고 모르면서 옹호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온 세상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거나 예배하는 일요일이 까닭없이 그렇게 되었을 리가 없다. 그 이유와 과정을 성경과 역사에서 살펴,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 부당한 부활의 기념 - 그리스도의 부활이 일요일 예배의 근거라고 하지만 그것은 성경적으로 인정될 수 없는 논증이다.
첫째, 성경 어디에도 매주 일요일 혹은 매년 부활절 단위로 부활을 기념하라는 말씀이 결코 없다. 새로운 제도인 성만찬, 침례, 세족의식에 관하여 명백한 명령이 있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둘째, 신약 성경에는 일요일을 "부활의 날"이라고 부른 적이 결코 없고 언제나 안식 후 첫날 또는 매주의 첫날로 불렀다.
셋째, 부활은 그리스도의 지상 봉사를 끝낸 사건이 아니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요19:10)는 선언으로 지상 봉사의 끝을 알리셨다. 성경은 부활을 날짜로 기념해야할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
넷째, 부활을 성만찬과 관련시켜 일요일에 의의를 부여하려고 하는데 일요일에 성만찬을 거행할 신학적인 이유도 없고 시작부터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마26:20-29, 고전11:18-25). 성만찬은 부활의 기념이 아니라,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고전11:26)이다.
다섯째,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성만찬으로 기념하듯, 부활은 침례로
기념하도록 성경에 명시되었다(벧전3:21, 롬6:4-5).
이상의 이유를 보더라도 일요일 준수가 부활에 기초했다는 논증은 선경적인 것도 아니며 논리적인 것도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예수님의 부활은 중요하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그 날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만일 그 날에 의미가 있다면 분명히 성경에 말씀하셨으리라. 하나님께서는 결코 하나님 말씀 외에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더하거나, 하나님 말씀 중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빠뜨리지 말라고 하셨다.
(계 22:18-19) "내가 이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 말씀을 읽고도 어찌 하나님 말씀외에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더하며, 있는
것을 사람의 형편에 따라 없는 것처럼 제하여 버릴 수 있단 말인가!
* 일요일 준수의 기원과 배경 - 콘스탄틴 황제의 일요일 휴업령(A.D. 321)
2세기에 들어서면서 로마인들의 태양신 숭배열이 높아지고, 같은 때에 유대인
의 제2차 반란으로 로마제국에 의하여 불법종교가 된 유대교와 구별되기 위하여
그리스도교, 특히 로마교회가 앞장 선 서방교회는 동방교회의 반대를 무릎쓰고 로마의 태양 숭배의 분위기를 수용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때마침 동서로 나뉘었던 로마 제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콘스탄틴 대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을 내려 종교 자유를 허용하는 극적인 일이 일어난다. 잇달아 그리스도인과 교회에 온갖 특전을 제공하는 일련의 정치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의 더할나위 없는 환심을 사게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황제는 321년 3월 7일에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칙령을 내린다.
"존경스러운 이 태양의 날에 모든 판사들과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장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휴업하도록 하라. 그러나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하늘이 마련해 준 혜택을 상실하지 않도록 씨를 뿌리거나 포도 나무를 재배함에 있어 그토록 적합한 때가 없는 수가 있으므로 적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 날에 자유롭게 농경에 종사하도록 하라"
콘스탄틴 황제가 휴업하도록 명령한 날의 대상인 "존경스러운 태양"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황제 자신을 포함한 로마인들이 섬겨 온 "무적의 태양" 곧 "미드라"태양신이었다.
국내에서 발간된 '기독교 대백과 사전'에도 이 사실을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그리스도교 시대 초기에 로마 제국에서, 특히 로마 군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수많은 동방 종교들 가운데 하나가 폐르샤로부터 수입된 미드라 종교였다. 미드라는 태양신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미드라 종교는 일요일을 성일로 간주했다. 이러한 이교적인 종교의 추종자들이 이 날을 숭배한 것은 콘스탄틴 황제가 일요일을 제국의 휴일로 선정하는 데 공헌하였다."
'대영 백과사전'에도 일요일이 세계적인 휴일이 된 데 대해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유세비우스(260-340)에 의하면 일요일을 합당하게 준수하도록 하는 법을 최초로 제정한 사람은 콘스탄틴인데 그는 전 로마 제국이 일요일을 규칙적으로 축하하도록 명령하였다. 서기 321년 콘스탄틴이 일요일을 일반적인 공휴일로 선포했을 때 그는 그리스도인과 이교도들을 함께 마음에 두었다. 태양의 날은 이교도 추종자들에 의하여 숭배를 받았고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도 영광을 받았으므로, 이로써 이교와 그리스도교의 상충하는 관계를 연합시킨 것이 황제의 정책이었다."
이러한 경향을 부채질한 사람이 바로 가이샤라의 감독으로 콘스탄틴과도 가깝게 지낸 교회사의 비조 유세비우스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유세비우스는 안식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음을 다음의 인용에서 보게 된다.
"우리 교회는 안식일에 관한 모든 의무는 그것이 무었이든 간에 다 주일로 옮겼는데, 이는 이 날이 유대인의 안식일보다 더 권위가 있고, 높이 존경을 받고, 순서에서도 첫번이고 더 영예롭기 때문이다."
도대체 하나님이 만드신 안식일을 한낱 피조물인 인간이 이토록 교만스럽게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이토록 참람되고 모독적인 뒷받침들을 통하여 촉진되어온 교회 내에서의 일요일 준수가 마침내 364년 경에 열린 "라오디게아 종교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인준되기에 이른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대화하여 안식일에 게으르지 말아야하며, 그 날에 반드시 일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일요일을 특별히 존중히 여겨, 그리스도인으로서 가능하면 이 날에 일하지 말라. 그런데도 만일 그들이 유대화한다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를 받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사실은 1910년 1월 25일 교황 피우스 10세로부터 "사도적인 축복"을 받은 '회심자를 위한 카톨릭 교리 문답서'에서 아래와 같이 확인할 수 있다.
문: 어느 날이 안식일인가?
답: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문: 우리는 왜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가?
답: 카톨릭 교회가 "라오디게아 종교회의"에서 그 존엄성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이다.
이제 진상이 확연히 드러났다. 로마 황제 콘스탄틴은 제국 내의 이교와 그리스도교를 정치적으로 연합시키는 일을 위해 일요일을 활용하였고, 로마 교회는 정치적인 권익을 제공하는 일요일을 발판으로 회심하지 아니한 이교도들을 그리스도교에 입문시켜 마침내 중세기를 지배하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입지를 확보한 것이다. 이 얼마나 교만하기 이를 데 없는 처사인가! 감히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하여 짓밟고 하나님 위에 군림하다니!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일요일에 정성을 모아 하나님을 경배하는 수많은 주의 신실한 백성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흔히 소위 '주일'이라고 불리우는 일요일이 더러운 태양신을 숭배하는 날이었으며 우상 숭배하는 날 하나님을 그야말로 헛되이 경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실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것은 우리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마른 막대기보다 나을 것이 없는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우리가 어찌하여 사람의 전통을 따르기 위해 하나님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우리가 어찌 성서에도 없는 일요일에, 우상 숭배의 날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우린 한순간도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이심을 잊어서는 안되며 매일같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이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셨으며 지키라 명령하셨을 뿐 아니라 귀한 축복의 언약을 가슴에 간직하게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만 을 드높이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님께서 친히 모본을 보여 주셨건만 우린 왜 예수님을 버리고 한결같이 사람의 전통에 치우친단 말인가!
* 카톨릭의 증언
"만약 당신이 성경만을 따른다면 당신은 토요일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그날이야말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거룩히 지키도록 지시하셨기 때문이다. 일요일을 지킴으로써 비카톨릭 신자들은 1800년간 성경의 제도가 아닌 카톨릭 교회의 전통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신자들처럼 토요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이 점에서 그들의 덜미를 잡고 있는 것이다. 성경만을 유일한 지침으로 주장하고 있는 개신교회는 일요일 준수에 대한 아무 보증이 없다. 이 점에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만이 일관성이 있는 유일한 교회이다"
형제님! 자매님! 신앙이란 "하나님과 나"사이의 순전하고 아름다운 "끝없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벌레만도 나을 것이 없는 우리를 눈동자처럼 보살피시는 것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실로 입으로도 글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넘치는 사랑을 이미 받았으며 하나님의 사랑은 그 빛이 바래지도 변하지도 않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각자 고요히 머리 숙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친히 우리의 창조주 되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오직 우리를 위해 당하신 그 많은 고난과 인간으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치욕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성경을 읽으시면서 참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셨으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그리고 자매님! 이제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 일요일 교회에도 수많은 주의 신실한 제자들이 있으며 함께 하늘 나라에서 만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그저 말로만 예수님을 믿노라하고 세상 사람들과 꼭같이 행동하는 성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말로만 주의 사랑을 부르짖고 가슴에는 이미 사랑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님께서는 세번째 물으셨습니다.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세 번 "네가 진정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신다면 우린 세 번 모두 "내가 진정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베드로처럼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전혀 마음에 거리낌 없이 그렇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의 가슴에 참으로 예수님의 사랑이 있는 지 그리고 우린 그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지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삶의 주인은 과연 누구입니까? 우리는 사람의 외모를 중시하지만 하나님의 오직 우리의 중심을 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운 우리 주님이 오실날도 이제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항상 깨어 기도하여 등만 준비할 것이 아니라 기름까지 넉넉히 준비하여 기쁘게 우리 주님을 맞이하십시다.
사랑하는 형제님! 자매님! 저와 여러분의 가슴속에 예수님의 사랑이 늘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주의 청년들이 되십시다. 감사합니다.
-우리의 구원,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가진 것 오직 주의 사랑 뿐-
-Yours Truly 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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