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은 인성 안에서 인성을 지도하는 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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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은 인성 안에서 인성을 지도하는 일만 했습니다.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교리~기독론~신인양성일위~]

내용분류 : [-교리-기독론-신인양성일위-]/[-교리-기독론-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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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일: 04.8.11.)


1.예수님의 신성이 인성에게 하신 일은


①고난에 동참


예수님의 인성 하나의 수고는 다른 죄인 하나만을 구할 수 있는 대속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속에 있던 신성이 인성과 하나가 되어 그 인성의 고통과 고난에 동참하셨기 때문에 예수님 인성의 수고는 외부적으로 1명의 수고였으나 내부적으로는 무한한 수고가 되어 우리 택자 전부를 다 구원할 수 있는 대속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 속에 있던 신성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그 인성의 고난에 동참입니다. 즉 예수님의 신성은 어떤 적극적인 활동을 했느냐는 것으로 찾아볼 것이 아니라 인성과 한 분이 되었다는 그 사실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②신성의 대외적 권리의 포기


예수님의 신성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므로 예수님의 인성에 가해지는 모든 방해나 반대 세력을 일시에 다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의 대표이므로 대외적으로 누구를 상대하든지 사탄을 부릴 수 있는 하나님으로서 움직이게 된다면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 하는 '대속주'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어 사탄의 종이 되었고 이런 우리를 대표하여 우리를 대신하려 왔으므로 예수님은 죄는 없는데도 죄인의 신분으로 살아야 했고, 따라서 예수님 속의 하나님도 신성으로서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해야 했습니다.


③신성의 대내적 활동


예수님의 신성의 역할 중 앞에서 설명한 2가지는 소극적인 면에 해당됩니다. 예수님의 신성이 순간도 쉬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면은, 예수님 안에서 인성을 지도하고 인도하여 흠없이 무죄자로 살게 하고 죄를 이기는 자로 살게 하고 또 모든 말씀을 다 준행하게 하며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인성을 만들며 영원한 소망에 불타는 인성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질문하신 내용은 실제로 이 3번째에 해당되는 활동입니다. 앞에 2가지 면을 먼저 말씀드린 것은 예수님의 신성에 대하여 먼저 아셔야 할 일입니다. 비록 우리 인간의 활동 개념으로는 움직이지 않았던 일이므로 '활동'에 포함을 시키지 않을 수 있으나 넓은 범위로는 포함하는 것이 옳을 것이므로 일반 방문인을 위해 상식적으로 잠깐 설명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4장에서 3가지 시험을 치르고 또 이후 십자가에서 죽을 때까지 예수님의 신성이 늘 했던 일은 예수님의 인성 내면에서 그 인성을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인성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신성이 인성을 지도하고 인도했던 관계는 그것 자체가 오늘 우리에게 있어 중생 후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걸어가야 하는 길의 표준입니다.


2.예수님의 인성이 가진 특별한 점


예수님의 인성은 본질적으로 '범죄한 전력'만 없을 뿐 나머지 면으로는 완벽하게 우리와 같았습니다. 죄를 지을 수 있는 분이었고 시험을 받으면 질 수도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외부에서 인간에게 역사하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 내부에서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고 그 내면의 역사도 '신인양성일행'이 아니라 '신인양성일위'의 역사였으므로 예수님 속의 하나님은 예수님의 일부로서 다른 일부였던 인성을 인도하고 지도하는 일을 100% 잘 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인성은 우리와 같은 존재인데도 사탄의 어떤 시험도 다 이길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인성 자체가 가지고 있었던 특별한 점은 사실상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예수님 내면의 신성을 제거하고 인성만 그대로 남겨놓는다면 예수님의 인성은 범죄하기 이전의 아담 수준이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죄와 싸워 이길 수도 있고 또 아쉽지만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다른 것은 아담은 하나님과 손을 잡고 동행하던 관계였으므로 아담이 그 손을 놓고 일대 일로 사탄을 상대하면 사탄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인성은 신성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한 몸 속의 지체들의 관계처럼 신인양성일위였으므로 신성이 변함없이 인성과 하나로 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어떤 사탄의 유혹이나 고통이 있어도 이를 넉넉히 감당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이 가진 전투의 방법이나 사탄을 상대하는 특별한 무기가 있었다면 그것은 요8:28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고 하신 말씀처럼 말 한 마디 하는 것도 신성이 시키는 대로 알려주는 대로 순종했던 오직 그것만이 전부였습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순종'이라고 하는데 신학적으로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즉, 신앙의 가장 중요한 것은 '믿고 따르는 순종'입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이나 길을 찾는다면 우상을 섬기는 것이 되든지 아니면 인본의 사술이 됩니다.
[신인양성일위] 예수님의 광야시험과 대속시 신성의 역할은?
제목분류 : [~교리~기독론~신인양성일위~]

내용분류 : [-교리-기독론-신인양성일위-]/[-교리-기독론-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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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덕유산 집회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잊고 있었든 '기독교는 전투의 도'고 현실는 '전투의 장소'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 귀한 집회였습니다.


몇번을 재독한 내용인데 들을때마다 새롭고, 또 들은 말씀은 쉽게 잊어버리니 우리의 망각을 통해 마귀는 많은 수입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번에 들는 말씀은 쏟아버리지 않고 '마음비'에 새겨서 잊지 않고, 현실에서 전투로 성장하고 향상되고 자라가야겠다는 각오를 다져봅니다.


에전부터 가지고 있든 의문인데


예수님은 신성은 창조주하나님이시고 인성은 죄는 없지만 우리와 동일한 피조물인데 주님이 광야에서 세 가지 시험을 받을때와, 십자가 대속시에도 신성의 도움은 전혀 받지 않는걸로 알고 있고 받을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성이 있어야만 택한자 전부를 대속할 수 있는거는 알겠는데 구체적인 신성의 역할은 무었인지요?


우리는 시험에서 지식과 충성의 부족으로 인해 넘어지고 많는 시행착오를 겪는데 주님의 인성는 피조물이지만 완전의 지식을 가지고 계시므로 우리와는 시험에 임하는 무기는 다르지 않습니까?


물론 주님의 희생을 우리가 '우주적인 고난'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좁는소견으로는 그 희생과 사랑을 알 수 없고 영원히 알아가는데서 우리가 자라 간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드리는 질문은


① 주님의 광야시험 과 대속시 신성은 어떤 역할을 하였습니까?


② 인성은 우리와 동일한 속성이지만 지식면 등에서는 완벽했으므로 우리와는

시험에 임하는 무기(?)나 대응방법 전략 등은 다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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