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교계의 건설구원론 등 백목사님 교리체계 사용과 관련하여 몇 말씀올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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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교계의 건설구원론 등 백목사님 교리체계 사용과 관련하여 몇 말씀올린다면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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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책의 자세한 정보를 원합니다.


저자

도서명

출판사

출판일

도서 뒤에 나와 있는 구입 연락처 등


2.내용을 파악하기 전에, 윗글과 관련해서 대충 드리고 싶은 말씀


①이미 백목사님의 건설구원론 등이 인용되거나 사용된 출간물들은 적지 않았습니다.


20여년 전, 1980년대 초반부터 교계 다른 곳에서 이 교리 체계를 인용하여 기존 교리서와 탁월하게 우수한 내용을 갖추어 알려진 것들이 많습니다. 물론 사안이 너무 폭발적이어서 모두들 이 교리의 뚜껑을 조금 열어보다가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면 그 순간 완전히 얼어버린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너무 당연하고 쉽고 옳은데, 문제는 기독교 2천년 역사를 새로 쓰야 할 만큼 그 사안이 크고 만일 이것을 자기들 이름으로 발표하면 소속 교단의 무지하고 무식한 지도자들과 서당식 공부로 머리를 경색시킨 선배 스승들에 의하여 매도를 당할까 두려워 모두들 주저했습니다.


그 중에 교단의 제재를 덜 받는 분들 또는 자신의 존재가 덜 알려져서 자기 이름으로 발표를 해도 별로 주목을 받거나 견제를 받지 않는 분들 등을 통해서 마치 자신들이 처음 발견한 듯 또 일반 교계의 시비를 희석시키기 위한 듯, 용어를 조금씩 누그러뜨리거나 변형시켜 이 교리 체계를 조금씩 외부로 흘린 적이 많습니다.


이곳은 니고데모와 같은 자세는 딱 질색입니다.

그는 정치가여서 자기 입장을 고려해서 처세를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더 옳으냐는 문제에 모든 것을 걸고 노력합니다.

물론 잘 모를 때는 얼마든지 그 자리에 일시 정지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②건설구원론 연구의 전개 방향은 보수교계 내에서만 이루어질 일입니다.


이곳은 중들과 자리를 같이 하는 통합측은 교회 울타리 안에 있다고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그분들이 교회 안에 있다고 강조를 하기 때문에 소속 표시란 상대방의 표식을 존중해야 한다는 뜻으로 교회로 분류하고 있기는 합니다. 아직까지 교회의 형태와 노선을 일부 유지 하고 있는 곳은 고신측 합동측입니다. 한국 보수교계의 두 기둥이라 할 수도 있고 한국 보수교계를 확인할 때는 이 2곳을 비롯하여 이 2곳과 관련있는 주변 교단을 찾으면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보수교계를 분류하는 이유는, 이곳이 성경으로 옳고 그른 문제를 따질 때는 성경이 옳다고 인정하는 분들과 자리를 마주 않지 성경 자체를 틀렸다고 주장하는 곳과는 대화할 필요 자체를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통합측 또는 그 이상 넓은 교단들과 대화할 일이 있다면 과연 성경 그대로 믿어야 하느냐는 한 가지 문제만 가지고 따질 뿐입니다. 또 이방종교와 따질 때는 과연 돌부처가 우리에게 복을 줄 수 있는지만 따지고 있습니다.


③현재 건설구원론에 관련하여 전향적인 자세를 가진 곳은 고신과 합동입니다.


건설구원론을 인용하고 사용한 교계의 여러 가지 발언들을 놓고 볼 때 고신이나 합동측에서 나오는 글들은 관심있게 보는 편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 양측은 이미 40여년 전후해서 건설구원론을 이단으로 사정없이 비판했던 곳입니다. 그들의 교리체제 자체가 미개한 것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밥그릇을 위해서 그냥 두고 보지 않았습니다. 지금 고신이나 총신 계열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중에서 건설구원론에 대한 언급이 계속 긍정적인 입장으로 제기되는 것은, 현재 각 교단의 통제력이 과거보다 현저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세계적인 범위에서는 잘 모르겠으나 국내 교계에서만큼은 건설구원론과 관련하여 백영희라는 이름을 모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교리를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면, 이곳은 비록 소속은 달리 해도 마치 해외동포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고생을 하다보면 살아남기 위해 본의 아니게 이번 중동에서 죽은 청년처럼 고국을 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표현은 그가 처한 절박한 현실을 체휼하고 분석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느 아프리카 부족들에게 해외 동포 한 가정이 한가위 윷놀이를 소개하고, 그 부족들이 그분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분의 이름으로 지적재산권이나 발명 특허권 등을 부여한다면, 본국에서는 자랑스러워 할 일이지 배가 아파할 일은 아닙니다. 만일 그곳까지 실시간 방송과 인터넷 연결이 되어 그곳에서 그 분의 이름으로 발표된 그 놀이문화가 그분이 고안해 낸 것으로 본국까지 전파를 타게 된다면 그때는 서로 아주 어색한 분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분에게 해외에서 수고한다고 인사를 하면 그분이 속으로 바늘방석이 될 것이고 그분에게 대하여 실제로는 놀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뻔히 그곳과 이곳에 이런 저런 뉴스들이 계속 소개되고 있는데 또 서로 그 문제를 두고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어색할 것입니다.


④보수교계의 건설구원론 사용은 반가운 일입니다.


어떤 경우든, 이곳은 이곳이 할 일만 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백영희신앙노선에 관련된 어떤 자료나 어떤 글이나 어떤 도서에 대하여도 저작권 등 일체 법적 권리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백영희 자료 관련 내용을 다른 분이 독점권으로 사용하려 한다면 그렇게 하지 마셔야 한다는 점과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조처하는 일에는, 아마 세상 법적 문제까지 거론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 신앙노선 안에는 인물이 없습니다. 세상에 조금 얼굴을 내밀 수 있는 분들은 세상이 좋아서 이 신앙노선의 내면 것을 밖으로 전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 수요가 많은 세상 것을 내다 팔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신앙노선의 내면을 좋아하고 소개하고 싶은 분들은 이곳 답변자처럼 신학에 관련된 어떤 학위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무식하여 밖으로 전할 줄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외부 세상을 아주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외부 학자들이 만일 이 노선의 장점을 알고 일부든 전부든 어떤 형태로든 외부에 전할 수 있다면, 그는 아마 평생 배우고 연구한 일반 신학 관련 노력 전부보다 이 교리체계를 소개한 것이 더 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그런 분들에 의하여 이곳이 접할 수 없는 많은 교회들이 이 교훈을 접하고 말세를 준비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3.건설구원론을 깊이 연구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가는 코스가 있습니다.


차를 처음 산 가정이 있다면 처음 며칠은 가족들이 타고 다니느라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지만, 며칠 지나면 기름값 문제가 생기고, 보험문제를 알게 되어 100여만 원이라는 생각하지 못한 돈이 들어가고, 주차문제 엔진오일 문제 등등이 줄줄이 생기게 됩니다. 미개국이 먹고 살 만큼 돈을 벌고 나면, 노사데모 빈부불만 정치욕구 언론 여론 ..... 환경 도로 교통 외식 ..... 건강 성인병 ..... 줄줄이 이어지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가장 특별한 교리들은 건설구원론 삼분론 중생론 등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누구라도 가장 쉽고 가장 확실하게 인정하는 것은 건설구원론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천국가는 것은 무조건 주님 십자가로 가게 되고 그다음 믿고 난 다음 평생의 노력은 천국을 가게 되는 성도들의 역할이나 기능 등의 차이문제라는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건설구원에 비하여 삼분론이나 중생교리는 건설구원을 내면적으로 형성시키고 버티는 지원교리에 속합니다. 차의 작동 원리를 몰라도 엑셀을 밟으면 차가 가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선다는 것이 건설구원입니다. 아무 교인이나 알기 쉽고 또 그 교리만 알면 자기 구원 준비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차를 정말 바로 알고 더 잘 사용하고 어떤 경우라도 차량 유지와 관리에 지장이 없으려면 차량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속속들이 꿰고 있어야 합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고물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일반인은 장거리 운전을 할 때 갑자기 엔진이 서거나 돌발 문제가 생길까봐 가슴을 졸입니다. 그러나 카센타 주인들은 차량 고장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삼분론과 중생론과 기능구원론 등을 바로 알지 못하고 천국에도 차이가 있다는 건설구원론의 가장 간단한 표현만 알게 된다면, 예리한 사람이 반론을 하고 따져 들게 되면 곧장 말이 막히게 됩니다.


말이 막힐 때 대개 말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이 말 저 말을 주대는 사람은 돌아오기 어려운 길로 삐뚤어지게 됩니다. 혹 어떤 분들은 말이 막힐 때 진실되이 해결책을 찾고 또 묻고 해서 바른 길을 찾기도 합니다. 백목사님의 건설구원론은 교리체계 전체에 연결된 고차원의 교리체계입니다. 연계기술이 있고 파급효과가 있으며 신앙과 교회를 아주 달리 만들어 이전의 굼뱅이 모습을 이제 창공을 나는 매미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4.질문 내용에 집중한다면


건설구원을 인정한다면, 믿는 사람이 전적 은혜로 무조건 받는 은혜가 있고 각자의 평생 신앙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 있는데, 기존 이분설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믿는 사람의 영 내면에 불신앙으로 죽어야 하는 부분들이 있고 그 영의 내면에 바로 믿어 점점 자라가는 부분도 있어야 합니다. 영은 단일체라는 것이 조직신학계의 상식인데, 영이 단일체라면 영은 범죄로 죽어 지옥을 가느냐 중생으로 천국을 가느냐는 단 2가지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살아난 영의 실력의 차이가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분설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중생된 이후 중생된 영 안에 범죄의 부분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영'이라는 것이 물질처럼 종합체라는 말이 됩니다. 중생 이후 영이 전체적으로 점점 자라간다는 말로 포장을 해버리면 이분설을 놓지 않고도 건설구원론을 주장할 수 있는 일시 빈공간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건설구원을 자꾸 살피다 보면, 우리는 우리 마음 속이 확연히 둘로 나뉘어 악령의 것이 된 부분과 성령에게 붙들린 부분이 있고 우리 영 속에 죄로 더러워진 기능이어서 싸워서 버려야 할 요소가 있게 됩니다.


이분설을 가진 분이 건설구원을 인정하게 되면 결국 건설구원의 핵심 전쟁터는 마음이고, 마음 안에 기본구원으로 해결된 영이 있고, 몸은 마음의 전쟁에 뒤따라 결정되는 요소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평가하자면, 질문하신 분께서 표현하시고 직접 예측하신 것이 맞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건설구원론과 삼분론과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교리와 믿는 사람의 기능은 둘로 나뉘어 지옥에 버리고 가야할 죄의 기능이 있고 천국에 가져가야 할 의의 기능의 차이가 있다는 교리들은 따로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 이유를 더 말씀드리자면, 일단 건설구원을 인정하고 나서 다시 성구를 해석하면, 갑자기 마음과 영은 다른 재료로 만들어지고 그 위치와 성격이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5.이곳은 외부 교계 다른 분들과 대화할 때는 줄기차게 건설구원론만 설명하는 편입니다.


이미 유전공학에 의하여 일반 조직신학계는 그들의 이분설이 틀렸다고 벌써 두 손을 들었습니다. 아직도 이분설을 가지고 과학계와 싸운다는 곳은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마음이 영물이라면 물질의 이치만을 상대하는 불신자 영이 죽은 인간이 영물을 자유자재로 손을 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이곳은 과학을 일반 신학계보다 더 무시하는 곳이지만, 일단 일반신학계가 그렇게 선호하는 그분들의 취향에 따라 논리적으로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이분설이 틀렸다는 것은 주로 구원론을 두고 말하지 않고 현상 과학계의 결과만을 가지고 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순수하게 교리면으로만 따진다면, 이곳에서 외부분들에게 백영희교리체계의 특별한 점을 말씀드릴 때는 '건설구원론'을 가지고 주로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 어느 성구를 가지고 어떻게 따져봐도 너무도 간단하고 환하게 판정이 나기 때문입니다. 평양이 지상낙원이라는 논리로 남한 안에서 개최되는 토론회에서 이기는 경우는 없듯이 성구 해석을 가지고 건설구원을 모른다면 성경 전체를 완전히 억해와 곡해로만 일관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까지 외부인들이 백목사님의 교리체계에서 가장 손쉽게 이용하는 대목은 건설구원론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중생교리까지 인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분들은 이미 건설구원과 삼분론 그리고 중생교리를 차례로 이어가며 문제를 깊이 살펴보고 진행을 했다는 뜻입니다.


설명이 너무 길게 나갈 수 있는 사안이어서 이 정도 말씀드리고 답변을 줄이겠습니다. 일단 질문 내용 중에 말씀하신 책들은 구입해서 보고 싶습니다. 책에 관련된 내용들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건설구원] 건설구원 세계로..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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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얼마전에 도서관에서 구원론에 관한 책을 두권 빌렸습니다.

한권은 총신대 교수님 책이었고..한권은 김용주 목사님 책이었는것 같습니다.


두권의 내용은 기본구원과 그리고 성화구원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특별히 총신교수님은 외국의 저명한 신학자들의 책을 인용해 가며 기본구원과

성화구원에 대해 기술하였습니다. 김용주 목사님 책이 좀더 백목사님 교리와 비슷했습니다.물론 그 두 책은 삼분론과 영구원론에 대해서는 아무말이 없었습니다. 그저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나누어 놓고..행함을 강조하는 난해 구절들은 나름대로 해석을 한 책이었습니다.


그 책을 보고나서..오늘 여기 홈페이지 자료에 들어가니..이 목사님 글중에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나누게 되면 당연히 다음 문제가 이분론 삼분론 문제로 접어들수 밖에 없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혼자 연구해 보다...기본구원론과 건설구원(성화구원)을 나누게 되면..기본 구원은 완벽하게 구원받는거고 건설구원은 이루어 가는 구원이니깐...완벽하게 받은 기본구원을 2분론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구원받은 자도 범죄를 하는데 어떻게 완벽한 구원이 되느냐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당연지사 삼분론으로 갈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구원받은 사람은 온전해 진다 했으니(히브리서 인용이 맞는지? 완전한 구원에 대한 다른 구절도 있다면 각주씩으로 부탁드립니다) 온전해진 부분이 죄를 짓는다는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봅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삼분론으로 갈수밖에 없지않을까? 이 목사님이 그런 맥락으로 글을썼지 않았나 사료됩니다. 자세하게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느낀건데 건설구원론(특히 총신대 교수님 책)이 세계 보수 신학에서도 상당히 받아들여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결국 성령님이 동일하시므로

하나님이 세계의 보수신학과 한국의 보수신학에 삼분론과 영구원 기본구원 건설구원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목사님이 할일이 많을것 같습니다.

부디 강건하시고 오래 사셔서 주님의 일을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글은 지금까지 제가 전통신학과 구원론을 공부하며 깨닫고 느낀점을

간단하게 정리 했습니다. 제 생각이 어떤지..궁금하고..목사님께서 자세히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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