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이곳이 견지하는 성경관으로도 살펴보기를 원하신다면, 아쉬움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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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곳이 견지하는 성경관으로도 살펴보기를 원하신다면, 아쉬움은 있습니다.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교계~삼일교회~]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교계-삼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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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순복음교회에 대하여도 서울 삼일교회와 같은 의미로 평가했던 때가 있습니다.


1)순복음교회를 일반 교계적 입장에서 평가한다면


한국 교계의 사거리에 서서 지나 가는 사람들에게 서울 삼일교회와 기타 비슷한 여러 교회들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입장을 1번 답변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입장은 과거 1980년대 순복음교회에 대하여도 비슷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1970년대까지는 일반 교단에서 순복음교회를 판단할 때는 지극히 위험스런 교회라든지 아니면 이단이라든지 둘 중에 하나였습니다. 혀 꼬부러지는 소리, 믿습니까 아멘, 성령을 받았느냐, 병고치는 신유은사, 방언, 30분씩 박수치며 찬송부르는 예배 등이 그 비판의 대상이었습니다. 1980년 이후 거의 모든 교회는 순복음교회의 그런 방법을 최소한 1가지 또는 그 이상으로 따라 갔습니다. 교회가 부흥되는 것을 확인한 이상 신학적 이론을 더 이상 고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두들 순복음 교회를 비판하던 당시, 이곳은 순복음에 대하여 교계적 입장에서 가질 수 있는 평가와 이곳의 자체 평가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한국교회적 입장에서 순복음교회를 말한다면, 순복음교회만큼 기도하는 교회 열심있는 뜨거운 기도의 교회가 있는가? 없다면 기도하는 교회를 욕하지 말고 그 열심과 그 기도의 진정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당시 한국교회의 기도는 바리새인의 기도로 굳어지고 있었습니다. 형식적인 기도로 급격히 진행 중이었고 기도는 곧 얕은 잠과 같은 의미로 통할 때였으나 순복음교회의 기도는 한국교회의 기도 시간을 깨어있는 열심의 기도로 변화시켰고 오늘의 기도 모습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하는 교회를 만들었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겠습니까? 비록 여러 잘못이나 부족이 있다해도 얼마든지 칭찬하고 존중할 수 있는 교회일 것입니다.


전도도 그러했고 설교내용과 진행도 그러했고 모든 면에서 그러했습니다. 잠든 한국교회, 막 배부르게 된 한국교회, 자리를 잡자 벌써 누우려는 한국교회를 일어서서 뛰어 다니도록 일으켜 세운 곳이 순복음교회입니다. 그리고 순복음교회는 성경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자고 가장 강하게 힘있게 외친 곳입니다.


2)순복음교회를 이곳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번에는 이곳 입장에서만 순복음교회를 보겠습니다. 이곳 입장에서만 보겠다는 말은 두 말 하지 않아도 지극히 주관적이며 자기 독백적인 입장이며 모든 사람들이 수긍하지 않을 입장이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이렇게 편협된 사고방식과 투쟁적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까지를 보여 드리면서까지 주장하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다.


잠든 한국교회를 깨운 것은 사실이나 한국교회를 깨워 미친 걸음의 초보에 올려 놓은 것이 순복음교회의 다른 역할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병고치는 안수기도 방언 할렐루야 아멘 등이 전부 하나로 통하는 순복음식 성령은사였습니다만 이것이 진정한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한다면 교회가 제 정신을 가지고 할 일은 아닙니다. 이미 한국교회 전부가 다 따라가고 심지어 공회 교회에까지 깊숙히 파고 들어와 있는 습관들을 두고 이렇게 말해 버린다면 지나쳐도 많이 지나친 것이겠지요? 그러나 이곳의 주장이기 이전에 일반 교회의 교리만 가지고 봐도 이미 이 말은 정확한 표현이 됩니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두 기둥인 합동측과 통합측 두 교단의 교리가 그러하고 고신 교리가 그러합니다. 한국교회의 중심이며 한국교회를 다수결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장로교교리가 순복음에 대하여 내려야 하는 판단이 그러합니다.


실제로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냐 고 반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틀렸는데 목회 현장의 부흥과 교인의 취향이 바뀌었으니 할 수 없지 않느냐 라는 입장입니다. 이곳은 바로 이런 두 이익이 충돌 될 때는 두 말 할 것 없이 성경에 충실하라고 배운 곳이며 또 마땅히 그리 하는 것이 옳다는 곳입니다. 그러니 모든 교회와 달리 순복음에 대하여도 자신을 따르고 배우는 교인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순복음이 말하는 성령이 성령이냐? 어린 첫 신앙에서 철이 없으니 어떻게 해도 부모가 봐 줄 수 있고 이뻐해 줄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도 계속 그렇게 행동을 하면 천방지축이지. 나이가 더 들면서도 계속 그렇게 하면 미쳤지. 더 나아가면 병원에 넣어야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양심입니다.


2.서울 삼일교회와 또 비슷하게 사역하는 교회들에 대하여 이곳의 입장을 말한다면


1)교회는 오늘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선 자리가 어떤 자리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이 부류의 교회들은 교단과 교파에 대한 집착이 거의 없습니다. 성씨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이름이 중요하다는 체질입니다. 이런 장점 때문에 교권에 휘둘리지 않고 순수 복음 운동에 매진하여 자신들의 교회가 성공적으로 젊은 층을 붙들게 된 경우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붙든 교인들, 그렇게 어렵게 확보한 젊은 층들로 하여금 그들이 걸어가야 하는 방향, 그들이 소속한 신앙걸음이 어떤 노선이냐는 면을 방치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면을 지적한다면 한국교회의 교권싸움 교단분열 목회자의 욕심 축척에 속하라는 말이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이곳은 개교회주의를 철저하게 지양하는 곳입니다. 마땅히 그분들보다 더 개교회주의적이며 교권과 교단분열 등을 비판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남북이 싸운다고 제 3국으로 가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보는 편입니다. 교단의 교권싸움과 분열 등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잘못된 교권 잘못된 분열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북한의 공산정권 자체가 틀렸고 그 근본이 부정되어야 하는 큰 시각을 가지지 못하고 북한 정권 내에서 어떻게 하면 인민을 잘 먹일 수가 있겠느냐 하는 면에만 관심을 가지고 사심없이 충성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열심은 넓은 의미에서 보며 존재치 말아야 할 북한 정권의 유지 수단이 되고 그들의 충성은 더 큰 범위에서 더 많은 사람을 굶기고 죽이는 일이 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교단 싸움에 맹목적으로 속해 있는 이들과 교단 싸움에 환멸을 느끼고 교단의 개념과 역사성을 무시해 버리는 이들은 둘 다 함께 신앙의 노선이라는 점을 간과한 이들이고 이들은 자신들의 오늘 행동이 전체와 역사 앞에 어떤 역할과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가 빠져 있습니다.


2)성경 중심의 열심은 있으나 성경 밖에서만 맴돌고 있습니다.


성경 중심으로 살아보려는 열심 진실은 참으로 부럽고 또 그들을 따라 배울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나 기타 간행물 어디를 보아도 성경책만 있지 성경이 없고, 성구만 있지 성경이 없습니다. 설계도 없이 마구 지어 올라가는 대형건축물과 같다는 말입니다. 건축물이 올라갈수록 건축을 아는 사람에게는 말 못할 염려가 생깁니다. 아슬아슬하기 그지 없다는 말입니다. 한 순간 어디로 방향을 틀지 한 순간 어떤 붕괴로 이어질지 곡예를 보는 듯 합니다.


총공회도 백목사님 사후에 바로 붕괴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그러나 총공회의 붕괴는 실제 붕괴가 있었다 해도 외형의 교회수와 교인들의 이합집단일 뿐 교리와 신앙의 노선은 역사 교회의 정통을 이어 앞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분들에게는 단순히 오늘의 기쁨과 내일에 대한 소망만 보이지 그 속을 떠 받들고 있어야 할 교훈이 보이지 않습니다.


성경과 성구도 잊어버리는 오늘 교회들 속에서 성경과 성구를 중심으로 철저히 활동하는 분들은 그만해도 나은 편이며 오히려 모범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이곳이 가진 교리 교훈면에서 본다면 성경을 깊이 알아가야 할 방향 자체를 잡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습니다.


삼일교회나 또 함께 하는 교회들만큼도 성경중심적이지 못한 일반 교회들을 상대로 비교한다면 한국교계는 이들을 성경에 철저히 입각하여 젊은 층을 교회로 인도한 지도자라고 평가받아야 합니다만 이곳이 보는 기준만으로 본다면 성경책만 보게 했고 소개했지 성구 속에 성경은 소개할 수준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성경적이고 싶은 중심만으로 성경 주위를 맴돌고 있는 안타까운 분들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분들이 백목사님의 성경세계를 배우게 된다면 백목사님을 이을 계대자가 되겠다는 감을 강하게 가집니다.


이분들과 관련된 교회에 박희천목사님이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정도라면 한국교회의 성경중심은 바로 이분들이라고 하겠지요? 그러나 총공회 신앙노선에서 성경을 알게 된 이들이 그들을 성경에 철저한 분들이라고 한다면, 공업수학을 배운 이들이 초등학교 가감산에 익숙한 이들을 향해 높은 수학의 세계에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공업수학 시간에 참석만 했지 그 수학을 알지 못한 학생들이구나 라고 내심하게 됩니다.


3)실은 이런 부류의 교회와 운동은 벌써 30여년 전 미국에서 활발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서울 삼일교회와 또 함께 하는 교회들을 보고 놀란 분들이 많습니다만 교회역사적인 면에서 살펴 본다면 미국 교회가 급격히 석고화 되던 1900년대 중반, 당시의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며 복음화의 기치를 들고 미국 교회에 큰 충격을 주었던 로버트 슐러목사님이 있었습니다. 1960-70년대는 그분의 시대였습니다. 교회를 탈피하고 세상 향락으로 몰려가던 미국 청년들을 대규모로 돌려 세워 성경을 들게 했고 또 교회를 향하도록 했었습니다.


이렇게만 본다면 그분의 역할은 오늘 서울 삼일교회와 여러 교회들의 수고나 역할에 비견될 것입니다. 아마 그분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을 것입니다. 로버트 슐러목사님이 세계 교회 앞에 뚜렷히 들어날 때 현재 한국교회의 젊은 층을 지도하고 있는 목사님들은 어린 신앙 또는 한참의 신앙 때였을 것이고 자연히 어느날 저렇게 되어야 하겠다는 비젼을 가졌을 것입니다.


삼일교회의 교훈 내용, 설교 방식, 교회와 젊은 층을 지도하는 전반적 분위기에서 흡사 30년 전 로버트 슐러박사를 대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교회가 총체적으로 타락하는 시대에 살아있는 신앙가들이 자신과 자신의 주위를 복음에 세워 그래도 선지자가 있었음을 표시하고 있습니다만 이곳은 그런 좁은 범위와 단회적인 운동을 주도하는 분들이 교회 역사의 흐름과 교리적 입장을 깊이 알아 넓은 범위와 시대를 초월하여 계속될 복음운동에까지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로버트 슐러박사는 거창고등학교장 전영창선생님과 신학교 친구였으며 개인적 교류가 참으로 많았던 사이였습니다. 한 사람은 적극적 사고방식이라는 말로 요약되는 자신의 본질을 내놓고 말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팽창하는 물질 사회의 경쟁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심리적 활성제를 처방한 심리학자 내지는 정신과 임상의였던 것입니다. 그의 이 처방은 오늘도 거의 모든 한국내 중견목회자들 속에 사고방식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복음은 아닙니다. 성경도 아닙니다. 심리적 처방은 황수관, 이상구박사도 훌륭히 하고 있습니다.


3.감리교의 웨슬레, 구세군의 윌리암 부드, 거창고의 전영창 교장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만큼 복음적이며 정렬적이며 신앙유일주의로 달려간 분들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미 역사 속에서 그들의 위치가 뚜렷히 입증되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교리 역사적 측면에서 본다면 아무 의미 없는 이들입니다. 그들을 교회사의 긍정적 측면에서 본다면 역사 속에서 한번 반짝였던 열심 있었던 이들이라고 할 것이고 부정적 측면에서 본다면 기독교 인본주의 기독교 사회주의 기독교 민족주의의 대표적 이정표를 세워 참된 기독교로 들어갈 수많은 이들을 오도하고 참된 복음에서 벗어나도록 했던 또 하나의 거짓선지들이었다고까지 하고 싶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평생 운동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끝이 났다고 하며, 일반 교회사는 성령으로 시작했던 초기와 인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절정기만 소개하고 있지 그들의 훗날과 그 후시대에 이어진 결과를 파헤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리 교회사라는 냉혹한 판단 앞에서는 그들의 평가는 사람에게 알려진 앞이 아니라 그렇게 되어진 배경을 주로 상대하게 되고 전성기의 숫자보다 그 앞뒤의 진행을 단층분석하게 되면 결국 그들 속에 있는 깊은 내면의 신앙, 즉 말씀에 대한 깊이가 얼마냐는 것으로 그 운동의 실체는 평가받는 것입니다.


혹시 그 운동의 규모가 놀랍지 않냐고 한다면, 오늘 정보와 교통이 사람의 왕래를 제한 속도 이상으로 오가도록 된 상황에서 청년 젊은 층의 심리와 그들의 원하는 바를 짚어 낼 수 있는 이들이 선거운동을 한다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이 장사를 했다면 벤쳐기업의 성공가가 될 것이며 그들이 종교계에서 활동했다면 선지자로 나타날 수 있는 요소는 갖추었다고 봅니다. 진정한 선지자인지 아니면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한 성공한 지도자인지는 하나님이 판단하실 일이고 우리는 그분께 받아가진 성경이 있으니 짐작할 뿐입니다. 이곳은 연구실이어서 이런 짐작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짐작 수준의 판단이 진리적 판단이겠는가를 보자는 것입니다.


4.질문하신 분의 기도 운동에 대하여 권면드리고 싶습니다.


위에서 설명드린 모든 분들이 그들의 초기에 질문하시는 분과 같은 성령으로 시작했고 또 그것을 하니님께서 기뻐하여 잠든 주변이 함께 깨어나도록 앞세워 역사했었습니다. 그리고 뚜렷히 산 위에 세운 동리로 등경 위의 불로 밝히셨습니다. 항상 여기까지를 두고는 비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게되는 시기는 어린 때요 또 성장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부족을 고칠 기회가 있고 또 기다릴 수 있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힘있게 올라가게 되는 때에는 사람들이 그 기세에 힘을 얻어 목표치를 향한 활동에 주력을 하게 되지 그런 때에 항상 마음 속에 오늘 자신의 활동이 어떤 역사적 입장에 있고 어떤 교리적 바탕에서 움직이고 있는지를 깜빡 잊어버립니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 자신의 움직임이 나아가는 방향, 자신의 모든 활동과 성과를 만들고 있는 내면의 교리 세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결국 육체의 활동에서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시작하여 힘을 얻고 있는 운동에 대하여는 따라서 끝이 문제가 훗날에까지 이르는 성령의 운동이 되도록 하는 것이 문제이니 그 면을 잊지 말고 힘을 쓰시라는 것이 이곳의 진심입니다. 오늘 수많은 교회들의 청년 운동들이 다 성령으로 시작하고 육체로 끝마쳤을지라도 내가 시작한 이 운동은 시작이 육체였을지라도 끝이 성령으로 이어지게 하겠다는 결심과 경각심이 강하다면 이미 그리 가고 있을 것입니다.
[교계] 존중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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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내 생각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익명으로 남겨서 웬지 죄송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제 이름을 먼저 밝히고 용서를 구합니다.

저는 부산 거제동교회를 섬기고 있는 청년입니다.


목사님의 인터넷 사역을 존중하고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주장이라고 하기는 너무나 부족한 제 이야기를

이렇게도 관심있게 봐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시각에 대한 단호한 목사님의 의지를 존중합니다.

그것은 당연히 연구자로서의 가져야할 것이기 때문이고

그것이 있을 때 더욱 비판적으로 세상을 보며

성경적인 것을 구해 내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 성경적인 것을 찾으려 애쓰시는 모습이 제게 많은 감동이 됩니다..


다만 제가 올린 것은 목사님에 대한 불만이라기 보다는

먼저 제 자신을 향한 씁쓸함입니다.

그렇게 자라 왔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세상을 그렇게만 대하고

세상에 어려움을 가슴에 품지 못하는 제 자신을 한탄함에서 나온

넋두리임을 양해 해 주시기 바랍니다... ^_^


그리고 삼일교회에 대해서는

다른 것은 말씀 드리지 않고

다만 전병욱 목사님이 리더로서 서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에 동의 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작년에 청년부 회장을 하면서

청년의 부흥을 위해 많은 고심을 했고

그러다가 전병욱 목사님의 책들을 여러권 대했습니다.


그래서 말씀 드리는 것인데

삼일교회의 부흥은 무엇보다도 리더로서의 목사님이 뚜렷하게 보이는데

그 속의 내용은 세상적은 방법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더 성경적입니다.

(사실 삼일교회는 다른 큰 교회와 같은 큰 이벤트가 별로 없습니다.)


청년들은 삼일교회에 무언가 육체적인 것을 얻기 때문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전병욱 목사님 때문에 모인다고 생각됩니다.

자세한 것을 제가 전하기엔 역량이 부족합니만

제 개인적으로 느낀 것을 요약한다면

1. 기도로서 시작되었다는 것이고

2. 목사님의 설교에 목숨을 건다는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책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비판 소지가 있는 전목사님의 설교 색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것에 도전을 받아서 부족하게도 제가 청년회장을 하면서

금요일 저녁 9시에 2명이 기도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더욱 성장해서 토요일 저녁 8시에 평균 15명 정도가 참가해서

같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예배에 참석하던 청년의 숫자도 늘어나서

지금은 주일 오후 예배는 청년부가 따로 드리는데

(청년부 전담 목사를 초빙했음)

평균 56명 정도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을 부흥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진 않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앞에 썼던 글에서도 숫자가 느는 것을 부흥이라 하지않고

말씀이 넘쳐나는 것을 부흥이라고 썼습니다.


우리가 용기를 가지는 것은 비록 교세가 작다고는 하나

우리는 그 말씀의 중심을 찾기 위해 날마다 노력하고 있고

그 말씀을 그 무엇보다도 중시하기 때문에

지금은 그 영향력이 줄었지만

곧 다시 말씀이 흥황하고

성장은 자연스러울 때가 오리라는 믿음입니다.


급하게 적어서 얼마나 제 생각을 바로 전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비록 글이 너저분 하더라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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