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의 2차 소송 문제가 대두될 때 반소를 주장했던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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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의 2차 소송 문제가 대두될 때 반소를 주장했던 분입니다.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인물~석원태~]

내용분류 : [-인물-석원태-][-교리-교회론-신앙생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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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50년대 후반, 고신 내에서


석원태목사님이 고려신학교를 다닐 때, 백목사님은 서부교회를 맡은 40대 조사님으로 고신의 소송문제를 비판하던 고신 내 유력한 소장파였습니다. 당시 석목사님은 고려신학교 내에서 유망한 신학도였으며 열심있고 여러 면에서 우수했던 청년이었습니다.


당시 고려신학교는 대학교 인가를 정식으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자체적으로 대학교과정과 대학원 과정을 분리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대학교 과정은 '칼빈학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했고 대학원과정은 고려신학교였습니다. 석목사님이 백목사님을 알고 접촉하던 때는 넓은 의미로 '고려신학교'를 다니던 때고, 정확하게 학제로 구분하자면 대학교 과정인 칼빈학원 시절이었습니다.


1950년대 후반, 고신은 급격하게 교권화로 치닫게 되면서 총회측과 예배당 소송을 서슴치 않았으며 지도부는 현실적으로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었고 신학교와 신학생 그리고 목회 일선의 신령한 분들은 고신의 진리 노선을 강조하며 고신의 교권화를 반대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석목사님이 순수했고 원칙에 충실한 분이었기 때문에 백목사님과 함께 사석에서 앉을 기회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은혜전도사님이라는 고신대학병원 원목실 담당 댁에서 식사하는 자리에 백목사님과 석목사님이 함께 했던 기록도 있습니다. 백목사님은 고신의 소송 문제를 반대하다가 1959년에 제명되어 이후 고신과 분리되지만 석목사님은 고신대학원을 졸업하고 1960년대에 고신의 최고 핵심 교회로 평가되는 대구서문로교회와 부산제일영도교회를 30대 나이로 차례로 목회하게 됩니다. 이 두 교회를 연임하였다는 것은 고신 내에서 목회 실력을 탁월하게 인정 받았다는 뜻입니다.


2.1970년대 석목사님의 입장


1970년대 초반 고신 내에서 한상동목사님과 송상석목사님 사이에 소송문제가 다시 제기되자 석원태목사님은 반소를 주장하며 1976년 고신에서 분리되고 고신은 석목사님을 제명하게 됩니다. 석목사님의 반소 주장은 백목사님이 1950년대 고신이 총회측을 상대로 소송을 벌일 때 반소를 주장한 지 20여 년이 지나고 있을 때였습니다. 백목사님이 고신 내에서 반소를 외칠 때는 석목사님은 20대 청년 신학생이었고, 백목사님 제거 후 고신 내에서 다시 소송문제가 나왔을 때 석목사님은 고신 내의 가장 유력한 소장파 목회자였습니다.


석목사님은 1973년 경향교회를 개척하고 현재 대형교회로 키웠으며 경향교회를 중심으로 '고려파'라는 이름의 고신 정통성을 계승하는 교회 운동을 주도하고 있으며, 한편으로 고신측의 고려신학교가 정규 대학교 인가를 받으면서 '고려신학대학'이 되자 석목사님은 고신대가 버린 '고려신학교'라는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며 서울쪽에서 대학으로 인가받지 않고 지금까지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3.1980년 전두환 대통령이 정권을 잡고, 기독교계를 완전 통폐합하려 할 때가 있었습니다.


전대통령이 1979년 12월 12일 군부내 투쟁에서 이기고 정권을 잡게 되자 1980년에 '국보위'를 설치하고 이 나라를 완전히 개혁하여 새롭게 한다면 사회 전반의 모든 질서와 현상을 백지상태에서 새로 건설하게 됩니다. 기존 정치인들 중 핵심부를 완전히 정계에서 물러나게 하고 언론인 중 좌익측 경향이 있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등 당시 분위기는 대단했습니다.


그런 사회 개편의 한 분야로 종교계도 포함시켜 기독교계를 완전히 개편하는 일이 한편으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기독교 개편의 방향은, 당시 정권이 볼 때 기독교의 가장 큰 병폐는 군소 교단들의 난립으로 한국사회를 어지럽힌다는 것입니다. 불교나 천주교는 단일 체제 또는 대형 교단 몇개가 자기 종교 전체를 어느 정도 통제하여 질서가 잡히는데 기독교는 너무도 중구난방이어서 사회 불안의 큰 위협요소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계 대형 교단들의 의사를 참고하며 정권의 실무자들이 구상한 것은, 10만명 회원을 기준으로 한 교단을 인정하고 10만명 이하 교단들은 통폐합을 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독재시절의 정권들은 정권 존립 차원에서 언론사와 대학 설립을 가장 기피하고 있었습니다. 대학 설립은 교육부 장관의 소관이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의 결심을 받아야 가능했는데, 기독교의 총체적 정리를 위해 10만명 회원 기준을 채우면 신학교를 신학대학으로 인가해 주고 그 이후 교단들은 신학교를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불법 탈법 행위로 엄벌하여 뿌리를 뽑겠다는 것이 당시 정권의 의지였습니다.


언론사에서는 기자들이 대량 해고되고 있었고 공직사회에서도 또 사회 모든 분야에서도 대대적인 칼바람이 휘몰아칠 때 기독교계는 10만명 회원을 기준으로 자율적 통폐합을 해서 대학설립 인가라는 떡을 얻어먹고 정권의 휘하에 들어오든지 아니면 교회의 공중분해를 각오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됩니다. 이때 통합 합동 고신 순복음 등 기준을 채울 수 있는 불과 몇몇 대형교단들은 해방 후 처음 맞이하는 대행운의 기회를 잡고 정권의 기독교 손보기를 쌍수들고 환영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석원태목사님이 당시 문교부 담당 부서를 찾아가서 종교자유가 있는 이 나라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 정권이 이게 무슨 짓이냐고 바로 대 놓고 항의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생명을 내놓지 않고는 감히 그렇게 할 수 없던 시대였습니다. 담당 직원이 말을 귀뜸하기를 사실 기독교계 대형 교단들이 뒤로 협조하는 일이 아니냐, 실은 그들이 먼저 바라는 일이라는 등의 중요한 내용을 알려 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답변자는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확인하려고 노력해 본 적은 없으나 이런 일은 기독교 역사의 공식처럼 내려온 일이므로 그렇다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당시 누구의 노력으로 이 일이 막아져서 기독교계 통폐합은 도중에 없는 일로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석목사님의 행동은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그 당시 정권이 그 일을 꼭 몰아붙이겠다며 상당 기간 교회들을 압박하고 있었는데, 한국교회의 보수교단들 중에서 고신측보다 더 보수적으로 평가되는 교단이 3-4개가 있으며 그 교단들이 백목사님의 총공회와 손을 잡고 10만명 회원을 채우기를 원하여 교단 통합 제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석목사님이 백목사님을 만나 고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진정한 고신의 진리 노선을 유지하고 있는 양측이 함께 했으면 하는 제의를 했을 것입니다.


정권의 외부 강제로 인하여 교회의 신앙노선이 결정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하여 교회를 유지할 수 없는 일이 있어도 정권의 통폐합은 반대했습니다. 1981년 3월 총공회의 정식 결의로 이를 반대한 직후 이 교단 통폐합 추진은 갑자기 중단됩니다. 당시 총공회는 정권이 제시하던 교단 허가 조건인 10만명 회원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총공회 단독으로 정권이 원하는 조건을 채울 수 있다 해도 교회가 거부할 일이므로 거부했습니다.


이후 목회연구소로부터 설교록 전체를 구입한 적도 있었고, 또 설교록 내용 중에 백목사님이 박윤선목사님을 비판한 내용을 보고 설교록을 덮어버리고 더 이상 보지 않았다는 말도 전해듣고 있습니다. 석목사님에게 진정 가장 존경스런 분은 백목사님이 아니고 아마 박윤선목사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행히 후에 그 부분에 대하여 오해를 풀었다는 말도 전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4.마지막으로 한 말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석목사님의 복음에 대한 충정, 열심, 직언, 보수적 신앙,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생명을 두려워하지 않고 추진하는 결단, 목회 실력 등에 대하여는 한국교계에서 보기 드문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신앙노선을 두고 평가한다면, 석목사님은 가장 고신적인 분입니다. 따라서 교리나 교회 행정 노선 등을 두고 백목사님의 신앙과는 차원이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석목사님은 정통 신학에 바탕을 둔 교회 운영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설교록에서 종종 언급된 분이어서 몇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답변 늦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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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답변 중 이곳의 주관심사가 아닌 부분은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자료 정도를 참고하고 대부분 기억에 의하여 적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부 수치 등에 착오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인물] 석원태 목사님의 발언이 사회적으로 크게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제목분류 : [~인물~석원태~]

내용분류 : [-인물-석원태-][-교리-교회론-신앙생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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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동정... 전도하고 죽을 일이지"

[오마이뉴스 양정지건 기자]경향교회(서울시 강서구 등촌동 131) 석원태 목사(71)가 6월 27일 예배에서 고(故) 김선일씨 죽음과 관련 "그가 기독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예수는 전도하고 죽을 일이지"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아말렉의 이름을 도말할지니라'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석기현 목사에 이어 강단에 오른 석원태 목사는 약 6분 동안 김선일씨의 죽음을 비하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가장 먼저 도마에 오른 것은 김선일씨가 이라크에 간 이유. 온누리교회를 비롯한 보수성향 교회들이 김선일씨의 죽음을 '순교'로 보는 것과는 달리 석원태 목사는 김씨를 "장사하러 간 사람", "돈벌이하러 간 사람"으로 언급했다. 언론에서 김선일씨의 독실한 신앙을 크게 부각했던 것과는 거리가 있는 관점이다.


▲ 축도하는 석원태 목사.


석원태 목사는 김선일씨 추모 열기에 대해서도 "동정심은 한국이 1등이다", "김선일의 죽음이 세계를 시끄럽게 할만한 죽음인가? 아니다", "사람들이 쓸데없는 동정을 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김선일은 돈벌이하러 간 사람"


석원태 목사가 김선일씨 죽음을 탐탁히 여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김선일씨가 테러범들에게 살해당하기 전에 "예수 믿으라"고 하지 않고, "살려 달라"고 말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인 듯하다.


석 목사의 이런 감정은 "김선일씨가 기독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신학교 가운을 입고 졸업한 사실이 부끄럽다"는 말에 함축적으로 드러나 있다.


김선일씨가 죽음 전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파병철회를 촉구하고, 미국 부시 대통령을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한 것도 석원태 목사에게는 불만인 것처럼 보인다. 석 목사는 이런 김선일씨에게 '현대판 아말렉'이라는 호칭을 부여한다.


아말렉은 이날 아들 석기현 목사의 설교에 등장하는 핵심 단어로, '도말해야 할 공산주의자' 정도의 의미로 쓰인 말이다. 석원태 목사의 비아냥은 발언 후반부로 갈수록 강도가 심해진다. 테러범들에게 '선교'를 하지 않고 죽었다는 것이 비판의 이유다.


"신자가 잡히면 '예수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렇게 말하고 죽어야 한다. 그러면 물론 방송에서는 자기 원하는 것만 방송할 것이다. 이거 짤리나 저거 짤리나 짤리는 것이 인생이다. 막가는 것이다.

... 중략 .. 사람이 막갈 때, 기독신자가 마지막 맞이할 때, 하나님 만나기 예비해야 한다(성도들 아멘). 이런 의미에서 김선일의 말을 종합하면 예수 믿으라 전도 안 했다 생각한다. 부끄럽다.

... 중략 ... 한 마디 하고 안 돌아가시고…. 선교하고 천당가면 되지, 앞으로 선교하려고? 죽기 전에 한 마디 하는 것이 선교다. 그런 시각에서 그 분 기사 나오면 백성 앞에 부끄럽다."

"예수는 전도하고 죽을 일이지."


김선일씨에 대한 석원태 목사의 평가는 결국 "쯧쯧" 하는 제스처로 마무리됐다. 석 목사는 "신학교 졸업생이…." 하는 말과 함께 크게 혀를 찼다. 석 목사가 전도를 강조하는 부분에서 교인들은 '아멘'으로 화답했다.


경향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고려) 서울남노회 소속으로 1973년 석원태 목사가 개척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고려)는 가장 보수적인 교단으로 알려져 있으며, 석원태 목사는 △교단 유지재단 이사장 △고려신학교 교장 △학교법인 경향학원 이사장 △경향선교회 회장 △사회복지법인 경향복지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경향문화사 대표를 맡고 있다.


"김선일이 죽음이 세계를 시끄럽게 할만한 죽음인가?"

석원태 목사 발언 전문


외무부가 김선일 사건을 잘못해서 안 죽을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백성 민심이 그렇다. 동정심은 한국이 1등이다. 요즘 촛불이 밤거리를 밝히고 있다. 촛불집회는 한국이 공산주의, 용공, 공산화 되어가는 선두주자다. 여러 상황이 믹스된 촛불문화가 지금 한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표적이다. 노무현사모파가 시작한 촛불집회다.


김선일이 부산신학교를 졸업했다. 내가 그 학교를 잘 안다. 외국어대 아랍어과 졸업 후 그 나라에 장사하러 간 사람이다. 목적은 뉴스를 보니 터키 처녀와 결혼해서 터키 선교를 하는 것이 목표라 들었다. 그 한 사람이 죽으니 온 세계 매스컴이 열을 올리고 떠든다. 나는 이상하게 생각한다. 김선일의 죽음이 세계를 시끄럽게 할만한 죽음인가? 아니다. 아니다. 그런데 시끄럽다. 돈벌이하러 간 사람이 국제정치의 태풍에 휘말려 희생당한 것이다.


이 얘기는 불신자들에게는 부끄러워서 말 못하는 것이다. 그가 기독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신학교 가운 입고 졸업한 사실이 부끄럽다. 세상 사람 앞에서. 신앙인이고 선교를 목표로 했다 하면 판이 그쯤 진행되면…. 살려달라고 발버둥치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파병 말라고 하고, 부시는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현대판 아말렉이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장사하려는 사람은 잘 들어라. 잡힐지도 모르니까. 신자 잡히면 "예수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렇게 말하고 죽어야 한다. 그러면 물론 방송에서는 자기 원하는 것만 방송할 것이다. 이거 짤리나 저거 짤리나 짤리는 것이 인생이다. 막가는 것이다(성도들 웃음).


사람이 막갈 때, 기독신자가 마지막 맞이할 때, 하나님 만나기 예비해야 한다(성도들 아멘). 이런 의미에서 김선일의 말 종합하면 예수 믿으라 전도 안 했다 생각한다. 부끄럽다. 목 자르고 배 갈라 폭탄을 넣었다. 미군이 그래서 죽었다. 얼마나 악랄한가. 완전히 마귀요 사탄의 화신이다.


사람들이 쓸 데 없는 동정을 하고 있다. 이를 넘어서서, 크리스천이 죽었다. 한 마디 하고 안 돌아가시고. 특히 이라크서 선교하는 사람이…. 선교하고 천당가면 되지, 앞으로 선교하려고? 죽기 전에 한 마디 하는 것이 선교다. 그런 시각에서 그 분 기사 나오면 백성 앞에 부끄럽다.


앞으로 돈 벌러 갈 사람 있나? 장사하러 갈 사람 있나? 물론 살려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대략 사람이 마지막이 다가오면 감각이 온다. 감각이 오면 "주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나도 한 마디 하고 가야겠습니다" 하고 예수는 전도하고 죽을 일이지. 신학교 졸업생이 쯧쯧(혀를 차며). 여기 고려신학교 졸업생 계시나? /


/양정지건 기자 (nunmul25@newsnjo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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