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날 조금 시간을 내어 주일문제를 읽었습니다.
| 분류 |
|---|
yilee
0
2004.06.27 00:00
주일이 가장 바쁜 날이지만 주일의 의미를 두고 질문한 것이므로 잠깐 읽었습니다. 세밀하게 읽지는 않았으나 평가할 수 있는 정도로는 읽었습니다.
1.상기 보고서를 요약한다면
①주일은 구원의 날이니 기본 자세가 기쁨과 감사라야 한다.
②주일은 공적으로 예배하는 날이다.
③주일은 안식해야 하는 날이다.
④주일에 금할 것을 엄격하게 정하면 율법주의로 흐를 수 있다.
⑤주일은 심신의 재충전에 필요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⑥주일은 선행하는 날이다.
2.상기 보고서를 평가하자면
주일날에는 될 수 있으면 세상 일을 쉬고 예배보고 착한 일을 하자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특히 위 보고서에서 주일날 이런 것은 하고 이런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 율법주의가 될 수 있다고 경계한 것이 눈에 띄입니다. 고신의 주일은 이미 과거의 주일이 아닙니다. 고신의 탈선과 속화가 신학교에서 이론적으로 보호되고 장려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신학만은 이론에서 그칠 수 없으며 상기 보고서는 고신교파의 신학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주장하려면 오늘의 고신을 위해 초석을 쌓은 과거 고신의 공로자들과 선배들을 바리새인들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고신은 과거 고신과는 다른 고신입니다.
학자의 글이라 많은 면을 고려하여 최대한 글을 부드럽게 적었습니다. 그러나 알맹이는 과거 고신이 그토록 경계하고 그리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바로 그 길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상기 보고서가 주일을 통해 실질적으로 가지려고 노력한 신령한 은혜면도 너무 껍데기만 보고 그쳤습니다. '보고'와 '감탄'에서 그쳤습니다. 멀리서 구경만 하고 끝낼 것이 아니고 주일 속에서 만들어가질 신앙의 실질적인 전진은 볼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일반 신학체계에서 아직까지 그 자세한 설명을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아쉬운 것은 과거는 어두워서 잘 몰랐다 쳐도 갈수록 밝아져서 이제는 알아야 할 시점입니다.
3.주일은
구약의 안식일이 날자만 주일로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주일날 할 일과 금할 일은 철저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다만 어린 신앙에게 강제로 이행시킬 권리가 없으므로 권하는 데서 그쳐야 합니다.
또 본인의 주일 성수도 본인 신앙과 실력과 양심에 따라 본인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교회의 구원사역에 필요한 선을 정하여 목회적으로 지도할 수 있습니다.
주일의 알맹이는 주신 대속의 은혜를 길러가는 데 필요한 모든 자본을 받는 날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자신이 성화되고 필요한 자본을 복으로 받는 날입니다.
구원의 모든 이치를 담아주신 성경을 통해 자신을 낱낱이 고치고 배우고 능력을 받는 날입니다.
주일을 통해서 주실 은혜는 주일을 통해 주시므로 주일은 특별한 날입니다.
다만 칼빈이 특별한 날로 취급하지 말라는 것은 당시 천주교의 율법주의 환경의 영향을 받고 있던 교인들에게 목회적 지도에 필요한 표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칼빈 신앙 전체면을 본다면 정확할 것입니다.
1.상기 보고서를 요약한다면
①주일은 구원의 날이니 기본 자세가 기쁨과 감사라야 한다.
②주일은 공적으로 예배하는 날이다.
③주일은 안식해야 하는 날이다.
④주일에 금할 것을 엄격하게 정하면 율법주의로 흐를 수 있다.
⑤주일은 심신의 재충전에 필요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⑥주일은 선행하는 날이다.
2.상기 보고서를 평가하자면
주일날에는 될 수 있으면 세상 일을 쉬고 예배보고 착한 일을 하자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특히 위 보고서에서 주일날 이런 것은 하고 이런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 율법주의가 될 수 있다고 경계한 것이 눈에 띄입니다. 고신의 주일은 이미 과거의 주일이 아닙니다. 고신의 탈선과 속화가 신학교에서 이론적으로 보호되고 장려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신학만은 이론에서 그칠 수 없으며 상기 보고서는 고신교파의 신학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주장하려면 오늘의 고신을 위해 초석을 쌓은 과거 고신의 공로자들과 선배들을 바리새인들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고신은 과거 고신과는 다른 고신입니다.
학자의 글이라 많은 면을 고려하여 최대한 글을 부드럽게 적었습니다. 그러나 알맹이는 과거 고신이 그토록 경계하고 그리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바로 그 길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상기 보고서가 주일을 통해 실질적으로 가지려고 노력한 신령한 은혜면도 너무 껍데기만 보고 그쳤습니다. '보고'와 '감탄'에서 그쳤습니다. 멀리서 구경만 하고 끝낼 것이 아니고 주일 속에서 만들어가질 신앙의 실질적인 전진은 볼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일반 신학체계에서 아직까지 그 자세한 설명을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아쉬운 것은 과거는 어두워서 잘 몰랐다 쳐도 갈수록 밝아져서 이제는 알아야 할 시점입니다.
3.주일은
구약의 안식일이 날자만 주일로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주일날 할 일과 금할 일은 철저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다만 어린 신앙에게 강제로 이행시킬 권리가 없으므로 권하는 데서 그쳐야 합니다.
또 본인의 주일 성수도 본인 신앙과 실력과 양심에 따라 본인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교회의 구원사역에 필요한 선을 정하여 목회적으로 지도할 수 있습니다.
주일의 알맹이는 주신 대속의 은혜를 길러가는 데 필요한 모든 자본을 받는 날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자신이 성화되고 필요한 자본을 복으로 받는 날입니다.
구원의 모든 이치를 담아주신 성경을 통해 자신을 낱낱이 고치고 배우고 능력을 받는 날입니다.
주일을 통해서 주실 은혜는 주일을 통해 주시므로 주일은 특별한 날입니다.
다만 칼빈이 특별한 날로 취급하지 말라는 것은 당시 천주교의 율법주의 환경의 영향을 받고 있던 교인들에게 목회적 지도에 필요한 표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칼빈 신앙 전체면을 본다면 정확할 것입니다.
[주일] 고신신대원교수회의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주일~]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주일-]
--------------------------------------------------------------------------------------------
이광호 목사의 글과 고신 신대원 교수회의 글이 어떠한 차이점이 있으며,
총공회의 '주일관'과 서로 어떠한 연관성 및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바쁘신 가운데 귀찮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
안식일과 주일 문제의 연구
양낙흥
주일 문제의 긴박성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전 세계에 걸쳐 세속주의의 물결이 범람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산업화되고 기술 문명이 발달된 거의 모든 사회는 현재 주 5일제 근무를 채택하고 있으며 자가용 승용차의 보편화로 인해 주말은 여행, 휴가, 그리고 여가 선용의 기회로 인식되는 경향이 점증하고 있다. 현대 생활의 복잡성, 경제 각 부문의 상호 의존, 서비스와 전기, 수도 등의 중단없는 흐름에 대한 의존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공장에서는 이제 주말에 최소한 모니터라도 되어야 하는 기계들이 도입되었으며 일반 가정에서도 전기, 난방, 냉방, 전화,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 신문 등을 한 주간 내내 요청하고 있다. 그 중 어떤 것들은 실제로 복음 전파라는 기독교적 목적을 위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동 중인 사람들은 주일에도 비행기, 택시, 철도, 정거장, 호텔, 식당 등의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많은 상업 시설들이 일 주일 내내 문을 열고 있으며 때로 그리스도인들도 수익을 올리기 위해 주일 영업의 유혹을 받는다. 이것은 목회상의 많은 문제를 의미하는 동시에 주일과 안식에 대한 교회의 새롭고 분명한 지침이 제공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대한 예수교 장로회(고신)는 안식일과 주일 문제에 대해 대단히 엄격한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한국 땅에 처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설립한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은 대부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신앙의 표준으로 소유한 자들로서 주일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 교회에 가장 엄격한 청교도적 주일관을 이식해 주었다. 그러한 역사적 배경은 고신의 보수적 신학과 영적 분위기와 합세하여 고신으로 하여금 한국 장로교회들 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안식일 전통을 유지하게 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와 수도권을 기점으로 타 교단들은 두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우리 교단 내의 교회들에서도 전통적인 주일 성수의 방식으로부터 떠나는 경향이 노출되고 있다.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 교단 교회들에서도 교회적으로는 아닐지 모르나 개인별로는 이미 주일성수의 모습이 과거와 같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은 암암리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과거와 같은 엄격한 안식일관과 주일 성수의 방식이 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감각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러한 전통적 이해와 관행에 결함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작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교단의 전통적 안식일관을 객관적으로 재점검하면서 그것을 개혁주의적인 안식일관, 나아가서는 성경적 안식일관과 비교 평가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했다.
주일에 대한 입장들의 스펙트럼
주일 성수와 관련해서 생각할 가장 중요한 사항은 제 사 계명과 주일의 관계 문제이다. 주일은 제 4 계명의 연장인가 아니면 완전히 별개의 것인가? 제 4 계명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문자적 구속력을 가지는가 아니면 모형이요 “그림자”인가? 교회사적으로 제 4 계명에 대한 입장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제 4 계명 전부가 모형이요 그림자로서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되었기 때문에 신약 시대에는 폐기되었다는 견해이다. 이것은 또 종교개혁 시대의 재세례파 집단을 풍미하던 견해로서 율법과 복음에 대한 날카로운 대립의 전제 하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십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으므로 제 4 계명은 폐기되었다고 믿는다. 안식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을 지킬 필요는 없다. 모든 날이 주의 날이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는 것은 날과 절기의 구분을 금지하는 신약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반대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것과 꼭 같지는 않으나 유사한 입장을 취하는 교회로 영국 국교회가 있다. 그들은 제 4 계명과 안식일은 그 기원이 모세에게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출애굽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명하신 특별한 조치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구약 시대가 끝나면서 제 4 계명에 대한 의무는 중지되었으며 안식일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일, 혹은 일요일은 기독교회의 완전히 별개의 제도이다. 그것은 안식일이 아니며 안식일의 계승도 아니다. 주일은 어떤 식으로도 제 4 계명에 의존하지 않는다. 즉 안식일과 주일 사이에는 절대적 단절이 있다. 재세례파와 이들의 차이는 전자가 주일을 지키는 것조차 부정하는 데 반해 후자는 그것은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영국 국교회 멤버들 사이에 있는 견해 차이는 주일의 권위의 최종적 원천에 관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제 2세기 초반이나 기껏해야 제 일 세기 말엽에 고대 교회가 만든 제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또 어떤 이들은 주일 제도가 최소한 사도적 기원을 가진 것이거나 아니면 그리스도의 기록되지 않은 지시에 근거한 것이라 믿는다. 영국 국교회는 그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이 견해에 의하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주일의 중요한 순서이기는 하나 일차적으로 주일은 육체적 정신적 휴식과 레크레이션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두 번째 견해는 흔히들 안식일주의(Sabbatarianism)라 부르는 입장이다. 이것은 제 4 계명이 문자적으로 복음 시대에도 전부 그대로 적용된다는 견해이다. 이 견해의 핵심적 주장은 제 4 계명이 단지 모세 율법의 한 부분일 뿐 아니라 십계명의 다른 요소들과 함께 창조의 규례(ordinance)라는 것이다. 안식교도들과 청교도들이 이 견해의 주창자들인데 그들에 의하면 안식일 제도는 단지 유대인들을 위한 제도가 아니며 신약 시대에 폐기된 것도 아니다. 주일을 성수하는 것은 보편적이고도 영속적인 의무이다. 사실상 안식일은 타락 이전에도 존재했다.
함께 두 번째 입장의 기본 노선에 동의하지만 안식교와 청교도들 사이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 그것은 전자가 제 7일이라는 요소까지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청교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 안식일이 제 7일에서 한 주의 첫 날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제외하면 제 4 계명의 나머지 다른 부분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그들은 믿는다. 이 안식일주의 입장은 종교개혁 직후에 대두되어 17세기부터 19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영국 청교도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 미국에서 안식일주의는 19세기까지 대부분의 주요 교단들이 흔들림없이 견지하는 신념이었으나 그 후부터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이 견해의 지지자들은 안식일을 합당히 지키는 방법이 온 종일을 공적 예배나 사적 경건을 위해 바치는 것이라 믿는다.
세째 견해는 제 4 계명의 모형적인 부분은 모두 폐지되었지만 그 실체는 아직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된다고 보는 입장인데 칼빈이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주일 성수와 관련하여 더 고찰해야 할 사항들은 제 4 계명의 “안식”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영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청교도들은 그것을 영적이고 정신적으로만 아니라 육체적 차원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칼빈은 안식의 문자적 의미는 폐기되었고 영적 의미만 남았다고 주장했다. 이 점에 관한 한 현대의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복음주의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
또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제 4 계명에 나오는 “이레에 하루”라는 원리와 이레 중 첫날이라는 요소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적 요소인가 아니면 실체적 요소인가?
마지막으로, 주일을 어떻게 성수해야 하는가? 주일에 운동이나 레크레이션을 즐기는 식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은 가한가? 특히 그것이 그리스도인들끼리 교제를 증진시키는 목적이라면 허용될 수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에 오직 종교적 활동이나 공적 사적 예배에만 집중해야 하는가? 먼저 교회사에서 이 문제들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시대 별로 살펴 보기로 하자.
A. 초대와 중세
주일에 대한 신비화의 시작
초대 교인들이 한 주의 첫 날에 예배드리게 된 것은 그 날 위대한 구원의 사건들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즉 예수께서 그 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셔서 제자들과 교제하셨다는 사실, 그리고 성령이 오순절에 강림하셨다는 사실이 그것들이다. 저스틴 마터는 부활, 성령 강림 뿐 아니라 천지 창조도 한 주의 첫 날에 시작되었다고 지적함으로써 주일의 “삼관왕”적 영광을 주장했다. 오리겐도 만나가 엿새동안 내리다가 안식일에는 내리지 않았다는 것은 그것이 처음 나타난 것이 주일이었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구약에서 안식일은 주일보다 열등했음을 보여 준다는 것이었다.
로돌프(W. Rordorf)에 의하면, 안식일-일요일 신학의 기원은 콘스탄틴 대제(284?-337)가 일요일에 공적 휴식의 날의 지위를 부여한 데서 발견될 수 있다고 한다. 그가 일요일에 사람들이 직업상의 일을 계속 수행하는 것을 금지시켰다는 것이다.
중세의 견해
중세는 안식일을 율법주의적이고 미신적으로 지킨 시대였다. 빌헬름 토마스는 중세의 신학자들이 제 4 계명에 호소하여 복음을 율법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구원의 선물과 보증을 교회가 통제하는 율법적 제도로 바꾼 결과는 “안식일주의의 율법주의”였다는 것이다. 폴 주잇에 의하면, 유대적 안식일과 주일 사이의 유비를 위한 초석을 놓은 사람은 어거스틴이었는데 그러한 관점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신학을 지배해 왔다. 교리문답을 통한 교육의 목적으로 어거스틴이 십계명을 사랑의 이중 명령의 강해로 사용한 430년 경부터 제 4 계명은 그리스도인들의 윤리 의식의 일부로 영원히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세가 진행됨에 따라 미신과 율법주의의 누룩은 주일의 신학을 더욱 더 깊이 잠식해 들어갔다. 제 8세기부터 10세기 사이 교회는 주일에 17가지의 축복이 임했다고 가르쳤다. 빛과 천사들의 창조, 홍해의 통과, 만나를 주심, 예수의 잉태, 출생과 세례, 가나의 혼인 잔치, 오천 명을 먹이심, 예루살렘 입성, 사도들의 임직, 밧모섬에서 요한이 계시를 받음, 심판주로서 그리스도의 재림, 역사의 마지막에 세상의 최종적 갱신 등이 그것들이다. 중세에 있어 이 전설적 일요일의 절정은 소위 “하늘로부터 온 편지”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된 편지의 내용은, 그가 “이전에 주신 명령대로” 주일에는 사람들이 모든 일을 금함으로써 그 날을 거룩하게 하라는 권면이었다. 사람들은 그 편지가 지상, 즉 예루살렘에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역사가들이 주후 788년에 일어났다고 기록하는 이 사건은 당시 골(Gaul)과 스페인 지방에 유포되어 있던 주일 이해를 반영한다.
중세에 있었던 주일에 관한 전설적 미신적 이야기들은 끝이 없다. “바울의 묵시록”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400년 이전에 작성되어 중세에 널리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 문서에 의하면 지옥에 있는 자들에 대한 형 집행이 주일에는 정지되었다. 또 9세기 아일랜드에는 주일에 가룟 유다가 천국을 방문하도록 형 집행 정지 처분을 받았다는 전설이 있었다. 또 어떤 전설에 의하면 주일에 이상한 새들이 나타났는데 그것들은 지옥에서 일시 풀려난 영혼들의 형상이라고 믿어졌다.
이러한 경건한 미신들은 쉽게 이교의 신화적 흐름과 결합되어 538년 오를레앙 대회에서 주일 신학으로 편입되었다. [프랑크족의 역사]에서 그레고리는 자주 “주의 날”(Dies Dominicus)을 언급하면서 주일을 범한 자들에게 임한 열 두 가지의 무서운 형벌적 기적을 소개했다. 그런데 그 기적들은 게르만 민담에서 발견되는 형벌적 기적들과 아주 흡사했다. 9-10세기 사이 아일랜드에서는 안식일이 토요일 저녁 기도로부터 시작해서 월요일 아침 기도 시간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에는 글을 쓰거나, 여행을 시작하거나, 물건을 팔거나, 계약을 맺거나, 소송하거나, 재판하거나, 머리털이나 수염을 짜르거나, 씻거나 목욕하거나, 목적없이 뛰거나, 옥수수를 갈거나, 빵을 굽거나, 나무를 짜르거나, 집청소를 하거나, 소나 말이나 사람들에게 짐을 지우거나, 노예의 일을 하거나, 적절한 사유없이 자기가 사는 지역의 경계를 벗어나거나 할 수 없었다.
세르빌의 이시도레(570-636)는 육체 노동의 중지라는 측면에서 안식일과 주일 사이의 병행을 강조했고 789년 샬마뉴 대제는 칙령을 통해 일요일에 모든 노동을 금지했다. 이러한 현상은 주일과 안식일의 관계를 규명하여 이레에 한번씩 주일을 지키는 이유에 대한 답변을 주려는 시도의 결과이기는 했지만 어거스틴이 강조했던 주일의 영적 의미를 상실하는 결과를 낳았다. 주후 700년에서 750년 사이 [클레멘트의 재판](The Judgment of Clement)은 다음과 같이 판결하고 있다. “만일 누군가가 부주의로 주일에 일을 했다면, 그것이 목욕이든 면도든 아니면 머리를 감는 것이든, 그는 7일간 참회를 해야 한다. 만일 그 짓을 다시 했다면 40일간 참회해야 하며, 만일 그가 그 날을 멸시해서 그 짓을 하고 개과천선하지 않는다면 그는 유다처럼 카톨릭 교회에서 추방되어야 한다.”
주일 성수에 관한 한 14세기에 살았던 아빌라의 주교 토스타투스의 지침은 중세의 규정들을 특징지웠던 그 자의적이고 자질구레한 태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거룩한 날들에 어떤 특별한 사당이나 성자에게로 여행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그 날 집으로 돌아온다면 그것은 범죄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견해
796년 아킬레자의 바울 (Paulinus of Aquileja)에 의해 소집된 대회는 안식일 명령은 육체적 노동의 중지라는 문자적 의미와, 범죄의 중지라는 영적 의미 양자를 모두 포함한다고 선언했다. 그리하여 신학적으로 알프릭(Aelfric, 955-1020)의 다음과 같은 입장이 중세를 풍미하게 되었다. “노예적인 일을 멀리하라. 즉 참으로 죄를 삼가라. 그것은 그것을 행하고 범하는 자들을 자주 노예 상태로 인도한다...‘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일을 영적으로 지킴으로써 우리 자신이 죄로부터 자유를 얻고 그 날이 우리 안에서 거룩해진다....” 이 가르침은 먼저 피터 롬바르드의 표현 속에서, 최종적으로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 정경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중세의 안식일 신학은 다른 많은 것들처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에서 그 성숙하고 완성된 형태를 드러내게 된다. 아퀴나스는 자연법인 십계명의 보편적 특성을 볼 때 제 4 계명도 우리에게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 4 계명이 부분적으로는 의식법이요 부분적으로는 도덕법이라 보았다. 그것의 도덕적 측면은 “우리 생의 어떤 부분을 종교적인 일들을 행하는 데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일요일은 무엇보다도 공중 예배를 드리는 데 할애되어야 하는 날이었다. 그것의 의식법적 측면들은 첫째, 이 목적을 위해 제 7일이 지정된 것은 하나님이 창조를 그치고 쉬신 것의 암시라는 것, 둘째, 이 날뿐 아니라 한 주간 내내 우리는 모든 죄악된 행위를 멀리하여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어야 한다는 것, 셋째, 그것은 우리가 언젠가 하늘 나라에서 하나님을 뵙게 될 때 발견하게 될 영원한 안식의 그림자라는 것이었다.
아퀴나스에 의하면, 일요일은 공예배의 날이므로 “노예적 노동”(opera servilia)은 금지되어야 했다. 그는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주일로 전환된 것은 사도 시대 교회의 결정이라 보았다. 어떤 학자들은 주일-안식일 문제에 관한 한 아퀴나스 이후에 추가된 새로운 것이 거의 없다고까지 주장한다. 후대 수 세기에 걸친 신학자들의 이론은 토마스 견해의 변주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퀴나스는 매 칠일에 가지는 부활의 신적 축제 교리를 전파했다. 이레에 하루는 하나님께 속한다는 원리 위에서 그는 고정된 시간을 하나님의 예배에 바치는 것이 자연법의 명령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예배의 시간과 빈도는 성문법인 제 4 계명에 의해 정해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루터의 견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중세의 안식일주의에 대한 반발ㄹ로서 주일 신학을 수립했다. 루터는 1520년에 쓴 [선행에 관한 논문]에서 십계명을 강해하면서 제 4 계명의 첫 번째 관심은 예배이지만 그 계명은 예배보다 훨씬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이 계명의 기초는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마치시고 쉬신 것이다. “그래서...우리는 엿새동안 하던 일을 쉰다. 이 안식일은 이제 일요일로 바뀌었다. 일요일은 안식일 (rest-day) 혹은 휴일(holiday), 혹은 거룩한 날(holy day)로 불리운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루터는 안식일을 창조의 규례로 여겨 주일과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인상을 준다. 이어서 루터는 일을 쉬는 데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육체적인 것이요 다른 하나는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제 4 계명도 두 가지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 안식의 이중적 의미를 포괄한다. 육체적 안식이 필요한 것은 신자들이 교회에 모여 미사를 드리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위함이다. 이 육체적 안식은 “옛날의 것으로서 표상(figure)”이다. "그러나”하고 루터는 어조를 바꾸면서 영적 안식의 측면이 보다 중요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제 진리가 성취되었기 때문에 모든 날이 거룩한 날들이며,..., 모든 날들이 일하는 날들”이라 선언함으로써 사실상 육체적 안식의 의미를 최소화한다.
영적인 안식은 하나님이 특별히 이 계명에서 의도하신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우리가 단지 우리의 노동과 사업을
쉴 뿐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하나님만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게
함으로써 어떤 것도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어서 루터는 많은 성구들의 인용을 통해, 영적인 안식은 자아에 대해 죽고 육신을 죽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달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루터의 안식일관은 이어서 살펴 보게 될 칼빈의 그것보다 더 과격하다. 그에 의하면, 일요일은 실제적 필요성을 가진 것으로서 교회가 정한 것이다. 이 점에서는 안식일이 주일로 전환되었다는 앞의 주장과 상충된다. 그것은 “불완전한 평신도들과 노동 계급”을 위한 배려, 즉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하기 위함이다. 즉 일요일 제도의 일차적 목적은 노동 계급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배울 수 있는 기회 제공이라는 교육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제들과 성직자들은 매일같이 미사를 드리고 항상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있으므로 그들에게는 안식일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된다. “현재로서 안식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하는 목적 외에는 필요하지 않으며 명령된 바도 아니다.” 육체적 안식 그 자체가 주일의 목적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529년에 쓴 [대요리문답]에서 루터는 제 4 계명의 문자적 의미는 단지 구약의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함으로 그 외적 명령은 의식법에 속한 것임을 주장한다. “외적 준수라는 점에서 그 [제 4] 계명은 오직 유대인들만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그것의 문자적 의미에서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약의 다른 규례들처럼 전적으로 외적 문제이다. 그것들은 특정한 문화, 사람들, 시대, 장소들에 국한된 것들이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 나아가 루터는 거의 10년 전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즉 주일 제도는 “지성적이고 학식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불필요하나 약하고 무지한 자들, 즉 노동 계급을 위한 것이다. 그들은 정기적인 육체적 휴식과 레크레이션의 시간이 필요하며 주일 외에는 예배를 위해 모일 시간과 기회가 없다. 주일이 노동 계급에게 휴식과 예배의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 사상은 칼빈에게 그대로 재현된다.
대요리문답과 같은 해에 씌인 소요리문답에서 루터는 제 4 계명의 의미를 오직 말씀 교육이라는 차원에서 발견한다. “제 4 계명의 의미가 무엇이뇨?” 하는 질문을 제기한 후 그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함으로 그의 말씀을 멸시하지 말고 그것을 거룩한 것으로 여기며 그것을 기꺼이 청종하고 배워야 한다.” 다소 엉뚱하게까지 보일 수 있지만 루터는 신약 시대 신자들에게 있어 제 4 계명이 특정한 날을 거룩하게 여기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단지 하나님 말씀을 거룩하게 여겨 그것을 듣고 배우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해석했다. 날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존중이 제 4 계명의 현대적 의미라는 것이었다.
루터에게는 주일이 다른 날보다 특별히 더 거룩하다는 개념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매일이 거룩한 날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로서 모든 날들을 거룩히 여겨 거룩한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 그것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것을 우리 마음과 우리 입술에 간직하는 것이다.” 한 날이 다른 날보다 나은 것도 아니며 예배는 매일 드려야 하는 것이므로 그 일을 행할 시간을 유대인들처럼 특정한 날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최소한 이레에 하루”는 그 목적을 위해 할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여드레나 열흘 만에 하루를 예배에 할애하는 것은, 그가 보기에, 예배드리고 말씀 배우는 목적을 위해 불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므로 “이레에 하루”라는 것은 7이라는 숫자 그 자체에 신비한 영적 신학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계산에서 꼭 7일이 그 최소한의 시간에 해당하는가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어쨌든 최소한 칠일에 하루는 예배를 위해 모여야 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배드리기 위해 자주 모일 형편에 있지 못한 “대중들”을 위해서였다. 주일의 본질적 목적은 아직 어린 자들과 대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이 날들의 진정한 직분은 말씀의 사역의 직분이며 젊은이들과 가난한 무리들을 위한 것이다.”
그 목적을 위해 고대에 일요일이 지정되었는데 비록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고 교회나 사람들이 정한 것이기는 하나 루터는 우리가 그 날을 변경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그 이유는 종교적이기보다는 실제적인 것이었다. 안식일이 “통일적으로” 지켜져야 “불필요한 변화로 인한 무질서”가 야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루터에게 있어서는 일요일 제도라는 것이 계시적 제도라기보다는 철저히 정치적이고 실용적인 것이었다. "\n일의 일부만 성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은 로마 교회에 대항하여, 8) 주일이 그 자체로서 다른 날들보다 더 거룩한 것은 아니라거나 그것은 구약의 안식일처럼 표지일 뿐이라는 주장은 스콜라주의자들에 대항한 것이다.
두 번째 카테고리, 즉 개혁 교회 내의 논란에서 보에티우스는 네 가지를 구분했다.
1) 한 주일 중 하루가 하나님에 대한 봉사에 성별되었다는 사실이 “신적 법”에 근거했는가 아니면 교회 제도에 근거했는가? 2) 한 주일의 첫날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안식일로 성별되었는가? 보에티우스에 따르면 이 문제에 대해 다시 네 가지 입장이 있었다.
a. 주일을 지키는 것은 관습의 문제이지 “신적 법”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입장.
b. 이 제도가 (질서를 위해) 교회의 결정에 기원한 것인가 혹은 그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법과 명령”에 따른 것인가 하는 질문은 별개로 하고 주일을 지키는 것은 사도 교회 혹은 사도들에 의해 명령된 것이라는 입장(행20:7; 고전16:12).
c. 사도들의 모범은 “신적 법”이며 우리에게 구속력이 있다는 입장(보에티우스 자신은 이 견해를 선호하여 교회 직분자들, 즉 장로들, 집사들, 교사들을 뽑는 것에서 그 유비를 찾았다).
d. (아메시우스에 의하면) 요한복음 20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이 그 날을 제정하셨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러나 보에티우스 자신은 이 주장이 명백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3. 안식일이 제정된 것은 천지 창조 때였는가 아니면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였는가? (보에티우스는 전자를 주장하나 고마루스는 그것을 부정했다).
4. 이스라엘의 안식일이 모형적 (즉, 의식법적) 성격을 소유하고 있는가? (어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그것이 전적으로 의식법이라 주장했고 어떤 이들은 제 4 계명이 부분적으로 의식법이며 부분적으로는 도덕법(aliquid ceremoniale et aliquid morale)이라고 주장했으나 보에티우스는 안식일이 전적으로 의식법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나아가서 보에티우스는 다른 “질문들”을 더 다루는데 우리가 다음의 점들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 설령 제 칠일로부터 첫째 날로의 전환이 교회의 결정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신적 안식일을 지킬 의무는 여전히 남아 있다. 2) 보에티우스는 특별히 주일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라는 사실을 부정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이 은혜의 행위를 기념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대한 보에티우스의 견해는 결국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의 그것과 유사했다. 그는 제 4 계명이 부분적으로 도덕법이며 부분적으로 의식법이라는 사실을 부정했다. 그가 보기에 그것은 전적으로 도덕법이었다. 그것은 바로 영국 청교도들의 전형적 안식일관이었다.
---------------------------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주일~]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주일-]
--------------------------------------------------------------------------------------------
이광호 목사의 글과 고신 신대원 교수회의 글이 어떠한 차이점이 있으며,
총공회의 '주일관'과 서로 어떠한 연관성 및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바쁘신 가운데 귀찮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
안식일과 주일 문제의 연구
양낙흥
주일 문제의 긴박성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전 세계에 걸쳐 세속주의의 물결이 범람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산업화되고 기술 문명이 발달된 거의 모든 사회는 현재 주 5일제 근무를 채택하고 있으며 자가용 승용차의 보편화로 인해 주말은 여행, 휴가, 그리고 여가 선용의 기회로 인식되는 경향이 점증하고 있다. 현대 생활의 복잡성, 경제 각 부문의 상호 의존, 서비스와 전기, 수도 등의 중단없는 흐름에 대한 의존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공장에서는 이제 주말에 최소한 모니터라도 되어야 하는 기계들이 도입되었으며 일반 가정에서도 전기, 난방, 냉방, 전화,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 신문 등을 한 주간 내내 요청하고 있다. 그 중 어떤 것들은 실제로 복음 전파라는 기독교적 목적을 위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동 중인 사람들은 주일에도 비행기, 택시, 철도, 정거장, 호텔, 식당 등의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많은 상업 시설들이 일 주일 내내 문을 열고 있으며 때로 그리스도인들도 수익을 올리기 위해 주일 영업의 유혹을 받는다. 이것은 목회상의 많은 문제를 의미하는 동시에 주일과 안식에 대한 교회의 새롭고 분명한 지침이 제공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대한 예수교 장로회(고신)는 안식일과 주일 문제에 대해 대단히 엄격한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한국 땅에 처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설립한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은 대부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신앙의 표준으로 소유한 자들로서 주일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 교회에 가장 엄격한 청교도적 주일관을 이식해 주었다. 그러한 역사적 배경은 고신의 보수적 신학과 영적 분위기와 합세하여 고신으로 하여금 한국 장로교회들 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안식일 전통을 유지하게 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와 수도권을 기점으로 타 교단들은 두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우리 교단 내의 교회들에서도 전통적인 주일 성수의 방식으로부터 떠나는 경향이 노출되고 있다.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 교단 교회들에서도 교회적으로는 아닐지 모르나 개인별로는 이미 주일성수의 모습이 과거와 같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은 암암리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과거와 같은 엄격한 안식일관과 주일 성수의 방식이 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감각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러한 전통적 이해와 관행에 결함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작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교단의 전통적 안식일관을 객관적으로 재점검하면서 그것을 개혁주의적인 안식일관, 나아가서는 성경적 안식일관과 비교 평가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했다.
주일에 대한 입장들의 스펙트럼
주일 성수와 관련해서 생각할 가장 중요한 사항은 제 사 계명과 주일의 관계 문제이다. 주일은 제 4 계명의 연장인가 아니면 완전히 별개의 것인가? 제 4 계명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문자적 구속력을 가지는가 아니면 모형이요 “그림자”인가? 교회사적으로 제 4 계명에 대한 입장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제 4 계명 전부가 모형이요 그림자로서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되었기 때문에 신약 시대에는 폐기되었다는 견해이다. 이것은 또 종교개혁 시대의 재세례파 집단을 풍미하던 견해로서 율법과 복음에 대한 날카로운 대립의 전제 하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십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으므로 제 4 계명은 폐기되었다고 믿는다. 안식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을 지킬 필요는 없다. 모든 날이 주의 날이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는 것은 날과 절기의 구분을 금지하는 신약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반대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것과 꼭 같지는 않으나 유사한 입장을 취하는 교회로 영국 국교회가 있다. 그들은 제 4 계명과 안식일은 그 기원이 모세에게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출애굽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명하신 특별한 조치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구약 시대가 끝나면서 제 4 계명에 대한 의무는 중지되었으며 안식일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일, 혹은 일요일은 기독교회의 완전히 별개의 제도이다. 그것은 안식일이 아니며 안식일의 계승도 아니다. 주일은 어떤 식으로도 제 4 계명에 의존하지 않는다. 즉 안식일과 주일 사이에는 절대적 단절이 있다. 재세례파와 이들의 차이는 전자가 주일을 지키는 것조차 부정하는 데 반해 후자는 그것은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영국 국교회 멤버들 사이에 있는 견해 차이는 주일의 권위의 최종적 원천에 관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제 2세기 초반이나 기껏해야 제 일 세기 말엽에 고대 교회가 만든 제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또 어떤 이들은 주일 제도가 최소한 사도적 기원을 가진 것이거나 아니면 그리스도의 기록되지 않은 지시에 근거한 것이라 믿는다. 영국 국교회는 그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이 견해에 의하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주일의 중요한 순서이기는 하나 일차적으로 주일은 육체적 정신적 휴식과 레크레이션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두 번째 견해는 흔히들 안식일주의(Sabbatarianism)라 부르는 입장이다. 이것은 제 4 계명이 문자적으로 복음 시대에도 전부 그대로 적용된다는 견해이다. 이 견해의 핵심적 주장은 제 4 계명이 단지 모세 율법의 한 부분일 뿐 아니라 십계명의 다른 요소들과 함께 창조의 규례(ordinance)라는 것이다. 안식교도들과 청교도들이 이 견해의 주창자들인데 그들에 의하면 안식일 제도는 단지 유대인들을 위한 제도가 아니며 신약 시대에 폐기된 것도 아니다. 주일을 성수하는 것은 보편적이고도 영속적인 의무이다. 사실상 안식일은 타락 이전에도 존재했다.
함께 두 번째 입장의 기본 노선에 동의하지만 안식교와 청교도들 사이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 그것은 전자가 제 7일이라는 요소까지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청교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 안식일이 제 7일에서 한 주의 첫 날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제외하면 제 4 계명의 나머지 다른 부분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그들은 믿는다. 이 안식일주의 입장은 종교개혁 직후에 대두되어 17세기부터 19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영국 청교도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 미국에서 안식일주의는 19세기까지 대부분의 주요 교단들이 흔들림없이 견지하는 신념이었으나 그 후부터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이 견해의 지지자들은 안식일을 합당히 지키는 방법이 온 종일을 공적 예배나 사적 경건을 위해 바치는 것이라 믿는다.
세째 견해는 제 4 계명의 모형적인 부분은 모두 폐지되었지만 그 실체는 아직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된다고 보는 입장인데 칼빈이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주일 성수와 관련하여 더 고찰해야 할 사항들은 제 4 계명의 “안식”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영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청교도들은 그것을 영적이고 정신적으로만 아니라 육체적 차원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칼빈은 안식의 문자적 의미는 폐기되었고 영적 의미만 남았다고 주장했다. 이 점에 관한 한 현대의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복음주의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
또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제 4 계명에 나오는 “이레에 하루”라는 원리와 이레 중 첫날이라는 요소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적 요소인가 아니면 실체적 요소인가?
마지막으로, 주일을 어떻게 성수해야 하는가? 주일에 운동이나 레크레이션을 즐기는 식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은 가한가? 특히 그것이 그리스도인들끼리 교제를 증진시키는 목적이라면 허용될 수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에 오직 종교적 활동이나 공적 사적 예배에만 집중해야 하는가? 먼저 교회사에서 이 문제들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시대 별로 살펴 보기로 하자.
A. 초대와 중세
주일에 대한 신비화의 시작
초대 교인들이 한 주의 첫 날에 예배드리게 된 것은 그 날 위대한 구원의 사건들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즉 예수께서 그 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셔서 제자들과 교제하셨다는 사실, 그리고 성령이 오순절에 강림하셨다는 사실이 그것들이다. 저스틴 마터는 부활, 성령 강림 뿐 아니라 천지 창조도 한 주의 첫 날에 시작되었다고 지적함으로써 주일의 “삼관왕”적 영광을 주장했다. 오리겐도 만나가 엿새동안 내리다가 안식일에는 내리지 않았다는 것은 그것이 처음 나타난 것이 주일이었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구약에서 안식일은 주일보다 열등했음을 보여 준다는 것이었다.
로돌프(W. Rordorf)에 의하면, 안식일-일요일 신학의 기원은 콘스탄틴 대제(284?-337)가 일요일에 공적 휴식의 날의 지위를 부여한 데서 발견될 수 있다고 한다. 그가 일요일에 사람들이 직업상의 일을 계속 수행하는 것을 금지시켰다는 것이다.
중세의 견해
중세는 안식일을 율법주의적이고 미신적으로 지킨 시대였다. 빌헬름 토마스는 중세의 신학자들이 제 4 계명에 호소하여 복음을 율법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구원의 선물과 보증을 교회가 통제하는 율법적 제도로 바꾼 결과는 “안식일주의의 율법주의”였다는 것이다. 폴 주잇에 의하면, 유대적 안식일과 주일 사이의 유비를 위한 초석을 놓은 사람은 어거스틴이었는데 그러한 관점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신학을 지배해 왔다. 교리문답을 통한 교육의 목적으로 어거스틴이 십계명을 사랑의 이중 명령의 강해로 사용한 430년 경부터 제 4 계명은 그리스도인들의 윤리 의식의 일부로 영원히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세가 진행됨에 따라 미신과 율법주의의 누룩은 주일의 신학을 더욱 더 깊이 잠식해 들어갔다. 제 8세기부터 10세기 사이 교회는 주일에 17가지의 축복이 임했다고 가르쳤다. 빛과 천사들의 창조, 홍해의 통과, 만나를 주심, 예수의 잉태, 출생과 세례, 가나의 혼인 잔치, 오천 명을 먹이심, 예루살렘 입성, 사도들의 임직, 밧모섬에서 요한이 계시를 받음, 심판주로서 그리스도의 재림, 역사의 마지막에 세상의 최종적 갱신 등이 그것들이다. 중세에 있어 이 전설적 일요일의 절정은 소위 “하늘로부터 온 편지”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된 편지의 내용은, 그가 “이전에 주신 명령대로” 주일에는 사람들이 모든 일을 금함으로써 그 날을 거룩하게 하라는 권면이었다. 사람들은 그 편지가 지상, 즉 예루살렘에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역사가들이 주후 788년에 일어났다고 기록하는 이 사건은 당시 골(Gaul)과 스페인 지방에 유포되어 있던 주일 이해를 반영한다.
중세에 있었던 주일에 관한 전설적 미신적 이야기들은 끝이 없다. “바울의 묵시록”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400년 이전에 작성되어 중세에 널리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 문서에 의하면 지옥에 있는 자들에 대한 형 집행이 주일에는 정지되었다. 또 9세기 아일랜드에는 주일에 가룟 유다가 천국을 방문하도록 형 집행 정지 처분을 받았다는 전설이 있었다. 또 어떤 전설에 의하면 주일에 이상한 새들이 나타났는데 그것들은 지옥에서 일시 풀려난 영혼들의 형상이라고 믿어졌다.
이러한 경건한 미신들은 쉽게 이교의 신화적 흐름과 결합되어 538년 오를레앙 대회에서 주일 신학으로 편입되었다. [프랑크족의 역사]에서 그레고리는 자주 “주의 날”(Dies Dominicus)을 언급하면서 주일을 범한 자들에게 임한 열 두 가지의 무서운 형벌적 기적을 소개했다. 그런데 그 기적들은 게르만 민담에서 발견되는 형벌적 기적들과 아주 흡사했다. 9-10세기 사이 아일랜드에서는 안식일이 토요일 저녁 기도로부터 시작해서 월요일 아침 기도 시간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에는 글을 쓰거나, 여행을 시작하거나, 물건을 팔거나, 계약을 맺거나, 소송하거나, 재판하거나, 머리털이나 수염을 짜르거나, 씻거나 목욕하거나, 목적없이 뛰거나, 옥수수를 갈거나, 빵을 굽거나, 나무를 짜르거나, 집청소를 하거나, 소나 말이나 사람들에게 짐을 지우거나, 노예의 일을 하거나, 적절한 사유없이 자기가 사는 지역의 경계를 벗어나거나 할 수 없었다.
세르빌의 이시도레(570-636)는 육체 노동의 중지라는 측면에서 안식일과 주일 사이의 병행을 강조했고 789년 샬마뉴 대제는 칙령을 통해 일요일에 모든 노동을 금지했다. 이러한 현상은 주일과 안식일의 관계를 규명하여 이레에 한번씩 주일을 지키는 이유에 대한 답변을 주려는 시도의 결과이기는 했지만 어거스틴이 강조했던 주일의 영적 의미를 상실하는 결과를 낳았다. 주후 700년에서 750년 사이 [클레멘트의 재판](The Judgment of Clement)은 다음과 같이 판결하고 있다. “만일 누군가가 부주의로 주일에 일을 했다면, 그것이 목욕이든 면도든 아니면 머리를 감는 것이든, 그는 7일간 참회를 해야 한다. 만일 그 짓을 다시 했다면 40일간 참회해야 하며, 만일 그가 그 날을 멸시해서 그 짓을 하고 개과천선하지 않는다면 그는 유다처럼 카톨릭 교회에서 추방되어야 한다.”
주일 성수에 관한 한 14세기에 살았던 아빌라의 주교 토스타투스의 지침은 중세의 규정들을 특징지웠던 그 자의적이고 자질구레한 태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거룩한 날들에 어떤 특별한 사당이나 성자에게로 여행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그 날 집으로 돌아온다면 그것은 범죄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견해
796년 아킬레자의 바울 (Paulinus of Aquileja)에 의해 소집된 대회는 안식일 명령은 육체적 노동의 중지라는 문자적 의미와, 범죄의 중지라는 영적 의미 양자를 모두 포함한다고 선언했다. 그리하여 신학적으로 알프릭(Aelfric, 955-1020)의 다음과 같은 입장이 중세를 풍미하게 되었다. “노예적인 일을 멀리하라. 즉 참으로 죄를 삼가라. 그것은 그것을 행하고 범하는 자들을 자주 노예 상태로 인도한다...‘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일을 영적으로 지킴으로써 우리 자신이 죄로부터 자유를 얻고 그 날이 우리 안에서 거룩해진다....” 이 가르침은 먼저 피터 롬바르드의 표현 속에서, 최종적으로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 정경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중세의 안식일 신학은 다른 많은 것들처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에서 그 성숙하고 완성된 형태를 드러내게 된다. 아퀴나스는 자연법인 십계명의 보편적 특성을 볼 때 제 4 계명도 우리에게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 4 계명이 부분적으로는 의식법이요 부분적으로는 도덕법이라 보았다. 그것의 도덕적 측면은 “우리 생의 어떤 부분을 종교적인 일들을 행하는 데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일요일은 무엇보다도 공중 예배를 드리는 데 할애되어야 하는 날이었다. 그것의 의식법적 측면들은 첫째, 이 목적을 위해 제 7일이 지정된 것은 하나님이 창조를 그치고 쉬신 것의 암시라는 것, 둘째, 이 날뿐 아니라 한 주간 내내 우리는 모든 죄악된 행위를 멀리하여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어야 한다는 것, 셋째, 그것은 우리가 언젠가 하늘 나라에서 하나님을 뵙게 될 때 발견하게 될 영원한 안식의 그림자라는 것이었다.
아퀴나스에 의하면, 일요일은 공예배의 날이므로 “노예적 노동”(opera servilia)은 금지되어야 했다. 그는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주일로 전환된 것은 사도 시대 교회의 결정이라 보았다. 어떤 학자들은 주일-안식일 문제에 관한 한 아퀴나스 이후에 추가된 새로운 것이 거의 없다고까지 주장한다. 후대 수 세기에 걸친 신학자들의 이론은 토마스 견해의 변주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퀴나스는 매 칠일에 가지는 부활의 신적 축제 교리를 전파했다. 이레에 하루는 하나님께 속한다는 원리 위에서 그는 고정된 시간을 하나님의 예배에 바치는 것이 자연법의 명령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예배의 시간과 빈도는 성문법인 제 4 계명에 의해 정해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루터의 견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중세의 안식일주의에 대한 반발ㄹ로서 주일 신학을 수립했다. 루터는 1520년에 쓴 [선행에 관한 논문]에서 십계명을 강해하면서 제 4 계명의 첫 번째 관심은 예배이지만 그 계명은 예배보다 훨씬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이 계명의 기초는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마치시고 쉬신 것이다. “그래서...우리는 엿새동안 하던 일을 쉰다. 이 안식일은 이제 일요일로 바뀌었다. 일요일은 안식일 (rest-day) 혹은 휴일(holiday), 혹은 거룩한 날(holy day)로 불리운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루터는 안식일을 창조의 규례로 여겨 주일과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인상을 준다. 이어서 루터는 일을 쉬는 데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육체적인 것이요 다른 하나는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제 4 계명도 두 가지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 안식의 이중적 의미를 포괄한다. 육체적 안식이 필요한 것은 신자들이 교회에 모여 미사를 드리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위함이다. 이 육체적 안식은 “옛날의 것으로서 표상(figure)”이다. "그러나”하고 루터는 어조를 바꾸면서 영적 안식의 측면이 보다 중요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제 진리가 성취되었기 때문에 모든 날이 거룩한 날들이며,..., 모든 날들이 일하는 날들”이라 선언함으로써 사실상 육체적 안식의 의미를 최소화한다.
영적인 안식은 하나님이 특별히 이 계명에서 의도하신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우리가 단지 우리의 노동과 사업을
쉴 뿐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하나님만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게
함으로써 어떤 것도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어서 루터는 많은 성구들의 인용을 통해, 영적인 안식은 자아에 대해 죽고 육신을 죽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달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루터의 안식일관은 이어서 살펴 보게 될 칼빈의 그것보다 더 과격하다. 그에 의하면, 일요일은 실제적 필요성을 가진 것으로서 교회가 정한 것이다. 이 점에서는 안식일이 주일로 전환되었다는 앞의 주장과 상충된다. 그것은 “불완전한 평신도들과 노동 계급”을 위한 배려, 즉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하기 위함이다. 즉 일요일 제도의 일차적 목적은 노동 계급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배울 수 있는 기회 제공이라는 교육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제들과 성직자들은 매일같이 미사를 드리고 항상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있으므로 그들에게는 안식일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된다. “현재로서 안식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하는 목적 외에는 필요하지 않으며 명령된 바도 아니다.” 육체적 안식 그 자체가 주일의 목적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529년에 쓴 [대요리문답]에서 루터는 제 4 계명의 문자적 의미는 단지 구약의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함으로 그 외적 명령은 의식법에 속한 것임을 주장한다. “외적 준수라는 점에서 그 [제 4] 계명은 오직 유대인들만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그것의 문자적 의미에서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약의 다른 규례들처럼 전적으로 외적 문제이다. 그것들은 특정한 문화, 사람들, 시대, 장소들에 국한된 것들이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 나아가 루터는 거의 10년 전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즉 주일 제도는 “지성적이고 학식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불필요하나 약하고 무지한 자들, 즉 노동 계급을 위한 것이다. 그들은 정기적인 육체적 휴식과 레크레이션의 시간이 필요하며 주일 외에는 예배를 위해 모일 시간과 기회가 없다. 주일이 노동 계급에게 휴식과 예배의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 사상은 칼빈에게 그대로 재현된다.
대요리문답과 같은 해에 씌인 소요리문답에서 루터는 제 4 계명의 의미를 오직 말씀 교육이라는 차원에서 발견한다. “제 4 계명의 의미가 무엇이뇨?” 하는 질문을 제기한 후 그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함으로 그의 말씀을 멸시하지 말고 그것을 거룩한 것으로 여기며 그것을 기꺼이 청종하고 배워야 한다.” 다소 엉뚱하게까지 보일 수 있지만 루터는 신약 시대 신자들에게 있어 제 4 계명이 특정한 날을 거룩하게 여기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단지 하나님 말씀을 거룩하게 여겨 그것을 듣고 배우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해석했다. 날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존중이 제 4 계명의 현대적 의미라는 것이었다.
루터에게는 주일이 다른 날보다 특별히 더 거룩하다는 개념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매일이 거룩한 날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로서 모든 날들을 거룩히 여겨 거룩한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 그것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것을 우리 마음과 우리 입술에 간직하는 것이다.” 한 날이 다른 날보다 나은 것도 아니며 예배는 매일 드려야 하는 것이므로 그 일을 행할 시간을 유대인들처럼 특정한 날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최소한 이레에 하루”는 그 목적을 위해 할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여드레나 열흘 만에 하루를 예배에 할애하는 것은, 그가 보기에, 예배드리고 말씀 배우는 목적을 위해 불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므로 “이레에 하루”라는 것은 7이라는 숫자 그 자체에 신비한 영적 신학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계산에서 꼭 7일이 그 최소한의 시간에 해당하는가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어쨌든 최소한 칠일에 하루는 예배를 위해 모여야 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배드리기 위해 자주 모일 형편에 있지 못한 “대중들”을 위해서였다. 주일의 본질적 목적은 아직 어린 자들과 대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이 날들의 진정한 직분은 말씀의 사역의 직분이며 젊은이들과 가난한 무리들을 위한 것이다.”
그 목적을 위해 고대에 일요일이 지정되었는데 비록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고 교회나 사람들이 정한 것이기는 하나 루터는 우리가 그 날을 변경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그 이유는 종교적이기보다는 실제적인 것이었다. 안식일이 “통일적으로” 지켜져야 “불필요한 변화로 인한 무질서”가 야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루터에게 있어서는 일요일 제도라는 것이 계시적 제도라기보다는 철저히 정치적이고 실용적인 것이었다. "\n일의 일부만 성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은 로마 교회에 대항하여, 8) 주일이 그 자체로서 다른 날들보다 더 거룩한 것은 아니라거나 그것은 구약의 안식일처럼 표지일 뿐이라는 주장은 스콜라주의자들에 대항한 것이다.
두 번째 카테고리, 즉 개혁 교회 내의 논란에서 보에티우스는 네 가지를 구분했다.
1) 한 주일 중 하루가 하나님에 대한 봉사에 성별되었다는 사실이 “신적 법”에 근거했는가 아니면 교회 제도에 근거했는가? 2) 한 주일의 첫날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안식일로 성별되었는가? 보에티우스에 따르면 이 문제에 대해 다시 네 가지 입장이 있었다.
a. 주일을 지키는 것은 관습의 문제이지 “신적 법”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입장.
b. 이 제도가 (질서를 위해) 교회의 결정에 기원한 것인가 혹은 그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법과 명령”에 따른 것인가 하는 질문은 별개로 하고 주일을 지키는 것은 사도 교회 혹은 사도들에 의해 명령된 것이라는 입장(행20:7; 고전16:12).
c. 사도들의 모범은 “신적 법”이며 우리에게 구속력이 있다는 입장(보에티우스 자신은 이 견해를 선호하여 교회 직분자들, 즉 장로들, 집사들, 교사들을 뽑는 것에서 그 유비를 찾았다).
d. (아메시우스에 의하면) 요한복음 20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이 그 날을 제정하셨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러나 보에티우스 자신은 이 주장이 명백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3. 안식일이 제정된 것은 천지 창조 때였는가 아니면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였는가? (보에티우스는 전자를 주장하나 고마루스는 그것을 부정했다).
4. 이스라엘의 안식일이 모형적 (즉, 의식법적) 성격을 소유하고 있는가? (어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그것이 전적으로 의식법이라 주장했고 어떤 이들은 제 4 계명이 부분적으로 의식법이며 부분적으로는 도덕법(aliquid ceremoniale et aliquid morale)이라고 주장했으나 보에티우스는 안식일이 전적으로 의식법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나아가서 보에티우스는 다른 “질문들”을 더 다루는데 우리가 다음의 점들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 설령 제 칠일로부터 첫째 날로의 전환이 교회의 결정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신적 안식일을 지킬 의무는 여전히 남아 있다. 2) 보에티우스는 특별히 주일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라는 사실을 부정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이 은혜의 행위를 기념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대한 보에티우스의 견해는 결국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의 그것과 유사했다. 그는 제 4 계명이 부분적으로 도덕법이며 부분적으로 의식법이라는 사실을 부정했다. 그가 보기에 그것은 전적으로 도덕법이었다. 그것은 바로 영국 청교도들의 전형적 안식일관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