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중심부에서 멀어지는 주장들은 주로 세상 자연계시에서 참고하셨으면

문의답변      


교회의 중심부에서 멀어지는 주장들은 주로 세상 자연계시에서 참고하셨으면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알미니안~]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알미니안-]/[-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근본주의-]


--------------------------------------------------------------------------------------------


1.'자유주의'는 그 주장과 동기와 표현이 어떠하든지, 부처를 믿고도 천국을 가자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가만히 넘어온 자들이며 거짓선지자이며 지옥 밑바닥에서 부처와 함께 자신들의 본색을 드러내고 고통을 받을 부류들입니다. 그분들도 입이 있어 말은 할 줄 알고, 그분들도 멍청하게 이마에다가 '이단설'이라고 적지는 않습니다. 성경을 진정 진리로 해석하고 그 깊은 뜻을 바로 알자고 시작한 면을 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2.'자유주의'의 논리는 듣지 않고 상대하지 않는 것이 그들에게도 그리고 자기에게도 복입니다.


그들의 말을 듣다보면 결국 그들에게로 물이 들고 그들의 원하는 대로 넘어갑니다. 이것이 아담을 꾀든 창세기 3장에 뱀의 지혜요 반거짓말까지를 사용하는 귀신의 가장 오래 된 전법입니다. 그때 아담과 하와가 해야 했던 일은, 뱀의 말을 논리적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호통을 쳐서 물리치는 것이 아담이 해야 했던 일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뱀과 논쟁을 벌였습니다. 뱀과 상대해서 논쟁을 벌렸다는 그 사실 자체만 해도 뱀은 밑져야 본전이고, 아담과 하와는 잘해야 본전도 못찾는 장사를 한 것입니다.


싸움은, 싸워서 이길 힘도 가져야 하지만, 동시에 가져야 할 것은 싸울 싸움인지 싸우지도 말아야 할 싸움인지를 근본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폭넓은 시야입니다. 자유주의가 별별 말을 다 해도 그들의 마지막 나간 결론은 부처를 믿어도 천국을 갈 수 있다는 것이고, 그들이 그처럼 성경의 참 진리를 살펴보자고 하는데 결국 그들은 성경의 오류만 연구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예수를 부인하고 성경의 모순과 유오를 찾는 사람들이니 그들은 근본적으로 불신자의 특성을 다 가지고 있는 이들입니다. 따라서 자기와 나이나 여러 관계에서 차이가 많이 나면 한 두 번 가르쳐 보고, 그래도 듣지 않거든 산 속에 가서 도를 더 닦고 오라고 하며 세월 속에 맡겨놓는 것이 좋습니다. 만일 그렇게 만만하게 타이르고 책망할 사이가 아니라면 한 두 번 권한 뒤에 그 사람과 대화를 하지 않고 피하는 것이 제일 큰 지혜입니다. 이런 면에서 이번 글은 한 번 또는 두 번 상대할 글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여기 답변자의 근본 방향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3.'자유주의'와 생사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 '근본주의'입니다. 그들의 아쉬운 면은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분들의 신앙에 대한 열심과 진심은 높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은 우리가 부러워하고 본받을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주의 신앙을 부르짖는 이들은 한결같이 '자유주의' 신앙과 싸워 이겨야 한다고 분연히 일어서는 그 열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 열심을 두고 아쉬운 것이 아니고 그 열심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하여 아쉬운 것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자유주의'와 싸워 이기겠다는 열심과 의지는 좋은데, 역사적으로 근본주의 신앙에 유명한 학자들과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자유주의와 논리적으로 맞붙어 이기겠다며 자유주의의 논증을 자유주의자들이 연구하고 접근하는 그런 인간적 방법과 수단으로 맞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방법론 때문에 자유주의는 자기들의 논리가 먹히면 통째로 먹고, 안 먹히면 상대방들이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헛되이 할 것이므로 떨어지는 부스러기도 만만치 않게 수입으로 챙깁니다.


하나님이 없다 하는 이들과 논리 싸움을 하는 이들만큼 어리석은 이들이 없습니다.

성경이 틀렸다는 것을 단정해놓고 그 문제로 따지기 위해 그들과 마주 않는 것은 절반은 지고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들과 상대할 때는, 한 두 번 정도 꼭 할 말만 해놓고, 그다음부터는 '안 믿어지거든 믿지 마시라' 하면 됩니다. 안 믿어지는 것을 인간이 설득으로 상대를 믿어지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본구원은 전적 은혜라는 이치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알미니우스라는 인본주의 괴수가 자유주의 신학의 물길을 터놓았는데 알미니우스적인 접근법으로 알미니우스 수하들을 이기려 한다면 이미 진 싸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 교회의 형편이 결과적으로 답변자의 주장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4.자유주의의 논리 중 일부분을 질문자께서 윗글에서 소개했습니다.


말을 묘하게 한다고 개가 사람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못한다고 사람이 개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을 '문화적 역사적 배경'으로 접근하자는 그 말이야 번듯하고 아름다운데, 그 뒤에 깔려 있는 의도가 무엇이냐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마치 여자를 꾀워 제 것으로 삼기 위해 기생 오라비 같은 놈팽이가 온갖 아름다운 말로 청혼을 하는데 그 말을 과연 믿을 것이냐 말 것이냐로 고민하는 미련한데 얼굴이 반반한 계집년과 같다 하겠습니다.


경험 많은 부모가 사랑하는 딸을 위해 그 놈 말을 듣지 말라 하지만 철없는 계집년의 귀와 눈이 그 전문가와 마주 앉아 '진짜 날 행복하게 해 줄 것인가요?' 이렇게 토론을 하게 된다면 이미 끝났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초기 성경해석가들이 교리적 해석에 치중하다가 역사적 문학적 오류를 범한 경우가 있다는 것이야 자유주의자들이 말해 주지 않아도 그런 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야 상식입니다. 반론을 한다면 자유주의론자들이 그렇게 강조하고 시작하는 그들의 문학적 역사적 해석은 오류가 없었는가요? 그들의 책을 찾아보고 연구할 것도 없이, 그들이 어느 성구 하나를 해석할 때 그들의 주장이 전원일치인가 아니면 여러 학설이 있는지만 살펴보면 됩니다. 여러 학설로 나뉘지 않았다면 그것은 학문적이 아니고 합리적도 아니며 그것은 맹신적입니다. 자유주의라는 이름에 반대되는 현상입니다. 만일 한 성구를 두고 여러 학설로 나뉜다면 우리는 눈 딱 감고 자유주의의 문학적 역사적 해석은 오류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학설이 갈리면 아무리 훌륭한 주장이 있다 해도 하나는 옳고 나머지는 다 틀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기록한 예수님의 제자들 자체도 오류가 엄청나게 많았다고 성경 자체에서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하물며 12 사도들도 평생에 그렇게 오류와 실수 투성이로 살았는데 그 후 시대 속사도 교부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칼빈인들 그의 성경 해석 전체를 정밀 탐구한다면, 오류가 없겠습니까?


자유주의자들의 말도 안되는 논리는, 칼빈의 말이 틀렸다고 천주교가 옳다고 단정하고 나가는 식입니다. 칼빈의 말이 틀렸다고 천국이 없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증명하려고 나가는 식입니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은 신앙은 없고 교회는 몇 번 따라 다녀 본 말쟁이들 주둥아리들이 몇 번 들어보고 제 생각에 떠오르는 여러 아이디어를 생각나는 대로 불쑥 불쑥 아무 데서나 끄집어내면서 그것을 학설이라 하고 학문의 자유로 포장하며 연구 대상으로 한번 살펴보자고 하고 있습니다.


평생 모아서 지은 집에 5세 아이가 불을 붙이면 정말 타는가 보자며 성냥으로 집에 불을 질러보자고 제의한다면, 부모가 매를 들고 때려서 고쳐야겠습니까 아니면 그 아이의 인격과 개성과 자유성을 존중하여 그렇게 해봐야겠습니까? 물론 데리고 타이르며 모형집을 태우는 등 몇 가지 해볼 수도 있지만, 그 아이 머리속에서 생각나는 대로 언행을 계속한다면 정신병원 입원 문제로 고민할 일일 것입니다.


5.이미 '역사적 문학적' 해석에 대하여는 반복적으로 질문하신 분께서 또 질문하신 것 같습니다.


질문자께서는 주일학생도 아니고 또 답변자가 전도하여 품에 안고 가르쳐야 할 전면 책임까지는 느끼지 못하는 평범한 질문자입니다. 이곳을 찾아서 '문학적 역사적' 성경해석이라는 자유주의론자들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반복해서 질문하시는 것은, 질문자께서는 아무리 순수하다 하지만, 이미 자유주의론이 질문자를 삼켜 자유하고 있되 그 자유하는 정도가 어느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질문자로서는 자유주의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마지막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는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답변합니다.


'역사적 문학적' 성경해석이라는 면에 대하여는 이미 이곳 문답방 등에서 몇 번 답변했고 그 정도 답변이면 질문자 외에 어떤 분이라도 그 면에 대한 의문은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루 밥 3끼를 먹지 못해 영양실조가 걸린 거지들이 다리 밑에 모여앉았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한끼라도 좋은 식사를 할 연구를 해야지, 그 시간에 먹지 못할 독초를 쳐다보며 왜 그것이 독초이며 독이 생성되는 약리작용의 과정이 무엇인지를 살펴서야 되겠습니까? 그것은 배부른 대학의 교수들이 재미삼아 해 보는 실험이어야 합니다. 한 건 발견하면 스타가 되는 것이고 발견하지 못하면 인류를 위해 심오한 것을 연구한다며 폼을 잡으면 교수답게 보일 것이니, 이래도 저래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곳은 말세를 당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양식을 삼지 못하고 오늘 말세에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에 목이 갈하여 기갈에 지친 교인들끼리 모여앉아 한끼라도 잘 얻어먹고 이 어려운 때를 굶어죽지 않고 버텨내다가 주님 맞을까 하는 것을 연구하며 이 면에 주력하는 형편입니다. 이런 곳에 오셔서 독초를 연구하며 질문을 한다면 거지 깡통에 머리가 찢어지도록 횡패를 당해도 하실 말씀이 없는 질문일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6.자유주의자눈 불신자급입니다. 그런 경우는 세상 자연계시로 반론하는 것이 쉬울 때가 있습니다.


이북에서 남한을 먹는 방법은 크게 2가지입니다. 하나는 무력으로 확실하게 삼킬 수 있으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게 밀어 붙이는 것입니다. 몇 백명이 죽든 몇 만 명이 죽든 몇 백만 명이 죽든 그것은 전혀 상관치 않겠다는 것을 우리는 과거 6.25에서 직접 목도했습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남한 내부를 혼동시켜 손을 대지 않고 먹는 방법입니다.


두번째 방법을 사용할 때 그들은 항상 '민족'을 들고 나옵니다. 남북한 사람이 마주 앉아 토론하고 민족의 살 길을 찾아보자고 통일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민족'을 말하고 '평화'를 말한다면 그 단어를 놓고 나쁘다고 할 사람은 없겠지요? 그런데, 남한 사람 머리 속에 있는 '민족'과 북한 대표 머리 속에 있는 '민족'이라는 단어는 그 단어의 뜻이 같지 않습니다. '평화'라는 단어도 같지 않습니다. 북한 대표가 말하는 '평화'는 궁극적 평화를 말합니다. 북한이 원하는 북한 주도의 궁극적 평화를 위해 남한 인민 절반을 학살해도 그들은 그 학살이 궁극적 평화를 위해 나아가는 발전적 단계의 헌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남한 대표는 당장에 남한을 밀고 들어오는 적의 사격을 보면서 우리 동족의 심장에 어떻게 총을 겨누냐면서 남한이 가진 총을 버리자는 '평화'를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1990년 이전의 상황이었습니다. 1990년 이후의 상황은 이제 북한으로서는 남한을 먹어도 먹은 뒤에 뒷감당을 할 정도의 힘도 없어 자체 방어를 우선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1953년 전쟁 후부터 1990년대 이전까지 북한이 남한을 상대할 때 이런 태도를 가졌는데, 그 당시 남한 내부에서는 북한과 '민족'과 '평화'라는 단어를 가지고 만난다면 왜 안되느냐고 강하게 반발하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남한 정부가 독재정권을 이어가기 위해 자기들의 정당한 주장과 옳은 논리를 탄압한다며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남한 독재정권이 친일파의 연장선에 있고 부정부패가 있다며 증거를 들이대고 그들의 단점을 열거했습니다. 전부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때 그 운동을 주도하던 이들이 바로 자유주의신학자들입니다.


아담을 먹는 귀신이 근본주의 신앙을 삼키는 실력으로 자라나왔으니 이까짓 세상 나라 하나 삼키는 것이야 너무도 쉽겠지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세상 나라를 삼키는 그들의 솜씨를 자연계시 중 하나로 보면서 그들이 삼키는 세상 나라에 대하여는 별 관심이 없고 그들이 삼키는 그 수법 속에서 이전 교회 안을 삼키려고 활동해왔던 그들의 과거 본질을 여실히 보고 있습니다.


7.순수하게 이곳을 처음 찾으며 자유주의를 대처하는 법을 질문한다면 드릴 말씀이 많습니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이 자기 머리속에서 나오는 질문을 말씀 앞에 말씀의 방향에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연구하며 기다려 보지 않고 불쑥불쑥 외부에 발언하여 그 발언들이 한 방울 두 방울 묘여져 오늘 천하를 삼킨 자유주의가 된 것처럼, 질문자께서 읽은 책의 문장들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번 질문자의 경우는 스스로 조금 생각하면서 충분히 찾을 수 있는 정도인데, 굳이 이곳에 올려놓고 있는 것같다는 안타까움을 심히 많이 가집니다.


지금 질문자께서는 자신의 눈과 귀에 더 이상 담아서는 안 되는 분량과 종류를 담고 계십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약이 되고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질문자께는 이미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 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 질문이면 질문자 자신을 위해서는 수 년 동안 단 한 마디도 답변을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질문자의 질문 내용을 참고하되 질문자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도움이 될 이곳의 일반 방문자들을 위해 답변을 달고 있습니다. 또한 이 문답게시판과 이 홈의 운영 성격을 공시할 때 약속했던 부분이 있어 비록 해로울찌라도 답변자가 감당할 수 있는 마지막까지 답변자 자신을 연단시킨다는 뜻을 담아 최대한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질문자는 바로 옆에까지 타들어가는 불길을 너무 쉽게 보시는 듯 합니다. 이미 이런 간곡한 요청을 수없이 드렸지만, 귀는 장애가 있어 들리지 않고 입은 발언을 할 수 있는 조금 특이한 분들이 계신데 그런 분들처럼 남은 무엇이라 하든지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에 생각난 것은 일단 밖으로 내놓고 보시는 듯 합니다. 이곳 답변자가 상대방을 위해 조금이라도 실제 도움이 된다면 아직까지 힘이 있고는 피해 본 기억은 없습니다. 질문자께서는 이곳 답변을 조금이라도 받아 내실 때마다 본인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하시는데 본인이 알지 못하는 넓고 먼 범위에서 너무 큰 것을 잃고 계십니다.


8.마지막으로 질문자께 드릴 말씀은


바로 질문자의 고민과 같은 고민을 해결해 주겠다면서 평생을 연구하고 노력하는 '근본주의' 관련 홈과 그 방향에 주력하는 신학교들이 몇 곳 있습니다. 그곳을 찾으셔서 이곳과 다른 높은 차원의 지도와 세심한 사랑을 받으시도록 소개드리겠습니다.


이 홈의 이런 신앙노선과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에서 자유주의와 맞서 싸우는 홈으로는 '합정동교회'를 담임하시는 '김효성'목사님이 계십니다. 이곳 홈의 /초기화면/총공회/현황/지역별현황/'합정동교회' 홈/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계약신학대학원'으로 홈을 찾아 가시면 이병규목사님이라는 근본주의 신학계의 핵심 지도자가 계십니다. 칼빈주의에 철저하고 타협없이 오늘까지 교계 최중심에서 자유주의 신학과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진리의 투사입니다. 그분 밑에는 '송용조'목사님 '서영호목사님'이라는 유력하고 신앙있고 자유주의 신학에게는 어떤 논리적 학문적 헛점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삼킬 사자같이 용맹한 학자들입니다. 이 4명의 지도자들 외에도 그곳을 찾으시면 '조영엽목사님'이라는 근본주의의 또 한분의 거장을 만나실 것입니다.


이런 분들과 대화를 하시고 지도를 받으시면 질문자가 원하는 방향에서 질문자가 가진 세미한 궁금증까지 그분들의 시간과 노력과 지도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을 대처하는 법도, 이곳 백영희신앙노선처럼 미련하게 하지 않고 지혜롭게 그러면서도 독자적으로 개발한 특별한 교수법으로 안내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노선] 자유주의의 시작..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알미니안~]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알미니안-]/[-교리-교회론-교회본질-노선-근본주의-]


--------------------------------------------------------------------------------------------


목사님 근본주의에 관한 책을 읽다가 글을 올립니다.


--------------------------------------------------------------------------------

19세기의 자유주의 운동의 이상은 성경에 있는 인적특질들을 공정하게 평가해 보자는 주장에 표현되어 있었다. 성경에 있는 책마다 그 자체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이 요소들은 그 책을 해석하는데 있어 절대 무시될 수 없다는 사실이 지적되었다. 초기 성경 해석자들의 교리적 관심은 주로 본문에서 교리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만 주의를 기울이도록 한정 시켜버린 반면 역사적 배경을 연구하는 일을 자연히 무시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확실시 되었다

그 결과 그들은 종종 본문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게 되었고 설사 여자적으로는 가능하다 할지라도 역사적으로는 보아서는 옹호할 수 없는 의미로 본문들을 해석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같이 본문의 교리적 이용은 종종 그 자체가 정확하지 못하였다. 그들의 말로는 이 약점을 시정하여 주기위해 보다 정확한 역사적 해석이 시그히 요구되었다는것이다. 성경의 항구적인 진리를 보다 풍부하게 파악하는 길은 다양한 성경책들이 지닌 인적 특성들을 보다 철저하게 연구하는것이었다.


초대 성경주석가들에게 대한 이같은 혹평 가운데는, 종교개혁과 17세기의 신교 주석가들을 연구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그만큼 자주 암시되지는 아니한다 하더라도 약간의 진리는 있었다.그러나 성경을 역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하등의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신교 신자들은 그것을 절대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을 강조하는 것이 조금도 자유주의의 과오가 아니었다.

---------------------------------------------------------------------------------


이 글을 보면 성경을 성경만으로 성경 자체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성경 각 책마다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해석을 해서 성경을 보다

더 잘 알려고 합니다.


그들의 눈에는 성경을 성경만으로 해석하는것이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수 없다는 생각때문에 시작된것으로 간주 됩니다.

아마 이때부터 현대에서 말하는 자유주의가 시작된것 같습니다.


원래 성경을 해석하는 방향이 있는데..그것에서 조금 벗어나니깐..

자유주의가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역사적문화적 자료도 성경을

해석할 때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예를들어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인에게 보내는 서신이라는 정도...

하지만 역사적문화적 자료를 사용할땐..일단..성경을 성경으로 해석

자체적으로 해석한후 절대 역사적 문화적 해석이 그 자체 성경해석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 적적히 사용하는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특히

---------------------------------------------------------------------

성경의 항구적인 진리를 보다 풍부하게 파악하는 길은

다양한 성경책들이 지닌 인적 특성들을 보다 철저하게 연구하는것이었다

---------------------------------------------------------------------


이 부분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

조금의 타당성이 있는것 같기도 합니다.

타당성이 있다면 ..인적특성(역사적문화적배경)을 얼마나 받아들여야 할지요?

그 선을 긋기가 애매합니다..


공부하다가 ..글을 올립니다.

저의 잘못된 생각이나..고쳐여야 할생각이 있다면 좋은답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더 알아야 할점이 있다면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항상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목사님..
---------------------------
쓰기 문의답변 초기목록
(1) 항목별 검색 주제별 | 가나다별 | test 주제별 정리
(2) 게시판 검색
(3) 통합 검색
번호제목이름날짜
  • 13938
    성도A
    2026.02.23월
  • 13937
    외부교인
    2026.02.20금
  • 13936
    교인
    2026.02.16월
  • 13935
    LA
    2026.02.15일
  • 13934
    재독
    2026.02.14토
  • 13933
    학생
    2026.02.12목
  • 13932
    성도A
    2026.02.11수
  • 13931
    도봉
    2026.02.10화
  • 13930
    교인
    2026.02.10화
  • 13929
    배우는 이
    2026.02.05목
  • 13928
    성도A
    2026.02.04수
  • 13927
    학생
    2026.02.02월
  • 13926
    성도A
    2026.02.02월
  • 13925
    공회교인
    2026.01.23금
  • 13924
    학생
    2026.01.21수
  • 13923
    학생
    2026.01.16금
  • 13922
    반사
    2026.01.16금
  • 13921
    학생
    2026.01.15목
  • 13920
    반사
    2026.01.13화
  • 13919
    성도A
    2026.01.12월
  • 13918
    신학도
    2026.01.12월
  • 13917
    부족한교인
    2026.01.06화
  • 13916
    성도A
    2025.12.26금
  • 13915
    돌아온탕자
    2025.12.23화
  • 13914
    믿는 자
    2025.12.2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