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신학의 성경적 발생 과정 2.우리가 거듭나는 중생에 필요한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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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학의 성경적 발생 과정 2.우리가 거듭나는 중생에 필요한 3가지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교리-구원론-건설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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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우선 '신학의 발생학적 성격'을 말씀드립니다.


①'신학의 발생학적 연구'를 위해 우선 성경의 보편성과 충족성을 안내합니다.


성경은 교회사 교과서로 기록한 것도 아니고 조직신학의 교리서로 적어주지도 않으셨고 성경신학 강의에 필요한 교안으로 작성되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이 어떤 일을 언제 당해도 이 말씀 전체와 이 말씀 한 토씨 하나가 그를 인도하여 그가 걸어가야 할 길을 안내하도록 적어주셨습니다. 이것을 성경의 보편성과 충족성이라고 합니다.


②신학의 여러 과목들이 성경에 근거를 두고 발생한 과정을 살핀다면


우리가 어떤 형편 어떤 처지에서라도 우리가 알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알고 싶으면 이 성경 안에서 다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앞에서 설명드렸습니다. 이 면을 확실히 기억한 다음 각 신학과목들을 예로 든다면


성경기록이 완성 된 신약교회가 세월이 흘러가게 되자 교회 역사를 연구할 필요가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사라는 과목이 교회 안에 등장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사학'을 모델로 삼아 교회사를 세상 사학을 연구하는 기준과 방법과 시각을 가지고 교회 안을 그렇게 시대적으로 살피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 사학은 넓은 의미로 자연계시 중 일부로 참고한 다음, 교회사는 성경에서 그 시각과 원리와 방법론을 찾아 교회사를 성경적 교회사로 살피는 분들도 있습니다.


조직신학이나 성경신학도 성경을 기록하던 당시 교회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성경기록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우리 신앙에 필요한 모든 지식과 걸어갈 길에 대한 안내가 있기 때문에, 성경기록 이후 신약교회는 신약교회의 복음운동에 있어 교리적 체계와 성경적 깨달음을 바로 가져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필요를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성경에서만 찾은 것이 '성경적 조직신학'이며 '성경적 성경신학'입니다. 그리고 세상 학문의 기준과 시각과 방법론을 가지고 성경을 분해하여 조직신학과 성경신학이라는 학문을 발전시켜 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③교회 타락의 중심에는 신학을 세상식 학문으로 변질시킨 이들이 있습니다.


자기 시대 자기 교회의 복음운동에 필요한 것을 성경 안에서 찾아내다 보니까 그것이 교회의 역사가 되기도 하고 성경 전체 가르침의 일관성이 되기도 하고 성경자체에 대한 연구가 되기도 하였는데, 이렇게 순수하게 성경에서 자기 시대 가야 할 길을 찾은 이들은 그 수가 너무 적고, 그 반대로 성경 연구를 세상식 학자들의 세상식 학문으로 탈바꿈을 시킨 이들은 거의 대다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질문과 관련하여 드릴 말씀은, 성경은 조직신학 교리서가 아니라는 것을 우선 아셨으면 해서 잠깐 설명드리고 있습니다. 각 시대의 교회들이 복음운동 과정에서 성경을 통해 알아야 할 것이 있어 찾다보면 자기 시대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성경에서 다 찾아낼 수가 있게 됩니다. 그렇게 하다가 성경 여러 곳에서 자기 시대에 깨닫고 알아야 할 것을 찾게 되면 그것을 간단하게 정리를 하게 되는데, 그 정리한 것이 전체 교회가 기본적으로 알아두면 필요한 정도일 때 소위 '신학'의 내용이 하나 추가 되는 것입니다.


2.우리가 거듭나게 되는 '중생'은 3가지 요소에 의하여 이루어집니다.


①중생의 요소가 3가지라고 요약한 것은, 위에서 말씀드린 과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우리 중생을 두고 3가지 요소가 중생을 시켰다는 말이 없는데 어떤 근거로 성경에서 3가지 중생의 요소를 주장하느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가끔 계십니다. 질문자를 두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한번씩 그런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이번 답변을 드리면서 이왕이면 그 면에 대하여 한번 설명해두고 싶었습니다. 질문자께서는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 중생에 관련하여 어떤 역사가 있었는가? 어떤 성구에서는 중생의 요소를 하나로 말씀하시고, 어떤 성구에서는 둘로 말씀하시고, 어떤 성구에서는 전혀 다른 표현으로 다른 요소들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책이 이렇게 기록되었으면 거짓말 책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록해 주셨으니 차분하게 성경 전체를 통해 중생에 대하여 깨닫고 알아야 할 시대가 되면 중생에 대하여 어떤 요소가 역사를 했고 어떤 요소가 필요한지를 알려 주시려고 성경 어디를 찾아도 찾아보면 해답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살펴본 것입니다.


②요3:5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는 중생이 있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시고 거듭나게 되는 것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중생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기록된 일은 니고데모가 실제로 예수님을 찾아와서 주고 받은 대화가 그 당시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일들은 있었지만 성경에 기록은 하지 않았으나 이 일은 하나님께서 성경에 일부로 기록을 해두셨습니다. 이유는? 수도 없이 많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다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이 기록으로 인하여 그 이후 시대 신약교회는 어느 시대 어느 형편 어떤 사람의 어떤 상황에서도 이 말씀을 읽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있고 알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그 중에 '중생'의 요소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시대가 된다면 이 성구는 이 성구 기록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은 다른 면을 배우는데 또 한 사람은 중생의 요소를 알 수 있도록 고려해서 그렇게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이 성구는 중생의 요소만을 가르치기 위해서 기록한 성구가 아니라는 것을 반복해서 설명드리고 있습니다. 이런 면을 하나만 자세하게 잘 살펴 알게 되면 성경 전체를 무한한 진리로, 자기 복음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게 이 안내를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③엡5:26에서 '물'은 말씀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 역시 에베소서 교회에 전할 내용이 있어 바울이 편지를 한 사실이 있는데 그 편지 속에 기록된 내용 중 일부입니다. 바울이 편지를 쓴 것은 전부 성경이 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적은 글 중에 하나님께서 성경기록을 위해 적게 한 것이 있고, 그 중에 하나가 에베소서입니다. 그리고 이 에베소서에 이 내용을 기록할 때는 에베소 교회에게도 당시 필요해서 적었고, 그 이후 신약의 모든 교인들이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가르침이 필요할 때는 이 내용을 통해 절대 진리의 구원으로 상대할 수 있게 적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내용을 '중생'의 요소에는 어떤 것이 있느냐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으로서 이 성구를 통해 중생의 요소의 일부를 알아내고 있습니다. 요3:5에서 영이 중생될 때는 '물'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지하수 샘물을 말하거나 온천수나 약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기가 쉽습니다. 영은 물질이 아닌데 물질인 물로는 물질인 몸을 씻는 것입니다.


물질의 더러움을 씻는 것이 물이므로, 죽은 영물인 영의 죄를 씻어내는 물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무엇인가? 많은 신령한 종들이 기도하고 성경을 읽던 중 바로 이 엡5:26에서 '말씀'을 물로 대구(對句)시키며 교회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 에베소교회를 가르치는 다른 말씀 중에 이 내용을 미리 적어 훗날 중생에 관련하여 그 요소를 알아야 할 교회나 교인들에게 알 수 있게 해 놓으신 것입니다.


④벧전1:23에서 '말씀'이 우리를 거듭나게 했음을 또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느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를 통해 기록해 주신 성경입니다. 이 기록은 베드로가 가르치던 그 교회 교인들에게는 그 당시 베드로의 목회의 일부였는데, 이 베드로전후서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성경으로 하나님께서 확정하고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를 중생시켜 거듭나게 하는 것 중에는 '말씀'이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거듭나게 되는데 필요한 것은 '성령' '물' '말씀' 이런 표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⑤요11:25에서 '예수'의 이름은 부활과 생명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흘려 대속하시므로 우리가 살아나게 되었다는 것은 성구는 따로 하나 둘 제시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죄로 죽은 것은 우리의 영이고, 영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단절되어 더 이상 추가 공급이 없으므로 물질로 된 우리의 몸과 마음은 태어날 때 가진 것을 평생 소모하다가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값을 치르고 우리가 행할 의를 마련하기 위해 십자가 사활의 대속으로 구원하셨는데,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할 때 '예수'라는 이름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아니면 '십자가'나 '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요11:25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했는데 우리 영이 다시 살아나는 생명도 예수님이고 우리 몸이 앞으로 죽은 후 다시 부활하는 것도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입니다. 죽은 것이 살아나는 것도, 살아난 것이 영원히 죽지 않는 것도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생명을 한번 더 갖는다는 것이요 새생명을 얻는다는 것이요 죽은 것을 살린다는 것입니다.


3.요일5:8에서 성령과 물과 피는 하나입니다.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고 했습니다. '증거'라는 말은, 단순한 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의 모든 운동은 천지를 없는 가운데에서 만든 것부터 그 유지 관리 등 모든 활동이 진리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증거'는 세상처럼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는 말'이 아니고 절대 불변의 역사를 말합니다. 성경의 '증거'는 '활동'과 '결과'와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하면 결국 되는 것입니다.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모든 활동과 역사와 결과는 이 3가지가 하는 것이니 '성령과 물과 피'는 떼놓을 수 없는 하나입니다. 성령은 성령 하나님입니다. 피는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물'은 앞에서 살핀대로 깨끗이 씻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면 우리 행위가 씻어지고 인격이 씻어지며 우리의 말과 생활과 모든 것이 씻어집니다. '말씀'으로 표현하지 않고 물로 표현할 때는 말씀의 이런 기능적인 면을 가지고 우리를 가르치려는 또 하나의 깊은 이유가 있습니다.


따라서 죽었던 우리를 살린 것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살려내는 모든 과정에서 사용하는 방법과 이치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미 죄를 지은 우리의 죄값을 우선 해결해야 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이 3가지가 다 있어야 우리는 중생됩니다.
[기본구원] 거듭남의 3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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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백목사님의 요3장의 설교를 보면 거듭남의 3요소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을 때 거듭난다고 알고 있고, 거듭난 후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성화되어 가야 한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피공로, 성령의 감화와 진리로 거듭나야 한다는 구체적인 용어설명과 영은 단번에 거듭나지만 심신은 계속 거듭나냐 한다는 말을 계속 성화되어야 한다는 말로 바꾸면 안되는 것인지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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