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동행의 깊이에서 나오는 신령함과 교리적 발전에서 뒷받침 되는 그 설교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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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동행의 깊이에서 나오는 신령함과 교리적 발전에서 뒷받침 되는 그 설교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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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노선~]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노선-]/[-인물-백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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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 차원 높다고 말씀드린 그 '한 차원'의 높이가 마치 수십 차원처럼 느껴집니다.


백목사님의 구원교리는 '교리발전'의 단계면에서만 살핀다면 기존 보수정통의 성경해석을 한 차원 높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걸어다니던 사람들이 자전거를 이용하므로 한 차원 높게 장소를 이동했고, 그다음 자동차를 발명하여 다시 한 차원 올라갔고,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발명하여 자동차 시대보다 장소 이동에 관한 한 '한 차원'이 더 올라갔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행과 자전거 사이의 '차원 1개'와, 자전거와 자동차 사이의 '차원 1개'는 사실 '1개 차원'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비약적인 발전이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는 계곡과 산봉우리와 바다까지를 넘어가는 이동이어서 그 '1개 차원'이 단순한 한 차원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전화의 발명에 휴대폰의 발명이 가져온 생활 변화로 비교를 해 볼 수도 있습니다 .


구원론의 양면, 즉 기본구원으로 받은 은혜 위에 건설해야 할 우리 각자의 분량과 목표가 있다는 이 하나의 발견은 의학에서 X-ray 처럼, 내시경 처럼, 과거 더듬던 때와 눈으로 바로 보고 알아버리는 때의 차이와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2.너무 차이가 많이 나지만, 이곳은 '연구적 관찰'을 하겠다는 곳이므로


현장에서 느끼는 실감의 차이는 수십 차원이 나는 듯 하지만, 교리의 발전은 한 단계씩 하나님께서 데려 올라가시기 때문에 '한 차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신앙은 생명이 자라가듯 자라갑니다. 그래서 한 단계라도 그냥 건너뛰는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발육이 좋은 아이라도 10대를 거쳐서 20대로 진입하지 10대를 생략하고 20대로 바로 자라는 경우는 없습니다.


또한 일반 보수정통 교리와 성경해석에 비교해서 백영희신앙노선의 실감적 우수성을 많이 강조하다 보면, 역시 감정에만 치우치는 분들이 글을 읽을 때는 '발전은 한 차원이지만 실감은 그렇게 많다'고 알지 않으시고 일반 정통보수 교리와 성경은 틀린 것으로 알고 또 몹쓸 것으로 알아버리는 실수를 걱정해서 그 표현을 '한 차원'이라고 아껴 말씀드렸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미국에 대하여 가질 정상적인 개념은 너무 멀리도 또 너무 가까이도 하지 않는 것이 지혜롭다는 정도에서 그쳐야 하는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미국이 우상이 되어 있고,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미국이 미워서 미국과 사이가 나쁜 후세인도 김정일도 테러범들도 아주 억울하게 당한다고 표현하는 것을 현저하게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몸 속에 들어와 앉아있는 고질병입니다. 이런 병이 세상 문제를 두고 세상적으로도 그렇게 표출되는 것처럼, 백목사님의 교훈 세계를 너무 귀하다고 표현하면 뒷꼭지에다가 단번에 '우상화냐!'고 말을 해버립니다. 그런데 그런 표현하는 분들이 박윤선목사님이나 칼빈에 대하여는 우상의 정도를 벌써 넘어서서 하나님 자리만큼 올려놓은 분들입니다.


교리적 내면 원리로 말하면 한 차원의 발전이고, 신앙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을 기준으로 말하면 모든 정통보수 교리들을 너무 아득하게 넘어선 듯 합니다.


3.백목사님 성경 해석의 특별한 점으로 말한다면


첫째 예수님의 대속을, 이렇게까지 낱낱이 밝혀 마치 현대과학이 인체의 기본 구성 설계도에 해당되는 유전자정보를 다 밝혀낸 것처럼 그렇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단순하게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그 슬픔을 느끼며 감사하는 정도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얼마나 고생했고 어떻게 고생했는지 어떤 죄와 어떤 의를 위해 그렇게 했는지 한없이 빠져 들어갈 수 있게 합니다.


둘째로 구원으로 말하면, 두말할 것 없이 기본구원을 통해 루터와 칼빈시대의 구원 확신보다 더 확신을 갖게 했고, 또 건설구원 교리를 통해 한 현실의 말 한 마디의 결과와 그 말 한 마디를 두고 악령과 성령이 투쟁하고 우리는 우리 생각 안에서 말씀으로 살기 위해 왜 어떻게 무엇을 가지고 싸워야 할지를 완전히 다 밝히고 있습니다.


셋째는 실제 말씀대로 살도록 만드는, 성경해석입니다. 신학적 선언에 그치는 교리와 설교집들을 수도 없이 보고 있습니다. 일반 성경해석에서는 듣기에 아름다운 음악소리같고 보기에 좋은 풍경화에 그치고 있다는 아쉬움을 많이 가지지만, 백목사님의 성경해석은 성경 어느 구절 어느 말씀 하나라도 내가 나의 현실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로 명쾌하게 결론 맺지 않는 경우가 없습니다.


넷째로 그 성경해석은 신구약 66권 전부가 한 성구를 그리고 한 성구가 전체 성경을 해석하게 만드는 진정한 성경해석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성경신학에 도달한 설교이기도 합니다.


비록 많은 양으로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과거 역사적으로 유명한 분들의 성경해석과 설교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았던 분 중에 성경과 설교로 그렇게 유명한 분들 중에 대표적인 분들을 몇 번씩 접해 볼 기회가 있었으나, 그 차원이 너무 차이가 많기 때문에 느낀 대로 표현하면, 교회사의 성자는 한 사람 뿐이냐는 힐난이 나올 듯 하여 외부인들에게 표현할 때는 조심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령으로 살다간 분들이 성경해석과 교리에는 어두웠다 해도 그 설교 한 마디에 성령이 동행하여 수없는 사람의 심장 폐부를 도려내듯 회개를 하게 하고 천국에 미리 가본 듯한 그런 영안을 뜨게 하고 기쁨을 주었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차원은 그의 신앙 깊이에서 나오는 것이지 교리나 성경해석의 깊이에서 나오는 것과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경우는 양쪽을 겸비했다고 생각합니다. 높은 신령한 차원을 가진 신앙 상태에서 성경해석의 차원까지도 탁월했기 때문에 그분의 설교는 진정한 설교였다고 하고 싶습니다.


4.이렇게 높은 차원을 가졌지만, 그의 성경해석은 정통보수노선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지난 날의 것이 그 시대로서는 옳았고 그 시대를 감당했으나 아쉬운 것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역사해 나가시는데 교회는 너무 뒤쳐져 있었습니다. 백목사님은 자기 시대를 살면서 그 시대 환경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현실에 필요한 교리를 주시고 성경을 밝혀 주실 때 게을리 하지 않고 성실하게 배우고 자라나갔던 분입니다. 그래서 과거 교회보다 쑥 자라 나온 신앙인물입니다.


외형만을 놓고 비교하면 마치 달라보이기도 하고 대립되는 교리도 많고 마치 흑인과 백인의 차이처럼 전혀 다른 신앙노선같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 유전자검사를 정밀하게 해보면 지금까지 교회사를 통해 각 시대를 감당하던 그 종들의 신앙과 같은 신앙선상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앙에서 더 자라고 더 발전해 나간 모습이, 더 이상 발전을 거부하고 항상 과거이기를 원하는 교회와 비교가 되니까 서로 달리 보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백목사님과 같은 시대를 살았거나 혹 그 앞 시대를 살았던 분들이 자기 시대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인도를 전폭적으로 따라 발전해가고 자라나갔더라면 여러 명의 백목사님이 우리 시대 앞이나 현재에 등장했다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의 숫자가 많았다면 다윗 때처럼 교회의 전성기를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 때는 용사들이 많았고 시대를 감당할 종들이 많았던 때입니다.


말하자면 박윤선목사님과 같은 분이 만일 원어와 성경 해석가들의 학설들을 탐독하는 기초 위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방향으로 신학을 하지 않고 그대신 백목사님처럼 성경을 성경으로만 해석하는 방향에 주력했다면, 백목사님과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크게 가집니다.


만일 한상동목사님이 신앙투쟁에 있어 정치적 색채를 완전히 버리고 정말 순수하게 주님이 인도하는 방향에만 순종하려고 했다면 그분의 신령한 세계를 고려할 때 비록 백목사님만은 못해도 비슷한 신앙가가 되지 않았겠는가 하는 아쉬움을 가집니다.
[공회노선] 전통보수와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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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론외에 칼뱅이후 보수전통 개신교의 성경을 해석하는것과

백목사님 성경해석의 차이가 많이 있습니까?

아니면 방향성은 같지만 깊이 면에서 차이가 납니까?

예전에 이목사님 글중에 백목사님 구원교리는 칼뱅이후 루터이후

일반개신교의 구원교리를 한단계 업그레이드한 교리라고 설명 하신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 홈페이지의 모든 성경해석은 보수전통 성경해석의 연장선이라고

하신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구원교리를 제외한 다른 교리나 성경해석 성경주해의 방향성은

일반 보수전통의 개신교와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사료됩니다.

아니면 여기 홈페이지의 깊이가 좀더 탁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좋은답변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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