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록의 표현법에 대한 설명을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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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록의 표현법에 대한 설명을 첨부합니다.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설교록~]

내용분류 : [-설교록-]/[-인물-백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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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영희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는 '목회'라는 단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①여러 면으로 대단한 차원의 삶을 살았던 분이었음을 우선 소개드립니다.


백영희라는 인물은 신학자였고 교인 상담사였고 대설교가였으며 교회정치가이기도 했습니다. 보통 1-2가지 이상의 이름을 갖기가 어려운 법인데 그분은 거의 모든 면으로 최고의 전문가였다고 표현할 수 있는 정도의 실무적이고 실제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곧 재개될 '백영희 신앙생애'를 통해 소개하겠으나 루터 칼빈을 종교개혁가라 한다면 그는 교회 내에서 다시 한번 교회를 갱신한 개혁가였고 법이론가였으며 철학과 인간심리학에도 대가였습니다. 표현이 조금 더 이어지면 이곳과 걸어가는 방향이 다른 분들이 교주라는 말이냐고 대들 것 같아서 이 정도에서 일단 서론을 잡겠습니다.


②그런데, 그분에 대한 이해는 '목회'라는 단어 하나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빠릅니다.


미국의 유력한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주겠다는 제의도 있었지만 웃어 넘긴 분입니다. 그는 '목사'라는 이름으로만 살았고 그 이름만 남기를 노력했던 분입니다. 이유는 '목사'는 목회자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종류의 책을 남길 수 있었으나 그것은 후시대가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자기들이 결정할 일로 남겨 두었고 자기가 알고 자기가 스스로 가질 수 있는 이름으로는 '목회'만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설교록을 출간할 때도 굳이 '목회설교록'을 고집했습니다.


일반 설교록은 설교 현장의 설교가 따로 있고 책으로 출간되는 설교가 따로 있습니다. 또 녹음이나 녹화가 되지 않고 자기 교인들에게 설교하는 내용이 따로 있고 방송용 설교를 제작할 때 설교가 따로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실제로 교인을 기르는 목회설교 외에는 없었습니다.


기독교 최대출간지와 기독교방송국에서 설교문을 올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왔을 때에도 그분은 방송국의 설교시간 몇 분에 맞추어 설교를 주문생산할 수 없고 또 그 출간지의 설교분야 페이지에 맞추어 글을 올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만약 방송국에서 설교를 하게 된다면 백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하면 그 내용이든 그 설교길이든 설교하는 사람이 목회를 위해 자기 속의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제한없이 하게 한다면 할 수 있는데 방송국에서 그렇게 한다면 운영이 되겠는가, 또 그 출간지에서 내 설교의 분량이 그렇게 되도록 하겠는가, 더구나 설교는 주님이 주시는 대로 하는 것인데 어떤 종류의 사람을 위해 어떤 분량으로 해 달라는 '사람의 부탁'대로 설교를 만들어 내면 그것이 하나님의 종인가, 사람의 종인가?


그는 베드로에게 주님이 3번이나 부탁한 대로 맡겨주신 사람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길러 주님 앞에 세우는 것만이 자신의 전부였습니다. 제자들에게 승천하실 때 마지막으로 부탁한 말씀 역시 이 복음을 모르는 이에게는 알리고 알게 된 이는 가르쳐 기르라는 명령이었으며 그것을 한번도 잊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백목사님은 이곳 이름도 '목회연구'를 뗄 수 없는 이름으로 붙였고, 이곳 답변자에게도, '연구를 전념하는 사람이라 해도 그 연구가 참 연구가 되고 산 연구가 되려면 목회일선을 맡아 목회와 연구를 분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새겨주며 현 목회지 교회로 파송했습니다.


③질문에 대하여 동문서답이 된 것 같고, 바른 답변이라 해도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배경을 충분히 듣지 않으시고 또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사실 이곳에서 제공하는 방대한 분량의 설교록은 모순과 착오가 많고 심지어 거짓이 적지 않습니다. 지금 분량이 너무 많고 그 설교에서 인용된 구체적인 사실 관계가 너무 세월이 지나서 일반인들로서는 설교 내용의 은혜면만 상대하고 있지 그 설교의 배경이나 기초사실은 잘 알지 못하고 또 파악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같은 인물 하나를 두고 어떤 설교에서는 신앙가라고 했다가 어떤 설교에서는 아주 신앙도 없는 몹쓸 사람이라 하는 정도로 모순된 표현이 많습니다. 심지어 답변자와 같이 부산의 3류 대학을 나온 주일학교 반사에게 일류대학을 나온 최고의 인재라고 소개하여 한 때 주변 사람들이 답변자를 서울대 법학과 출신이라고 알도록 표현을 하여 심지어 동역 목회자들까지 포함하여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받게 하고 그때마다 해명을 장시간 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또 이번 표현처럼 역사적으로 민족적으로 흔적이 분명하게 남아 있는데도 전혀 없다고 표현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설교 내용 중에 명백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을 받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아이들을 기르는 엄마는 하루에도 몇 십번씩 거짓말을 한다는 예화를 설교에 자주 인용하는 분입니다. 노름하러 간 아빠를 돈벌러 가서 철야작업하고 계신 아빠라고 소개하여 자녀들에게 아빠라는 사람을 두고 이왕이면 소망을 두게 하려고 노력하는 엄마와 같이, 교인들을 두고 그렇게 표현하는 경우는 많았습니다. 30점을 받아온 아이에게 '아니 이렇게 잘했어! 이제 조금만 더 잘하면 박사가 되겠네!'라는 표현도 했던 분입니다. 이런 표현을 두고 거짓말이라고 한다면 그분은 거짓말을 했던 분입니다. 이런 표현을 두고 부모가 자녀를 기르는 목회라고 생각한다면 그분은 진정한 목회자였습니다.


이스라엘 10지파의 사건은 성경에서 몇 손가락을 꼽을 정도의 중요한 사건입니다. 한번 발을 잘못 딛게 되면 그것으로 그곳에 속한 사람들의 신앙과 영생은 완전히 끝이 나버립니다. 이런 사안을 두고 그분이 표현할 때는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합니다. 4차선 대로가에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교통사고 전문조사요원이 지나가면서 할 수 있는 말은 '얘들아, 이곳의 사고 발생 위험률은 0.0001%로 10,000대가 지나가면서 약 1대 꼴로 사고가 나는 곳이고, 작년 한 해의 4차선 대로 유아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률은 전체 교통사고의 3%였단다. 그러니 조심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기 아이가 그곳에 있었다면 '임마! 4차선에서 놀면 곧바로 황천행이야! 빨리 집에 들어가지 않을래!' 이렇게 노발대발할 것입니다. 과학적 수치계산법과 어린아이의 인식을 고려한 예방조치에 필요한 표현은 분명히 다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표현을 두고 앞에서 표현한 과학적 수치의 예시는 사실 인정도 사정도 없는 나쁜 인간들일 때 내놓는 표현이고, 뒤에 표현한 내용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④설교록을 내용을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이런 표현은 백목사님의 목회 표현으로 흔하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 질문자가 잘못 들었다 해도 그분은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분입니다. 혹 사마리아 문제를 두고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다면 다른 문제를 두고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분이고, 그 이상으로도 표현한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번 질문은 질문자의 기억과 자료 인용이 정확한지를 따지기 이전에 이런 종류의 모든 질문에 대하여 종합 답변을 지금 적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8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데리고 온 유대인들 앞에서 땅에 손가락으로 글을 썼다가 그런 흔적이라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지웠다고 늘 설교를 하는데 그 성경에는 손가락으로 쓴 것만 나오지 쓴 것을 지웠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물론 쓴 것을 지웠다는 내용이 없다 해서 쓴 것을 지우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쓴 것을 지웠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는 것은, 해석으로서는 할 수 있어도 성경에 그렇게 적혀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착오입니다. 이 성구에 대한 표현은 항상 예수님은 이 세상에 어떤 기록이나 흔적도 직접 남긴 것이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 그래서 신앙은 진리를 배워 말씀으로 자라가야지 예수님의 사진이나 흔적이나 성지순례와 같은 것으로 나가서는 우상종교가 된다고 경고를 할 때 주로 하는 표현입니다.


물론 이 표현을 이곳은 무조건 착각으로 보지 않습니다. 백목사님의 해석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의 설교 세계 전체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혼동될 것이 없지만, 우연히 그분의 설교 중에서 그 부분만 읽게 된 사람은 백목사님을 성경에 대하여 아주 모르는 사람으로 평가할 것이고 그렇게 평가해도 이곳에서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이곳처럼 시간이 충분하면 설명을 드리겠지만, 지나가면서 한 마디하는 사람을 잡고는 어찌 설명을 하겠습니까?


⑤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으로 갈 때와 중국은 외침을 한번도 받지 않았다는 표현도 문제입니다.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듣자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나무를 준비해서 다음날 떠났다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답변자가 이 문제를 두고 백목사님께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갔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잠을 자지 않고 밤새도록 나무를 준비했다고 표현하면 틀린 것이 아니냐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두고 '네가 잘못 알았어!'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의 뜻을 깨닫고 확정을 짓는데는 세월이 좀 많이 걸렸습니다. 이런 무제는 전형적으로 아브라함의 신앙이 되어 보지 않고 성경을 지식으로만 붙들고 해석하는 사람들로서는 죽는 날까지 해석해도 해석을 못하는 부분입니다.


중국은 효도가 있는 나라여서 한번도 외부의 점령에 들어간 적이 없다고 표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주로 5계명을 설교할 때 인용하는 내용인데, 그런 역사적 사실은 어느 역사학자가 하는 말을 전해 듣고 늘 재인용하는 경우였습니다. 이 표현을 두고 서부교회 직원 중에 한분이 세계사에서 중국이 원나라 몽고민족과 청나라 만주민족에게 나라를 뺏긴 일이 두 번이나 있는 것은 상식인데 백목사님의 설교 내용에 이런 상식적인 내용에 착오가 있으면 성경해석까지도 권위가 떨어지지 않겠나 하는 마음으로 반론을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세상을 야당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불행한 것'이라며 그 질문한 사람이 없던 자리에서 답변자에게 그 질문을 두고 한 말씀이 기억납니다. 그 표현은 그 사람에게는 하지 않았으나 답변자가 한번씩 백목사님 설교에 대한 문제점을 잘 질문하기 때문에 답변자의 자세가 불행한 자리에 나가지 않도록 권면한 사랑의 충고였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중국의 외부 외형은 만주나라에 뺏겼다는 것을 누가 모르나, 그러나 그 만주나라가 중국을 점령한 다음 점령이 되어졌나, 아니면 그 만주나라가 중국의 것이 되어버려 중국의 일부가 되어버렸나, 넓은 면을 봐야지 일면 하나만 보는 것은 그 면만을 보면 맞는 것 같은데 실은 잘못 본 것이다'는 설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질문하신 사마리아에 대하여 분열해 나간 이스라엘 북조 왕국은 씨 하나도 먼지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표현을 했다고 해도 그 표현은 맞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통에서 벗어나면 그렇게 되는 것이 상식이요 절대 진리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면 그것은 기준을 무엇으로 잡았느냐는 것입니다. 흰색에 검은색을 조금이라도 더하면 회색이 되었는데, 회색은 흰색이었다는 흔적이지 않느냐고 표현한다면 그 말도 맞습니다. 그러나 기준을 100% 순도를 가진 흰색만 흰색이고 그 흰색을 100% 순도로 지켜야만 하는 사람에게는 0.0001%의 검은색만 섞여도 흰색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2.이번 질문이 비교적 간단한 내용인데도 길게 답변하는 것은


현재 이곳 문답방의 답변 내용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표현 중 가끔 교계가 완전히 썩었다는 정도로 표현하거나 신사참배 문제로 고신 외의 모든 교회가 다 정죄되어 마치 북쪽 이스라엘 10지파와 같이 되었다고 하고 또 고신은 백목사님을 1959년에 제거하므로 그들 역시 10지파의 길을 따라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백영희신앙노선만 한국교회의 유일한 생명노선이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 이곳 답변자는 사실이 그렇지 않느냐고 하지 어물거리지도 않습니다.


이런 표현을 두고, 물론 대세의 방향은 그런 면이 있다 해도 그 표현은 너무 극단적이지 않느냐고 하는 충고를 듣습니다. 문제는 어디에 기준을 두고 표현한 것이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본구원을 두고 말한다면 천주교나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이단이 아니라면 침례교든 감리교든 성결교든 순복음이든 우리는 다 함께 구원의 계통을 받아가진 형제요 지체들입니다. 그러나 건설구원면으로 기준을 삼고 그 중에서도 시대를 이어 내려가는 계통의 중심 문제를 가지고 따진다면, 이곳의 표현은 틀리지 않습니다.


현재 한국교계에서 이단이 아닌 교회치고 한국교계 전체의 대세에 합류되지 않고 휩쓸리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물론 없다는 표현도 답변자가 아는 정도에서 그렇습니다. 한국교회 교단 전부를 다 훑어보지 않고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만일 그렇게 합류를 거부하고 성경대로만 걸어가는 내면이 있는 교단이 있었다면 그 교단의 크기가 아무리 작다 해도 이단 시비 등으로 외부에 표시가 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숨은 7천명의 선지자는 있을지라도 훗날로 이어가는 교회의 정통성과 전통성을 가질 수 있는 대상으로는 없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표현 하나에 대한 배경과 입장을 매번 반복하려면 어렵기 때문에 이곳 홈에서 가끔 한번씩 이런 기본 방향에 대하여 해명 겸해서 설명을 드리고 있습니다.
[설교록] 이스라엘의 멸망
제목분류 : [~설교록~]

내용분류 : [-설교록-]/[-인물-백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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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설교인지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으나 르호보함 이후 분리된 이스라엘 10지파는 하나님 순종을 하지 않아서 (바벨론으로 옮기는 때로 기억이 되는데) 그 역사가 뿌리 채 없어졌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민족이 박해를 받거나 이주를 당하면 그 이주한 사람들이 정착한 곳에서 자신들의 문화나 생활방식을 남기며 사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그런것도 허용하지 않으시고 종자까지 멸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도 대화를 하셨는데… 그럼 이스라엘의 어떤 면이 없어진건가요? 예수님 당시까지도 사마리아인은 계속있었지 않았나요?

답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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