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들도 왔고 동방박사들도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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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들도 왔고 동방박사들도 왔습니다.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성경~성경관~성경해석~]

내용분류 : [-성경-성경관-성경해석-]/[-성경-주해-마태복음-]/[-성경-주해-누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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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요20:30-31과 딤후3:16에서 성경기록의 원칙을 다시 한번 확고하게 잡으셨으면


①성경 기록은 당시 기록의 전부가 아닙니다.


요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②다 기록하려면 이 세상에 쌓아 둘 수 없는 양입니다.


요21:25,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부족할 줄 아노라'


③기록된 내용은 우리 '교육용'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④예를 들면 창4장은 두 사람만 필요했습니다.


'가인과 아벨만 존재했다'는 것이 아니고 '가인과 아벨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기록입니다.


2.위의 원칙을 가지고 질문 내용을 다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①마태복음 2장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에 관계된 교훈을 넓은 면에서 살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장은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려 하나님께서 직접 오시던 당시 상황을 기록했습니다. 주님이 오시기 전 구약교회를 이끌고 구원의 날을 기다리던 지도부는 왕의 주변에 서성거리며 지위와 권세와 대접만 받고 있었지 오시는 주님을 전혀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짐승으로 취급하던 이방인들이 하늘의 뜻을 살피다가 인간에게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님에게 있으며 그 분이 오셨다는 것을 통고받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썩었고 특히 그들을 책임진 지도부가 얼마나 썩어빠졌는지를 말씀합니다.


구원 밖에 있던 자들이 은혜로 구원길을 보게 되어 이스라엘 안으로 들어와서 자기들에게 예수믿고 구원얻는 길을 가르쳐 줄 분들이 아닌가 해서 왕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직접 눈을 열어 믿게 한 이방인들은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아 이미 알아차리고 따라왔는데, 구약교회의 지도급들은 그제서야 서둘러 신학상식을 동원해서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짐작을 하게 됩니다. 그들의 신학상식은 성경을 상대한 것이었으나 영감에 붙들린 평소의 순종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사용됩니다.


나귀를 통해서라도 선지자를 깨우쳤지만 결국 가는 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방 불신자들, 성경을 알지도 못하는 초보들을 통해서라도 주님을 모실 기회가 있었던 교계 지도부들은 그들을 따라 나서지 않고, 그 순간부터 마지막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순간까지 끝까지 예수님 죽이는 일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그들이 가졌던 세상에 좋은 조건들이 그들에게는 구원이고 하나님이었습니다.


자기 백성의 지도자들이 자기들을 구원할 구주가 오셨는데 버선발로 뛰어 나와 엎드려 모실 연구는 하지 않고 교묘하게 없애 죽일 연구만 하고 있었으니, 예수님의 출생은 베들레헴이었지만, 그 젖먹이 시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서는 안 될 애굽으로 가서 숨어 살아야 했습니다. 중국선교사 한분의 말씀에, 오늘 이 나라가 기독교국가가 된다면 참으로 바로 믿으려는 사람은 교회 안에서 죽게 될 것이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그 표현을, 혹 비유가 너무 심하지 않았나 라고 반론하실 분이 계실 것 같습니다. 심한 것이 아니고 그 표현이 너무 부드럽다고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안에서 출생하셨다가 그 목숨을 건지려고 애굽나라, 이스라엘의 반대쪽에 있는 애굽에서 그 목숨을 부지했다는 것은 그냥 읽고 넘어갈 부분이 아닙니다.


천주교가 그 어두운 시대에 지방 일개 목회자 한 사람이 옳은 복음을 전하자 뒤따라 나서기는 커녕 죽여없애려고 혈안이 되었던 것이 루터 칼빈의 시대분위기였습니다. 오늘 어느 교단 어느 시대의 교회라 해도, 교계의 지도부가 세상이 좋아하는 돈과 명예와 권세에 맛을 들이고 나면 그 교계 지도부가 교인들을 구원길로 인도하기는 커녕 구원길을 박멸해서라도 자기 현 세상살이 좋은 것을 유지하려고 새로 돋아나오는 진리운동을 없애게 됩니다. 신사참배 문제로 이 나라 해방 후 형편이 그러했습니다. 오늘은?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미 교계의 지도부는 세상 정권들도 함부로 상대할 수 없는 사회저명가들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옳다는 것은 틀린 것이 많고, 그들이 틀렸다는 것에는 옳은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장의 예수님 출생에 관련된 기록은 그 표현 하나하나를 놓고 오늘 우리가 믿어가야 할 길에 어떤 면을 가르치는지를 살펴보려면 그 양이 너무 많습니다만, 누가복음 2장과 바로 비교하되 목자와 동방박사들의 기록문제를 놓고 살펴보려면 이 면을 하나의 예로 들어 볼 수 있습니다.


②누가복음 2장에서는 예수님 탄생에 관계된 은밀하고 깊은 신앙 내면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출생했을 때, 예수님의 위치는 뉠 곳이 없어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구유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낮아짐 이 가난 이 천대 이 멸시가 바로 우리를 위한 대속의 출발 모습이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낮아지시고 모멸당한 모습을 세밀하게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구유에 눕기까지 당한 과정도 그러했지만 이 분을 알아보고 찾아와서 자기 구주로 영접했던 이들을 현미경으로 자세하게 살피고 있는 것이 누가복음 2장입니다. 누가복음 2장에서는 동방박사를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일반 교인 된 우리들, 교계의 지도자나 신학자나 유력한 부흥사가 아닌,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고 매일 생활 속에서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그런 평교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그 시간에 마태복음 2장에서 벌어지고 있던 왕궁 내 상황은 먼 나라의 일입니다. 왕궁에서는 왕이 교계지도자들을 불러 국가적 비상사태를 맞아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거창한 정치적 정책적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이 베들레헴은 왕궁에서 진행되고 있던 잘난 사람 높은 사람 신학자 교계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나 아니면 죽여 없애버리냐, 이 구주탄생이 사실이냐 위장이냐 착각이냐 이런 것을 의논하던 것과 전혀 세계가 다른 세계였습니다. 베들레헴에 있던 목자들은 그냥 내 현실 속으로 오신 주님, 나에게 천하고 고생하는 환경을 주신 하나님께 그날 밤도 자기 맡은 바 신앙의 식구들을 위해 땀흘려 전도하고 가르치고 이리로부터 자기 신앙식구를 지키기 위해 긴장하며 그런 현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던 그들에게 그들이 고대하던 바로 그 주님 나심을 알려 그들의 그 현실 그 자리에서 주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구원 성공은 국가를 통치하는 최고위직 왕궁에 서성거리고 그들의 결정으로 나라의 운명이 뒤바뀌는 그런 고위직에 있지 않았고, 선지자로 제사장으로 그 시대의 교계지도자로 존경받는 총회장직에서 구원성공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 교회와 교인들 중에 진정으로 이 시대 교인으로서 자기 구원을 잘 이루어 하늘나라 하나님 앞에 지극히 존귀한 자로 영접받게 되는 것은 교단 지도부에 진입을 해야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하가 어지럽고 천하에 좋은 자리 모두들 부러워하는 목회성공 훌륭한 교인 되는 그런 길에 있지 않고 모두들 깊이 잠든 그 순간에도 말씀으로 묵묵히 자기 맡은 교인 하나를 돌보는 바로 그에게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2장에서는 목자들에 대한 기록에 이어 바로 성전에서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던 시므온, 84년간 과부로 홀로 살며 성전에서 주야로 금식하며 주님만을 사모하던 100세가 넘었던 안나와 같은 이들이 주님을 영접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목자나 시므온이나 안나는 모두들 마태복음 2장에서 기록하고 있는 국가적 큰 방향과 상관없이 한 개인 개인이 조용히 은밀히 주님과 동행하며 자기 구원을 바로 이루어가는 면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③눅2장과 마2장을 별도로 기록한 내용은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교계의 지도자, 신앙의 인도자의 눈이 하나 잘못되면 온 나라에 임한 구원이 애굽으로 쫓겨가게 되고, 교회 안에서는 주님을 찾아볼래야 찾을 수도 없는 이런 상황이 생깁니다. 여기서 교회의 지도자 신앙의 인도자 한 사람의 중요성이 얼마나 크다는 것도 알 수 있고


그렇든 말았든 주님만 바로 보고 구원의 현장에서 맡은 일에 충성하고 또 주님 앞에 모든 것을 의논하며 묵묵히 걸어가는 무명의 신앙인들은 그 당시 세상은 알지 못했으나 또 교계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이스라엘의 구주가 해외로 망명하는 사태가 발생했으나 그들은 자기 주님을 모시는 일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늘 교계 지도자가 된 자들이 회개할 바와 조심할 바와

오늘 교계 지도자를 향해 일반 교인들이 알아야 하고 조심할 바와

그리고 오늘 못난 교인으로 믿고 가는 우리들이 지도자를 탓할 것 없이

구원에 있어서는 내 구원 손해 보지 않는 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 면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 중에 하나를 예로 들어 보았습니다. 따라서 이 동방박사의 일과 목자들의 일은 단순히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비교한 다음 글자의 갯수와 알파벳의 배열이 맞지 않으니까 성경기록의 착오가 아니냐고 생각한다면 잘못입니다.
[성경관] 오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록 착오에 대하여 - 관)
제목분류 : [~성경~성경관~성경해석~]

내용분류 : [-성경-성경관-성경해석-]/[-성경-주해-마태복음-]/[-성경-주해-누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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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탄생하셨을때 마태복음에는 동방박사가 오고

누가복음에는 목자들이 옵니다.

목사님의 이부분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마태복음을 통해 하실 말씀이 있고,누가복음을 통해 하실 말씀이

있다 했는데 그렇다면 그 동방박사와, 목자 사건을 한사건으로

보는것입니까? 아니면 두가지다 일어난 사건으로 보아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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