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예수님의 대속의 내용이 4가지임을 기억하시고, 2.마음의 죽음은 순식간 변화입니다.

문의답변      


1.예수님의 대속의 내용이 4가지임을 기억하시고, 2.마음의 죽음은 순식간 변화입니다.

분류
yilee 0
1.예수님의 대속에 대한 교리는, 백목사님의 교훈세계의 중심에 있습니다.


①실제 대속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 그의 설교 세계였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에 대한 교리는 이미 세계 기독교 교리사에서 수도 없이 연구하고 발표된 내용입니다. 그래서 관련 내용은 거의 나와 있다고 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백목사님의 설교 세계 역시 예수님의 대속에 대한 연구와 감사가 중심에 있습니다. 물론 그 교훈의 시작은 늘 우리를 구원하기로 목적을 정하신 자존하신 하나님이며 그 소망은 천국에서도 영원히 자라갈 영생에 있습니다. 여기서는 예수님의 대속에 관련된 문제가 나왔으므로 내용을 대속에 한정시키겠습니다.


백목사님의 교훈 세계에서 접할 수 있는 예수님의 대속은, 일반 교훈과 비교할 때 그 깊이와 실감과 실생활에서 바로 실행하게 만드는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일반 교훈들과 굳이 비교를 해 본다면, 일반 설교들은 예수님의 대속에 대하여 너무 겉도는 정도이고 그냥 허공을 향해 광고하는 정도라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②평생 연구해 온 내용이므로, 당연히 그 내용은 항상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이곳 홈의 /초기화면/활용자료/원본설교/를 살펴보시면 백목사님의 대속에 대한 연구는 1950년대부터 시작해서 60년대 70년대를 거쳐 그의 마지막 생존 기간이었던 1980년대 말까지도 계속해서 그 내용이 깊어지고 더욱 세밀하게 조직화하고 있었습니다.


1950년대 초기에는 일반 신학이 아는 정도인 '사죄'와 '칭의' 정도로 예수님의 대속을 파악하고 있는데 물론 그 실감은 이 시대의 대표적인 종이라 하기에 충분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1960년대를 넘어서면서 사죄와 칭의의 정통 교리를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으로 다시 한번 볼 수 있는 시력을 갖게 되면서 그의 대속에 대한 교훈은 세계 교리사에서 사실상 비교할 대상이 없을 정도로 아주 탁월한 차원으로 올라서게 됩니다.


그리고 1970년대는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의 교리로 더욱 세분화하며 예수님의 대속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특히 '새생명'의 개념을 1960년대에는 새로 주신 생명이라는 정도로 윤곽을 잡고 있다가 1970년대에는 하나님과 하나된 연결의 화친과 화목의 내면을 보게 됩니다.


그의 교훈 세계는 그의 교리나 목회 세계와 함께 그의 나이 40대보다 50대, 50대보다 60대, 60대보다 70대와 80대를 거쳐 생존 최종 순간까지 거침없이 늘 자라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초기 신앙만을 놓고 비교해도 당대 최고의 신앙가였는데, 쉬지 않고 자라가는 내면의 성화과정은 정말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그의 삶에서 비록 오늘 우리 신앙이 아무리 미천하다 해도 한발자욱씩이라도 계속만 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산 생애였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의 세계는 일반 성자들과 달라서 그림의 떡이 아니고 그를 접한 사람들이 한 발씩 내딛으면 바로 그를 뒤쫓아 그를 추월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③예수님의 대속 중에서 '새생명' 또는 '하나님과 화친'으로 표현되는 면이 있습니다.


일반 교리는 지옥 갈 우리의 죄를 해결했으니 이를 '사죄'라 하고, 이제 천국 갈 사람으로 의롭게 만들었으니 '칭의'라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 교리만 해도 천주교 1천년의 쇠사슬을 풀고 천국의 아들들을 되찾은 교리이므로 우리 기독교사 절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교리만으로는 구원받은 기쁨과 감사만 느끼고 누리게 되지, 구원 받은 사람이 이후에 어떤 면에 주력할지 실제 노력할 방향을 잡아주는 데에는 미흡합니다.


백목사님의 교리가 초기 '사죄'와 '칭의'라는 양면을 요약한 일반 교리에 머물 때만 해도 그의 신앙은 일반 교계의 신앙 노선에 속하여 그 중에서 다만 개인의 경건과 하나님 동행이 특별했던 정도라고 평가를 하겠는데, 예수님의 대속에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양면을 새로 파악하자 이제 '사죄'와 '칭의'의 대속 개념을 기본구원면에서도 살피는 동시에 내나 그 '사죄'와 '칭의'를 건설구원으로 평소 노력하고 평생 계속해야 하는 일상 생활 속의 사죄와 칭의로 가지게 됩니다.


늘 말씀대로 살고 자기 속에 성령에 붙들려 살기 위해서 모든 현실 속에서 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자기가 걸어갈 걸음을 걸어가도록 이 '사죄'와 '칭의'의 건설구원적인 면을 찾아냈으니 이 신앙노선에서는 일반인의 모범적 신앙생활이 과거 시기의 대단한 성자들의 걸음에 비할 정도로 그 수준을 높혔다고 하겠습니다. 더하여 대속의 3번째 내용인 '새생명'으로 이제 하나님과 하나되어 살 수 있게 된 이 은혜를 그냥 법적으로 기본적으로 받게 된 명목상의 은혜로 방치하지 않고, 매일 생활에서 내면으로 주님과 실제 하나되어 움직이는 신앙을 갖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지상 생활 마지막 순간이 1980년대 말에는 하나님과 하나 된 우리가 영원을 소망하며 사는 '영생의 소망'을 예수님의 대속에서 찾게 되어, 이제 우리의 대속은 이 땅 위에서 미리 천국생활을 할 수 있는 데까지 나가게 했습니다.


④이렇게 평생 자라가는 신앙이었기 때문에, 그 교훈의 표현은 미세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심겨진 씨가 자라 큰 나무가 되듯 그의 교훈 세계는 그런 성장이 평생 계속 되었기 때문에 내적으로는 그 생명의 연장이며 성장일 뿐인데, 외적으로 보면 변화가 있어 마치 변덕이나 변화가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주님 대속에 대한 교리와 교훈 요약이 평생 조금씩 그 내용이 더해지고 깊어지면서 넓어진 범위를 포함하기 위해 용어의 변화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초기에 백목사님께 배운 분들은 예수님의 대속을 '사죄와 칭의'로만 외우다시피 했고, 그다음에는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으로 기억하며, 그리고 그 마지막을 기억하는 분들은 '사죄와 칭의와 화친과 영생의 소망'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정통교리에서 종자를 이어받아 뿌리고 가꾸어 자라게 했다고 아셨으면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이 4가지 대속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게 된 과정을 설명하면서, 죽음으로 '사죄와 칭의'를 주셨고, 부활로 '새생명'을 주셨다고 표현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깨닫던 예수님의 대속의 내용은 그 정도 범위가 전부였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 '죽음으로 죄 불의 하나님과 원수 된 죄값을 해결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이라는 대속을 받게 했고 이 법적 지위를 부활로 말미암아 이제 실제 우리에게 적용되도록 했다'고 가르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대속의 교훈이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영생의 소망'까지도 예수님의 대속에서 해결되었고 그것이 전부 '죽음'으로 인하여 잃은 모든 것을 되찾게 하고, '부활'로 인하여 우리에게 실제 주어지도록 실효를 확보한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⑤따라서 질문자의 지적은,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답변입니다.


이곳 홈에서는 5천개가 넘는 녹음본 설교 원문 내용 전체를 필요할 때마다 일일이 근거자료로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오랫동안 백목사님 설교를 들어왔고 초창기부터 늘 정리해오며 듣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한 시점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제 그가 평생 노력하며 이 시대를 향해 외쳤던 교리와 신앙노선의 최종 결론은 무엇이었는지를 요약할 수 있는 때이므로 이곳 홈에서 특별히 과거 어느 한 시점을 표시하지 않을 때는, 종합 정리적 시각에서 글을 적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곳 홈을 찾는 분들이 과거 어느 한 설교 자료를 가지고 이곳 답변자가 요약한 글들을 지적하신다면 수없는 오류가 지적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오류라고 보기 이전에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말한 것인지를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2.사람의 마음도 한번은 사망하게 됩니다.


영은 하나님과 연결되고 하나님만 사용하시기 때문에 그 사망이 즉시 표가 납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먹통처럼 통하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리고 중생된 증거는 우리 입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몸의 사망은 불신자도 아는 것처럼 장례를 치르는 일로 나타납니다. 문제는 마음도 한번은 원죄로 인하여 죽는 존재인데 언제 죽느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죄 아래 살던 인간의 마음의 사망은 몸과 그 사망의 순간을 같이 하게 됩니다. 다만 몸은 보이는 물체이므로 불신자들도 알고 또 눈에 보이는 장례식을 치르기 때문에 확인이 되고 또 그것이 제일 큰 문제인 줄 알기 때문에 교회에서도 늘 그 문제를 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비록 몸의 주인노릇을 하는 것이고 물질 중에 가장 중요하고 그 기능이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거의 논란이 되지 않았고 그래서 '백영희조직신학 요약본'에서조차도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몸과 함께 물질입니다. 따라서 마음의 사망 시기는 몸이 죽는 바로 그 시점입니다. 다만 몸과 달리 마음은 몸이 죽을 때 순간적으로 변화를 받아 그 영과 함께 영계로 옮겨지기 때문에 일반 관찰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몸이 죽을 때 마음의 순간적 변화가 바로 마음의 순간 죽음과 순간 변화입니다. 마치 우주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성도들이 예수님 재림 때 순간적으로 홀연한 변화를 거치는 것처럼 마음은 오늘도 그런 변화를 통과하게 됩니다.
[대속] 1.소망도 죽음으로 주신 것인지? 2.사람의 마음은 한번도 죽음을 갖지 않는지?
제목분류 : [~교리~기독론~대속~]

내용분류 : [-교리-기독론-대속-]/[-교리-인론-삼분론-마음-]


--------------------------------------------------------------------------------------------


연구실의 정리방 안에서 '교리요약'을 읽으며 의문 나는 점 2가지를 질문합니다.


1. ‘소망’은 예수님의 부활로 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죽음으로 소망을 주셨다는 말이 생소했습니다. 논리적, 이치적 설명으로는 맞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었는지 기존 배운 것과 차이가 나는 듯 합니다.


2. 사람의 마음은 죽음을 한 번도 당하지 않는 것입니까?


영은 한번 죽었다가 중생되고, 몸도 죽었다가 부활하는데, 마음의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비록 신비한 물질이라도 마음도 물질이고, 죄로 인하여 저주 받은 물질이라면 한번은 죽음을 통과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
쓰기 문의답변 초기목록
(1) 항목별 검색 주제별 | 가나다별 | test 주제별 정리
(2) 게시판 검색
(3) 통합 검색
번호제목이름날짜
  • 13938
    성도A
    2026.02.23월
  • 13937
    외부교인
    2026.02.20금
  • 13936
    교인
    2026.02.16월
  • 13935
    LA
    2026.02.15일
  • 13934
    재독
    2026.02.14토
  • 13933
    학생
    2026.02.12목
  • 13932
    성도A
    2026.02.11수
  • 13931
    도봉
    2026.02.10화
  • 13930
    교인
    2026.02.10화
  • 13929
    배우는 이
    2026.02.05목
  • 13928
    성도A
    2026.02.04수
  • 13927
    학생
    2026.02.02월
  • 13926
    성도A
    2026.02.02월
  • 13925
    공회교인
    2026.01.23금
  • 13924
    학생
    2026.01.21수
  • 13923
    학생
    2026.01.16금
  • 13922
    반사
    2026.01.16금
  • 13921
    학생
    2026.01.15목
  • 13920
    반사
    2026.01.13화
  • 13919
    성도A
    2026.01.12월
  • 13918
    신학도
    2026.01.12월
  • 13917
    부족한교인
    2026.01.06화
  • 13916
    성도A
    2025.12.26금
  • 13915
    돌아온탕자
    2025.12.23화
  • 13914
    믿는 자
    2025.12.2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