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계속부은 고기국에 `신학`을 비유한 백목사님 설교를 인용해드립니다.

문의답변      


물을 계속부은 고기국에 `신학`을 비유한 백목사님 설교를 인용해드립니다.

분류
help1 0
제목분류 : [~인물~홈운영자~]

내용분류 : [-인물-홈운영자-]/[-교리-교회론-신앙생활-신학-]


--------------------------------------------------------------------------------------------


■ 88.05.03 ▒ 화새벽 (88.5월 집회) 에서 인용합니다.


그러기에, 그 비유가 될란지는 모르지마는, 어떤, 만일 우리가 날마다 식사하는데 고기국을 끓인다고 하면은 고기국을 끓여서 한 말쯤 양을 해서 아주 진짜 고기국을 끓여 놨습니다. 거게다가 처음에는 맛이 좋았는데 물을 한 말 더 부으니까 그만치 또 맛이 아주 좀 옅어집니다. 또 두 말을 부으니까 더 옅어집니다. 만일 백 말을 부어 놓으면 아마 내음새도 잘 나지 안할 정도일 겁니다. 또 거게다가 한 천 말이나 부어 놓으면 아주 묽기를 아무것도 하지 안한 그저 우물물, 수도물과같이 그렇게 아주 아무 뭐 맛이나 내음새나 하는 그런 거는 없어지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 무오하시고 또 이 말씀은 영원 미래를 우리에게 선포해 놓은 계약입니다. 그러기에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미래가 안 된다면은 당신은 위약의 법이 됩니다. 그분은 위약하지 않습니다. 위약하면 정죄받습니다. 위약했으면 죄가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범죄하시는 하나님이 모든 존재를 심판할 권위는 다 없어집니다. 하나님은 그 삐뚤어진 일을 할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언해서 놓으신 예언은 곧 예약이요, 예약은 곧 하나님이 당신을 보증으로 담보로 이렇게 삼아 가지고 하셨기 때문에 그 예약대로 안 되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절단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는 그런 거짓이라 하는 것이 하나도 없으신 하나님인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래서, 성경을 연구한 것을 성경대로 가지고서 하나님 연구한 그것을 처음에는 신학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그 연구한 사람의, 사람이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연구한 그것을 그다음 사람은 또 그 연구한 그걸 보고 또 연구하고 또 그다음 사람은 또 연구한 그것을 보고서 연구하고 이라기 때문에 신학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의 도리와 오늘의 신학과는 이거는 정반대가 될 만치 이렇게 아주 변질돼 있습니다.

마치 한 말 맛있는 국에다가 천 말을 부어 놓으니까 이제 그 내음새도 나지 않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오늘은 사람들이 신학은 점점 발달돼 나가서 점점 정확해지는가 이렇게 생각을 어리석게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그 사람이 그 어학을 하나 아니까 한 어학으로 기록한 신학밖에는 모르는데 이 사람은 어학을 열을 아니까 열 어학으로 기록한 열 신학을 아니까 광대하고 더 또 세밀하고 더 정확함을 알고 있다 이래서 존대를 받습니다. 또 존경을 합니다.


그것은 성경보고 연구한 데에서 또 그것을 또 사람의 의사와 모든 사람의 연구와 생각을 보태고 또 보태고 또 보태고 또 보태서 맛있는 국 한 말에다가 거게다가 물을 한 천 말쯤 부어 놓으니까 내음새도 안 나고 그렇게 외나 그 맛과는 아주 다른, 아주 우물과같이 맹물이 되어졌건마는서도 인간은 그것을 더 높이 평가합니다. 이것이 오늘입니다.

이래서, 사람들도 그것을 칭찬하고 자랑하고 또 가치로 평가하기 때문에 마귀란 놈은 뭐 말할 것 없이 그만 이렇게 이것으로써 그저 일사적으로 그만 무더기로 기독교를 막 죽여서, 한 벌 죽이고 죽인 걸 또 두 벌 죽이고 또 세 벌 죽이고 자꾸 죽이고 죽여서 기독자의 내음새도 나지 안할 만치 완전히 죽여 버리는 이것을 목표로 삼고 향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사람의 말에다가 가치를 두고 하나님 말씀에 가치를 두지 않는 거게서 길이 갈라졌습니다. 그 기로가 져서 갈라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꾸 갈라진 그 길로 달립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 가면은 선지의 상이 제일 크다 이렇게 말했는데 선지의 상이 크다 그말은 하나님이 이 육십 육 권 도리에다가 기록해 가지고 구원 도리를 주신 이 구원 도리를 정확하게 사람들에게 전달한 자를 가리켜서 선지자라 그렇게 말합니다.

뭐 순교당한 사람도 있고 별별 사람들이 많이 귀한 생애한 사람들이 많지마는 신구약 성경의 하나님의 도리를 인간들에게 정확하게 바로 전달해 준 그 사람이 상급이 제일 크다 하는 것입니다.

그와 반면으로 하나님께서 제일 형을 많이 주고 제일 원수로 삼아서 크게 그 형을 많이 줘 가지고서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도록 그렇게 하는 자는, 그런 형을 받는 자는 어떤 자이냐? 그런 형을 받는 자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거짓 선지자가 그런 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구원의 참된 길을 걸어가는 데에도 제일 근거로 삼을 것이 문서 계시요 또 우리가 구원에서 멸망받는 삐뚤어져 나가는 데에도 제일 근거를 삼을 것이 뭐이냐 하면 하나님의 지식이 아닌 이 세상 지식입니다.

그래서, 지난밤에는 사람들이 자기가 당면하는 그 현실을 어떻게 밟아 가면 그 현실을 걸어가면 자기의 좋은 미래가 되고 또 영광스럽고 존귀한 자체와 자기 행위와 자기의 닦아 놓은 모든 소유가 되어지겠느냐 명예라든지 지위라든지 뭐 모든 이력의 그런 것도 다 소유입니다 되겠느냐 하는 이것은 사람이 자기의 소유나 자기의 행위나, 행위도 다른 사람에게 칭찬, 존귀받는 행위가 있어서 이 행위를 가리켜서 하늘나라에서는, 세상에서는 그 행위가 그것도 뭐 세상에서도 영광이 되어지지마는 하늘나라는 그 사람의 행위를 의복이라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의복으로 비유했습니다. 그 의복으로 비유할 때에 세마포 옷이라 이래. 세마포라 하는 것은 실의 날이 있고, 날을 이렇게 쭉 늘어 놓고 거게다가 하나씩 둘씩 이래 북으로써 짜서 씨를 짜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베를 만드는 것인데 그것으로 비유했습니다.
[신학] 목사님의 신학수준은?
제목분류 : [~인물~홈운영자~]

내용분류 : [-인물-홈운영자-]/[-교리-교회론-신앙생활-신학-]


--------------------------------------------------------------------------------------------


(다음에 인용하는 글은) 목사님 글을 읽다가 발견한 부분 입니다.

지금 목사님의 신학수준은 어느정도 되신다고 보십니까?

신학을 해보셨기에 신학이라는 것이 하나 쓸데 없는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신학 수준도 어느정도 수준이 되어야지만 강력하게 주장할수 있다 봅니다. 그저 지나가듯 보기만 했다면 그렇게 말해선 안된다고 봅니다.

하지만 목사님이 신학에 깊은 곳까지 가보셨고, 많은 공부를 하셨고

신학의 깊이있는 수준까지 경험을 하셔서 신학이 신앙에 하나 소용없구나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타당하다고 봅니다.


목사님의 신학 수준은 어느정도 까지 이신지 자기 스스로 평가를 한다는 것이

어폐가 있지만 객관적으로 또 주관적으로 평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홈페이지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더욱더 현실성있게 다가오리라 생각을 해봅니다.


-----------------------------------------------------------------------------------


(*인용 부분)


백목사님 교훈 노선에 귀가 열릴 때부터, 학문이 필요없다는 것은 수도 없이 들었으나 늘 마음 속으로는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 분이 저렇게까지 금할 때는 경험이 있어 그럴 것이니 학문이 우상되지 않도록 학문에 의지하여 하나님 섭섭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이지 참으로 그것이 전혀 필요없다는 말씀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 이후를 넘어서면서 수년간은 참으로 신학은 전혀 필요 없다는 것인가 아니면 있기는 있어야 하지만 너무 위험하니까 일반교인 전체를 상대로 설교할 때는 교훈차원에서 총론적으로 그리 말씀하시는 것일까 라는 숙제를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1982년 10월 연구소 직원이 되었고 이후 몇 개월간 늘 말씀만 대할 기회가 오면서 이 문제에 대하여는 단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1983년 4월에 백목사님이 해외 신학공부를 명할 때, 자신있게 그리고 단호하게 목회와 신앙에는 전혀 필요없는 것을 왜 하라시느냐고 반문하고 감히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백목사님의 단정과 지도를 지금까지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신학이 전혀 필요없고 오히려 그것으로 손해만 보지만, 일단 신학공부를 정식으로 하게 되면 그 이전에 깨달은 말씀을 전할 때, 듣는 사람들이 그것을 신중히 듣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을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왜 자기 구원에 손해를 보면서 남을 위해 그런 위험한 일을 제가 하겠습니까 할때 목사님은 현재로 공회적으로 필요하여 가라는 것이고, 가서 할 일은 우리가 학문없이 깨달은 것과 다른 사람들이 학문으로 깨달은 것을 비교하여 앞으로 우리의 이런 신앙노선을 요약하고 전할 때 학문으로 깨달은 것과 비교하며 전할 때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3년간 Covenant신학교에서 제가 배운 바는 전혀 없습니다. 배울 것도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참고한 것이 있다면 세계 신학계의 깨달음이 어떤가를 열람해 본 것 뿐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과연 신학이란 필요가 없다는 단정을 수도 없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을 갔다 옴으로 하나 도움된 것이 있다면, 신학이 필요없다는 주장을 마음껏 소리높혀 외칠 수 있는 경험과 자료와 이유와 실제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안내문)


'( )'는 관리자가 이해를 돕기 위해 적었으며, 인용하는 글과 질문자의 글의 위치를 바꾸었습니다. 원래 인용하는 글이 앞부분에 있었습니다.
---------------------------
쓰기 문의답변 초기목록
(1) 항목별 검색 주제별 | 가나다별 | test 주제별 정리
(2) 게시판 검색
(3) 통합 검색
번호제목이름날짜
  • 13938
    성도A
    2026.02.23월
  • 13937
    외부교인
    2026.02.20금
  • 13936
    교인
    2026.02.16월
  • 13935
    LA
    2026.02.15일
  • 13934
    재독
    2026.02.14토
  • 13933
    학생
    2026.02.12목
  • 13932
    성도A
    2026.02.11수
  • 13931
    도봉
    2026.02.10화
  • 13930
    교인
    2026.02.10화
  • 13929
    배우는 이
    2026.02.05목
  • 13928
    성도A
    2026.02.04수
  • 13927
    학생
    2026.02.02월
  • 13926
    성도A
    2026.02.02월
  • 13925
    공회교인
    2026.01.23금
  • 13924
    학생
    2026.01.21수
  • 13923
    학생
    2026.01.16금
  • 13922
    반사
    2026.01.16금
  • 13921
    학생
    2026.01.15목
  • 13920
    반사
    2026.01.13화
  • 13919
    성도A
    2026.01.12월
  • 13918
    신학도
    2026.01.12월
  • 13917
    부족한교인
    2026.01.06화
  • 13916
    성도A
    2025.12.26금
  • 13915
    돌아온탕자
    2025.12.23화
  • 13914
    믿는 자
    2025.12.2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