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문제를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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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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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15 00:00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교리-구원론-건설구원-]/[-성경-주해-로마서-]/[-성경-주해-에베소서-]/[-교리-인론-삼분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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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번 질문 내용은 이미 여러분들에 의하여 여러번 반복된 내용입니다.
그동안 질문자께서 말씀하시고 반복적으로 살핀 내용은 이 홈에서 다른 분들에 의하여 자주 오간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번 문답에서는 비교적 문제의 본질에 가장 깊게 그리고 정확하게 도달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2.건설구원 문제에 대하여 일반 교리가 마지막으로 설명하는 곳은, '자연스런 행동'입니다.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는 문제를 가지고, 이곳에서 일반 교리에 정통한 분들을 상대로 질문을 하게 되면 대개 헤맵니다. 행함을 강조하면 은혜가 집을 나가고, 은혜를 강조하면 실행이라는 단어가 집을 잃고 골목에서 배회하게 됩니다.
혹 수백페이지 짜리 '구원론' 조직신학 교과서를 유심히 읽고 파악하신 분들 중에서 이런 문제를 설명하면서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라면 행동은 저절로 나오게 된다'는 논리를 제시합니다. 차라리 '은혜'도 성경이고 '실행'도 성경인데 이 2가지의 조화와 이해는 사람의 이해로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분야라고 설명한다면 좋겠는데,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게 되면 혼란만 더욱 커지게 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네 마음을 '다하라'
죽도록 '충성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런 성경 말씀의 요구들이 중생된 우리에게서 저절로 나오게 되는 행동이라고 한다면 성경 해석도 너무 억해일 것이고, 신앙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분들입니다. 아마 그런 발언을 처음 하신 분은 천사같은 자신의 마음처럼 다른 분들도 다 그런 줄 알고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3.구원론에서 '은혜'와 '행위'를 두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것은 백영희목사님이 처음입니다.
박윤선주석 뿐 아니라 모든 설교록 모든 주석에서 우리가 노력할 것도 없이 저절로 말씀대로 행해지고 그렇게 살아가게 되어 있다고 말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모두들 생명 걸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 부분이 거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막상 '구원이란 은혜로 얻는가 말씀대로 행하는 노력으로 얻는가'라는 교리 문제가 제기 된 성구에 이르게 되거나 아니면 그런 문제를 언급해야 하는 경우가 되면 갑자기 '참으로 중생된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 '중생된 사람은 죄를 지어도 일시 잠깐 우발적으로 죄를 짓는다' '알고 또 반복적으로 죄짓는 사람은 중생이 아직 안 된 사람인데 착각을 한 것이다' '중생된 사람은 저절로 믿음의 행위, 즉 말씀대로 사는 실행을 하게 된다'는 식으로 빠져버립니다.
그런 분들의 평소 설교를 그분들의 구원관 교리 설명부분과 나란히 놓고 보면 이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종교개혁 이후 오늘까지 내려온 교리사의 혼동이었고, 교회의 근본 밑바탕이 되는 이 교리의 혼동은 종교개혁이 지난 수백년 후 교회들이 제 갈길을 잡지 못하고 이리 저리 흩어지게 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4.질문자께서 말씀하신 내용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당연히 행함이 있다는 식으로 설명하는걸로 알고있습니다.
>그러니깐 동전의 양면성 같은걸요 예를듭니다.
동전의 양면성이라는 표현은 이 문제를 두고 애매한 표현입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잘못된 표현입니다. 물론 행함은 믿음에서 나오고, 또 바로 믿는 사람에게는 행함이 열매처럼 자동적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죽도록 실행하라'고 요구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그런 방향에서 설명할 것이 아니고 건설구원으로 딱 부지러지게 안내를 해야만, 믿는 사람이 죽도록 해야 할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죄를 지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주일을 어기면 무엇인가 찜찜한 그런 자연스런 가책이나 기본 사항은 중생된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표시입니다.
물론 건설구원에서도 행함만으로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말씀을 인정하여야만 마음의 믿음이 되고, 그 마음이 인정한 대로 몸이 행동을 해야 비로소 몸과 마음이 말씀대로 행한 사람이 됩니다. 그렇다면 속에는 믿음이고 겉에는 행동입니다. 속에는 마음이 말씀을 인정하므로 말씀을 믿었고, 겉으로는 몸이 행하므로 믿는 행위를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는 말씀대로 살까 말까 하는 갈랫길을 두고 우리가 많은 고민과 갈등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 갈랫길에서 말씀대로 살려고 내가 결정하고 노력할 때 건설구원은 자라게 됩니다. 그리고 알고보면 그렇게 결정하고 행한 그 속에는 주님이 다 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예정론의 자유의지와 절대예정의 관계까지 연결됩니다. 둘을 한꺼번에 연결하면 보다 분명하게 해결이 될 것입니다. 참고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한 것은 건설구원에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결국 구원받기위해선 믿음이 필요한데 믿음이 있으면 당연히 행한다는 거죠.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중생이 되어 천국가게 되는 기본구원은 내가 믿음을 가지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중생을 시켰으니, 나에게서 믿는 노력이 나오는 것은 중생이 되었다는 표시고 결과입니다. 그리고 건설구원은 믿음이 있어야 행동이 나오고, 행동이 나오지 않는다면 아직 믿음이 어려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둘의 관계는 아이가 자라가듯이 수없이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길러가고 연습하며 되어집니다.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교리-구원론-건설구원-]/[-성경-주해-로마서-]/[-성경-주해-에베소서-]/[-교리-인론-삼분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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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번 질문 내용은 이미 여러분들에 의하여 여러번 반복된 내용입니다.
그동안 질문자께서 말씀하시고 반복적으로 살핀 내용은 이 홈에서 다른 분들에 의하여 자주 오간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번 문답에서는 비교적 문제의 본질에 가장 깊게 그리고 정확하게 도달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2.건설구원 문제에 대하여 일반 교리가 마지막으로 설명하는 곳은, '자연스런 행동'입니다.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는 문제를 가지고, 이곳에서 일반 교리에 정통한 분들을 상대로 질문을 하게 되면 대개 헤맵니다. 행함을 강조하면 은혜가 집을 나가고, 은혜를 강조하면 실행이라는 단어가 집을 잃고 골목에서 배회하게 됩니다.
혹 수백페이지 짜리 '구원론' 조직신학 교과서를 유심히 읽고 파악하신 분들 중에서 이런 문제를 설명하면서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라면 행동은 저절로 나오게 된다'는 논리를 제시합니다. 차라리 '은혜'도 성경이고 '실행'도 성경인데 이 2가지의 조화와 이해는 사람의 이해로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분야라고 설명한다면 좋겠는데,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게 되면 혼란만 더욱 커지게 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네 마음을 '다하라'
죽도록 '충성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런 성경 말씀의 요구들이 중생된 우리에게서 저절로 나오게 되는 행동이라고 한다면 성경 해석도 너무 억해일 것이고, 신앙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분들입니다. 아마 그런 발언을 처음 하신 분은 천사같은 자신의 마음처럼 다른 분들도 다 그런 줄 알고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3.구원론에서 '은혜'와 '행위'를 두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것은 백영희목사님이 처음입니다.
박윤선주석 뿐 아니라 모든 설교록 모든 주석에서 우리가 노력할 것도 없이 저절로 말씀대로 행해지고 그렇게 살아가게 되어 있다고 말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모두들 생명 걸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 부분이 거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막상 '구원이란 은혜로 얻는가 말씀대로 행하는 노력으로 얻는가'라는 교리 문제가 제기 된 성구에 이르게 되거나 아니면 그런 문제를 언급해야 하는 경우가 되면 갑자기 '참으로 중생된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 '중생된 사람은 죄를 지어도 일시 잠깐 우발적으로 죄를 짓는다' '알고 또 반복적으로 죄짓는 사람은 중생이 아직 안 된 사람인데 착각을 한 것이다' '중생된 사람은 저절로 믿음의 행위, 즉 말씀대로 사는 실행을 하게 된다'는 식으로 빠져버립니다.
그런 분들의 평소 설교를 그분들의 구원관 교리 설명부분과 나란히 놓고 보면 이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종교개혁 이후 오늘까지 내려온 교리사의 혼동이었고, 교회의 근본 밑바탕이 되는 이 교리의 혼동은 종교개혁이 지난 수백년 후 교회들이 제 갈길을 잡지 못하고 이리 저리 흩어지게 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4.질문자께서 말씀하신 내용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당연히 행함이 있다는 식으로 설명하는걸로 알고있습니다.
>그러니깐 동전의 양면성 같은걸요 예를듭니다.
동전의 양면성이라는 표현은 이 문제를 두고 애매한 표현입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잘못된 표현입니다. 물론 행함은 믿음에서 나오고, 또 바로 믿는 사람에게는 행함이 열매처럼 자동적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죽도록 실행하라'고 요구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그런 방향에서 설명할 것이 아니고 건설구원으로 딱 부지러지게 안내를 해야만, 믿는 사람이 죽도록 해야 할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죄를 지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주일을 어기면 무엇인가 찜찜한 그런 자연스런 가책이나 기본 사항은 중생된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표시입니다.
물론 건설구원에서도 행함만으로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말씀을 인정하여야만 마음의 믿음이 되고, 그 마음이 인정한 대로 몸이 행동을 해야 비로소 몸과 마음이 말씀대로 행한 사람이 됩니다. 그렇다면 속에는 믿음이고 겉에는 행동입니다. 속에는 마음이 말씀을 인정하므로 말씀을 믿었고, 겉으로는 몸이 행하므로 믿는 행위를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는 말씀대로 살까 말까 하는 갈랫길을 두고 우리가 많은 고민과 갈등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 갈랫길에서 말씀대로 살려고 내가 결정하고 노력할 때 건설구원은 자라게 됩니다. 그리고 알고보면 그렇게 결정하고 행한 그 속에는 주님이 다 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예정론의 자유의지와 절대예정의 관계까지 연결됩니다. 둘을 한꺼번에 연결하면 보다 분명하게 해결이 될 것입니다. 참고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한 것은 건설구원에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결국 구원받기위해선 믿음이 필요한데 믿음이 있으면 당연히 행한다는 거죠.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중생이 되어 천국가게 되는 기본구원은 내가 믿음을 가지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중생을 시켰으니, 나에게서 믿는 노력이 나오는 것은 중생이 되었다는 표시고 결과입니다. 그리고 건설구원은 믿음이 있어야 행동이 나오고, 행동이 나오지 않는다면 아직 믿음이 어려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둘의 관계는 아이가 자라가듯이 수없이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길러가고 연습하며 되어집니다.
[기본구원] 재질문입니다..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교리-구원론-건설구원-]/[-성경-주해-로마서-]/[-성경-주해-에베소서-]/[-교리-인론-삼분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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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믿음으로 의로워 진다고 말씀할 때의 의미는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영을 살려내기 위해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 영에게 입혀 영을 중생시키는 과정에서 인간은 주시는 것을 마치 뚜껑열린 독에 폭우로 인하여 물이 담기듯이 그렇게 담기게 되었다는 뜻으로 말씀하는 기본구원의 경우가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우리가 조금이라도 알고 느끼고 '믿으려는' 마음의 움직임을 가질 때가 있는데 이는 중생 후 영이 마음을 설득시켰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는 마음의 성화문제이며 건설구원의 경우입니다.
이 이야기는 결국 중생도 하나의 믿음에 들어간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성경에서 믿음을 가지고 언급할때는 위의 두가지 믿음이라는 말씀을 구분하며 말씀을 읽어야 된다는 이야기 입니까?
그렇다면 이 두가지를 어떻게 구분하며 지금까지의 성경해석들은 많이 잘못되었다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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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교리-구원론-건설구원-]/[-성경-주해-로마서-]/[-성경-주해-에베소서-]/[-교리-인론-삼분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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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믿음으로 의로워 진다고 말씀할 때의 의미는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영을 살려내기 위해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 영에게 입혀 영을 중생시키는 과정에서 인간은 주시는 것을 마치 뚜껑열린 독에 폭우로 인하여 물이 담기듯이 그렇게 담기게 되었다는 뜻으로 말씀하는 기본구원의 경우가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우리가 조금이라도 알고 느끼고 '믿으려는' 마음의 움직임을 가질 때가 있는데 이는 중생 후 영이 마음을 설득시켰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는 마음의 성화문제이며 건설구원의 경우입니다.
이 이야기는 결국 중생도 하나의 믿음에 들어간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성경에서 믿음을 가지고 언급할때는 위의 두가지 믿음이라는 말씀을 구분하며 말씀을 읽어야 된다는 이야기 입니까?
그렇다면 이 두가지를 어떻게 구분하며 지금까지의 성경해석들은 많이 잘못되었다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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