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게'와 '회개'의 뜻을 아직 단정키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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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게'와 '회개'의 뜻을 아직 단정키 어렵습니다.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교리-교회론-신앙생활-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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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희게'와 '회개'의 가사 선택 문제에 한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 내용에는 없지만 찬송가에 대한 몇 가지 참고드릴 내용이 있어 가상의 다른 질문자들을 고려하고 답변내용을 이왕이면 이곳에 덧붙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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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답변자가 살펴본 찬송가들에는 일관되게 '회개'라고 되어 있습니다.


질문자가 지적하시는 뜻은 잘 알겠지만 답변자로서는 개개인의 의견보다 일단 새찬송가에 나오는 가사 자체와 그 가사가 공회찬송가로 이전되는 과정, 그리고 현재까지 사용되어진 공회찬송가에서의 존재했던 사실 자체를 확인하는 작업이 우선이겠습니다.


첫째, 새찬송가가 통일찬송가로 변형되는 시기와 전혀 상관이 없었던 1975년판. 둘째, 새찬송가가 통일찬송가로 흡수되면서 새찬송가가 없어지는 과정에서 공회는 비록 주일학교 용도였으나 기존 새찬송가에서 100곡을 선별하여 공회내부 사용 찬송가를 만들었던 1983년판. 셋째, 현재 공회 찬송가 초기 몇 판을 다 살펴보았으나 다 '회개'였습니다.


그렇다면 '회개'에 대하여만은 새찬송가와 마찬가지로 우리 공회찬송가도 일관되게 '회개'를 사용해왔고 이 부분을 포함한 200곡 전체 가사를 글자 한자씩을 전부 목사님이 직접 검토한 전 과정에 참가했던 본인으로서는 일단 단순한 실수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2.아쉬운 것은 생전에 목사님께 직접 의견을 제시하셨더라면 하는 점입니다.


답변자는 6장 찬송 '전능왕 오셔서'의 새찬송가 1절에 '마귀를 이기신 성부여'라는 대목은 성자에게 해당되지 성부는 마귀를 이기는 차원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렸고 며칠이나 생각을 하시다가 이는 현재와 같이 수정하였고, 3장 찬송에서 '죄인들은 어두워서 볼 수 없겠네'라는 내용이 찬송하는 자신은 죄인에서 빠지고 남의 말로만 하는 듯 하다는 말씀을 드렸고 '죄인들은 어두워서 보지 못하네'로 변경된 결과는 뒤에 알았습니다. 그리고 36장 끝절에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린 주님'의 표현이 우리 교훈과 정반대로 되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굳이 설교내용까지로 들어가면 그렇지만 원 작사자가 명확히 적은 가사이며 또한 교리라고까지 할 수 없는 내용이어서 그냥 알고만 있고 두자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어떤 내용은 아주 변경을 했고, 어떤 내용은 최소한의 방향으로 수정을 했으며, 그리고 어떤 내용은 더 시급히 수정할 내용인데도 굳이 이전 것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요는 이전 것을 변경할 때는 극히 조심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모든 찬송 한 자 한 자를 직접 오랫동안 생각하여 결정했다는 점에서 현재 찬송가는 대체로 그 가사를 존중하는 편입니다. 답변자는 당시 질문을 드려보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하여는 아쉬움이 없고 그 질문을 통해 수없이 유사한 경우에 적용하며 오늘도 그분에게 많은 것을 문의할 수 있게 된 경우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질문자께서 밝은 종이 있을 때 직접 질문을 하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지며, 질문하신 내용을 제가 혼잣말로 자문자답한다면, '회개'라는 단어를 원문상 '희게'라는 단어 대신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아마도 36장 찬송가 질문과 같이 그냥 두자고 했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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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참고로, 백목사님 생전 각종 책임자 선정시 그 책임자의 의미)


어떤 임무든지 한 사람에게 독점적 수임은 하지 않는 것이 목사님의 신앙노선입니다. 물론 외부 표현이나 직책 임명은 그리하는 때가 있습니다만 실질적으로는 '좋은 결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정답을 찾는 이'에게 중심을 두는 편입니다. '누구 한 사람에게 맡기면 하나님의 뜻이 찾아질 것이라' 또는 '누구 한 사람이 맡아서 결정하면 나머지는 따르겠다'고 할 때는 외부 모양을 최소한 갖출 필요가 있을 때 예의적 표현이며 혹시 사람을 기르는 방편에서 책임을 맡으라고 격려하며 충성토록 자극하는 목회일 때입니다.


(*2.공회 찬송가는 예배용이라는 표현이 잘못 사용되는 경우)


덧붙여, 공회 찬송가는 '예배용' 찬송가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찬송가'입니다. 이왕 나온 말씀이라 덧붙이고 싶습니다. 공회 '찬송가'의 서두에 '예배용'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공회 찬송가를 편찬하면서 과거에 많이 부르던 찬송가들을 빼게 되었고 그 빠진 찬송은 성탄 등 교회의 다른 행사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자연 '찬송가'는 예배용찬송가라는 의미심장한 말이 우리에게 와 닿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배찬송이라는 머릿말에서 참뜻을 아는 사람은, 믿는 사람은 전 생활이 예배요 따라서 예배찬송이란 모든 행사 모든 예배에서 불려질 공회신앙적 찬송이며 공회진리에 가장 깊은 은혜들의 총합이라는 일종의 '선포'였습니다. 이렇게 믿는 이들은 다른 행사에서도 최대한 공회 200여곡 찬송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 곡들에 집중할수록 왜 그 200여곡이 특별히 선별되었는지를 갈수록 더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진영을 따라 가지 못해서 안타까웠던 분들은 예배시간에서조차 그 찬송을 사용치 않았고 결국 문익환, 김재준과 같은 비기독교인들이 지은 통일찬송가를 예배를 가리지 않고 사용하고 있으며, 이제는 그 통일찬송가까지를 벗어나 요즘 세상 가수노래 이상으로 나가는 현대판 복음송으로 갈증을 달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머릿말 표현, 그리고 집회 등 설교 때의 표현은 대단히 많은 신앙행태 전부를 고려한 것이기 때문에 쉽게 접하면 가장 신앙어린 사람을 위해 준비된 '표현'에 해당됩니다. 신중히 생각하시면 그 표현 속에서 가장 십자가의 첫길을 걸어야 할 사람을 위해 주신 '표현'으로 받게 됩니다. 공회찬송가를 예배용이라고 굳이 표현한 것은 목사님이 가장 잘 표현하시는 겸손과 지극히 작음으로 내려 앉는 표현법이며 동시에 그 속에는 가장 십자가 최고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외침이 동재하고 있음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공회소속 교회와 교인이라면, 그들의 본디 신앙노선은


이왕이면 조금 더 경건하게

이왕이면 조금 더 조심스럽게

이왕이면 조금 더 보수적입니다.
[공회] 찬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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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교리-교회론-신앙생활-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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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배용 찬송가 65장(새찬송가 255/ 통일 193)의 후렴 "더러운 죄 회개하는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느냐"가 아무래도 "더러운 죄 희게 하는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느냐"의 잘못인 것 같아서, 백 목사님 생전에 찬송가 책임자로 임명 받은 분에게 지적해 드렸건만 아직까지 고쳐 지지 않습니다. 새찬송가에서부터 이렇게 되어 있고, 영문 찬송가로는 "Are you washed in the blood, in the soul-cleansing blood of the Lamb?"에 해당됩니다. 4절 두째 소절 "샘물 같이 솟아 나는 보혈로 눈보다 더 희게 씻으오"를 참조하십시오. 보혈은 우리의 죄를 '희게' 하는, 씻는 것일지언정 '회개'하는 것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회개는 보혈이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것입지요. 함께들 검토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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