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넘게 끼어든 것 같아 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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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넘게 끼어든 것 같아 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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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0
우리는 몸의 부활(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몸의 부활은 심신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믿음을 가지고 있답니다.

우리는 이미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롬8:15)라 부를 수 있답니다.

그리고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롬8:23)을 기다리고 있답니다(몸의 구속=몸의 부활).


롬8:23에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는 [양자의 영](롬8:15)을 의미합니다. 롬8:10(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을 근거로 할 때 또한 [중생된 영]을 의미합니다.

[중생된 영]은 기본구원이며, [중생된 영]은 겨우 구원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확신하노라=믿노라


이 땅에서는 정신분열증 비슷한 것을 경험(옛사람과 새사람사이에서 경험)할 수 있답니다(갈5: 17참고). 그러나 천국 가서까지 정신분열증을 앓으면 안 된답니다(참된 구원이 못된답니다).


백 영희 목사님이 심신의 기능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지, 심신 자체를 두고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몸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이죠.

심신의 기능을 사전적 의미에서 이해하면 안 됩니다. 백 영희 목사님 용법에서 이해하면 무슨 의미인지 아실 겁니다.


주제넘게 문의답법에 끼어든 것 같아 죄송합니다.


바쁜 토요일 저녁에...
[기능구원]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에 관한 질문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기능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건설구원-기능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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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사님의 성경해석중에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는 불택자라는 가르침을 견지하다가 후에 기본구원은 받았으나 성화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기능의 정력이 영원히 지옥에서 불타고 있다는 가르침으로 돌아서신줄 듣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와관련해서 한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부자가 기본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부자는 중생되었으니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마땅할것입니다.


그러면 첫째로 부자의 영은 나사로와 함께 아버지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것으로 보는것이 마땅한지요?


둘째로 기본구원을 받았아도 신앙의 행위가 없었으니, 다시 말하면 심신의 기능이 구원에 이르는 정력에 이르지 못하고 죄에 이르는 기능으로 화하여 나아간많큼 성경에 기록된대로 영원히 지옥에서 불타고 있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부자의 기능의 정력만이 지옥에서 영원히 불타고 있는 것이 되는데 제 견해로는 한가지 문제가 생긴다고 봅니다.


그 문제는 위와같은 견해를 견지하면 한사람의 인격에 대한 정의에 대하여 심각한 오류가 발생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네이버백과사전에서 인격의 정의를 찾아보면


"인간에서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나는 성격 및 경향과 그에 따른 독자적인 행동경향 ---요컨대 인격은 의식의 현재의 단면에서의 통일성, 시간상의 변화를 통하여서도 유지되는 통일성을 요건으로 한다."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인격에 수반되는 필수요건중 하나는 의식의 단면이 통일성이 유지되어야 하고 시간상의 변화에도 유지되어야 하는 통일성이라고 볼것 같으면


부자의 인격의 중심은 그의 중생된 영에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아버지여 하고 지옥에서 부르는 기능의 정력에 있는 것입니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어느면에서는 진실이라고 보는데 그 이유는 호랑이는 인격으로 표현할수 없는 흙으로 돌아갈 존재로 흙뿐인 가죽만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이 말에는 이름이 바로 그사람의 인격을 대표하는 하나의 표현기관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부활하신 주님은 하나님이시므로 어디에나 편재하시고 인격적으로도 여러 사람을 얼마든지 상대하실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주님은 보좌우편에도 계시고 내 마음에도 계시고 저 사람마음에도 계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바울이라는 사람이 어디에 있냐고 하면 그는 지금 현재 중생된 영의 모습으로 주님과 함께 거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바울의 인격이라고 불릴만한 곳은 바로 하나님나라는 곳에 현재 시간적으로 있다고 봐야 할것입니다.


바울의 정력이 얼마많큼 구원이 이루어지고 안이루어졌는지는 주님 강림시에 부활한 몸을 받아봐야 알수 있겠지만 상식적으로도 바울의 기능의 정력이라고 하는 심신 그것도 백목사님의 교훈대로라면 심신은 물질인데 여기에 바울의 인격이 거할수 있겠는지요? 저는 없다고 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한 사람의 인격에 합치되는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이같은 바울의 경우을 예를 들어 부자의 경우를 본다면 부자가 지옥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하고 부르는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를 불러온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인격이라는 통일성이 완전히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중생한 사람이라면 그 중생된 영은 아브라함품에 있을것이고 그 기능의 정력은 지옥에 있는 것이 되는데


부자의 중생된 영이 아브라함품에서도 아버지여 하고, 지옥에서도 심신의 기능이 아버지여 불렀다고 하면


한사람의 인격이 두인격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되는 것이라고 보는데 그러면 인격의 필수 요소인 통일성이 상실되는 것 아닙니까?


이같은 문제는 영과 혼을 하나로 보고 몸을 다른 하나로 보는 견해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가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같은 견해에 따르면 나사로는 분명 불신자이며 그 영혼이 지옥에서 아버지여 하고 부르니 그 인격의 중심이 바로 지옥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능구원이라는 말은 순종으로만 표현 하면 아주 쉬운 문제이고 이 순종의 문제만으로 이끌고 가면 얼마든지 성경이 보여지는데서 힘을 얻지만


제자신이 무엇좀 알아보겠다고 이렇게 저럴게 따져보면, 앞 뒤가 잘 맞지 않는,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면들이 제자신에게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저의 이와같은 추론이 맞기나 하는 것인지 아니면 목사님 지적대로 아직 기능구원의 개론도 파악 못하고 있는 것인지 도움을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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