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에는 '이어 흘러 가는 유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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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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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11 00:0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공회노선~]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공회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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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공식이라 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하나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모세라는 사람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나타날 때 일반인들로서는 예측하지 못하는 순간 시기에 세상의 인재 양성 과정과 아주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계자 여호수아는 어느 정도 예상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이후 이스라엘은 4백여년의 사사기 시대를 거치며 '이어지는 계통'이라는 것이 전무할 만큼 되었습니다. 산발적으로, 아무 질서 없이, 그냥 운과 재수에 따라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전혀 일관성 없이 이어지는 계획 없는 상태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무정부상태였던 사사기 시대를 '사사기'와 '사사기' 전후 성경을 연결시켜 면밀하게 따져보면 분명하게 하나님께 일부로 그 시대를 인간 보기에는 완전히 방치된 시대처럼 보이도록 해 놓고 그 이면에서는 한치도 오차없이 아브라함으로 세운 계통이 다윗으로 이어지게 했습니다.
이런 공식은 말라기 이후 또 다시 4백여년 선지자가 없고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로 방황하던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런 공식은 출애굽 이전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4백여년 기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회사 기간으로 넘어오게 되면 천주교 1천여년 역사의 단절이 그러했고, 칼빈 이후 5백여년 제자리에서 맴돌던 현대교회사 역시 그러합니다.
2.백영희신앙노선을 좀 넓은 시야로 살펴본다면, 그 이어지는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백영희목사님이라는 존재는 교회사적으로 볼 때 출현이 예견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수백년 축척된 개혁교의 인재 양성 시스템에 의하여 배출 될 인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개혁교 수백년의 역사와 전통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인물은 영국의 스펄젼, 벌콥, 미국의 하지나 메쳔과 같은 분들입니다. 이들은 다 자기 당대 교회를 심기일전 시켜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었던 기라성 같은 교회사적 인물들입니다. 또 한 개인의 것은 아니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KJV 같은 성경번역도 수백년 개혁교회사의 건전한 신앙과 신학이 자연스럽게 생산해 낼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이런 인물들과 신앙고백 그리고 성경번역이라는 복음 운동은 그들이 존재하기 이전의 교회사 흐름을 면밀하게 살펴본다면 그런 인물과 그런 복음 운동이 배출되고 생산되지 않을 수 없는 과거가 있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백영희신앙노선은 교회사적으로 볼 때 마치 모세가 갑자기 이스라엘 구원운동에 나타났듯이, 천주교 말미에 루터와 칼빈이 등장했듯이 그렇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영희라는 인물과 그 신앙노선은 분명히 교회사를 통해 보수 정통의 계통을 잇고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한 무지한 사람을 갑자기 들어 전혀 생각못한 높은 차원으로 들어올렸다고 느껴지지, 그가 인간으로 공부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밟아 올라 갈 수 있는 수준으로 향상되었다고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교회사 진행 기간 중에 아주 특별하게 하나님께서 드러내어 사용하는 종들과 그 신앙노선을 이어가는 일은 비교적 파악하기가 쉽습니다. 너무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를 이어가는 인물이나 계통 역시 아주 뚜렷하고 쉽게 파악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백영희신앙노선은 현재 사사기와 같은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교회사의 종점이 임박하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살펴보는 것은 시간낭비일 것으로 생각하여 마음이 무겁습니다만, 종점이 임박할수록 우리는 그 종점의 최후 시점을 더욱 모르게 해놓았다는 깨달음 때문에 잠깐 살펴보고 있습니다.
백영희목사님을 이어 백영희신앙노선의 후계가 될 정도의 인물은 과거 홍순철목사님이나 서영준목사님과 같은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총공회 신앙노선에 있는 많은 분들 중의 한 분이었지만 다른 분들과는 그 신앙 수준이 전혀 달랐던 분입니다. 따라서 이런 정도의 인물들이 생존했더라면 이곳은 백영희 신앙을 잇는 계대자라는 이름을 서슴치 않고 붙이겠습니다.
그러나 한분은 1977년, 또 한분은 1987년에 사망했고 백목사님은 1989년에 사망합니다. 백목사님을 이을 인물들이 백목사님보다 앞서 사망하고 그를 이을 만한 인물이 없는 상태에서 백목사님이 사망했다는 의미는, 이 신앙노선은 사람 시야로 볼 때 후계가 끊어진 상태로 보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라는 후계자가 없는 상태에서 바로 사사기와 같은 환경이 전개되고 있다고 봅니다. 사사기 시대와 같은 상태라는 뜻은 모세로부터 내려오는 율법을 잘 전하는 이도 있고 또 어느 한 사건에 대하여는 지도자 노릇을 잘 감당한 이도 있지만 인간 눈으로 볼 때는 그야말로 우연히, 어떻게 한번 잘 한 정도이지 그 이상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4.이곳은 혹 지금 당장이거나 아니면 훗날에라도 이 노선의 앞날을 이을 종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박윤선목사님의 후계 문제에 대한 언급을 그분 전기를 기록한 책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박윤선목사님의 후계자가 되는 일은, 현재 한국에 있는 수많은 신학교 중에서 졸업성적 1-2등을 다투면서 칼빈신학 파수에 열정을 가진 양심적인 사람이면 충분한 자격이 있을 것입니다. 박형룡목사님의 후계자가 되는 일도 그렇고, 메쳔박사 뒤를 이을 분도 그런 자격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이어 그들의 신학을 계승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영희신앙노선은 그의 설교 내용을 정통하고 그의 교리 체계를 잘 요약 정리하며 그 신앙노선의 가치성에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을 수 있는 사람으로 그 노선의 후계를 잇는다고 한다면, 이곳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런 인물이 있다면 백영희신앙노선의 도서관 주임사서이거나 아니면 그 신앙노선의 총무직에 적당하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을 후계로 이을 정도라고 한다면, 그 신앙노선의 교훈과 교리체계를 지식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물론 기본이겠지만, 그의 신앙 차원이 그 교훈과 그 교리체계가 비추어 주는 길로 걸어가는 '걸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걸음을 걸어가는 분이 있다면, 이 노선을 아는 이들에게는 그의 존재가 너무 뚜렷하게 부각되므로 후계라는 지목이 따로 필요없이 다 그를 보며 과거 백목사님으로 인하여 힘을 얻고 주를 향해 걸어가던 그 걸음이 총론적으로 재현되고 있을 것입니다.
현재 이 노선에 관련된 인물과 교회들 그리고 신앙흐름 어디에도 그런 면은 볼 수가 없습니다. 다만 과거에 받아둔 물을 아껴 사용하듯, 아니면 과거에 잘 적금해 둔 원금을 아껴가며 조심스럽게 사용하듯 하는 분들은 더러 보고 있습니다.
5.총공회 내 지도자급 목사님들이나 신학자들은 종자씨나 제대로 가지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그분들을 따르고 있는 서울공회 대구공회 부산공회(2) 등에 속한 분들은, 남의 속에 그런 면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고 그렇게 비판하기를 즐기느냐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이곳이 그분들을 극도로 존경하는 분들이 훤히 내려다보고 있는 이곳에서 그렇게 펴놓고 말할 때는 다른 곳처럼 쉽게 뱉는 발언은 아닙니다.
질문자의 원래 질문은 중생론이었습니다. 백영희신앙노선에서 이런 중생 교리를 바로 배운 인물이라면 기능구원론을 통과하여 이미 일반 교리 체계에는 몸을 담그려 해도 담글 수가 없이 자기 덩치가 커져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고래가 될 교리를 가진 분들이 거실 어항 속을 넓다 하고 안주하고 있으니 그들 속에 고래가 될 교리와 그 교훈 방향은 과거 한번 듣고 지나간 지식으로만 남아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혹 현재도 그분들이 백영희신앙노선에서 나오는 지식을 입에 담고 있다면 이는 신학자들이 신학교에서 무신론과 타종교와 타 교단과 타 학설을 소개하여 학자로서 가져야 할 상식의 범위를 넓히고 또 장사꾼이 좋은 상품을 보유하는 것은 그 상품으로 인하여 얻는 이익 때문이거나 아니면 자기 소속 교인들에게 익어 있는 교훈을 전하여 목회자로서 확보해야 할 교권 관리 차원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진정 내면으로 이 복음의 가치를 알면서도 일반 신앙노선에 몸을 담그고 있다면 세상 양심차원으로까지 내려가는 문제를 가진 부덕한 목회자라 할 것입니다.
6.문제는 인간이 인간 예상으로 인간의 염려에 빠지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일반 세상 사리로 본다면 이 신앙노선은 귀하기 그지없는데 그 앞날은 전혀 기대할 가능성도 없어 보입니다. 이런 면 때문에 이 신앙노선에 가치를 아는 이들의 탄식과 절망은 대단히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실제 이 신앙노선을 아끼는 이들의 마음이 무겁기 그지없고 그 어깨가 다 축 늘어져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어떤 한 정파에 속했거나 어느 철학이나 시민운동의 맥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신앙을 전부로 삼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이라는 본질을 떠난다면 우리는 이곳에서 대화할 아무 의미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이란, 인간의 예상으로 인간사에 흔히 적용되는 원칙이나 공식과 전혀 상관없는 일들을 일상사로 상대합니다. 하나님의 개입 역사가 쉬지 않는 곳이 신앙 범위입니다. 이 신앙노선은 이런 신앙 근본에 철저한 곳입니다. 따라서 인간으로 볼 때는 이 신앙노선의 앞날은 백영희라는 인물과 함께 그 묘지에 안장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모든 교계 중에서 이 신앙노선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실제 상대하고 살아왔습니다. 따라서 세상 논리나 인식은 이곳에서 사람의 말로 상대하지를 않도록 노력합니다.
7.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합니다.
실제로 총공회 범위에서 지도급 인물이나 신학에 앞선 이들 중에는 백영희신앙노선의 본론에 진입한 이들이 없습니다. 이곳은 백영희신앙 범위 내의 인물과 사건 그리고 관련 역사에 대하여는 거의 파악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도급 인물은 아니고 또 신학자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이들 중에는 이 노선 정중앙을 통과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비록 기존 신학적 용어와 체제로 격식을 갖추지는 못해도 교리의 깊은 세계를 꿰뚫고 있는 이들도 있으며, 신앙 지도급 목회자가 아닌 평범한 교인이라 해도 그 신앙의 깊은 세계는 일반인이 헤아리기 어려운 세계를 갖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비록 일반인들이 생각할 때 총공회라는 곳이 정상대로 유지되고 발전하려면 그곳을 앞서 지도할 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총공회는 그런 간판은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으로는 현재 가망없는 곳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과거 한국교회로 말하면 재건교회가 당대 교회의 가장 신령한 위치를 점하였으나 그 출발의 기치를 들었던 종 하나가 없어진 다음 급격하게 몰락하고 현재는 이름만 남아 있는데, 총공회의 전도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곳은 이 신앙노선의 앞날에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동안 보관 처리된 이 신앙노선의 종자가 언제라도 발아되어 무성하게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시기와 여건은 성경사와 교회사를 직접 주관했던 하나님께서 정할 일이고 인간이 개입하거나 청원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소원의 기도는 끊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이곳이 집중하고 있는 노력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 신앙노선의 훗날 사용을 위한 사전 조처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 이 신앙노선에 드러난 인물들 중에는 별 기대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 노선에 속한 이들 중에 다윗처럼 무명의 어린 신앙이 예비되고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그런 이들을 위해 열심히 그 앞길을 닦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글을 읽고 접할 때, 자기 속에서 성령이 뜨겁게 재촉하는 음성을 듣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가 백영희목사님을 바로 이어 이 신앙노선으로 말세 교회사를 일거에 접수할 사람이지 않겠는가 하는 소원도 이곳은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발언은 비약이 너무 심하여 일반인들이 잠꼬대로 들을 수준일 것입니다. 대충 흘려 듣듯 지나가셨으면 합니다.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공회-공회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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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공식이라 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하나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모세라는 사람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나타날 때 일반인들로서는 예측하지 못하는 순간 시기에 세상의 인재 양성 과정과 아주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계자 여호수아는 어느 정도 예상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이후 이스라엘은 4백여년의 사사기 시대를 거치며 '이어지는 계통'이라는 것이 전무할 만큼 되었습니다. 산발적으로, 아무 질서 없이, 그냥 운과 재수에 따라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전혀 일관성 없이 이어지는 계획 없는 상태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무정부상태였던 사사기 시대를 '사사기'와 '사사기' 전후 성경을 연결시켜 면밀하게 따져보면 분명하게 하나님께 일부로 그 시대를 인간 보기에는 완전히 방치된 시대처럼 보이도록 해 놓고 그 이면에서는 한치도 오차없이 아브라함으로 세운 계통이 다윗으로 이어지게 했습니다.
이런 공식은 말라기 이후 또 다시 4백여년 선지자가 없고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로 방황하던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런 공식은 출애굽 이전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4백여년 기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회사 기간으로 넘어오게 되면 천주교 1천여년 역사의 단절이 그러했고, 칼빈 이후 5백여년 제자리에서 맴돌던 현대교회사 역시 그러합니다.
2.백영희신앙노선을 좀 넓은 시야로 살펴본다면, 그 이어지는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백영희목사님이라는 존재는 교회사적으로 볼 때 출현이 예견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수백년 축척된 개혁교의 인재 양성 시스템에 의하여 배출 될 인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개혁교 수백년의 역사와 전통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인물은 영국의 스펄젼, 벌콥, 미국의 하지나 메쳔과 같은 분들입니다. 이들은 다 자기 당대 교회를 심기일전 시켜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었던 기라성 같은 교회사적 인물들입니다. 또 한 개인의 것은 아니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KJV 같은 성경번역도 수백년 개혁교회사의 건전한 신앙과 신학이 자연스럽게 생산해 낼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이런 인물들과 신앙고백 그리고 성경번역이라는 복음 운동은 그들이 존재하기 이전의 교회사 흐름을 면밀하게 살펴본다면 그런 인물과 그런 복음 운동이 배출되고 생산되지 않을 수 없는 과거가 있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백영희신앙노선은 교회사적으로 볼 때 마치 모세가 갑자기 이스라엘 구원운동에 나타났듯이, 천주교 말미에 루터와 칼빈이 등장했듯이 그렇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영희라는 인물과 그 신앙노선은 분명히 교회사를 통해 보수 정통의 계통을 잇고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한 무지한 사람을 갑자기 들어 전혀 생각못한 높은 차원으로 들어올렸다고 느껴지지, 그가 인간으로 공부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밟아 올라 갈 수 있는 수준으로 향상되었다고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교회사 진행 기간 중에 아주 특별하게 하나님께서 드러내어 사용하는 종들과 그 신앙노선을 이어가는 일은 비교적 파악하기가 쉽습니다. 너무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를 이어가는 인물이나 계통 역시 아주 뚜렷하고 쉽게 파악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백영희신앙노선은 현재 사사기와 같은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교회사의 종점이 임박하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살펴보는 것은 시간낭비일 것으로 생각하여 마음이 무겁습니다만, 종점이 임박할수록 우리는 그 종점의 최후 시점을 더욱 모르게 해놓았다는 깨달음 때문에 잠깐 살펴보고 있습니다.
백영희목사님을 이어 백영희신앙노선의 후계가 될 정도의 인물은 과거 홍순철목사님이나 서영준목사님과 같은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총공회 신앙노선에 있는 많은 분들 중의 한 분이었지만 다른 분들과는 그 신앙 수준이 전혀 달랐던 분입니다. 따라서 이런 정도의 인물들이 생존했더라면 이곳은 백영희 신앙을 잇는 계대자라는 이름을 서슴치 않고 붙이겠습니다.
그러나 한분은 1977년, 또 한분은 1987년에 사망했고 백목사님은 1989년에 사망합니다. 백목사님을 이을 인물들이 백목사님보다 앞서 사망하고 그를 이을 만한 인물이 없는 상태에서 백목사님이 사망했다는 의미는, 이 신앙노선은 사람 시야로 볼 때 후계가 끊어진 상태로 보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라는 후계자가 없는 상태에서 바로 사사기와 같은 환경이 전개되고 있다고 봅니다. 사사기 시대와 같은 상태라는 뜻은 모세로부터 내려오는 율법을 잘 전하는 이도 있고 또 어느 한 사건에 대하여는 지도자 노릇을 잘 감당한 이도 있지만 인간 눈으로 볼 때는 그야말로 우연히, 어떻게 한번 잘 한 정도이지 그 이상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4.이곳은 혹 지금 당장이거나 아니면 훗날에라도 이 노선의 앞날을 이을 종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박윤선목사님의 후계 문제에 대한 언급을 그분 전기를 기록한 책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박윤선목사님의 후계자가 되는 일은, 현재 한국에 있는 수많은 신학교 중에서 졸업성적 1-2등을 다투면서 칼빈신학 파수에 열정을 가진 양심적인 사람이면 충분한 자격이 있을 것입니다. 박형룡목사님의 후계자가 되는 일도 그렇고, 메쳔박사 뒤를 이을 분도 그런 자격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이어 그들의 신학을 계승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영희신앙노선은 그의 설교 내용을 정통하고 그의 교리 체계를 잘 요약 정리하며 그 신앙노선의 가치성에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을 수 있는 사람으로 그 노선의 후계를 잇는다고 한다면, 이곳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런 인물이 있다면 백영희신앙노선의 도서관 주임사서이거나 아니면 그 신앙노선의 총무직에 적당하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을 후계로 이을 정도라고 한다면, 그 신앙노선의 교훈과 교리체계를 지식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물론 기본이겠지만, 그의 신앙 차원이 그 교훈과 그 교리체계가 비추어 주는 길로 걸어가는 '걸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걸음을 걸어가는 분이 있다면, 이 노선을 아는 이들에게는 그의 존재가 너무 뚜렷하게 부각되므로 후계라는 지목이 따로 필요없이 다 그를 보며 과거 백목사님으로 인하여 힘을 얻고 주를 향해 걸어가던 그 걸음이 총론적으로 재현되고 있을 것입니다.
현재 이 노선에 관련된 인물과 교회들 그리고 신앙흐름 어디에도 그런 면은 볼 수가 없습니다. 다만 과거에 받아둔 물을 아껴 사용하듯, 아니면 과거에 잘 적금해 둔 원금을 아껴가며 조심스럽게 사용하듯 하는 분들은 더러 보고 있습니다.
5.총공회 내 지도자급 목사님들이나 신학자들은 종자씨나 제대로 가지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그분들을 따르고 있는 서울공회 대구공회 부산공회(2) 등에 속한 분들은, 남의 속에 그런 면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고 그렇게 비판하기를 즐기느냐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이곳이 그분들을 극도로 존경하는 분들이 훤히 내려다보고 있는 이곳에서 그렇게 펴놓고 말할 때는 다른 곳처럼 쉽게 뱉는 발언은 아닙니다.
질문자의 원래 질문은 중생론이었습니다. 백영희신앙노선에서 이런 중생 교리를 바로 배운 인물이라면 기능구원론을 통과하여 이미 일반 교리 체계에는 몸을 담그려 해도 담글 수가 없이 자기 덩치가 커져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고래가 될 교리를 가진 분들이 거실 어항 속을 넓다 하고 안주하고 있으니 그들 속에 고래가 될 교리와 그 교훈 방향은 과거 한번 듣고 지나간 지식으로만 남아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혹 현재도 그분들이 백영희신앙노선에서 나오는 지식을 입에 담고 있다면 이는 신학자들이 신학교에서 무신론과 타종교와 타 교단과 타 학설을 소개하여 학자로서 가져야 할 상식의 범위를 넓히고 또 장사꾼이 좋은 상품을 보유하는 것은 그 상품으로 인하여 얻는 이익 때문이거나 아니면 자기 소속 교인들에게 익어 있는 교훈을 전하여 목회자로서 확보해야 할 교권 관리 차원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진정 내면으로 이 복음의 가치를 알면서도 일반 신앙노선에 몸을 담그고 있다면 세상 양심차원으로까지 내려가는 문제를 가진 부덕한 목회자라 할 것입니다.
6.문제는 인간이 인간 예상으로 인간의 염려에 빠지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일반 세상 사리로 본다면 이 신앙노선은 귀하기 그지없는데 그 앞날은 전혀 기대할 가능성도 없어 보입니다. 이런 면 때문에 이 신앙노선에 가치를 아는 이들의 탄식과 절망은 대단히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실제 이 신앙노선을 아끼는 이들의 마음이 무겁기 그지없고 그 어깨가 다 축 늘어져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어떤 한 정파에 속했거나 어느 철학이나 시민운동의 맥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신앙을 전부로 삼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이라는 본질을 떠난다면 우리는 이곳에서 대화할 아무 의미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이란, 인간의 예상으로 인간사에 흔히 적용되는 원칙이나 공식과 전혀 상관없는 일들을 일상사로 상대합니다. 하나님의 개입 역사가 쉬지 않는 곳이 신앙 범위입니다. 이 신앙노선은 이런 신앙 근본에 철저한 곳입니다. 따라서 인간으로 볼 때는 이 신앙노선의 앞날은 백영희라는 인물과 함께 그 묘지에 안장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모든 교계 중에서 이 신앙노선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실제 상대하고 살아왔습니다. 따라서 세상 논리나 인식은 이곳에서 사람의 말로 상대하지를 않도록 노력합니다.
7.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합니다.
실제로 총공회 범위에서 지도급 인물이나 신학에 앞선 이들 중에는 백영희신앙노선의 본론에 진입한 이들이 없습니다. 이곳은 백영희신앙 범위 내의 인물과 사건 그리고 관련 역사에 대하여는 거의 파악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도급 인물은 아니고 또 신학자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이들 중에는 이 노선 정중앙을 통과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비록 기존 신학적 용어와 체제로 격식을 갖추지는 못해도 교리의 깊은 세계를 꿰뚫고 있는 이들도 있으며, 신앙 지도급 목회자가 아닌 평범한 교인이라 해도 그 신앙의 깊은 세계는 일반인이 헤아리기 어려운 세계를 갖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비록 일반인들이 생각할 때 총공회라는 곳이 정상대로 유지되고 발전하려면 그곳을 앞서 지도할 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총공회는 그런 간판은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으로는 현재 가망없는 곳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과거 한국교회로 말하면 재건교회가 당대 교회의 가장 신령한 위치를 점하였으나 그 출발의 기치를 들었던 종 하나가 없어진 다음 급격하게 몰락하고 현재는 이름만 남아 있는데, 총공회의 전도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곳은 이 신앙노선의 앞날에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동안 보관 처리된 이 신앙노선의 종자가 언제라도 발아되어 무성하게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시기와 여건은 성경사와 교회사를 직접 주관했던 하나님께서 정할 일이고 인간이 개입하거나 청원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소원의 기도는 끊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이곳이 집중하고 있는 노력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 신앙노선의 훗날 사용을 위한 사전 조처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 이 신앙노선에 드러난 인물들 중에는 별 기대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 노선에 속한 이들 중에 다윗처럼 무명의 어린 신앙이 예비되고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그런 이들을 위해 열심히 그 앞길을 닦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글을 읽고 접할 때, 자기 속에서 성령이 뜨겁게 재촉하는 음성을 듣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가 백영희목사님을 바로 이어 이 신앙노선으로 말세 교회사를 일거에 접수할 사람이지 않겠는가 하는 소원도 이곳은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발언은 비약이 너무 심하여 일반인들이 잠꼬대로 들을 수준일 것입니다. 대충 흘려 듣듯 지나가셨으면 합니다.
[교계/인물] 이병규 목사님의 중생론을 알고 싶습니다. (/발언/에서 이동 - 관)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교계~]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교계-]/[-인물-이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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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10 Article Number : 800 Lines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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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 계신측 창광교회를 담임하는 이병규 목사님도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백영희 목사님과 중생론에서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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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교계~]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본질-교계-]/[-인물-이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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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10 Article Number : 800 Lines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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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 계신측 창광교회를 담임하는 이병규 목사님도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백영희 목사님과 중생론에서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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