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게 된 과정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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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게 된 과정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

내용분류 : [-교리-구원론-기본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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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정상 가정의 아이를 생각하셨으면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거나 주일학교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교회 생활을 하고 자란 사람들은 대개 서서히 구원에 대한 확신을 형성하게 됩니다. 마치 부부가 결혼을 해서 10달을 뱃속에 가진 아이가 별탈 없이 그 가정에서 자라게 되면 그런 아이들은 부모의 존재나 부모의 의미나 부모에 대한 감사가 서서히 형성됩니다.


이런 아이들은 자라면서 부모에게 반항기도 거치게 되고, 가출 시도도 하게 됩니다. 재롱을 부릴 때도 있고 또 여러 가지로 속을 썩히며 자랍니다. 그러나 그렇게 제 부모가 미운 시절이 있지만 자기 눈 앞에서 제 부모가 갑자기 쓰러지거나 하면 순간적으로 부모에 대한 숨겨진 뜨거움이 분출됩니다. 그럴 때 부모나 그 자녀 자신이 핏줄의 본능의 단면을 보게 됩니다.


2.비정상적으로 자란 자녀를 생각하셨으면


고아원에서 자라고 있다가 중학교 1학년 어느날 부모와 극적으로 만난 아들이 있다면, 그 아들에게 있어서 다시 찾은 부모라는 존재는 어릴 때부터 한번도 부모 품을 떠나보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이 느끼는 부모라는 존재와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가출심리가 있을까요? 반항기를 가질 틈이라도 있겠습니까? 늘 감사할 것이고, 자다가 깨도 이것이 혹 꿈이 아닌지 불안해 하며 그 부모 품에 안겨 얼마나 감격스럽고 행복한 남은 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3.하나님을 모르고 세상을 헤매다 주님을 찾는 분들의 감격은 대단합니다.


사업에 망했다가 절망 가운데 교회를 찾았는데 설교 중에 주님을 찾는 사람, 잘난 사람으로 살다가 죽을 병에 걸렸다가 가족들의 기도로 병이 낫고 하나님 앞에 울면서 무릎으로 기어 예배당을 찾은 사람... 이런 분들은 한 순간에 갑자기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마치 부모 없이 제 혼자 살던 아이에게 친부모가 극적으로 찾아와서 서로 만나게 된 것처럼 그런 감격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조금 신앙이 식어지면 당장에 술을 입에 댈 수도 있고 별짓도 다 할 수 있지만 자기 속에 하나님을 느끼고 만났던 그 극적인 감격은 늘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에서 어릴 때부터 자라나온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니미 모르던 사람을 오랫동안 노력해서 교회로 데려오고 그들이 당한 극단적 어려움에서 그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하여 그들에게 특별한 체험을 하게 하는데, 정작 그들에게 그 극적인 장면이 있도록 노력한 바로 그 사람은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자기가 전도한 그 사람이 느끼는 확신만큼 큰 확신을 느껴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4.알고보면,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는 사실! 이 사실만 해도 놀라 기절할 일인데!


어릴 때부터 하나님 품안에서 자라다 보니까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품이 마치 뱃속에서부터 어미 품에서 자란 철없는 아이처럼 그 품은 당연한 품과 같이 느끼고 인식합니다. 눈만 뜨면 늘 눈에 보이는 '어머니'라는 존재! 그 존재를 보며 무슨 새로운 큰 자극이 있겠습니까? 고아원에서만 자라다가 어머니라는 존재를 어느날 만나게 된 그런 이들에게 어머니라는 존재가 그렇게 극적이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두 사람의 경우, 그들의 '어머니'라는 존재는 객관적으로 꼭 같이 소중한 분이고 의미가 있는 분입니다. 한 사람은 그 중요한 존재를 늘 가지고 있다가 보니까 예사롭게 여겼을 뿐이고 다른 한 사람은 꼭같은 중요한 존재인데 없어서 늘 아쉽고 서럽다가 어느날 만나게 되니까 그 사람 주관이 그렇게 크게 느낀 것입니다. 이 두 경우를 보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고아원에서 어머니를 만난 사람의 그 장면이 극적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어릴 때부터 한번도 어머니 품을 떠나본 적이 없이 자란 사람은, 사실 어머니를 잃어보거나 잊어볼 일이 없이 쭉 자라나왔다는 사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다행이고 행복이고 기적입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 품 안에서 자란 이들이 하나님에 대한 무슨 극적인 느낌이 없어 미지근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크고 영원하신 자존자 하나님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무슨 소지품처럼 쉽게 간단하게 늘 모시고 있었다는 그 사실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알고보면 늦게 믿은 분들이 일찍 믿고 교회를 다닌 분들을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릅니다.


답변자도, 질문자와 같이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교회라는 곳은 세끼 밥먹듯 시간되면 가야하는 곳이어서 참으로 말못할 고통을 겪게 하던 '지옥'이었습니다. 밥 세끼를 별 탈 없이 무사히 얻어먹기 위해 교회를 다녀야 했던 이런 경우는 하나님 때문에 무슨 특별한 느낌을 받을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상보다 교회를 먼저 알고 성장하게 된 것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런 과정을 거쳐 자라가는 사람들에게는 그 면이 필요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과정입니다.


얼른 보면 갑자기 하나님을 만난 분들이 큰 신앙인으로 부각되지만 신앙은 한 순간을 기준으로 큰 신앙도 큰 신앙이지만, 오랜 세월 속에 지속되는 '인내'라는 기준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구원] 예수님의 구원에 대한 믿음
어려서부터 믿는 가정에서 자라온 대학생입니다. 교회 여러 활동에도 참가하고

열심있게 믿기는 하지만 항상 예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강하게 느껴보지 못

했습니다.


한 순간 구원에 대해 강한 믿음을 느꼈다는 분들을 보면서 예전에는 제 자신이 택자일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요즘은 설교를 접하면서 점점 확신이 가고 있기는 한데요.


구원에 대한 믿음이 단번에 강하게 오는 것과 서서히 가지게 되는것을 하나님의 역사의 차이로 봐야 하나요 아니면 자신의 신앙의 차이로 봐야 하나요.


서서히 믿는 신앙도 계속만 하면 희망이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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