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구원] 2.우리의 기능들이 지옥에서 영원히 호소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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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구원] 2.우리의 기능들이 지옥에서 영원히 호소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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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교리~죄론~죄결과~죄값~]

내용분류 : [-교리-죄론-죄결과-죄값-]/[-교리-구원론-건설구원-기능구원-]/[-교리-말세론-심판-사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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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내용은 조직신학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포함하기 때문에 질문 방향에서 더 나아가 교리적 연구에 우선 충실하고자 합니다.)


1.현재까지 교회가 사람을 볼 때는 통틀어 하나로 보았습니다.


①사람이 기계와 달리 조립품이 아닌 것이야 상식입니다만 신학은 그 이상의 분석을 할 능력도 없었습니다.


현재까지 신학은 사람을 영혼과 몸 둘로 된 존재라고만 인정하며 이 두 요소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 대하여는 대단히 소홀하였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약의 교회역사 2천년에서 인간의 요소를 정밀하게 분석해야 할 시기를 하나님께서 주지 않으셨으며 비교적 어두웠던 초기였기 때문에 인간의 요소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하였습니다. 불신자들도 상식적으로 알 만한 수준에서 인간을 영혼과 몸으로 나누어 이 두 요소를 비교 설명한 정도였으며 더 이상 깊은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신학이 짧게는 500페이지 길게는 1천 수백페이지를 조직신학에 할애하고 있지만 인간의 두 요소에 대한 설명은 불과 몇 페이지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도 단어 설명, 학설 비교 소개 등에 대부분의 설명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신학이 가진 지식을 요약하면 몸은 물질로 되었고 영혼은 영적인 존재라는 것, 몸은 나눌 수 있으나 영혼은 단일체로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 영혼이 명령하면 몸은 따라 움직이는 순응적 존재라는 것,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신령하며 몸은 비교적 하급의 요소라는 것, 그러나 이 둘은 기계적 결합이 아니라 한 인격을 이루는 한 인간임에 의의가 있다는 설명 정도에서 전부였습니다.


따라서 신학은 인간의 구성이 두 가지로 되어 있다는 상식에서 만족하고 인간은 단일적 존재로만 상대하라고 교인들에게 권면하며 모든 설명을 마무리하여 왔습니다. 인간을 한 존재로 한 인격으로 본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일도 또 주의시킬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만 이것은 인간의 구성을 좀더 연구해보고자 하는 삼분설에 대한 이분설 학자들의 제지선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학설이 절대 다수의 정통 교리학자들 사이에 주류가 되어 온 것이 또한 우리 교회사입니다. 우리 이전 시대까지는 하나님께서 그 정도의 교리 이상을 요구치 않았다고 보는 것이 보다 발전적인 이해가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②사람을 하나로 보면 안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 인간을 만드는데 여러 구성요소를 사용한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유 없는 창조는 없으며 필요 없는 섭리도 없습니다. 심신 둘을 합해 한 인간을 만들었다면 한 인간임을 강조하기 앞서 왜 두 요소를 사용했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신앙입니다. 만일 세 가지 구성요소로 한 인간을 만들었다면 그 세 가지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범위까지 깊이 새겨 알려 주시는 모든 것을 알아 가지는 것이 하나님 주시는 선물을 은혜로 받는 사람의 기본 자세입니다. 여기서는 인간의 구성 요소 3가지에 대한 설명보다 '기능'에 대한 질문이 있어 심신에 대하여 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2.사람은 영, 마음, 몸으로 되어 있듯이 마음과 몸은 또 다시 분석해야 할 면을 가졌습니다.


①죄를 짓는 심신의 행동은 그렇게 단순히 도매금으로 넘길 일이 아닙니다.


우선 알기 쉽게 몸을 가지고 말하고 싶습니다. 몸으로 행한 행위가 말씀대로 되었는지 삐뚤어졌는지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왜 삐뚤어진 행위가 점점 심해지며 왜 의로운 행위가 점점 장성해지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하여 하나의 옳은 행위가 나오며 또 하나의 삐뚤어진 행위가 각각 나오게 되었는지. 이 면을 연구하지 않고 통째로 처리하면 열에 열 진리 없는 행위를 하게 됩니다.


②우선 심신이 짓는 죄의 성질, 곧 죄의 단면을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악령이 인간을 붙들고 죄를 짓게 합니다. 옳은 행동은 성령이 우리의 중생 된 영과 함께 우리를 붙들고 의를 행하게 합니다. 악령이 인간을 붙들 때는 우선 마음을 점령하기 위해 마음과의 투쟁에 나섭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을 입고 하와와 대화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는 심리전이었으니 우리의 마음과 뱀의 전투였습니다. 영으로부터 마음을 유괴해 내는 과정이었으며 이 일에 육체도 마음을 지원하게 한 것입니다. 오늘 중생 된 우리는 성령과 우리의 영이 우리 마음을 먼저 악령의 손에서 다시 찾아오려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신앙양심을 통하여 느끼는 가책에서 잘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악령이 영과 우리 심신을 분리해버린 이후 6천년 내려온 역사에서 악령은 우리 인간 속에 악성을 심어두었고 그 악성이 각자 속에서 몇 번이나 또 얼마나 오랫동안 실행에 이르렀는지에 따라 악습의 정도가 되었습니다. 즉 악령이 타락한 우리 심신 속의 악성을 통해 끊임없는 악행을 하도록 하여 그 심신 속에 갈수록 큰 악행을 만들 수 있는 악습까지 쌓아둔 것입니다. 반대로 성령은 우리 영과 함께 우리 마음을 설득하여 옛사람으로 살던 때를 벗고 신앙양심을 통해 계속 호소하는 음성을 따르도록 합니다. 이것이 한 번 성공하고 두 번 성공하게 되면서 우리 심신 속에는 신앙으로 살 수 있는 기능과 힘이 생겨지게 됩니다.


③심신이 죄와 의를 행하는 과정에서 '기능' 문제가 죄론의 전면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백목사님의 성경연구는 가히 신약 전체를 통해 몇 사람으로 손꼽을 차원입니다. '죄에 대한 교리' 즉 죄론(罪論)을 예로 든다면 약물로 치료하던 오랜 의료역사에 해부학에 기초한 수술기법을 도입하고 동시에 이를 위해 유전자 해독의 수준에까지 의학을 발전시킨 정도로 백목사님 한 사람의 손에서 당대에 완성된 것이라고 평가하겠습니다. 지금 이곳이 백영희신앙을 집중 연구하고 있는 것은 이렇게 다 펼쳐 놓아 버린 이 시대의 교훈을 종합적으로 배열해 보는 과정일 뿐입니다.


심신이 한번 움직이고 나면 행위라고 합니다. 그 행위는 의와 죄 둘 중에 하나가 될 뿐 중간은 없습니다. 이렇게 심신이 움직인 행위을 각 개인별로 심판하는 것이 '사(私)심판'입니다. 그러나 심신이 움직였을 때 외부로는 행위로 드러나지만 그 심신을 움직인 운동에너지라고 할 수 있는 힘이 바로 행위를 만든 행위의 집행자입니다. 그 힘이 행위로 변형되었고 그 행위가 끝나고 나면 모든 동작에 관련된 과정이 사라지고 또 다시 심신 자체만 남습니다. 그러나 이 행위는 그 다음 행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습성이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습성을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기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신이라는 존재가 내부에 가진 운동에너지로 심신을 동작시키고 나면 그 결과라 할 수 있는 행위의 여부 즉 말씀에 맞느냐 삐뚤어졌느냐에 따라 죄와 의로 판별이 되는데 이 순간 심신 안에는 심신을 움직인 다음 없어졌다고 생각할 그 운동에너지가 심신 속에 기능의 모습으로 남게 됩니다.


3.심신과 심신 속에 축척되어 있는 기능은 분리해야 하고, 특히 죄의 기능은 버려야 합니다.


①피아노를 수없이 두드린 손 안에는 건반 위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기능이 생겼습니다.


한번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기 위해서는 심신이라는 존재가 자기 속에 가진 힘으로 심신을 움직여 한번 건반을 쳤습니다. 그러면 그 한번의 행위는 끝이 나버리고 심신 자체 외에는 남은 것이 없는 듯 합니다. 그러나 한번 쳤으면 한번 친 것만큼, 수없이 쳤으면 수없이 친 만큼 그 손가락 안에는 기능이 베어 있고 그것이 심신 자체도 아니며 행위도 아닌 제3의 실체로 축척되고 있습니다. 철봉을 잡은 온 몸이 그렇게 자유로운 것도 그 육체가 그 철봉에서 얼마나 움직였던가에 비례하게 됩니다. 거짓말도 그러하며 또 기도하고 설교하는 의로운 행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평생 하나의 심신으로 살아가며 그 심신이 움직인 것은 그 순간 지나가고 나면 없어집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속고 살아온 것입니다. 한 사람의 심신은 보자기와 같고 그 속에는 끊임없이 그 심신을 움직인 기능들이 현실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는 세월과 교환되며 쌓여갑니다. 그리고 그 쌓여진 기능들은 다음 현실에서 각각 죄와 의를 지원하기 위해 동원됩니다.


우리의 심신 자체는 도구와 같기 때문에 마지막 날 깨끗하게 씻어 천국으로 그대로 이동시킵니다. 그러나 그 심신 속에 평생 축척되었던 의의 기능들과 죄의 기능들은 분리 처리가 됩니다 의의 기능들은 부활한 우리 심신 속에 그대로 내장되어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을 모시고 살 천국의 활동력, 천국에서 영원토록 움직일 능력이 됩니다. 그리고 평생 쌓아둔 죄의 기능들은 전부 지옥불에 던져야 합니다.


②구원은 우리에게 붙은 죄를 떼어 지옥에 버림으로 우리를 구원한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에게 있는 죄를 의로 바꾸어 죄를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죄가 우리에게 붙어 우리가 죄인이 되었고 죄 때문에 우리가 지옥을 가게 되었던 것을 주님의 대속으로 우리와 우리에게 붙어 있던 죄를 분리시켜 우리에게 있던 죄를 지옥으로 떼 내어 버림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해 낸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 속에 죄를 짓게 한 힘, 그 힘이 기능으로 변형되어 남아 있는데 그 기능이 죄의 기능이라면 그 기능은 우리에게서 분리되어 지옥으로 버려져야 합니다. 몸 안에 있는 암덩어리를 분리 제거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암은 암세포로 되어 있듯이 죄의 기능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되어진 뭉텅이입니다. 당연히 제거되어야 그것 때문에 죽을 우리가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죄의 기능은 영원히 지옥에서 불에 타야 할 것입니다.


③지옥에 던져진 우리의 심신 속에 기능들은 지옥에 있는 다른 것들과 함께 호소합니다.


그 기능들은 원래 세상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우리 심신의 힘이었습니다. 우리 심신의 정력이었으며 우리 심신의 운동 에너지라고도 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 것은 할 수 없지만 예수 믿고 난 이후에는 우리 심신 속에 있는 모든 힘은 전부 의를 행하는데 사용되도록 할 수 있고 그렇게 사용된다면 그것은 사용후 의의 기능이 되어 우리 심신 속에 다시 남아 다음 행위가 또 의로 진행되도록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의의 기능이 된 것은 영원히 천국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만물을 움직일 하나님의 자녀, 그 자녀를 움직일 기능이 되는 것인데 자기가 현실에서 자기 심신의 힘으로 죄를 지으면 그 죄가 되는 행위를 만든 힘은 영원히 심신 속에서 영생할 그 영광 그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니 그 죄의 요소 그 죄짓는 기능들이 지옥에 던져질 때 그들에게서 어떤 탄식이 나오겠습니까?


오늘은 한 치 앞을 모르고 한 치 마음 속을 서로 모르기 때문에 그냥 보는 대로 사는 대로 살지만 그날에는 지옥에 던져진 내 심신의 요소들 그 기능들이 만물의 탄식들과 함께 탄식할 것이니 그 탄식이 천국에 있는 우리의 귀에 들리지 않겠습니까? 천국에 간 성도들이 대속을 감사하여 주님 지신 십자가 앞에 고개 들 수 없는 모습이 있듯이 지옥으로 분리된 나의 심신의 기능들은 그것들이 만물 중에 한 존재로서 만물들이 가질 수 있는 호소, 만물들이 탄식할 수 있는 그 탄식을 반복할 때, 천국에 있는 우리들은 주님 대속으로 형벌은 없지만 자신의 요소들을 향해 안타까움은 있을 것입니다.


4.오늘 죄 한번 짓고 의 한번 행함에 이렇게까지 큰 의미가 있다면 섣부를 수 없습니다.


①미련한 다섯 처녀는 현실을 준비없이 맞이하고 실패한 죄의 기능들입니다.


세상은 밤이며 세상 어려움은 밤중이며 이런 밤중은 미리 준비한 성도에게는 주님을 대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만 대충 세상을 살다가 어려운 현실을 만나게 되면 그 현실에서 심신이 말씀에 삐뚤어진 행동을 합니다. 우리 한 사람 속에 준비하여 승리하는 자기도 있고 준비없이 실패하는 자기도 있으니 전자는 슬기로운 다섯처녀이며 후자는 미련한 다섯처녀입니다. 열처녀로 '10'수를 사용한 것은 인간 전부라는 뜻이며 모든 인간은 또한 인간의 모든 생활은 전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으니 죄의 기능으로 만들고 그 현실을 지나가는 사람과 의의 기능을 만들고 의로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②홍포입은 부자가 음부에서 호소한 것도 택자의 죄의 기능이 지옥에서 호소하는 것입니다.


홍포입은 부자는 불택자며 거지 나사로는 택자라고 해석하면 참으로 간단해서 좋습니다. 우리는 전부 나사로가 되고 불신자들은 전부 홍포입은 부자가 된다면 천국에서는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도 대부분 믿는 사람은 천국에서는 거지 나사로가 되어도 세상에서는 홍포입은 부자가 되고 싶고 그래서 교회가 이렇게 탈이 많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홍포입은 부자는 불택자만이 아니라 바로 믿는 우리 속에 그런 요소가 대단히 많이 있고 또 동시에 거지 나사로의 요소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택자와 불택자의 영원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택자들의 영원한 두 모습, 즉 택자 우리들은 천국에 가 있지만 우리 속에 홍포입은 부자처럼 살았던 요소는 죄의 기능이 되어 영원히 지옥에 있을 것임을 말합니다.


5.현재 이 교리의 구성은 일반 교회가 생각조차 닿지 않은 부분입니다.


①따라서 대단히 조심스럽게 대단히 체계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이단'소리가 나옵니다.


이단이라는 정죄는 잘못하게 되면 자신이 이단되는 무서운 정죄인데 우리 한국교회 우리 한국사람의 단점은 그렇게 단정을 잘 하는데 있습니다. 철없는 사람들의 섣부른 죄를 유발치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외칠 이 시대의 교훈입니다.


②백태영, 백영침, 백영익 등 세 분 목사님과 많은 젊은 총공회 교역자들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주로 서울공회와 대구공회를 중심으로 원로 목회자라 일컫는 분들이 백목사님 생전에 이 교리가 일반 교계에서 이단으로 정죄될 것이라며 대단히 반대를 했던 문제입니다. 백목사님이 마지막 세상을 떠나면서 우리에게 주고 간 교리 중 하나입니다. 대구공회 주도층 교역자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일반 교회가 이단으로 정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그분들은 잘못 알았습니다. 그들은 이 교리에 대하여 이해를 하는 데에만 대단히 오랜 세월이 필요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이 대학 수학을 평한다면 평하기 전 일단 평할 수 있는 실력을 확보하기 위해 10여년 세월이 필요한 이치입니다.


③설교록이 교계에 많이 전파되던 때라 백목사님의 발표가 공석에서는 조심스러웠습니다.


베드로에게 저희로 오해치 않도록 성전에 출입세를 내라고 했던 주님의 말씀 때문에 백목사님은 설교록에서 교리적 배경에 대하여는 대단히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판단은 각자에게 유보하듯 했던 표현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기능구원에 대한 교리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삼분론으로 설명해 갈 때 가장 핵심적이며 최종적으로 교리를 완성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조직신학 정리를 위한 글에서 인용
[죄론/구원론/말세론] 죄, 기능구원, 사심판에 대한 질문
제목분류 : [~교리~죄론~죄결과~죄값~]

내용분류 : [-교리-죄론-죄결과-죄값-]/[-교리-구원론-건설구원-기능구원-]/[-교리-말세론-심판-사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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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메일로 들어온 질문이며 문의답변방에 적절하다고 보았습니다. - yilee)


1. '죄', '죄의 흔적'에 대해서

- 모든 죄도 구원에 필요한 요소이며 순서입니까?


2. '기능들의 영멸'에 대해서

- '영감과 진리로 행하지 않은 죄들은 지옥에 던져져서

영원히 호소하게 된다'는 말씀은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3. '사심판'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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