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4)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 인간 스스로의 노력은 필요없다는 말인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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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1.30 00:00
제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
내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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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간에게 자유성이 없다면 노력할 필요도, 노력할 수도 없다는 말이라고 반론하게 됩니다.
①그러나 우리가 단정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은 완전, 절대예정이라는 것까지입니다.
예정이 완전 예정이며 예정이란 손 댈 수 없는 성경교훈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완전 예정에 맞도록 맞추어야 합니다. 그것은 얼마든지 재단도 편집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란 착각이며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는 말을 해야 합니다. 물론 아주 어려운 말이지만 그래도 성경을 움직일 수 없으니 인간의 자유의지를 살펴보는 것이 순서라는 시각입니다.
②인간에게는 과연 자유의지가 확보되어 있는가? 혹시 달리 보면 달라지는 것은 아닌가?
인간 자아의식은 분명히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능력이 없고 지식이 부족해서 원하는 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자유가 있다는 것은 확정적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착각이 아닐까? 성경이 완전 예정을 규정하고 있다는 쪽이 거의 확실하게 들어나고 있으니 인간의 자유가 혹시 자유가 아닐 수 있지 않는가 라고 한다면 그 가능성은 아주 크게, 또 확실하게 우리 시야에 들어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유를 주지 않았는데도 인간이 그것을 자유라고 착각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항 속 물고기의 행동은 최소한 물고기 스스로의 행동이라기 보다 그 고기가 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보이지 않는 원격조정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로 모든 행동 모든 심리를 파악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예정이 완전이며, 예정이 완전이라면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없어야 한다는 논리적 단계가 나오게 되는데, 이 자유의지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착각하게 하고 실은 하나님께서 완전히 언행심사 하나까지를 예정하신 대로 진행시켜 나간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문제는 없겠는가? 일단 별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만일 문제가 없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예정에 대한 논의를 일단락 짓게 되는 것이나 만일 있다고 보이면 또 다시 제기된 부분으로 하나님의 예정에 맞춰 볼 수 있습니다.
③자유의지가 없다면 인간은 노력할 필요도 없겠다는 의문이 있습니다.
인간이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답하기 쉬운 대목입니다. 인간이 노력한다고 되느냐? 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착각입니다. 인간이 했다는 것이 뒤에 보면 전부 안해도 될 일, 안해야 할 일만 했을 뿐입니다. 해야 할 일,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을 한 것은 사실 없습니다.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된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했다면 인간이 한 것이 아닌가? 인간이 조금이라도 힘을 써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을 했을지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 되었는데 조금이라도 인간이 힘썼다는 그 부분도 사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인도요 역사였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전혀 힘쓸 것도 또 힘쓸 필요도 없는 것이겠습니다.
그러합니다. 인간은 타락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도록 예정되었고 하나님께서 타락을 예정대로 진행시켰기 때문에 타락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구원받는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또 우리의 노력이 조금이라도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이 우리가 알도 듣도 보도 못할 때 해놓으신 것입니다. 주시는 우리는 받은 것뿐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하나님 한 분만의 움직임이고 나머지는 그분의 움직임에 나타나 보이는 하나의 현상들이라는 말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무엇을 한다 안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며, 믿겠다 안 믿겠다는 것도 우스운 일입니다. 될 수도 없는 일, 될 리도 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었다면 그리고 그 죄가 마음먹은 것부터 행위까지 전적 하나님의 역사였다면 하나님도 죄를 지으시는가? 인간이 볼 때 죄라는 그 죄를 하나님은 짓습니다. 짓는 정도가 아니라 그 죄를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찌 되는가? 죄는 인간에게만 죄가 되고 하나님께는 죄가 죄되지 않습니다. 존재의 가치와 존재의 위치에 따라서 죄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2.인간은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두 가지 종류의 예정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①운명론, 숙명론에 완전히 빠져 자포자기의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이런 반응이 나오게 되는 것도 전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보이지 않는 예정이 이런 반응을 만들었으며, 반대로 이런 반응을 보면서 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이러했구나 하게 됩니다. 동시에 이 사람의 앞날은 복 없는 예정이겠구나 라고 추측까지 하게 됩니다. 단정은 할 수 없으나 오늘을 보아 다음을 희미하게라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필요 특별한 순서가 아니라면 대개 봄이 오면 여름이 이어지도록 하시는 것이 일반적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름이 정확히 어떤 시기에 어떤 모습으로 올지는 몰라도 윤곽은 가능한 것처럼, 운명론에 빠져 자포자기하는 반응을 보일 때 이 사람은 앞으로 복 없는 걸음이 당분간 계속되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②담대하며 감사하며 충성하는 사람도 나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이라니! 이 얼마나 든든하고 이 얼마나 다행스런 운 일입니까! 아버지의 사랑이 아버지의 전지 전능이 나를 아버지 같은 아들을 만들기 위해 철저한 예정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니 이 어찌 든든치 않겠습니까! 대통령의 문서 약속이 있어도 인생사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고 일말의 불안이 있을 것인데, 완전자 전지전능자의 약속이 보증되어 있다니. 날 사랑하여 다 바치고 투자하는 사랑의 아버지가 작심하고 계신다니, 무엇이 걱정되겠습니까? 그냥 든든할 뿐입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거저 감사할 외에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러니 이미 다 되어 있는 것이니 주는 대로 받아 챙기기만 하면 되겠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누리기만 하면 되겠구나. 이렇게 나아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반응을 가지는 것도 하나님의 예정이며 이런 태도가 나오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은 복된 사람으로 당분간 계속되겠구나 라고 추론하게 됩니다.
③이렇게 느끼는 것까지 하나님의 예정이라고 또 토를 단다면
맞는 말입니다. 그것까지도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그러니 인간은 구경시켜 주니 구경하는 것이고 들리게 만드니 들려지는 것일 뿐입니다. 감사토록 해주시니 감사하는 것이고 충성할 마음을 주시니 멋도 모르고 사정도 다 모르고 인도대로만 따라가며 충성도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하려는 마음도 또 실제로 하는 행위도 전부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주께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며 인간은 방관자의 위치에 세워 두시고 방관케 하니까 방관만 하고 있는 것인데, 그 방관을 칭찬하고 또 상을 주시고 천국을 누리게 하시니 시작도 중간도 마지막도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3.인간이 결국 완전한 꼭두각시라는 말입니까? 그렇게 묻는다면 그렇습니다.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 성경이니 성경으로 대답을 해 드린다면, '인간은 꼭두각시'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쉬운 그리고 정확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단, 이런 논리 설명에 대하여 인간의 표현법 인간끼리 인간의 시각에서 만든 인간의 표현대로 묻고 그 질문에 꼭같은 수준에서 답변을 드린다면 그러합니다. 아닌 경우도 있다는 말입니까?
성경이 인간에게는 자유성이 있음을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유성이 있는 것입니다. 단, 인간의 시각에서 인간끼리 통하는 '표현범위'의 자유성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자유성, 완전 예정과 함께 갈 수 있고 완전 예정과 한 자리에 앉혀 놓아도 모순 없이 대립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자유성을 찾으면 됩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요? 위에서 지금까지 살핀 것처럼 인간 수준에서는 예정과 자유란 공유할 공동공간이 없는 개념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둘을 다 말했다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말씀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세월이 걸리더라도 찾으면 됩니다.
우선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있겠다는 것을 이런 비유로 예를 들 수 있습니다. X 선이라는 1차원의 세계를 아는 인간에게는 X 선상의 어느 한 좌표에는 한 개의 구슬만 놓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X 선 외에 또 하나의 선, 즉 Y 선이라는 직각접촉되는 또 하나의 선을 가진 인간에게는 X 선상의 한 좌표에 구슬을 한 개 뿐 아니라 수없이 올려 놓을 수 있습니다. 공간의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의 개념만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고 가설도 세울 수 없는 억지 논리 같을 것이나, 이는 차원이 다른 시각에서는 실체입니다.
성경이 예정을 말했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했다면, 예정은 완전예정이며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예정대로만 되어지는데 동시에 성경은 우리에게 '자유로 선택할 수 있는 두 길 중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너무도 많으니 우리는 두 길 중에 한 길을 선택하여 바로 가기 위해서 애쓰는 데까지가 우리 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 예정론을 가지고 오히려 그 선택과 애쓰는 일에 담대함과 감사함 그리고 충성까지를 보태면서 갈 일입니다. 그리고 이 설명에 모순이 있고 이 설명에 더 수정하거나 또는 보충함으로 옳은 도리가 있다면 더하면 됩니다. 아직까지는 여기까지가 답변자가 깨닫고 나올 수 있는 최극단에 속한 부분입니다. 답변자 역시 백목사님의 교훈 중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에만 해도 도저히 더 넘을 이치는 없겠다고 생각하여 주저앉았던 곳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했던 인식 세계를 여기까지 넓혀 왔으니 앞으로도 더 배우고 노력하면 더 갈 수 없는 곳이 그렇게 쉽게 보이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길은 땅 위에서도 계속되다가, 본격적으로 나아가는 곳은 천국이라 천국은 바로 진리의 나라 해가 있는 곳입니다.
만물과 인간의 다른 점이 자유성이 있어 하나님이 주시는 두 길 중에서 복된 구원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그 본질인데 이렇게 설명이 된다면 이 인간의 본질적인 면과 모순될 수 있다는 지적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형체만 가진 돌, 무형의 생각과 동작까지 주신 생명체, 그리고 죄와 의라는 두 길 앞에서 선택의 폭이 있는 인간을 각각 따로 만드시고 그들이 위치만 가지고 있던, 동작이 있던, 죄와 의에 대한 선택까지가 있던 하나님이 예정하심은 같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으로만 그들의 존재도 동작도 선택도 전부 이루어진다는 것도 같으나, 성경이 인간에게는 '자유의 선택'을 의미하는 명령을 했으니 우리가 예정대로 움직이는 이 모습을 성경은 그렇게 표현한다고 인정하여 표현까지를 성경에 맞추면, 그리고 동물에게는 동물에게 주어진 성경 표현을, 그리고 돌에게는 돌에게 주신 일반적 표현을 그 돌에게 해당되는 표현인 줄 알고 그리 사용하고 그리 인식해 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어집니다.
지금 이 문제는 간단하지 않으며 특히 오늘 땅 위에 있는 우리 인간으로는 가장 어렵고 설명 또는 이해가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러나 너무도 쉽고 쉬워 보이는 '교회'라는 개념도 모든 사람이 쉽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교회'는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아닌 자기들 대로 따로 만들어 가지고 있는 교회들입니다. 이것이 고장이며 이 고장 때문에 오늘 교회가 없어 고장이 아니고 교회가 많아 고장들입니다. '목사'는 무엇인지 우리가 아주 쉽게 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착각입니다. 백목사님이 가신 이후에는 답변자의 눈에는 아직까지 목사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혹시 이 땅위에 단 한 사람도 목사가 없는 것이 아닌가 불안합니다. 답변자를 포함하여 이 땅 위에 모든 사람들이 쉽게 확인하고 쉽게 안다고 생각하는 이 목사들이 너무 많아서 탈들이 나고 있지 목사가 없어서 탈이 아닙니다. 총공회를 아는 총공회 교인들이 너무 많고, 개교회주의를 아는 목회자들이 너무 많으나 바로 알고 근접이라도 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악귀 성령, 혈육주의 와 순응주의를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악귀 든 다른 사람들과 성령에 붙들린 자기를 너무 잘 구별하여 탈들이 나고 있습니다. 실은 전혀 모르거나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선지자는 바로 이 면 때문에 평생을 설교했고 이 면을 가르쳤으니 그는 많이 가르쳤던 분이 아니라 실은 몇 가지 안되는 내용을 가지고 평생 반복을 많이 했던 분입니다.
이제 이 정도에서 또 한번 약간의 시간을 가지고 쉬며 많은 대화와 과제를 가지고 명상과 성경연구의 기회를 가질 것을 권합니다. 너무 높은 도를 너무 미천한 사람끼리 주고 받다 보니 바른 것은 조금이요 그른 것은 많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노력 자체가 이 예정교리를 가르쳐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질문과 답변자 그리고 이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이들을 예정하셨겠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내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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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간에게 자유성이 없다면 노력할 필요도, 노력할 수도 없다는 말이라고 반론하게 됩니다.
①그러나 우리가 단정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은 완전, 절대예정이라는 것까지입니다.
예정이 완전 예정이며 예정이란 손 댈 수 없는 성경교훈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완전 예정에 맞도록 맞추어야 합니다. 그것은 얼마든지 재단도 편집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란 착각이며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는 말을 해야 합니다. 물론 아주 어려운 말이지만 그래도 성경을 움직일 수 없으니 인간의 자유의지를 살펴보는 것이 순서라는 시각입니다.
②인간에게는 과연 자유의지가 확보되어 있는가? 혹시 달리 보면 달라지는 것은 아닌가?
인간 자아의식은 분명히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능력이 없고 지식이 부족해서 원하는 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자유가 있다는 것은 확정적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착각이 아닐까? 성경이 완전 예정을 규정하고 있다는 쪽이 거의 확실하게 들어나고 있으니 인간의 자유가 혹시 자유가 아닐 수 있지 않는가 라고 한다면 그 가능성은 아주 크게, 또 확실하게 우리 시야에 들어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유를 주지 않았는데도 인간이 그것을 자유라고 착각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항 속 물고기의 행동은 최소한 물고기 스스로의 행동이라기 보다 그 고기가 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보이지 않는 원격조정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로 모든 행동 모든 심리를 파악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예정이 완전이며, 예정이 완전이라면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없어야 한다는 논리적 단계가 나오게 되는데, 이 자유의지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착각하게 하고 실은 하나님께서 완전히 언행심사 하나까지를 예정하신 대로 진행시켜 나간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문제는 없겠는가? 일단 별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만일 문제가 없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예정에 대한 논의를 일단락 짓게 되는 것이나 만일 있다고 보이면 또 다시 제기된 부분으로 하나님의 예정에 맞춰 볼 수 있습니다.
③자유의지가 없다면 인간은 노력할 필요도 없겠다는 의문이 있습니다.
인간이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답하기 쉬운 대목입니다. 인간이 노력한다고 되느냐? 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착각입니다. 인간이 했다는 것이 뒤에 보면 전부 안해도 될 일, 안해야 할 일만 했을 뿐입니다. 해야 할 일,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을 한 것은 사실 없습니다.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된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했다면 인간이 한 것이 아닌가? 인간이 조금이라도 힘을 써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을 했을지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 되었는데 조금이라도 인간이 힘썼다는 그 부분도 사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인도요 역사였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전혀 힘쓸 것도 또 힘쓸 필요도 없는 것이겠습니다.
그러합니다. 인간은 타락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도록 예정되었고 하나님께서 타락을 예정대로 진행시켰기 때문에 타락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구원받는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또 우리의 노력이 조금이라도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이 우리가 알도 듣도 보도 못할 때 해놓으신 것입니다. 주시는 우리는 받은 것뿐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하나님 한 분만의 움직임이고 나머지는 그분의 움직임에 나타나 보이는 하나의 현상들이라는 말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무엇을 한다 안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며, 믿겠다 안 믿겠다는 것도 우스운 일입니다. 될 수도 없는 일, 될 리도 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었다면 그리고 그 죄가 마음먹은 것부터 행위까지 전적 하나님의 역사였다면 하나님도 죄를 지으시는가? 인간이 볼 때 죄라는 그 죄를 하나님은 짓습니다. 짓는 정도가 아니라 그 죄를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찌 되는가? 죄는 인간에게만 죄가 되고 하나님께는 죄가 죄되지 않습니다. 존재의 가치와 존재의 위치에 따라서 죄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2.인간은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두 가지 종류의 예정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①운명론, 숙명론에 완전히 빠져 자포자기의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이런 반응이 나오게 되는 것도 전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보이지 않는 예정이 이런 반응을 만들었으며, 반대로 이런 반응을 보면서 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이러했구나 하게 됩니다. 동시에 이 사람의 앞날은 복 없는 예정이겠구나 라고 추측까지 하게 됩니다. 단정은 할 수 없으나 오늘을 보아 다음을 희미하게라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필요 특별한 순서가 아니라면 대개 봄이 오면 여름이 이어지도록 하시는 것이 일반적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름이 정확히 어떤 시기에 어떤 모습으로 올지는 몰라도 윤곽은 가능한 것처럼, 운명론에 빠져 자포자기하는 반응을 보일 때 이 사람은 앞으로 복 없는 걸음이 당분간 계속되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②담대하며 감사하며 충성하는 사람도 나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이라니! 이 얼마나 든든하고 이 얼마나 다행스런 운 일입니까! 아버지의 사랑이 아버지의 전지 전능이 나를 아버지 같은 아들을 만들기 위해 철저한 예정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니 이 어찌 든든치 않겠습니까! 대통령의 문서 약속이 있어도 인생사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고 일말의 불안이 있을 것인데, 완전자 전지전능자의 약속이 보증되어 있다니. 날 사랑하여 다 바치고 투자하는 사랑의 아버지가 작심하고 계신다니, 무엇이 걱정되겠습니까? 그냥 든든할 뿐입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거저 감사할 외에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러니 이미 다 되어 있는 것이니 주는 대로 받아 챙기기만 하면 되겠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누리기만 하면 되겠구나. 이렇게 나아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반응을 가지는 것도 하나님의 예정이며 이런 태도가 나오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은 복된 사람으로 당분간 계속되겠구나 라고 추론하게 됩니다.
③이렇게 느끼는 것까지 하나님의 예정이라고 또 토를 단다면
맞는 말입니다. 그것까지도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그러니 인간은 구경시켜 주니 구경하는 것이고 들리게 만드니 들려지는 것일 뿐입니다. 감사토록 해주시니 감사하는 것이고 충성할 마음을 주시니 멋도 모르고 사정도 다 모르고 인도대로만 따라가며 충성도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하려는 마음도 또 실제로 하는 행위도 전부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주께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며 인간은 방관자의 위치에 세워 두시고 방관케 하니까 방관만 하고 있는 것인데, 그 방관을 칭찬하고 또 상을 주시고 천국을 누리게 하시니 시작도 중간도 마지막도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3.인간이 결국 완전한 꼭두각시라는 말입니까? 그렇게 묻는다면 그렇습니다.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 성경이니 성경으로 대답을 해 드린다면, '인간은 꼭두각시'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쉬운 그리고 정확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단, 이런 논리 설명에 대하여 인간의 표현법 인간끼리 인간의 시각에서 만든 인간의 표현대로 묻고 그 질문에 꼭같은 수준에서 답변을 드린다면 그러합니다. 아닌 경우도 있다는 말입니까?
성경이 인간에게는 자유성이 있음을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유성이 있는 것입니다. 단, 인간의 시각에서 인간끼리 통하는 '표현범위'의 자유성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자유성, 완전 예정과 함께 갈 수 있고 완전 예정과 한 자리에 앉혀 놓아도 모순 없이 대립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자유성을 찾으면 됩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요? 위에서 지금까지 살핀 것처럼 인간 수준에서는 예정과 자유란 공유할 공동공간이 없는 개념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둘을 다 말했다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말씀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세월이 걸리더라도 찾으면 됩니다.
우선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있겠다는 것을 이런 비유로 예를 들 수 있습니다. X 선이라는 1차원의 세계를 아는 인간에게는 X 선상의 어느 한 좌표에는 한 개의 구슬만 놓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X 선 외에 또 하나의 선, 즉 Y 선이라는 직각접촉되는 또 하나의 선을 가진 인간에게는 X 선상의 한 좌표에 구슬을 한 개 뿐 아니라 수없이 올려 놓을 수 있습니다. 공간의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의 개념만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고 가설도 세울 수 없는 억지 논리 같을 것이나, 이는 차원이 다른 시각에서는 실체입니다.
성경이 예정을 말했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했다면, 예정은 완전예정이며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예정대로만 되어지는데 동시에 성경은 우리에게 '자유로 선택할 수 있는 두 길 중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너무도 많으니 우리는 두 길 중에 한 길을 선택하여 바로 가기 위해서 애쓰는 데까지가 우리 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 예정론을 가지고 오히려 그 선택과 애쓰는 일에 담대함과 감사함 그리고 충성까지를 보태면서 갈 일입니다. 그리고 이 설명에 모순이 있고 이 설명에 더 수정하거나 또는 보충함으로 옳은 도리가 있다면 더하면 됩니다. 아직까지는 여기까지가 답변자가 깨닫고 나올 수 있는 최극단에 속한 부분입니다. 답변자 역시 백목사님의 교훈 중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에만 해도 도저히 더 넘을 이치는 없겠다고 생각하여 주저앉았던 곳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했던 인식 세계를 여기까지 넓혀 왔으니 앞으로도 더 배우고 노력하면 더 갈 수 없는 곳이 그렇게 쉽게 보이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길은 땅 위에서도 계속되다가, 본격적으로 나아가는 곳은 천국이라 천국은 바로 진리의 나라 해가 있는 곳입니다.
만물과 인간의 다른 점이 자유성이 있어 하나님이 주시는 두 길 중에서 복된 구원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그 본질인데 이렇게 설명이 된다면 이 인간의 본질적인 면과 모순될 수 있다는 지적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형체만 가진 돌, 무형의 생각과 동작까지 주신 생명체, 그리고 죄와 의라는 두 길 앞에서 선택의 폭이 있는 인간을 각각 따로 만드시고 그들이 위치만 가지고 있던, 동작이 있던, 죄와 의에 대한 선택까지가 있던 하나님이 예정하심은 같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으로만 그들의 존재도 동작도 선택도 전부 이루어진다는 것도 같으나, 성경이 인간에게는 '자유의 선택'을 의미하는 명령을 했으니 우리가 예정대로 움직이는 이 모습을 성경은 그렇게 표현한다고 인정하여 표현까지를 성경에 맞추면, 그리고 동물에게는 동물에게 주어진 성경 표현을, 그리고 돌에게는 돌에게 주신 일반적 표현을 그 돌에게 해당되는 표현인 줄 알고 그리 사용하고 그리 인식해 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어집니다.
지금 이 문제는 간단하지 않으며 특히 오늘 땅 위에 있는 우리 인간으로는 가장 어렵고 설명 또는 이해가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러나 너무도 쉽고 쉬워 보이는 '교회'라는 개념도 모든 사람이 쉽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교회'는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아닌 자기들 대로 따로 만들어 가지고 있는 교회들입니다. 이것이 고장이며 이 고장 때문에 오늘 교회가 없어 고장이 아니고 교회가 많아 고장들입니다. '목사'는 무엇인지 우리가 아주 쉽게 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착각입니다. 백목사님이 가신 이후에는 답변자의 눈에는 아직까지 목사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혹시 이 땅위에 단 한 사람도 목사가 없는 것이 아닌가 불안합니다. 답변자를 포함하여 이 땅 위에 모든 사람들이 쉽게 확인하고 쉽게 안다고 생각하는 이 목사들이 너무 많아서 탈들이 나고 있지 목사가 없어서 탈이 아닙니다. 총공회를 아는 총공회 교인들이 너무 많고, 개교회주의를 아는 목회자들이 너무 많으나 바로 알고 근접이라도 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악귀 성령, 혈육주의 와 순응주의를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악귀 든 다른 사람들과 성령에 붙들린 자기를 너무 잘 구별하여 탈들이 나고 있습니다. 실은 전혀 모르거나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선지자는 바로 이 면 때문에 평생을 설교했고 이 면을 가르쳤으니 그는 많이 가르쳤던 분이 아니라 실은 몇 가지 안되는 내용을 가지고 평생 반복을 많이 했던 분입니다.
이제 이 정도에서 또 한번 약간의 시간을 가지고 쉬며 많은 대화와 과제를 가지고 명상과 성경연구의 기회를 가질 것을 권합니다. 너무 높은 도를 너무 미천한 사람끼리 주고 받다 보니 바른 것은 조금이요 그른 것은 많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노력 자체가 이 예정교리를 가르쳐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질문과 답변자 그리고 이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이들을 예정하셨겠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예정] 예정론?
제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
내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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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예정을 말했다면 예정교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생각대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도 분명하니 예정교리를
인정하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큰 부분은 예정이 되어 있으나 작은 부분이나 작은 범위는 인간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허락이 되었다고 예정론을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설명한다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이것이
옳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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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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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예정을 말했다면 예정교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생각대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도 분명하니 예정교리를
인정하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큰 부분은 예정이 되어 있으나 작은 부분이나 작은 범위는 인간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허락이 되었다고 예정론을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설명한다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이것이
옳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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