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는 없는 것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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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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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4 00:00
제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
내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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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목사님...
어디를 기준이라....
하지만 자유의지는 결국 하나님입장에서 보면 없는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사람의 입장에서도 자유의지처럼 느껴지지만 결국은 사람의 입장에서도
없는것이 아닙니까?
사람은 자유의지라 느끼지만 모든것까지 하나님의 예정이 맞지않습니까?
결국자유의지는 인간의 한 낱 착각일뿐 모든것이 하나님의 예정이지않습니까?
제가보기엔 삼위일체랑은 좀 안맞는것같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목사님..
내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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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목사님...
어디를 기준이라....
하지만 자유의지는 결국 하나님입장에서 보면 없는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사람의 입장에서도 자유의지처럼 느껴지지만 결국은 사람의 입장에서도
없는것이 아닙니까?
사람은 자유의지라 느끼지만 모든것까지 하나님의 예정이 맞지않습니까?
결국자유의지는 인간의 한 낱 착각일뿐 모든것이 하나님의 예정이지않습니까?
제가보기엔 삼위일체랑은 좀 안맞는것같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목사님..
[예정] 목사님 그런데 그때는 왜?
제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
내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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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아랫글은 제가 자유의지가 없다라고 이야기했을때의 목사님의
답변입니다..1.우리에게 하라 말아라 하신 모든 말씀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안식일을 지켜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하라' '말아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유성을 주지 않은 짐승에게 '안식일을 지켜라'고 명하지 않습니다. 또 책임도 묻지 않습니다. 인간과 천사에게만 자유성을 주셨기 때문에 심판도 이 둘에게만 있고 또 오늘 선택의 자유도 이 둘에게만 있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는 에덴동산에서 한번, 예수님 대속 이후 또 한번이 있습니다. 천사에게는 대속으로 재기의 기회를 주지 않았으므로 태초에 타락하던 순간 한번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2.대표적인 성구를 제시한다면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벧전2:16,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3.'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인간의 일차원적 사고방식에서는, 단선 레일 위를 같은 시간 같은 지점에 달리는 기차는 1대 뿐입니다. 그러나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개념과 같이 이차원이 되면, 동일 지점을 같은 시간에 통과하는 차량이 2대가 될 수 있습니다. 면적의 세계라는 개념이 변수가 된 것입니다.
절대 예정이라는 개념은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완전히 없애야만 성립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 사고 체계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우리의 사고 체계는 일차원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위에서 보실 때 절대 예정과 자유의지가 공존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성경에 '자유'를 대단히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자유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은 하지 않았으나 선택의 문제로 우리에게 말씀하신 성구는 66권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고 그 자유를 가지고 어떻게 결정하고 어떻게 행동할지를 우리에게 맡겼다고 하셨으니까 그렇게 알면 됩니다. 우리 개념으로는 절대예정이 틀림없기 때문에 자유의지라는 개념은 없애야 논리적으로 개운하겠지만 성경이 자유의지라는 개념이 존재한다고 했으니까 그런 줄 알고 풀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먼저 그렇게 알아놓고 나서 왜 그런지를 연구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먼저 자유의지라는 주제를 가지고 성경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성경은 명백하게 자유의지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 예정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절대예정을 말씀하고 계시니 우리 사고 체계로 자유의지가 있다고 해서 예정을 없앨 것이 아니고 성경이 예정도 말씀했으니 예정도 자유의지와 꼭같이 중요하고 또 예정도 존재하는 것이라고 먼저 단정지워놓고 우리의 이해는 그 다음 문제로 가져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4.지금 혼자 명상할 시간을 가질 중요한 시기입니다.
장마철 비는 한없이 내리기 때문에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물 모으는 것은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장마가 끝나고 나면 물 한 방울을 위해 전국에 난리가 나는 시절을 기억하는 분들은 장마비를 쉽게 보지 않을 것입니다. 천하 만사에 기한이 있고 정해진 때가 있습니다.
머리에서 한번 돌아나온 아이디어를 가지고 입에 담고 귀로 들으면서 바쁘게 회전하면 통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때도 있고 그런 단계도 있습니다. 반복 질문을 통해 해결이 될 수만 있다면 이곳은 그런 분들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므로 아무리 많은 반복질문이라도 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오히려 깨닫는데 손해를 볼 때도 있기 때문에 지금 묵상과 명상을 권하고 있습니다. 지금 주로 문답을 하는 분은 한 분이지만 이 글의 문답은 한 분에게 그치지 않고 이곳을 찾는 분들과 또 이곳을 찾는 분들이 권하고 소개하여 이곳을 모르는 분들까지 참고하고 살펴볼 것까지를 함께 생각하여 드리는 말씀입니다. 비록 질문자와 답변자가 일대일로 문답을 하고 있지만 그 질문자는 질문자 한 분이 아니고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질문자를 책한다는 마음은 추호도 없으며 또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늘 인식하고 있음을 알아주시고, 다만 이곳을 찾는 모든 분들에게 이 문제를 여기까지 알고 나온 분이 계신다면, 이제는 장시간 묵상을 하고 또 실제 생활 속에서 좀 체험을 한 다음, 그다음 질문을 해주시라는 순수한 안내임을 감안해 주셨으면 합니다.
5.혹 명상과 실생활의 단계를 끝낸 다음 단계를 문답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1년 전, 또는 2년 전, 이 문제를 가지고 이번 질문자와 같은 수준에서 문답을 하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런 분들 중에서 이곳과 명상한 다음에 오고갈 대화를 해야 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런 분들이 이 시점에서 질문을 한다면 그분들과는 그 차원에서 문답을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은 대개 그런 단계를 거치면서 이제는 이곳에 질문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이 교리를 깨닫고 계실 것입니다. 조리있게 설명은 하지 못해도 그 표현할 수 없는 세계에서 깨닫고 확실하게 무엇인가 붙들었을 것입니다.
이곳은 임시 개설된 곳이 아닙니다. 바쁘게 문의할 것은 바쁘게 하시더라도 이번 건은, 이 단계에서 좀 여유를 가지셨으면 합니다. 현 단계로는 바쁘면 바쁜 것만큼 오히려 멀어질 수 있습니다. 바쁘게 문답한 내용을 가지고라도 혹 해결이 되었다고 하실지 모르겠으나 세월이 지나놓고 보면 그 당시 해결한 것이 오해였다고 다시 밝혀지는 것도 적지 않습니다.
또 실생활을 거친 다음에 오고갈 문답을 해야 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 이때 분명이 제가 사람에겐 자유의지가 없다고 그랬는데..
이때 왜 이렇게 대답하신지 궁금합니다.
이때 제가 주장한것은 오늘 제 결론과 별반차이가 없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때 왜 저한테 더생각을 해보라 하셨는지...
아니면 그때 제 절대예정과자유의지의 관계가 오늘 저의글과 차이가 있는것입니까?
제가보기엔 거의 차이가 없는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다른 속뜻이 있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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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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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아랫글은 제가 자유의지가 없다라고 이야기했을때의 목사님의
답변입니다..1.우리에게 하라 말아라 하신 모든 말씀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안식일을 지켜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하라' '말아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유성을 주지 않은 짐승에게 '안식일을 지켜라'고 명하지 않습니다. 또 책임도 묻지 않습니다. 인간과 천사에게만 자유성을 주셨기 때문에 심판도 이 둘에게만 있고 또 오늘 선택의 자유도 이 둘에게만 있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는 에덴동산에서 한번, 예수님 대속 이후 또 한번이 있습니다. 천사에게는 대속으로 재기의 기회를 주지 않았으므로 태초에 타락하던 순간 한번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2.대표적인 성구를 제시한다면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벧전2:16,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3.'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인간의 일차원적 사고방식에서는, 단선 레일 위를 같은 시간 같은 지점에 달리는 기차는 1대 뿐입니다. 그러나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개념과 같이 이차원이 되면, 동일 지점을 같은 시간에 통과하는 차량이 2대가 될 수 있습니다. 면적의 세계라는 개념이 변수가 된 것입니다.
절대 예정이라는 개념은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완전히 없애야만 성립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 사고 체계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우리의 사고 체계는 일차원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위에서 보실 때 절대 예정과 자유의지가 공존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성경에 '자유'를 대단히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자유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은 하지 않았으나 선택의 문제로 우리에게 말씀하신 성구는 66권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고 그 자유를 가지고 어떻게 결정하고 어떻게 행동할지를 우리에게 맡겼다고 하셨으니까 그렇게 알면 됩니다. 우리 개념으로는 절대예정이 틀림없기 때문에 자유의지라는 개념은 없애야 논리적으로 개운하겠지만 성경이 자유의지라는 개념이 존재한다고 했으니까 그런 줄 알고 풀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먼저 그렇게 알아놓고 나서 왜 그런지를 연구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먼저 자유의지라는 주제를 가지고 성경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성경은 명백하게 자유의지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 예정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절대예정을 말씀하고 계시니 우리 사고 체계로 자유의지가 있다고 해서 예정을 없앨 것이 아니고 성경이 예정도 말씀했으니 예정도 자유의지와 꼭같이 중요하고 또 예정도 존재하는 것이라고 먼저 단정지워놓고 우리의 이해는 그 다음 문제로 가져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4.지금 혼자 명상할 시간을 가질 중요한 시기입니다.
장마철 비는 한없이 내리기 때문에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물 모으는 것은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장마가 끝나고 나면 물 한 방울을 위해 전국에 난리가 나는 시절을 기억하는 분들은 장마비를 쉽게 보지 않을 것입니다. 천하 만사에 기한이 있고 정해진 때가 있습니다.
머리에서 한번 돌아나온 아이디어를 가지고 입에 담고 귀로 들으면서 바쁘게 회전하면 통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때도 있고 그런 단계도 있습니다. 반복 질문을 통해 해결이 될 수만 있다면 이곳은 그런 분들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므로 아무리 많은 반복질문이라도 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오히려 깨닫는데 손해를 볼 때도 있기 때문에 지금 묵상과 명상을 권하고 있습니다. 지금 주로 문답을 하는 분은 한 분이지만 이 글의 문답은 한 분에게 그치지 않고 이곳을 찾는 분들과 또 이곳을 찾는 분들이 권하고 소개하여 이곳을 모르는 분들까지 참고하고 살펴볼 것까지를 함께 생각하여 드리는 말씀입니다. 비록 질문자와 답변자가 일대일로 문답을 하고 있지만 그 질문자는 질문자 한 분이 아니고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질문자를 책한다는 마음은 추호도 없으며 또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늘 인식하고 있음을 알아주시고, 다만 이곳을 찾는 모든 분들에게 이 문제를 여기까지 알고 나온 분이 계신다면, 이제는 장시간 묵상을 하고 또 실제 생활 속에서 좀 체험을 한 다음, 그다음 질문을 해주시라는 순수한 안내임을 감안해 주셨으면 합니다.
5.혹 명상과 실생활의 단계를 끝낸 다음 단계를 문답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1년 전, 또는 2년 전, 이 문제를 가지고 이번 질문자와 같은 수준에서 문답을 하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런 분들 중에서 이곳과 명상한 다음에 오고갈 대화를 해야 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런 분들이 이 시점에서 질문을 한다면 그분들과는 그 차원에서 문답을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은 대개 그런 단계를 거치면서 이제는 이곳에 질문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이 교리를 깨닫고 계실 것입니다. 조리있게 설명은 하지 못해도 그 표현할 수 없는 세계에서 깨닫고 확실하게 무엇인가 붙들었을 것입니다.
이곳은 임시 개설된 곳이 아닙니다. 바쁘게 문의할 것은 바쁘게 하시더라도 이번 건은, 이 단계에서 좀 여유를 가지셨으면 합니다. 현 단계로는 바쁘면 바쁜 것만큼 오히려 멀어질 수 있습니다. 바쁘게 문답한 내용을 가지고라도 혹 해결이 되었다고 하실지 모르겠으나 세월이 지나놓고 보면 그 당시 해결한 것이 오해였다고 다시 밝혀지는 것도 적지 않습니다.
또 실생활을 거친 다음에 오고갈 문답을 해야 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 이때 분명이 제가 사람에겐 자유의지가 없다고 그랬는데..
이때 왜 이렇게 대답하신지 궁금합니다.
이때 제가 주장한것은 오늘 제 결론과 별반차이가 없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때 왜 저한테 더생각을 해보라 하셨는지...
아니면 그때 제 절대예정과자유의지의 관계가 오늘 저의글과 차이가 있는것입니까?
제가보기엔 거의 차이가 없는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다른 속뜻이 있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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