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3) 어항 속 고기처럼, 하나님이 정한 한계 안에서만 누리는 자유라고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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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3) 어항 속 고기처럼, 하나님이 정한 한계 안에서만 누리는 자유라고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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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

내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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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제한적 자유로 설명하는 대표적인 비유입니다.


①하나님이 정한 한계, 그 한계 안에서만 가지는 자유


전후, 좌우, 상하가 정해진 것이 어항입니다. 단 1mm도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 어항 속에 잇는 물고기입니다. 예를 들면 출생 시점, 사망 순간 양끝은 하나님이 정해 놓았기 때문에 인간으로는 순간도 더도 덜도 살 수 없으나 그 양단 안에서 이리 살고 저리 사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는 것입니다. 마치 물고기가 어항 앞부분으로 튀어나올 수는 없고 어항 뒷부분으로 더 돌출하여 나갈 수는 없으나 앞과 뒤 사이에 있는 물에서는 자기 마음 먹은 대로 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공간적으로도 한국 내에서만 살도록 정해진 사람은 그 한국 내에서만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이리 저리 오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간섭치 않고 인간 자유에 맡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어항의 좌우는 정해졌으나 그 안에서는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공에 적용되는 이런 설명과 같은 논리로 큰 사건 큰 역사는 정해지게 되고 그 범위 안에서는 비록 제한은 되어 있지만 어느 정도 자유가 허락되었다는 것입니다.


②인간의 상식과 성경을 조화시킨 설명으로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예정을 말했고, 그 예정은 달리 해석할 수가 없는 것이 신앙양심일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누리는 자유는 인간이 분명히 가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이것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세상양심일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도 만사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나고 죽는 일, 천재지변, 부자가 되고 비천하게 사는 등의 많은 일들이 무언가 인간보다 큰 힘으로 통제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 종교가 만들어지고 자기에게 정해진 운명을 궁금해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믿는 사람은 성경을 통해 또 자기 신앙경험을 통해 인간이 인간 자유로 그렇게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며 따라서 어항 속의 물고기와 같은 입장으로 설명하게 되면 성경도 인간의 경험도 다 아울 수 있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 대한 의문은 이러합니다. 어항 속의 물고기는 과연 그 활동이 자유로운가?


③어항 속에서조차도 안팎의 환경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생명체입니다.


어항 속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어항 안에서조차도 물고기가 움직이는 것은 물고기의 행동을 결정짓도록 영향을 미치는 모든 주변과 물고기 내부 상황의 변화입니다. 소화력이 증대된 상태에서 배고픔을 느낀 물고기가 자기 눈앞에 보이는 먹이감이 있어 그쪽으로 방향을 결정하게 됩니다. 먹이가 있는 쪽으로 가다가 앞에 있는 작은 먹이와 뒤에 있는 큰 먹이를 보게 됩니다. 어느 것을 먹느냐는 결정이 있게 됩니다. 뒤에 큰 것을 먹게 되는 이 물고기의 판단이 서게 되는 순간 바로 옆에 다른 물고기가 이 먹이를 향해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 포착이 됩니다. 순간 앞에 있는 작은 먹이를 먼저 먹고 그다음 큰 것을 먹을 것인가? 먹이감 둘 중에 하나밖에 못먹을 거리와 시간이라면 큰 것을 먼저 먹게 되겠고 바삐 서둘면 둘 다 먹을 수 있겠다고 판단된다면 갑자기 속도가 빨라지게 됩니다.


어항 안에 있는 물고기는 비록 어항 밖으로 나가지는 못할지라도 어항 안에서만은 자유를 누린다고 보여질 수 있습니다만, 자세하게 살펴본다면 미세하게 움직이는 안팎에 환경과 여건에 따라 활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짐승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까지 해당되는 법칙입니다. 무의식적으로 행동했으나 실은 해당되는 요소 전부가 상상 못할 정도의 복잡성을 가지고 형성시킨 행동이며, 의식적으로 행동한 것은 좀더 복잡하게 결합된 안팎의 자료입력에 대한 출력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때 행동이라는 것은 단순히 몸이 움직인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작용, 생각이라고 하는 마음의 활동도 같은 법칙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는 우리의 경험으로도 그러하며 자연이치로도 그러하며, 무엇보다 성경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며 그 주권은 예정을 성취하는 주권 섭리로 나타나고 있음을 가르치기 때문에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2.예정이란 이런 이유로 인하여 완전예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①택함과 불택함을 믿는 사람 안에서 가질 수 있는 의논입니다.


우리는 천국 갈 택자와 지옥 갈 불택자의 예정에 대하여는 이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것은 불신자들의 의견을 배제하고 성경을 믿는 우리 믿는 사람들의 의견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완전 예정이냐 부분 예정이냐는 문제로 고민을 하면 했지 예정이라는 자체를 배제시키지는 않습니다. 이곳은 완전 예정을 주장하는 곳이며 대개는 부분 예정, 제한 자유를 주장합니다. 따라서 택자와 불택자에 대하여도 성경을 믿는 사람이라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택자가 택자로 하나님께 채택되는 데에는 사람의 수고나 행위가 일정 부분 필요했지 않느냐는 주장이 있고 그 일정 부분에 대한 설명은 구구하게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는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한다는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의논하는 곳이라고 전제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게 됩니다.


②택자는 미리 예정되어 있다고 전제한다면, 예정은 완전 예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택자의 예정은 우리 믿는 범위에서는 대단히 단정적이며 확정적인 고정수입니다. 구원은 변수이거나 또는 변수로 인하여 발생되는 재변수일 수가 없다는 것은 전 성경입니다. 모든 구원은 하나님의 확실한 목적, 그 목적을 위한 예정, 그 예정이 창조와 섭리로 이어지며 주권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택했다는 별도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성경은 구원이 예정되어 있음을 말씀하고 있으니 이 구원문제로 예정은 어느 정도까지 예정되었느냐 하는 예정의 범위 문제를 살펴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우연히 이루어질 수 없는 하나님의 도성인신 역사입니다. 그 구원을 완성하기에 이르기까지 우연에 의하여 로마정권이 있었다든지 하필 그 날 그 시간에 사형이 집행되었어야 하는 우연 돌발적 상황으로 인하여 십자가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구원에 필요한 모든 정확한 움직임이 준비되었던 것입니다. 동시에 이렇게 준비된 구원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은 또한 우연히 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날 그 사람의 전도가 있었고 최후 순간을 믿고 갈 수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그 날 그 사람이 뜻하지 않게 오게 된 것이 우연으로 보이지만 우연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에 관련된 것은 만들어진 것도 또한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도 전부는 정확한 예정대로입니다.


그렇다면 준비에 필요했던 구약전부, 우리에게 전해지는 신약시대 전부는 예정대로 이 우주 만물 전체의 존재,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 곳에 어느 한 사람의 어느 한 생각과 행동도 결국 그 주변에 영향을 주게 되고 그 영향은 어떤 형태로든지 파급되어 모든 다른 상황과 연결이 됩니다. 어떤 것도 완전 독립 분립된 존재, 움직임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이 예정이며 그 전달이 예정이라면 이 땅 위에 모든 것이 예정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사람되어 구원한 이 구원이 오늘 우리에게 전해져 우리의 것이 되는 일이 어느 우연에 의하여 좌우되고 변동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구원

또한 그 사람의 영원이 어떠할 것임이 결정되었다면, 그 사람이 땅위에서 예수 믿은 이후 건설한 모든 믿음의 행위들이 전부 예정되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누가 천국에 갈는지, 누가 천국에서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를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다면 이는 미리 예정된 것이며 이렇게 큰 사안에 대한 예정은 그 사안을 형성하게 되고 그 사안에 포함되며 관련되는 모든 세미한 사안이 전부 예정되었음을 의미합니다.


③영원한 천국이 계시록에 의하여 이미 결정되어 있다면, 예정은 완전예정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을 위해 당신의 처소로 만들어진 곳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한 처소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천국의 모습은 계21:을 중심으로 정확하게 세밀하게 전부 완공 완성된 곳입니다. 공간적 시각적 의미는 아닙니다만 상징을 인용한다면 가야 할 사람을 위해 그들의 행한 대로 누리게 할 모든 세부 사항이 전부 확정되어 기다리고 있는 곳입니다. 자로 재어 장과 광이 확정되어 있고, 그 모든 연결점이 그 모든 기초와 건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땅 위에 우리의 모든 행위는 전부 다 예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보다 계시록은 하나님께서 감추어 우리가 알 수 없었던 것을 알려 주신 것인데, 계시록의 모든 내용은 재림 때까지 일어날 모든 것을, 우리가 미리 알아서 필요한 것은 모두를 다 알려 주신 것입니다. 천국의 일부까지도 포함을 시켰습니다. 이는 예정의 비밀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실은 이미 있었던 구약의 모든 역사에 대하여도, 그 의미와 그 뜻이 무엇임을 해석해주는 계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계시록이 계시록이라면 예정은 부분 예정이라거나 또는 어떤 의미에서의 예정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전면적이며 완전적이며 절대적 예정입니다.


오늘 땅 위에서 행한 대로 내일 천국의 모습이 결정됩니다. 한번 죽으면 다시는 반복이나 번복이 없습니다. 따라서 행한 대로 갚으시는 곳이 하늘나라인데 이 하늘나라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면, 이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오늘 땅 위에 모든 것은 결정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 갈 사람으로 택함이 되었다면 그 사람 구원 위해서 필요한 모든 내외의 요인들이 다 세부적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④재림의 시점이 주어진 것은, 예정론을 말하며 특히 완전예정을 말합니다.


그 날과 그 시는 결정되었습니다. 재림의 시점이 결정되었다면 그 재림을 그 날과 그 시에 맞추기 위해 진행되는 오늘 모든 일들은 조금도 차질이 없어야 합니다. 그 날과 그 시를 모르는 것은 우리들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알려 주지 않았을 뿐이며 만사는 예정된 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알던 모르던 상관없는 별개의 일입니다.


⑤창조의 의미를 해석해 보면 단정하고 완전예정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존재까지인가, 그 존재가 행할 행동까지인가? 없는 가운데서 생겨진 것은 전부가 하나님의 창조에 속한 것입니다.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존재와 그 존재의 행위까지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이 만들어 존재되었지 하나님이 만들지 않은 것이 존재된 것은 없습니다. 있다면 없든 것을 있게 한 그는 바로 또 하나의 창조주가 되는데, 창조는 하나님만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만들었다면, 그 자동차는 저절로 움직이는가? 그 자동차에 기름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름도 만들었다면 움직이는가? 차가 있고 연료가 만들어져도 점화가 되고 엔진이 움직여야 하는데 그 동작은 자동차만 만들어놓으면 저절로 진행되는가? 외부에서 폭발에 관련된 전기나 기타 행위가 가해져야 합니다. 이것도 전부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지 자동차와 연료만 있다고 '운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한번 폭발시키면 그 다음은 계속 폭발되며 계속 이어지지 않는가? 그 다음 계속 이어지도록 공급되는 전기는 기계가 저절로 하는 것이 아니며 폭발된 힘이 그 다음 단계로 기계를 돌리는 것도 또 별개의 재창조 재섭리로 계속 하나님의 역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존재를 하나님께서 창조했다고 할 때 그 존재란 '유형'인 존재도 있으나 생각이나 운동과 같은 '무형의 동작'도 하나님이 다 창조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창조는 하나님이 하시고 그 창조물을 자동장치에 걸어놓고 하나님은 이제 계시지 않아도 움직이는 공장이 되었는가? 하나님이 만드셨고 또 그 이후의 유지 보관 동작 단계에서도 언제든지 하나님이 다 배후에서 섭리하시며 하나님이 손을 떼면 그 즉시 모든 존재는 존재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정이란 주권이란 부분일 수 없고 완전이며 전체이며 영원일 수밖에 없겠습니다.


3.부분예정론이 나오는 이유


①성경을 연구하는 태도가 문제입니다. 인간지식부터를 되잡아 시작해야 합니다.


45억년의 진화가 있었다는 인간지식을 단정해놓고, 그다음 성경을 보기 때문에 결국 성경의 하루를 10억년 등으로 계산하는 타락의 첫 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해 조립을 재구성을 할 수 있고, 과학의 45억년은 손을 댈 수 없다는 선입관, 그 인간지식이 문제입니다. 성경은 창조 6일의 첫 날과 마지막 날을 같이 보았고, 출20:8에서도 창조시 6일을 6일로 계산했으니 하나님의 전능을 생각하면 성경의 6일 창조와 인류연대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될 일입니다. 과학에 문제가 있다면 과학 안에서 찾으면 될 일입니다. 복제 양과 같은 것이 현실에서 나타난다고 성경이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성경은 성경대로 붙들고 과학이 만든 현실은 하나님이 나에게 보여주신 현실이니, 현실과 성경 둘을 한 자리에 놓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될 일입니다. 기도 없이, 연구 없이, 성경권위 인정 없이 과학이 말하면 성경을 섣불리 해체하고 재단하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인간지식이 너무 과도하게 주입되어 통제할 수 없도록 되어진 것입니다.


인간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섣부른 단정에서 예정을 편집하고 재조립하여 '부분 예정'이라거나 '어항 속의 자유'로 말할 것이 아니라, 예정은 완전 예정, 즉 전체 예정이며 절대 예정니며 또한 영원 예정이라는 사실을 성경이 말하는 대로 단정을 해놓고 그다음 우리가 자유를 가지고 있는 이 자유란 무엇인지를 연구할 일입니다. 인간의 자유를 성경에 맞추어 편집하고 재단하게 되면 이것이 일반 인간 지식이 생각 못할 차원의 것을 연구함이 될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성경대로 이해 되지 않는 부분이 남아 있으면 이 부분만을 가지고 성경으로 다시 와서 검토를 받으면 될 것이고, 그래도 맞지 않으면 숙제로 넘기면 될 일입니다.


②실은 악령이 인간을 점령해 가는 단계입니다.


우선 성경 자체를 부인하고, 안되면 성경의 일부를 변동 변질 편집하고, 안되면 성경의 기록 전달의 착오를 들고 나오고, 안되면 양비 양시론으로 흐려놓고 도망가버립니다. 물론 이런 순서는 한꺼번에 나타날 수도 있고 그 순서를 바꿔가며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인간을 점령해 가는 방법 중에 아주 대표적인 방법입니다. 인간 자유를 강조하고 인간 자유는 절대로 변동못할 사실로 못박아 놓은 다음 성경을 움직여 인간 지식과 이해 범위 안으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예정] 예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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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예정을 말했다면 예정교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생각대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도 분명하니 예정교리를

인정하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큰 부분은 예정이 되어 있으나 작은 부분이나 작은 범위는 인간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허락이 되었다고 예정론을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설명한다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이것이

옳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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