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설님 글을 읽고... ('발언/주제연구'로 이동 -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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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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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05 00:00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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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8번, 이분설이 성경적이고, 백영희 삼분설은 틀렸습니다. (제목 - 관리자) 이분설 03/0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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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설님! 반론 잘 읽었습니다.
먼저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1)새생명은 무엇입니까? 저는 골3:3-4와 요일5:12를 답으로 제시할 수 있답니다.
2)그리고 영이 뭡니까?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영을 하나님의 생명(엡4:18, 김세윤 교수는 하나님적 생명이라고 표현했다)으로 바꿔 써도 괜찮은 곳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요5:26과 요일5:10-11참고).
이분설님께서 새생명을 목숨(몸의 생명)으로 오해하고 있지는 않겠지요. 새생명은 하나님과 연결된 영의 생명을 가리킨답니다. 엡2:1f에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고 되어 있답니다. 여기서 죽었던 것은 바로 영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의미죠.
예수님은 영도 천사도 부활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에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설명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지금 하나님 앞에 살아 있다(산 자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앞에 산 자?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살아 있는 자라는 의미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나님의 생명(중생된 영)이 있다는 겁니다.
이분설님은 사도신경을 고백하실 겁니다.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여기서 산 자는 바로 영이 산 자를 의미합니다(롬8:10 참고).
이분설님 질문을 보니까 거듭난 새생명이 심기워져 있다는 것을 아시는 것 같은데 천만다행입니다. 백영희 목사님은 바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우리 중생된 영이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이분설님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물론 답은 요3장에 나와 있답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항상 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겁니다.
이분설님은 어떻게 본인이 거듭난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들은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요5:24).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요6:63).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영이요 생명이니)가 살아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는 증거라는 말씀이죠.
이분설님이 영과 새생명을 별개의 것으로 보신 것 같은데 백영희 목사님은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음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 처음엔 마음과 육신이 각을 세운답니다. 그러나 롬7:23을 보세요.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그 다음 어찌 됩니까? 엡2:3을 보세요.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결국 마음은 육체를 졸졸 따라다니게 됩니다. 골2:18을 보세요.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마음이 육체의 속격으로 전락할 때가 많다는 겁니다.
이분설님은 갈5장에서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 사이의 긴장 관계를 아실 겁니다. 마음이란 육체의 마음이 될 수 있고 성령에게 감동된 마음 될 수 있답니다(마음은 속격입니다. 죄에게 종이 되거나 의에게 종이 되거나 둘 중 하나다. 롬6:18f 참고).
백 목사님은 루터의 노예의지를 철저히 따랐답니다. 마음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도 있고 거짓된 것으로 가득할 때도 있답니다(마음은 속격이고 중립적입니다). 세상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되어 있답니다.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하면 그 다음부터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부패하게 되어 있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반석 같이 자리 잡고 계신다는 겁니다.
백 목사님 또한 처음엔 이분설을 주장하셨답니다. 그러나 영과 마음을 구분 못하는 사람들이 백 목사님 주장을 중생된 영혼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오해했기 때문에 그 위험천만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 때때로 삼분설로 말씀하신 겁니다.
이분설님께서 삼분설 주장은 잘못 됐다고 줄 곳 반론을 펴시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백 목사님이 그토록 경계하셨던 오해를 백 목사님에게 돌리는 논리적 모순을 범하고 있답니다.
두 문제(삼분설 문제와 중생된 영혼은 범죄 하지 않는다) 중 하나만 물고 늘어지는 것이 온당하다는 의미입니다. 앞에 문제는 백 목사님이 유연하게 대처하신 문제이고, 뒤에 문제는 백 목사님 주장과 상관없답니다.
그렇다면 이분설님이 제기한 문제는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일겁니다.
오늘은 토요일이기 때문에 이분설님에게 몇 가지 질문 던지는 것으로 제 설명을 닫겠습니다(설교와 심방 때문이죠...)
1)사망이나 생명이나 적신이나 환난이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을 수 있습니까?
2)우리를 인치시고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3)하나님은 영이시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입니까?
4)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 글은 '발언/주제연구'에서 제기된 648번 '이분설' 관련 글에 대한 반론이므로 그쪽으로 이동합니다. 다음 자료를 클릭하시면 주제를 처음 제기한 글이 나오고, 이어지는 글들을 보시려면 게시판 제일 하단에서 'forward'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648번, 이분설이 성경적이고, 백영희 삼분설은 틀렸습니다. (제목 - 관리자) 이분설 03/0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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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설님! 반론 잘 읽었습니다.
먼저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1)새생명은 무엇입니까? 저는 골3:3-4와 요일5:12를 답으로 제시할 수 있답니다.
2)그리고 영이 뭡니까?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영을 하나님의 생명(엡4:18, 김세윤 교수는 하나님적 생명이라고 표현했다)으로 바꿔 써도 괜찮은 곳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요5:26과 요일5:10-11참고).
이분설님께서 새생명을 목숨(몸의 생명)으로 오해하고 있지는 않겠지요. 새생명은 하나님과 연결된 영의 생명을 가리킨답니다. 엡2:1f에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고 되어 있답니다. 여기서 죽었던 것은 바로 영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의미죠.
예수님은 영도 천사도 부활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에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설명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지금 하나님 앞에 살아 있다(산 자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앞에 산 자?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살아 있는 자라는 의미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나님의 생명(중생된 영)이 있다는 겁니다.
이분설님은 사도신경을 고백하실 겁니다.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여기서 산 자는 바로 영이 산 자를 의미합니다(롬8:10 참고).
이분설님 질문을 보니까 거듭난 새생명이 심기워져 있다는 것을 아시는 것 같은데 천만다행입니다. 백영희 목사님은 바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우리 중생된 영이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이분설님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물론 답은 요3장에 나와 있답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항상 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겁니다.
이분설님은 어떻게 본인이 거듭난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들은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요5:24).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요6:63).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영이요 생명이니)가 살아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는 증거라는 말씀이죠.
이분설님이 영과 새생명을 별개의 것으로 보신 것 같은데 백영희 목사님은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음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 처음엔 마음과 육신이 각을 세운답니다. 그러나 롬7:23을 보세요.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그 다음 어찌 됩니까? 엡2:3을 보세요.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결국 마음은 육체를 졸졸 따라다니게 됩니다. 골2:18을 보세요.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마음이 육체의 속격으로 전락할 때가 많다는 겁니다.
이분설님은 갈5장에서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 사이의 긴장 관계를 아실 겁니다. 마음이란 육체의 마음이 될 수 있고 성령에게 감동된 마음 될 수 있답니다(마음은 속격입니다. 죄에게 종이 되거나 의에게 종이 되거나 둘 중 하나다. 롬6:18f 참고).
백 목사님은 루터의 노예의지를 철저히 따랐답니다. 마음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도 있고 거짓된 것으로 가득할 때도 있답니다(마음은 속격이고 중립적입니다). 세상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되어 있답니다.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하면 그 다음부터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부패하게 되어 있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반석 같이 자리 잡고 계신다는 겁니다.
백 목사님 또한 처음엔 이분설을 주장하셨답니다. 그러나 영과 마음을 구분 못하는 사람들이 백 목사님 주장을 중생된 영혼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오해했기 때문에 그 위험천만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 때때로 삼분설로 말씀하신 겁니다.
이분설님께서 삼분설 주장은 잘못 됐다고 줄 곳 반론을 펴시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백 목사님이 그토록 경계하셨던 오해를 백 목사님에게 돌리는 논리적 모순을 범하고 있답니다.
두 문제(삼분설 문제와 중생된 영혼은 범죄 하지 않는다) 중 하나만 물고 늘어지는 것이 온당하다는 의미입니다. 앞에 문제는 백 목사님이 유연하게 대처하신 문제이고, 뒤에 문제는 백 목사님 주장과 상관없답니다.
그렇다면 이분설님이 제기한 문제는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일겁니다.
오늘은 토요일이기 때문에 이분설님에게 몇 가지 질문 던지는 것으로 제 설명을 닫겠습니다(설교와 심방 때문이죠...)
1)사망이나 생명이나 적신이나 환난이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을 수 있습니까?
2)우리를 인치시고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3)하나님은 영이시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입니까?
4)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