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답변이지만, 조금 다른 면에서 예를 들고 설명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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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답변이지만, 조금 다른 면에서 예를 들고 설명해 보겠습니다.

분류
yilee 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목회~]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목회-]/[-홈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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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말씀하신 대로, 독신의 목회자도 배출해야 옳습니다. 그런데도 독신 목회를 막고 있는 것은


①독신 목회로 인해 교회가 가질 은혜보다, 독신 목회로 인해 손해볼 부분이 많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양과 종류가 사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따라서 독신으로 목회에 전념할 수 있는 은혜를 받은 목회자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독신 목회를 엄하게 거부하는 이유는, 오늘 시대가 7계명으로 망할 말세이기 때문입니다. 독신으로 목회할 수 있는 자제력과 깨끗한 인격을 가진 분이 더러 계시겠지만, 독신 목회자를 상대하는 일반 교인들과 주변에 전도해야 할 안 믿는 이웃들이 필요없는 오해를 하고 공연히 시험거리를 만들 것이기 때문에 독신 목회를 피하게 하는 것입니다.


독신으로 목회할 때 교회가 유익을 보는 양과 독신이기 때문에 손해를 볼 양을 비교해 본다면 손해가 너무 많겠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독신으로 목회할 수 밖에 없고 다른 길이 없다면, 오해나 시험이 있다 해도 목회자만 깨끗하다면 독신 목회를 고집할 수 밖에 없겠으나 목회자가 가정을 가지는 것이 더 일반적인 것이므로 위험한 길은 가급적 피해 가자는 뜻입니다.


과거 홍순철목사님이라는 분은 결혼 전에 목회를 나간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주 특수한 은혜를 가진 분이었는데 결혼 상대가 얼른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목회자가 급한 교회가 있어 백목사님이 특별히 먼저 파송한 다음 결혼을 뒤에 시킨 경우였습니다. 법으로 금하는 것은 아니지만 법으로 금한다고 할 만큼 조심하고 있습니다.


②독신 목회를 일괄적으로 금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독신 목회를 해서는 안되는 분들 때문입니다.


독신 목회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분들을 10명으로 볼 때, 정말 평생 독신으로 목회할 분은 1-2명일 것이고 나머지 8-9명은 짧은 기간이면 몰라도 장기간 또는 평생을 독신으로 목회를 할 정도는 아닌 분들일 것입니다. 평생 독신을 지킬 분도 있고 그렇게 못할 분도 있는데 만일 독신 목회를 허락하게 되면 평생 독신을 할 수 있는 분은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이 처음에는 잘하다가 나중에 독신이기 때문에 발생되는 여러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여 교회에 손해를 끼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독신 목회를 할 수 있는 분이면 가정을 가지면서도 가정을 완전히 초월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독신 목회자는 결혼을 하게 되면 조금 불편할 정도일 것이고, 그대신 평생 목회가 곤란할 분들에게 독신 목회를 허락하는 경우 어느 순간 큰 시험이 닥칠 때 큰 손해를 볼 것인데, 그때마다 일일이 관리 감독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그런 분들에게는 처음부터 결혼을 권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만을 두고 말한다면 독신 목회가 가능하다 해도 독신 목회를 감당 못할 분들 때문에 일괄적으로 결혼 목회를 권하고 있습니다.


③손양원목사님이나 백목사님 같은 수준에 있는 분들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백목사님을 시기하여 견제하려던 분들이 항상 사용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입니다. 첫번째 방법은 대외적으로 일단 '이단'이라고 선언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근거는 자기 교단과 다르기 때문에 이단이라고 하는데 그런 논리는 자기 교단에서조차 용납되지 않는 일이지만 현실 교계는 정치목사가 주도를 하게 되어 있고, 교회 정치는 '선동정치'가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방법은 은밀하게 '7계명을 범했다더라'고 유포를 시키는 것입니다. 아니라고 증명을 할 수 없는 죄가 그 죄의 특성이므로 상대방을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매장시킬 때, 특히 백목사님처럼 흠과 점을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고차원의 지도자들을 교계 정치가들이 잡으려고 할 때 들고 나오는 방법입니다.


오늘도 고신측 나이 많은 목회자나 교인들은 50년 전에 들었던 그런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구조적으로 불행해지게 되어 있는 분들이라고 하면 너무 가혹한 표현이 될 것 같아서 피하겠습니다만, 분명히 그들이 모를 리가 없는데도 그런 모함을 굳이 사실로 믿고 싶어하는 것은 넘볼 수 없는 경쟁 상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좋게 해석을 한다면 열등의식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못된 발언 하나를 가지고 이 복음을 가로막은 결과는 아주 대단했습니다. 측정을 다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만일, 백목사님이 가정을 가지지 않았다면 평생 그 발언에 막혀 이 복음을 접할 사람들이 돌아선 숫자는 생각도 못할 정도일 것입니다.


또 한 분의 예를 든다면 손양원목사님입니다. 그의 두 아들의 순교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한국교계에서 손목사님에 관련된 이야기는 전부 좋은 면으로만 돌고 있지만, 대단히 깊은 곳에서 은밀하게 아직까지도 살아남아 있는 유언과 비어 중에는 손목사님에게 딴 여자가 있었다는 말이 있는 정도입니다. 손목사님이 전적 목회에 전념하느라고 가정을 돌볼 시간이 거의 없었고 또 사모님의 신앙이 특별하다 하지만 자신보다 탁월했던 손목사님의 신앙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두 분 사이에는 그들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미묘한 갈등이 있게 됩니다.


그런 분들의 깊은 세계를 보지 못하고 자신들 부부 수준에서만 보는 일반 교인들로서는 손목사님은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를 못했다고 생각하는 측근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말들이 돌아다니면서 어느 단계에서부터 말이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손목사님 사망 50년이 넘는 오늘까지도 교계 깊은 곳에 있는 분들 중에는 손목사님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발언을 슬쩍 흘리고 다녀 아직도 그 산불이 끄지지 않고 있습니다. 만일 손목사님이 독신으로 살았다면 어느 정도로 말이 나왔겠는지? 아마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전기 내용이 허구였다는 학설이 나올 정도로 못된 말들이 많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두고도 예수님에게 여자가 있었다는 말을 감히 입밖에 내뱉는 신학자가 있는 정도입니다. 영화를 찍는 잡ㄴ 잡ㄴ들이 재미로만 던져 본 말이 아닙니다.


④가까운 역사에 '김현봉목사님'이라는 이름을 이런 면을 두고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 설교록에 손양원목사님과 함께 제일 많이 소개되는 분 중에 한 분입니다. 많은 일화가 있지만, 이번 질문을 두고 드릴 말씀은 그분은 평생 부부를 부부라는 이름으로만 두고 살았지 이성으로 상대한 적이 없었던 분입니다. 양도천이라는 사람처럼 이단들이 한번씩 별스러운 재주를 부리느라고 써먹는 것과 달리 김목사님은 복음 앞에 스스로 그렇게 했던 분입니다. 그분의 평생 걸음이 권능으로 걸었고 자기 시대를 감당하던 분입니다.


그 사모님이 간호사로 계셨는데 곰보였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김목사님이 선을 보러 나갔을 때 신부 될 분을 따라 나왔는데 그 얼굴이 곰보인 것을 보고 김목사님 자신이 아니고는 결혼할 사람이 없겠다고 생각하여 따라 나온 분에게 청혼을 했습니다. 그대신 그분에게 평생 부부로 살되 이름으로만 살고 이성관계는 가지지 않기를 제의하여 그렇게 살았습니다.


김목사님 같으면 과연 평생 독신으로 살 수 있는 분이었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또 객관적으로 충분히 입증이 되는 분입니다. 그러나 독신으로 살 수 있는데도 겉으로는 결혼 부부로 목회를 한 것을 두고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⑤결론적으로, 독신 목회를 꼭 말리기는 하지만 법으로 말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까지 설명드린 여러 문제점들을 총동원하여 목회자에게는 독신을 하지 말고 목회를 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독신목회와 결혼목회가 결국 손익을 따져보면 결혼목회가 낫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특수한 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법으로 막지는 않습니다. 이제 말씀드린 이런 이유로 충분히 설명을 할 따름입니다.


2.독신 목회가 좋으나, 만일 결혼목회를 해야 한다면, 가정에도 충실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두번째 질문이라고 읽었습니다. 누차 말씀하시는 질문자의 뜻은 충분히 알겠습니다. 또 답변자가 앞에서 반복하며 설명드린 '진심'를 질문자께서 이해하지 못해 재질문하는 것은 아닌 줄 알고 있습니다.


일단 이 문제는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너무도 답변이 길어지므로 원칙적인 말씀만 드리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주님께 바쳐져서 복음을 위해 살겠다고 약속한 자리입니다. 가족을 신앙으로 돌볼 수 있는 기회까지도 맡은 교인들을 돌보는데 우선적으로 바치겠다고 약속을 하고 나온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노력해야 할 방향은 너무도 명확할 것입니다.


3.목회자 자녀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와 모범을 보이는 경우를 잠깐 말씀하셨는데


①목회자 가정의 행복지수와 그 교회의 행복지수는 반비례합니다.


이런 통계가 있습니다. 과거 목회자들은 전부 고생을 했었습니다. 교세가 약했으므로 경제도 어려웠고 또 전도하는 등 노력할 일은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 시절 목회자 자녀들은 남에게 덕이 되는 경우보다 덕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목회자 자녀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는 적고 오히려 모범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지금은 특단의 경우가 아니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은 별로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돈이 넘칩니다. 그리고 사회가 발전되면서 목회자가 교회에 매이는 시간은 현저하게 줄고 있습니다.


목회자가 사택에 풀어놓는 돈과 여유가 많으면 자녀들이 바로 자라고 그 반대가 되면 자녀들에게 불행한 일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조금 관찰력이 있는 분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인데, 이 통계는 또 하나의 통계를 동시에 살펴보아야만 의미가 있습니다. 목회자가 사택에 돈과 여유를 쏟지 못하고 어려울 때는 자녀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그 시절에는 교회가 건전했고 발전했고 그때는 교회가 기도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늘 목회자가 교회에 쏟을 시간과 교회에 사용할 돈을 사택으로 충분히 가져가면서부터 사택은 모범적인 가정으로 발전을 해 나가는데 교회는 급속히 탈선하고 타락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②총공회 내에는 이런 통계가 구체적으로 있습니다. 이번 답변에서는 선택의 문제라고 표현하겠습니다.


목회자의 경제와 관심을 사택 자녀들과 교인들에게 어떻게 나누고 어떻게 양쪽을 관리하며 살았느냐는 문제를 두고 가장 대표적인 가정을 예로 든다면 부산서부교회 백영희목사님과 서울 잠실동교회 백태영목사님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부산 백목사님은 40대 50대가 된 자녀들이 미국에서 12년만에 아버지를 보러 왔을 때도 부모와 자녀로서 마주 앉은 것은 같은 예배당 구역 내에 있으면서도 며칠이 지나서였고 만난 시간은 불과 10분 안팎으로 기억합니다. 그 자녀들은 학교 공부가 끝나면서는 아버지에게서 단 돈 1원도 받지 않았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딸이 시집갈 때도 아버지로서는 단 1원도 줄 수 없다며 사위에게 교통비 옷값까지 송금하게 했고 그 돈으로 시집을 가게 된 정도였습니다.


반면에 서울 백목사님은 부정한 돈은 사용할 수 없지만 교회에서 정당하게 받을 수 있는 돈은 얼마든지 받아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는 분이고 또 자녀를 위해서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성실하게 했던 분입니다. 서울의 강남지역에 있는 대형교회 목회자였기 때문에 사택도 다른 교파의 성공한 목회자들과 비교할 만큼 마련했고 모든 사용도 그러했습니다. 아마 목회자가 자기 사택에 대하여 충실하게 의무를 다하는 면으로 말한다면 가장 모범적이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부산 목사님은 4남 3녀를 두었고 서울 목사님은 2남 4녀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 결혼을 했고 그 자녀들은 완전히 자신들의 사회생활을 스스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이 양 가정을 비교한다면 얼른 한 눈에도 확연하게 다른 것이 있습니다. 부산 목사님의 아들 4명은 아버지가 평생 목회자 되기를 원했으나 자기들 손으로 돈을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을 한 다음, 목회자가 되는 것만은 아버지 말씀에 순종할 수 없다고 거부를 하게 됩니다. 마지막 순교하던 해에 막내 아들 한 사람만 40대 나이로 목회를 시작하게 됩니다.


반대로 서울 목사님의 아들 2명은 학교를 다닐 때부터 신학교를 거치거나 아니면 학교와 군대 문제 등을 끝마치면서 사회 생활을 거치지 않고 바로 신학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미국 시카고에 예배당을 구입하고 또 신학과정을 전부 밟을 수 있도록 지원하여 신학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서 현재 아버지를 이어 잠실동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또 한 아들은 큰 아들을 이어 시카고에 있는 그 교회를 담임하고 역시 신학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목회에 대한 사명감이 있고 감사와 기쁨이 있으며 그 목회와 신학에 자신감에 넘쳐 그야말로 가장 표준적인 과정을 현재 밟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이 두 종류의 목회자 가정 중 어느 가정이 목회자로서 바로 처신하고 바로 살았느냐에 대하여는 이미 답변자가 충분히 설명을 드린 것 같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설명을 드리는 것은, 둘 중에 하나를 다시 강조하지 않고 그냥 소개만 하고자 합니다. 둘 중에 좋아보이는 것을 택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 심리일 것입니다. 신앙세계도 이 둘 중에 좋은 목회로 보이는 면을 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답변자의 입장은 후자가 아니라 전자의 경우를 부러워 하고 또 그리 되고 싶어 조금씩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이곳을 이용하는 모든 목회자들에게도 그리 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계의 일반적 시각에서 본다면 전자를 위험한 고행주의라고 대단히 비판할 것 같습니다. 후자의 경우를 가장 성공한 목회자의 전형이라고 아마 교과서에 등재하여 모범을 삼고 싶을 것이라고 봅니다.


답변자가 마지막으로 꼭 덧붙이고 싶은 것은, 부산 백목사님처럼 그렇게 목회를 하면 그 가족들에게 얹혀지는 짐이 여간 무겁지 않지만 10-20여년의 세월만 참고나면 천하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보상 역사가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목회자가 교인을 위해 제 가족을 돌보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 바친 연보와 같아서 그 연보를 받으신 하나님은 씨와 양식으로 넘치게 갚습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교인을 돌보고 교회에 사용할 돈과 여유를 사택으로 움직이면 그 움직인 만큼 하나님은 뒤로 나 앉아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목회자라는 사람이 사람의 힘으로 자기 가정을 돌본 것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은 훗날이 있다고 봅니다.


어쨌든 이번 답변에서는 두 가지 경우를 객관적으로 놓고 읽고 듣는 분들이 자기 취향에 따라 택하셨으면 합니다.
[목회] 반갑습니다 (목사님의 하루 일과 궁금 -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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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교인이아니지만 조만간 주님을 찾아야될것같은 사람중에하나입니다

종교에대한질문이아닌 궁금한것이있어 질문을하나드릴까합니다.


이많은문의답변을 혼자서다하시는지 여러분이분담해서하시는지 ...

매일새벽기도에 목회일보시고 개인가정일도 보셔야할것같은데 그것이가능한지

목사님의 하루일과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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