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답변) - 6가지 질문 전체를 두고 답변합니다.

문의답변      


(3차 답변) - 6가지 질문 전체를 두고 답변합니다.

분류
yilee 0
1.롬8:1, 요일5:18 두 성구는 중생된 영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영만 중생이 되었고 몸과 마음은 여기 중생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은 절대 범죄하지 않는다고 단정을 하는 것이고, 비록 믿는 사람이라도 그 영을 제외한 몸과 마음은 안 믿는 사람처럼 늘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결코 정죄함이 없는 존재, 범죄할 수 없고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는 존재는 믿는 사람 자체가 아니며, 믿는 사람의 몸과 마음도 아닙니다. 몸과 마음을 빼놓고 우리에게 남아 있는 존재는 하나입니다. 바로 영입니다. 고로 중생된 영은 결코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롬8:1 같이 정죄함도 없으며 요일5:18 같이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합니다. 다른 말로 말한다면 중생된 영 외에 믿는 사람의 몸과 마음은 악한 자가 항상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불신자 이상으로 죄도 짓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과 마음은 정죄를 받아 지옥에 보낼 요소들, 기능들, 생애들이 분명히 있다고 단정을 하는 것입니다.


1)중생된 사람과 중생된 영은 꼭 구별해서 알아야 하는 이유가 이러합니다.


①교리적 표현과 일상적 표현은 다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예배 보러 갈 때 '교회 간다'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정확한 표현은 '예배당에 간다' 는 표현이 맞습니다. 건물에 표시를 하면서 '00교회'라고 대부분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표현은 '00교회예배당'입니다. 손양원목사님이 계시던 애양원교회 본당 건물 제일 위에 아직까지 돌에 파 놓은 이름은 '애양원교회 예배당'입니다. 서부교회도 그러했습니다.


지금은 교회가 가진 건물이 여러 동이 있기 때문에 예배당이라고 건물 표시를 하지 않고 00교회가 주로 예배 보는 곳이며 이 장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뜻에서 '00교회'로만 표시를 하고 있습니다. 단어 사용이란 오래 하게 되면 새로운 뜻을 추가하게 되는 수도 있고 또 그 뜻이 바뀌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라는 명칭만큼은 아직도 신학적으로 또 교리적으로 분명히 '함께 믿는 사람들' '전체'를 뜻하는 것이며 '대한민국'과 같은 추상적 개념입니다.


따라서 말로만 시비를 한다면, '교회 간다'는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이나 또 듣는 사람이 '00교회'가 예배를 보기 위해 마련해 둔 '예배당'에 간다는 뜻으로 전혀 그 의사소통에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면을 서로 이해하면서 생각해 본다면 그렇게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②'중생된 사람'을 좀 정확히 그리고 자세하게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혼란의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를 '중생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때 '중생된 사람'이라는 정확한 의미는 '중생된 영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이며, 몸과 마음은 아직 중생된 새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바울'이 예수를 믿었을 때는 바울의 영만 중생이 되었고 바울의 몸과 마음은 아직도 중생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영이 중생이 되었다면 활동을 개시할 것이고 먼저 살아난 영이 자기의 마음과 몸을 평생이라는 시간을 통해서 점차적으로 살려나가게 되어집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을 한 인격으로 보고 한 존재로만 계산하면 끝없는 오해가 있게 되고 성경 전체를 통해서 대단히 많은 면으로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시력은 출중하나 뜀박질은 대단히 느린 사람이 있습니다. 기억력은 아주 없는데 손기능은 탁월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의 평가는 부분적으로도 할 수 있고, 또 전체를 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사람을 한 인격 한 존재라는 전체 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그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기능, 많은 요소들을 챙겨 살리는 일에 실패하게 되는 위험을 염려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자체를 한 인격, 한 존재로 표현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바울이라는 사람 한 사람을 두고 그 속에 두 종류의 자기가 있어 서로 싸움도 하고 포로 잡아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는 모습을 로마서 7장 15절로 25절에 분명히 명문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자신을 하나로 볼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두 자기가 있으며 그 두 자기 안에도 다시 여러 종류의 기능과 역할들이 있음을 알고 자꾸 세밀하게 구별하여 나가지 않으면 성경 전체를 오해케 되고 또 세상에서 준비할 기회도 놓치게 됩니다. 골로새서 3장 10절에서도 우리 안에 새사람과 옛사람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함을 말씀했으니 다시 한번 여러 각도로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2)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성구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①우선 '중생'이라는 뜻입니다.


안 믿는 사람도 몸과 마음만으로 살고 있으며 그들에게도 생명이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가지고 있는 이 생명은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인간의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그 사람의 몸과 마음만을 연결시켜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믿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도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 가지고 있었고 죽는 날까지 가지고 있게 됩니다. 또한 이런 생명은 동물에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중생'이란 예수 믿는 사람만 가지고 있는 생명, 예수 안 믿는 사람에게는 없는 생명이니 이 중생의 생명은 '하나님과 우리 영을 연결'시켜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을 '중생된 사람'이라고 할 때는 '중생된 영'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이지 믿는 사람의 영, 마음, 몸으로 합해진 그 사람 전체가 중생되고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②로마서 8장을 중심으로 성구를 확실하게 제시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는 중생된 사람입니다. 중생된 우리 안에 '영은 의로 인하여 산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살아난 중생된 영 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이 우리 영을 통하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10절과 11절의 말씀입니다. 중생된 사람은 영만 중생되어 먼저 살아 난 것임을 확실히 했습니다. 그다음 먼저 살아난 영이 그냥 두면 영원히 죽을 자신의 소유 몸을 살려나가는 면을 말씀했습니다. 얼마만큼 많이 살리느냐는 것은 차이가 있어도 영이 중생된 이상 자기 몸을 그냥 두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우선 확정 지울 수 있는 것은, 믿는 사람이 중생된 것은 영만 중생된 것이지 그 사람 전체가 한 인격으로 한 존재로 다 중생된 것이 아니라는 확증이겠습니다.


③11절에서 '영'은 '성령 하나님'을 말합니다. 이 성령은 우리 영과 함께 움직입니다.


물론 11절의 영은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중생된 우리 안에서 역사할 때 우리 속에 먼저 살아난 '중생된 영'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에 성령을 강조할 때는 '성령'만을 표시할 때가 있고, 또 우리의 '영'을 강조할 때는 우리 영만 표시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성령과 우리 영은 늘 함께 움직이는 것이니 성령 하나님과 우리 영이 이렇게 끊어지지 않고 항상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 바로 중생된 '생명'입니다. 16절에는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증거하신다는 말씀을 명문으로 하셨습니다.


중생이란 '되찾은 생명'이며 '다시 얻은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안 믿는 사람도 가지고 있는 생명과는 아주 다른 의미이며 다른 실체입니다. 안 믿는 사람도 가지고 있고 현재 세상 사람이 말하는 '인간의 생명'이란 몸과 마음 둘을 연결시켜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살펴보고 있는 '중생 = 두 번째 가지게 된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시켜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④10절과 11절에서 '마음'이 빠져 있음을 보셨습니까? '몸' 안에 '마음'은 포함되었습니다.


먼저 살아난 영이 몸을 살려 간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마음이 이 성구에서는 빠져 있습니다.

영과 성령이 하나로 움직이기 때문에 강조에 따라서 하나만 표시될 때가 있고 또는 동시에

표시가 될 때가 있는 것처럼, 몸과 마음도 하나로 표현될 때가 있고 그 중 하나만으로 둘을 표시할 때가 있습니다.


로마서8장 6절과 7절에는 '육신의 생각'이 있으며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영의 생각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령과 함께 하는 영을 빼고도 육신이 생각하는 생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생각은 바로 마음이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을 빼놓고 남은 것이 육이며 그 육은 사망에 이르는 생각을 할 수 있으며 이 육은 생각을 못하는 몸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하는 마음까지 포함을 하고 있습니다.


⑤여기에서 우리는 한번 전체를 요약하겠습니다.


중생은 영만 된 것이며, 중생된 이 영을 가진 사람을 중생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영만 중생이 되었기 때문에 이 영은 죽은 몸과 마음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게 됩니다. 이 영의 노력에는 항상 성령이 함께 하고 있으며 이 영은 성령과 다시는 끊어질 수 없기 때문에 이 중생된 생명은 다시는 죄를 지을 수도 죽을 수도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대속이 한번이었으며 그 대속으로 살아난 생명은 다시는 죽지 않는다고 말씀했기 때문에 더욱 확증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의 몸과 마음은 먼저 살아난 영이 평생을 통해서 살려 가는 것입니다. 그 몸과 마음이 영에게 얼마나 연결되어졌느냐에 따라서 해당되는 현실마다 영에게 순종하여 의롭게 된 요소는 다시는 죽지 않을 요소가 되었을 것이고, 영에게 순종치 않고 거역하여 몸과 마음이 죄를 지었다면 그 요소는 죄의 요소가 되어 다시는 사하는 제사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평생을 살고 나면, 영은 꼭같이 중생된 영이지만 그 영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야될 자기들의 마음과 몸은 평생을 통해서 얼마나 또 어떻게 영에게 순종을 했느냐에 따라 각 사람이 다를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를 하는 것은, 영에게 순종해야 할 우리 몸과 마음이 예수 믿기 이전과 같이 또 죄를 지었다면 이미 만들어진 죄의 기능은 지옥으로 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또 새로운 현실이 닥칠 것이니 새로 닥친 현실에서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영에게 순종하는 심신이 되기를 작정하게 되면 '회'가 된 것이고 그 현실에서 실제 행동으로 순종을 했다면 '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멀리서 다른 사람이 보면 같은 죄를 어제는 지었는데 오늘은 이겼으니까 회개를 했다고 할 것입니다. 실은 어제 지은 죄로 만들어진 죄의 기능은 그 단번으로 지나가는 한번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다시 살리는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다음 현실에서 이긴 요소는 어제 진 요소와는 별개의 힘이며 별개의 요소이며 별개의 기능입니다.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고 다음 기회에는 이기겠다는 것이 회개이며, 지나간 죄에 대하여는 그 죄로 인하여 지옥으로 버려야 될 자기의 요소가 있다는 것을 고함으로 천국의 부끄러움을 씻고 오히려 그 실패를 딛고 다음에는 승리하게 되면 그 실패가 다음 기능을 의로 만드는 밑천이 되었음으로 자기라는 한 사람, 자기라는 단일의 인격체 전체로 보아서는 회개로 인하여 얻는 수입이 과거를 가리고 미래를 준비하며 현재의 승리를 가져온 큰 복이 되는 것입니다.


3)영을 마음과 구별하고, 구원을 이렇게 나누어 본다면, 모든 난해절이 해결이 됩니다.


①삼분론을 꼭 애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영을 분리할 수 없다면, 영을 몸과 마음과 다른 성질과 존재로 파악할 수 없다면, 사람이 중생되는 것은 영만 중생이 되고 몸과 마음은 영이 중생된 뒤에 평생을 통해 차차 중생된다는 이 교리를 놓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교리를 놓치게 되면, 두 가지 극단적인 실수가 나오게 됩니다.


②중생된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중생은 가짜라고까지 말하는 경우입니다.


구원파라며 일반 교회가 말하는 분들은 성경이 말하는 '중생'의 성질만 붙들었고 성경이 말하는 '중생'은 죄를 다시는 짓지 않는 중생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몸과 마음까지도 죄를 짓지 않는다고 본 것입니다. 성결교의 교리도 '완전중생'을 말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중생되고 나면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성구가 영에게만 해당되는 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죄를 짓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중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죄를 지은 것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③중생된 영과 건설구원을 파악치 못한 신학의 책임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오류는 박윤선목사님의 주석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중생된 사람은 반복적이며 계속적으로 죄를 짓지 않으며 고의로 죄를 짓지 않는다는 설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현재 이런 주장은 칼빈 이후 수백 년을 내려오는 해석이며 오늘도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애매하게 반복되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현실 교회 파악에 실패했다고 봅니다. 고의로 짓는 죄가 과연 교계에 없을까요? 과연 반복적으로 계속하여 죄 속에 완전히 파묻혀 버리는 경우가 중생된 사람에게는 없겠습니까?


일반 교인보다 휠씬 잘 믿는다고 대표로 뽑은 분들이 '총회대의원'이 되고 이런 분들을 전국에서 모았기 때문에 '거룩한 총회'라는 이름으로 교단들이 9월이면 모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 중에 가장 신앙 좋은 분을 선출하는 것이 '성 총회의 총회장'입니다. 이 총회에서 수십년간 총회장 선거를 두고 고질적이며 지능적이며 끈질긴 욕심을 가지고 돈으로 표를 사서 총회장에 당선되어 왔다는 사실입니다. 우연히 실수한 죄들이 아니며 가끔 한번씩 짓는 죄가 아닙니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자탄이 나왔고 결국 '제비뽑기'로 총회장을 뽑자는 결론을 냈습니다. 한국 교회의 분열이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는 큰 죄악이라고 하고 이런 죄악이 고질적으로 한국 교회에 있다는 것은 자타가 다 공인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박윤선목사님으로 대표될 수 있는 해석에 의하면 여기 해당되는 교회들과 교계 지도자들 전부가 다 중생되지 않은 사람이며 현재 죽는다면 지옥을 가야 된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구원관은 뿌리채 뽑혀 버립니다. 행위로 구원을 얻는 기독교가 되며 하나님의 전적 은혜로 가지는 구원이라는 말이 해당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④중생 후에도 죄지으면 지옥, 회개하면 천국을 반복한다는 천주교 교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또 한 종류의 극단적인 오해는, 예수님을 믿으면 중생된 성도며 천국을 가게 되는데, 만일 중생된 후에도 죄를 지으면 그리고 회개치 못하고 죽는다면 지옥을 간다는 주장들입니다. 주일날 관광가던 차가 사고로 죽는다면, 물론 대부분의 사고사에는 다 해당될 일이지만, 천국가는 문제에 확신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영과 심신을 구분치 못한 오해 때문이라고 답변을 하고 싶습니다. 이런 흐름은 말만 기독교지 실은 천주교 1천년의 교리입니다. 기독교는 출발에서부터 이런 주장을 배제하고 나온 교회입니다.


이것이 삼분론을 구분해야 하며 또 구원을 둘로 나눌 수밖에 없는 성경적 근거이며 또 신앙 현실적 필요성입니다. 한번 중생된 성도는 영이 중생된 것이며 이 영의 중생으로 인하여 믿는 사람에게는 다시는 지옥과 상관없는 만세반석 구원 위에 서게 된다는 선포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믿고 난 뒤 우리가 할 일은 이제 평생토록 자기 마음과 몸 안에 이전처럼 죄짓기를 좋아하는 자신의 요소들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말씀대로 사는 요소들로 성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4)질문자께서 성경인물 대부분이 다 천국간다는 논리로 나가는 것을 우려하셨습니다.


①성경은 거의가 믿는 사람의 믿는 이후를 가르친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 인물들이 대부분 천국 가는

인물들로 분류되는 이유입니다.


인간은 성경 말씀을 근거로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경우는 그 열매를 보아 중생이 되었다고 확신할 경우도 있지만 애매한 경우도 있으며 또 실상을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최종적 구원의 확정은 하나님만 아신다고 우리는 단정할 수 있겠고 다른 사람에게 대하여는 섣부른 추론은 대단히 조심할 일이겠습니다.


다만 확정을 지울 수 있는 근거와 기준은 성경이 뚜렷하게 말씀했으니, 중생은 전적 은혜이며 사람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적 은혜로 구원받은 표시를 확실하게 성경이 했다면, 우리는 천국갈 성도로 확신하는 것이고, 만일 그런 사람이 믿은 이후 죄를 또 짓는다면 비록 그 죄가 아무리 큰 죄일지라도 우리는 천국의 차이에 관련된 것이지 그 사람이 구원을 얻지 못할 사람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②마태복음 25장의 비유들은 믿는 사람들만 두 종류로 나눈 경우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구원얻는다는 비유가 아닙니다.


열 처녀 비유는 세상 모든 사람을 다 열 처녀로 비유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런 경우에 미련한 처녀도 구원 받았다고 한다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는다는 만인 구원설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 그가 예수님 대속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선별구원, 구원예정에 아주 확실한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 처녀 비유는 그 숫자가 몇 명이든지 예수 믿는 사람을 매 현실마다 두 종류로 나눌 수가 있으니 열 처녀로 말한다면, 준비를 했던 이들과 안했던 이들입니다. 구원은 이미 얻어가진 중생된 우리들이지만 우리는 각각의 현실에서 미련한 쪽에 설 때도 있고 지혜로운 쪽에 설 때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늘 지혜로운 쪽에만 해당되고 누구는 늘 미련한 쪽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 베드로도 양쪽을 오고 갔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누군들 미련한 쪽에 단 한번도 해당되지 않고 평생을 믿었다고 자신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평생을 통해 얼마나 지혜로운 때가 많았느냐에 따라서 그 구원 얻은 천국의 실력과 세상에서 마련한 준비의 차이는 반드시 있는 것이며, 미련하게 통과했던 현실에 속한 것들은 영원히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섯 처녀가 천국 잔치 밖에 있었다고 지적을 하겠습니다만, 이 성구는 비유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한 사람의 요소를 두고 말할 수도 있고 한 사람 자체를 두고 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읽으면 분명히 한 사람 한 사람씩 구별하여 두 종류로 나누었고, 그 한 종류는 지옥으로 갔다고 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 한 사람 속에 있는 두 요소를 비유한 것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중요한 것은 미련한 5처녀가 행동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천주교가 되는 것이고, 그 미련한 5처녀도 등을 들었고 그 등 안에 기름까지 있었고 그 기름에 불까지 붙었었다면, 신앙의 차이일 뿐이지 분명히 중생이 되었고 중생된 성도인 증거이며 따라서 믿는 사람도 어떤 현실에서는 주님 모시는 일에 실패할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실패한 현실에 관련된 자신의 요소들은 구원 밖에 내쳐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③재림도 이렇게 한 가지 재림만으로 고정시키면 성경이 틀리게 됩니다.


예를 들면, 재림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들의 눈으로 예수님을 볼 줄 알고 재림을 그렇게 급하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2천년간 예수님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재림에 관련된 예언은 틀렸고 그 오차가 대단히 크다고들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재림'은 예수님을 다시 만날 '재회'이며 동시에 '이 땅의 마지막 순간'이니, 개인이 죽는 죽음으로 그 개인은 개인적으로는 자기의 죽음이 말세이며 그 죽음으로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고 또 그 죽음은 어느 시에 닥칠는지 모른다는 해석을 가집니다. 동시에 우주적이며 전체적인 최후 재림은 한번인데 이 역시 언제 닥칠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다시 오시겠다는 재림과 말세에 대한 '시기'는 성경의 표현이 조금도 틀린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인간이 인간 자신의 속단과 예단으로 성경을 임의 해석해 버린 것이 잘못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④마태복음 25장에서 지옥가는 사람으로 예를 든 사람들은 예수 믿는 우리가 버리고 갈 바로

요소들이니, 예수 믿고 난 뒤에도 예수 안 믿던 때와 같이 행동한 요소들입니다.


열 처녀 비유 뒤에 이어지는 비유는 점점 강해진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그러합니다. 열 처녀 비유에서는 울며 이를 갊이 없었으나 뒤에는 있습니다.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는 아주 구체적인 예까지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구가 지옥갈 안 믿는 사람을 한쪽편에 두고 말한 것이라고 한다면, 오늘 과연 누가 어린 소자의 배고픔과 갈증, 그리고 영접하는 일 등에 합격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죄는 아무리 작아도 죄이며 특히 이 성구에서는 평소, 지극히 사소하고 작은 일, 그래서 대부분 지나쳐 버릴 이런 지극히 작은 것을 가지고 문제를 삼고 있습니다. 하물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시 못박아도 될 만한 말세 교회들이며 우리 한국교회이겠습니까? 많은 교인들을 천국으로 가도록 배려하는 해석이 아니라 구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 우선 그러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 뿐 아니라 현실에 있는 많은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으로 편입될 사람이 너무 많게 되며, 주님이 오실 때 믿는 자를 보겠느냐는 말씀까지 고려한다면 당연히 이런 면도 지적하시겠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 것은, 성경은 거의 전부가 믿는 사람에게 믿는 이후를 가르친 것이며 안 믿는 사람에게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가르친 성구는 대단히 적습니다. 이유는, 안 믿는 사람에게는 성경을 줘 봐야 읽지 못하고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안 믿는 사람은 먼저 믿는 우리로 인하여 전도 받을 그 단계일 뿐이지 성경 안에 있는 내용으로 자라가야 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따라서 성경은 모든 내용을 다 담고 있지만 대체로는 믿고 난 사람, 중생된 사람에게 중생된 이후 평생토록 믿어가야 하고 자라가야 하는 이 일을 두고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면을 기록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경에는 믿는 사람 중에 믿은 이후 실패하는 과정과 예를 많이 들었을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택자와 불택자는 그 숫자에 있어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불택자가 많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⑤연옥설, 우리 마음의 사후 문제로 답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세상에서 단 한번으로 지나가는 매 현실에서 우리의 영원이 결정되고 반복은 절대 없다는 교리이기 때문에 천주교의 '연옥설'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천주교 연옥설에 대하여 과거 어떤 교리보다 더 명확하게 반대하는 교리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죽는 날 우리 몸은 세상에 버려두고 우리 영이 우리 마음과 함께 먼저 낙원에서 기다립니다. 재림 때에 주님과 함께 와서 땅에 묻었던 자신의 몸을 다시 찾아 입는 것이 부활입니다.
[삼분론]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제목분류 : [~교리~인론~삼분론~영~]

내용분류 : [-교리-인론-삼분론-영-]


--------------------------------------------------------------------------------------------


총공회의 중점교리는 "한번 중생한 영은 절대 범죄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성경 말씀 어디에도 이러한 말씀은 없는데 어디에 근거를 두고 한 교리인지 알고 싶습니다.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는데 우리의 전인격이 거듭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거듭난 사람들도 아직 죄 속에 있어 날마다 회개하며 사는데 왜 유독 거듭난 영만 죄를 짓지 않는 것인지? 영이 하는일이 무엇이며 왜 영이 육과 혼을 책임을 져야하는지? 그리고 총공회에서 말하는 죄의 개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리고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말하고 있는데 왜 구원을 꼭 둘로 나누어 가르치고 있는지? 예를 들어 마태복음 25장에서 주님이 말하는 비유중 열처녀중 미련한 다섯처녀도 기본적으로 구원을 받았으며 한 달란트 받은 자와 왼편 염소도 기본적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왜 주님은 그들은 모른다고 하였으며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말을 했을까요?

이러한 질문을 하게된 배경은 저의 아내가 총공회의 교리에 심취되어 있어 남편된 자로서 같은 신앙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질문을 하였는데 일반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과 독특한 교리와 독특한 설교내용이며 또한 주일학교의 교사의 독특한 열심이 어쩐지 마음에 걸려서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관계자의 관심있는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
쓰기 문의답변 초기목록
(1) 항목별 검색 주제별 | 가나다별 | test 주제별 정리
(2) 게시판 검색
(3) 통합 검색
번호제목이름날짜
  • 13938
    성도A
    2026.02.23월
  • 13937
    외부교인
    2026.02.20금
  • 13936
    교인
    2026.02.16월
  • 13935
    LA
    2026.02.15일
  • 13934
    재독
    2026.02.14토
  • 13933
    학생
    2026.02.12목
  • 13932
    성도A
    2026.02.11수
  • 13931
    도봉
    2026.02.10화
  • 13930
    교인
    2026.02.10화
  • 13929
    배우는 이
    2026.02.05목
  • 13928
    성도A
    2026.02.04수
  • 13927
    학생
    2026.02.02월
  • 13926
    성도A
    2026.02.02월
  • 13925
    공회교인
    2026.01.23금
  • 13924
    학생
    2026.01.21수
  • 13923
    학생
    2026.01.16금
  • 13922
    반사
    2026.01.16금
  • 13921
    학생
    2026.01.15목
  • 13920
    반사
    2026.01.13화
  • 13919
    성도A
    2026.01.12월
  • 13918
    신학도
    2026.01.12월
  • 13917
    부족한교인
    2026.01.06화
  • 13916
    성도A
    2025.12.26금
  • 13915
    돌아온탕자
    2025.12.23화
  • 13914
    믿는 자
    2025.12.2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