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목사님의 국한문성경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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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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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2 11:32
백영희 목사님께서 생전에 교인들이 국한문성경 보는 것을 꾸짖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그것이 과연 사실인지 궁금합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추측컨대, 백 목사님께서 "목회"라는 단어의 뜻과 관련지어 그러하시지 않았나 막연하게만 떠올려 봅니다.
이 곳에서 좀 구체적으로 풀어서 설명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1. 국한문 성경
백 목사님은 생전 평소에 국한문 성경을 사용하셨습니다. 따라서 국한문 성경 읽는 것을 꾸중하셨다는 것은 와전된 내용입니다.
믿는 사람들 가운데 세상 지식에, 특히 어학에 가치를 두어 원어나 영어나 어려운 것은 어렵게 생각하고 마음과 노력을 기울여 공부하고 연구하면서도 성경은 예사로 쉽게 생각하는, 소위 유식한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설교 중에 깨우치고 책망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 유식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성경도 한문으로 된 것이라야 가치를 두고 한글 성경은 언문이라고 무시한다고 하신 말씀이 설교록에도 여러 번 나옵니다. 아마도 이런 내용을 오해하여 잘못 전해진 것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2. 백 목사님의 목회 설교
백 목사님의 설교는 ‘목회 설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목회’란 사람을 기른다는 뜻입니다. 기른다는 말은, 모르는 사람에게 가르쳐 알게 하고,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행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행할 수 있도록 권면하고 때로는 책망도 하며, 넘어진 사람은 일으켜 주고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기도 합니다. 시험에 든 사람은 시험을 이기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교만한 사람은 겸손하도록, 죄를 짓는 사람은 회개하도록 설교합니다.
교인 중에 개인이나 가정에 문제가 있으면 거기 필요한 말씀을 설교 시간에 하고, 믿는 사람의 생활 환경이 세상 현실이므로 사회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문제까지도 신앙생활과 연관된 것은 설교 시간에 다 말씀을 합니다. 말하자면 백 목사님 설교는 세상의 모든 원리가 다 망라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원리가 자연 계시이고 우리 신앙생활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공회의 손꼽는 대형교회 목사님의 유년 시절 바지에 오줌 싼 것까지, 필요하면 설교 시간에 말씀하셨습니다.
양을 기르는 목자는 양떼의 형편을 살펴야 하므로 모든 생활을 양과 같이 합니다. 먹고 자는 것도 양떼에게 맞춥니다. 그래서 ‘목자’라고 합니다. 목회는 목자와 같은 뜻입니다. 백 목사님의 목회는 진정한 목자의 목회였고 설교 역시 그런 목회자의 목회에서 나온 목회설교였습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록 이름도 ‘목회설교록’입니다. 설교록 안에는 말 그대로 오만 내용이 다 들어 있습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게 유익한 것이 성경인데, 백 목사님의 설교록에는 사람을 길러가는 데 필요한 이런 것들이 수없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록에 눈이 뜨인 사람은 평생 그 감동을 잊지 못합니다.
수많은 목회 설교가 있는데, 언어에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 성경까지도 한글로 된 것은 쉽게 생각하고 한문으로 된 성경이라야 가치를 두는 교만을 책망하고 깨우치면서 하시는 말씀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백 목사님은 생전 평소에 국한문 성경을 사용하셨습니다. 따라서 국한문 성경 읽는 것을 꾸중하셨다는 것은 와전된 내용입니다.
믿는 사람들 가운데 세상 지식에, 특히 어학에 가치를 두어 원어나 영어나 어려운 것은 어렵게 생각하고 마음과 노력을 기울여 공부하고 연구하면서도 성경은 예사로 쉽게 생각하는, 소위 유식한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설교 중에 깨우치고 책망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 유식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성경도 한문으로 된 것이라야 가치를 두고 한글 성경은 언문이라고 무시한다고 하신 말씀이 설교록에도 여러 번 나옵니다. 아마도 이런 내용을 오해하여 잘못 전해진 것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2. 백 목사님의 목회 설교
백 목사님의 설교는 ‘목회 설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목회’란 사람을 기른다는 뜻입니다. 기른다는 말은, 모르는 사람에게 가르쳐 알게 하고,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행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행할 수 있도록 권면하고 때로는 책망도 하며, 넘어진 사람은 일으켜 주고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기도 합니다. 시험에 든 사람은 시험을 이기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교만한 사람은 겸손하도록, 죄를 짓는 사람은 회개하도록 설교합니다.
교인 중에 개인이나 가정에 문제가 있으면 거기 필요한 말씀을 설교 시간에 하고, 믿는 사람의 생활 환경이 세상 현실이므로 사회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문제까지도 신앙생활과 연관된 것은 설교 시간에 다 말씀을 합니다. 말하자면 백 목사님 설교는 세상의 모든 원리가 다 망라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원리가 자연 계시이고 우리 신앙생활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공회의 손꼽는 대형교회 목사님의 유년 시절 바지에 오줌 싼 것까지, 필요하면 설교 시간에 말씀하셨습니다.
양을 기르는 목자는 양떼의 형편을 살펴야 하므로 모든 생활을 양과 같이 합니다. 먹고 자는 것도 양떼에게 맞춥니다. 그래서 ‘목자’라고 합니다. 목회는 목자와 같은 뜻입니다. 백 목사님의 목회는 진정한 목자의 목회였고 설교 역시 그런 목회자의 목회에서 나온 목회설교였습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록 이름도 ‘목회설교록’입니다. 설교록 안에는 말 그대로 오만 내용이 다 들어 있습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게 유익한 것이 성경인데, 백 목사님의 설교록에는 사람을 길러가는 데 필요한 이런 것들이 수없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록에 눈이 뜨인 사람은 평생 그 감동을 잊지 못합니다.
수많은 목회 설교가 있는데, 언어에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 성경까지도 한글로 된 것은 쉽게 생각하고 한문으로 된 성경이라야 가치를 두는 교만을 책망하고 깨우치면서 하시는 말씀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질문에 대한 직답은 앞에서 하셨고, 질문과 관련하여 영어 성경과 원어 성경에 대한 입장까지 살펴 봤습니다.
1. 영어 성경으로 예를 들면,
지금이야 영어 성경을 누구든지 읽을 정도가 되지만 예전에는 학교를 다니는 것도 어렵고 또 학교를 다녀도 영어를 사실 거의 모르고 졸업합니다. 그런데 한글로 성경을 아니까 호기심으로 영어 성경을 비교해 보는 이들도 있었고 또 영어 성경을 선교사들이 한글 성경으로 번역했으니 영어 성경이 원본인 줄 알고 읽으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개는 한글 성경만 가지고 있는 그 시절에 영어 성경을 가지는 순간 지성인처럼 보이는 과시용도 있었습니다.
타 교단에서는 어떤 이유든 영어 성경을 들면 지도자나 교인이나 모두가 좋게 봤지만 목사님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좋은 뜻으로 본다면, 그 결과가 아주 엉망이 될 것이라 그랬고 그 누구든 영어 성경을 집어 드는 순간 자기도 모르는 과시의 심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 자체가 신앙의 전부였으니 성경만은 가장 조심해야 했고 영어 성경을 드는 사람은 성경 외에도 신앙과 생활의 전반에 그런 자세가 있을 것이라 그 인간 자체를 걱정했습니다.
공회에는 목회자들 중에서도 영어 성경을 자랑스럽게 참고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유학을 했던 분들이야 당연하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인용을 하든 혼자 읽든 영어 성경을 손대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한글 성경만 읽어야 할 사람이 국한문을 들었다면 당연히 경계를 시켰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공회는 초등학교만 나온 목회자들이 흔한데 학교만 초등이지 실력은 국한문이 불편 없을 분들도 있으나 공회 목회자들 중에서는 한글만 더듬거리며 읽지 '중생'을 무거울 중으로 읽고 '고범죄'를 아주 못된 높은 죄로 읽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분들이 나도 한자 섞인 성경을 본다고 과시용으로 들고 다니면 영어 성경 읽는 사람과 같이 경계할 사람입니다.
2. 원어 성경의 경우
지금은 훨씬 나아 진 세상이니 일반 교인도 원어 성경을 참고하거나 원어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곳의 '발언/연구' 게시판에 원어 성경으로 발표하는 목사님 정도라면 평생도 신앙도 또 언어의 형성 과정까지도 두루 잘 아시기 때문에 이 면이 없는 이 곳을 위해 글을 적어 주시고 우리는 잘 배우고 또 참고하고 있지만, 공회만을 두고 말한다면 원어를 입에 담을 목사는 한 명도 없어야 할 정도입니다. 원어란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할 입장이지 원어를 입에 담을 학자도 없는 것이 공회입니다.
1. 영어 성경으로 예를 들면,
지금이야 영어 성경을 누구든지 읽을 정도가 되지만 예전에는 학교를 다니는 것도 어렵고 또 학교를 다녀도 영어를 사실 거의 모르고 졸업합니다. 그런데 한글로 성경을 아니까 호기심으로 영어 성경을 비교해 보는 이들도 있었고 또 영어 성경을 선교사들이 한글 성경으로 번역했으니 영어 성경이 원본인 줄 알고 읽으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개는 한글 성경만 가지고 있는 그 시절에 영어 성경을 가지는 순간 지성인처럼 보이는 과시용도 있었습니다.
타 교단에서는 어떤 이유든 영어 성경을 들면 지도자나 교인이나 모두가 좋게 봤지만 목사님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좋은 뜻으로 본다면, 그 결과가 아주 엉망이 될 것이라 그랬고 그 누구든 영어 성경을 집어 드는 순간 자기도 모르는 과시의 심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 자체가 신앙의 전부였으니 성경만은 가장 조심해야 했고 영어 성경을 드는 사람은 성경 외에도 신앙과 생활의 전반에 그런 자세가 있을 것이라 그 인간 자체를 걱정했습니다.
공회에는 목회자들 중에서도 영어 성경을 자랑스럽게 참고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유학을 했던 분들이야 당연하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인용을 하든 혼자 읽든 영어 성경을 손대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한글 성경만 읽어야 할 사람이 국한문을 들었다면 당연히 경계를 시켰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공회는 초등학교만 나온 목회자들이 흔한데 학교만 초등이지 실력은 국한문이 불편 없을 분들도 있으나 공회 목회자들 중에서는 한글만 더듬거리며 읽지 '중생'을 무거울 중으로 읽고 '고범죄'를 아주 못된 높은 죄로 읽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분들이 나도 한자 섞인 성경을 본다고 과시용으로 들고 다니면 영어 성경 읽는 사람과 같이 경계할 사람입니다.
2. 원어 성경의 경우
지금은 훨씬 나아 진 세상이니 일반 교인도 원어 성경을 참고하거나 원어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곳의 '발언/연구' 게시판에 원어 성경으로 발표하는 목사님 정도라면 평생도 신앙도 또 언어의 형성 과정까지도 두루 잘 아시기 때문에 이 면이 없는 이 곳을 위해 글을 적어 주시고 우리는 잘 배우고 또 참고하고 있지만, 공회만을 두고 말한다면 원어를 입에 담을 목사는 한 명도 없어야 할 정도입니다. 원어란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할 입장이지 원어를 입에 담을 학자도 없는 것이 공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