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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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A 7 1

야고보서 1;2-8설교 에서 모세 는  1''날수계산 하는지헤를 주옵소서기도하였다고 합니다?

 2;내현실에 손대지 말라?

3말씀를신앙현실를 예를 들어 말씀 하여 주시면 합니다


 

담당 4 2025.11.19 12:04  
1. 모세의 기도, 날수 계산하는 지혜

80. 11. 28. 금새 설교에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시편 90편은 앞에 제목이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설교록에서 인용하신 내용은 12절입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현실 생활을 두고 날수 계산하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날수란 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현실이 무엇인지, 현실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현실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를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현실을 계산하는 지혜, 현실을 살아갈 지혜를 구한 것입니다.



2. 현실에 손대지 말라

80. 11. 28. 금밤 설교에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앞부분에서 두 가지를 특히 강조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첫째, 모든 현실은 우리에게 동등의 가치를 가진 것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기쁜 현실 슬픈 현실, 괴로운 현실 즐거운 현실, 좋은 현실 나쁜 현실 등 여러 모습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현실은 당면하는 우리에게는 우리를 가르치며 기르시기 위해서 주시는 꼭 같은 현실이라는 말씀입니다.

둘째, 따라서 현실은 사람이 손을 대지 말아야 합니다. 현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좋게, 정확하게, 알맞게 조성해 놓은 현실인데 사람이 손을 대는 것은 잘못된 행위입니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현실은 사람이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손을 댄다고 해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현실을 임의로 바꾸려고 애를 씁니다. 좋은 현실은 그 현실이 이어지도록 하려고 애를 쓰고, 나쁜 현실은 피하려고 노력합니다. 괴로우면 괴로워서 피하려 하고, 슬프면 슬픔이 얼른 지나가기를 노력합니다. 그런 것들이 현실에 손을 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현실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보기에 노력하면 현실이 바꾸어지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렇게 보일 뿐이고 그렇게 착각할 뿐입니다.

현실은 하나님이 만드시는 것이므로 사람이 할 일은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대로 순종하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신앙생활입니다.



3. 신앙 현실에 적용

1) 날수 계산하는 지혜

예를 들면, 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간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오늘 하루도 새벽기도로 시작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서 오늘 하루 일정을 생각하며, 오늘도 하루 일정의 생활에서 죄짓지 않고, 허비하지 않고 말씀과 주님 모시고 동행해야 하겠다고 다짐하며, 그렇게 살게 해 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날 일이 있으면, 오늘 그 사람을 만나는 목적이 무엇이며,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하며, 어떻게 결론을 낼 것이며, 그 사람을 만나면서 어떻게 언행을 하고 상대해야 그에게 신앙의 유익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구하면 날수 계산하는 지혜를 구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2) 현실에 손대지 않는 것

위의 답변에 설명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일평생 천태만상의 현실을 만나며 살아갑니다. 별별 현실을 만날 때 자기 생각, 자기 욕심, 이해타산을 가지고 현실을 대하면 현실에 손을 대는 것이 됩니다. 무슨 현실을 만나든지 일단, 이 현실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것이고, 하나님은 전부를 다하여 나를 사랑하신 분이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가장 알맞게, 유익하게 만들어주신 현실이라는 것을 믿고, 그 현실을 주신 이유가 무엇이며 목적이 무엇이며, 원하시는 뜻이 무엇일까 그것만 찾아서 준행하는 것이 현실에 손을 대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몸이 아프면, 왜 하나님께서 몸을 아프게 하실까, 몸이 아프게 하신 이유, 목적, 뜻을 말씀으로, 양심으로, 현실 생활로 찾아서, 잘못한 것은 고침으로 회개하고, 조심하지 않은 것은 조심하고, 건강을 소홀히 했으면 살펴서 바로 잡는 것이 현실에 손대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만사 모든 현실을 이렇게 대하는 것이 현실에 손대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A 2025.11.21 09:29  
8년전에  전립선 3 기 수술 5년후에 재발 홀몬치료 3년정상(PSA3.4}3년후에  재재발 의사치료단게는아임 기도중에 완치 확신하고있든중 1년마다 치료받아간날 아침 코로나로인하여 몸을 움직일수 없어 기도중 하니님이 완치 하여 주얶는데  왜가는냐심령에 들여 지금까지 지내고 있습니다 잘못뜻을 찾아다고 해도 주신현실로 암으로 갈여고 합니다 계속  전립선족이  좋았다 나빠다합니다 뜻을잘못찾았는지요
담당 2025.11.22 07:22  
이 노선의 교인이라는 전제로 적습니다. 이 노선의 세월과 내면을 모르는 분들이 참고하기에는 곤란할 듯합니다.


(우리의 현실관)
사람마다 만 가지가 다르지만 우리는 다를 수 없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을 말에 그치지 않습니다. 주일 문제는 타 교회와 아주 차이가 납니다. 또 예배와 교회 운영의 전반이 아주 다를 정도입니다. 그 중에 암을 대처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 병과 건강 문제
우리는 중생된 영을 알고 그리고 몸과 마음의 관계를 알고 있습니다. 죽은 후 천국에 가는 것은 기본구원으로 확실하지만 살아 생전 우리의 심신은 각자 신앙 건설에 따라 다릅니다. 그 중에 건강 문제가 생기면 일단 2 가지로 상대합니다.

하나는, 믿는 사람으로서 물질 생활에 해당 하는 건강 문제를 일반적으로 살펴 보게 됩니다.
몸이란 하나님이 마음에게 주신 소중한 도구며 보배인데 몸을 잘못 사용하면 탈이 생깁니다. 음식 취침 행동을 잘못해서 발생한 것은 그 잘못된 것을 고치라고 상처나 병을 주셨으니 일단 고장 난 육체의 심신을 바르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입니다. 마음이 몸을 어느 정도 붙들어 왔는지 돌아 보면서 '건강'을 기준으로 물질의 이치에 맞게 모든 것을 맞춰야 합니다.

80년대까지는 암이라는 것이 애매했고 이 시절의 공회 교인은 암 치료는 받지 않는 것이 대세였습니다. 무식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맹신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의학에서 암이란 그 발생과 치료와 그 결과까지를 두고 볼 때 우리의 눈에 통계적으로 볼 때 믿을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불신자는 이 땅 위의 생이 전부니 1%의 가능성만 있다면 미신이든 불교든 병원의 치료든 무조건 달려 갔지만, 우리는 자연계시로 주신 것이 확실하면 자연계시 차원에서 순종하지만 세상 스스로도 애매하여 잘 모르겠다는 부분은 주님의 주권과 인도에 맡기고 평소 아는 대로 조심하며 살고, 그리고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고 우리에게는 따로 알려 하지도 말라 하신 말씀 때문에 자기 개인의 생과 사도 일단 맡겨 놓고 발병 이후부터는 언제 불러 가실지 모르는 절박함을 눈 앞에 두고 평생에 아무리 잘 믿었던 때가 있다 해도 암을 확진 받은 교인이 이후 살아 가는 생활은 1년이 지난 10년을 넘어 서고 지난 평생을 넘어 설 만큼 신앙에 진심으로 주력하게 되니, 돌아 보면 마지막 가는 모습으로서의 암이라는 것은 믿는 우리에게는 소리 없는 복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90년대가 지나 가면서 암이라는 것이 서서히 눈 앞에 드러 나기 시작했고 2000년대가 되면서는 암이라는 것의 원인과 치료와 그 결과가 우리가 생활 속에서 흔하게 겪는 당뇨나 고혈압처럼 일상적인 질병이 되었습니다. 당뇨나 고혈압이 있을 때 오늘도 그 어떤 분이 생활을 바르게 하고 신앙에 주력함으로 병원 치료를 거부하겠다고 한다면? 그런 분께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고, 그리고 주관의 착각이 아니라 정말 기도해 보고 하나님이 명확하게 인도하는 개별 명령이라고 단정을 한다면 그렇게 하시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일반 신앙에게는 하루 세 끼 밥을 먹듯이 또는 위장 탈이 생긴 사람에게 밥을 천천히 먹도록 부탁하는 것처럼 당뇨나 혈압은 관리를 해 가면서, 그리고 왜 이런 병을 주셨고 왜 이런 병을 가지게 되었는지 지난 날의 물질에 대한 신앙 문제까지 살펴서 신앙을 다시 돌아 보고 그리고 물질의 생활을 순종으로 실천하고 최종적으로 현재 우리 형편에 치료 방법이 일반적이고 자연스럽다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약도 신약도 당시 고장 난 사람에게는 기름을 바르며 치료한 기록은 많습니다. 인간과 자연의 치료만으로 상대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실 일이지만, 육체의 질병에 물질의 이치와 자연의 치료와 자기에게 주신 치료 범위를 전부 배제를 해버리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자연 은혜를 무시하는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을 고려한다면 생활 속에 흔하게 겪는 질병은 일단 최근의 건강 상식 중에서 모두가 알고 세월과 결과를 통해 확실하게 입증이 된 것을 두고 신앙으로 생각하고 자기 개인 형편으로 생각해도 하나님이 주신 자연스러운 일반 은혜라고 보이면, 이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마시고 일단은 사용하면 좋습니다.


 
질문을 두고 또 하나 생각해 보실 만한 것은
물질의 이치는 불신자도 알지만, 우리에게는 보이는 물질의 이치를 통해 볼 수 없는 신앙의 이치를 알리는 표시판입니다. 입에 맞는 것만 좋아 하다 탈이 났다면 음식부터 바꾸면서 우리는 성경과 설교와 신앙의 양식을 두고 내게 맞는 것을 찾아 편식하지 않았나 라고 돌아 보면 거의 해답이 나옵니다. 발을 다쳤다면 내가 신앙으로 걸어야 할 걸음을 바르게 걸어 왔는지를 함께 살피면 발에 생긴 고장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은 먹는 것이 절반이고, 먹고 나면 버리는 것이 절반입니다. 위장까지의 위쪽 문제는 신앙의 양식을 먹는 문제로 연관 지어 살피면 좋고, 대소변에 문제가 생기면 이럴 때는 내가 버리는 것에 문제를 살펴야 합니다. 잘 먹고 잘 비우면 무조건 건강해 집니다. 먹는 것이 잘못 되면 토하게 되고 부실하면 영양실조가 됩니다. 전립선 문제는 먹은 것을 사용한 후 내버리는 뒷처리의 문제입니다. 구약을 일반적으로 읽으면 소와 양을 가져 가서 제사를 드리는 과정만 주목하는데 제사를 끝내고 나면 타고 남은 재를 처리해야 하는데 이 것이 잘못 되면 성전 자체가 쓰레기통 오물장이 됩니다.

현재 고생하는 문제는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먹는 것도 아니라, 종말 처리장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사신 세월이 비교적 적든 아니면 가셔도 될 때가 되었든 상관 없이 종말 처리에 문제가 생겼다면 내가 말씀을 받고 잘 살아 온 지난 날을 돌아 볼 때 앞만 보고 살아 오셨지 내가 살아 온 날을 1년을 돌아 보고, 10년 단위로 다시 돌아 보고, 몇십 년이 될지 모르나 지나 온 날 전부를 다 돌아 보시면서 버릴 것, 비울 것, 뒷처리를 바르게 했어야 할 일이 있었는지.. 그 면으로 문제가 있었는지를 살펴 보시면 좋겠습니다.

신사참배를 끝까지 이기고 출옥한 분들은 몇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 대부분이 그 어려운 고난을 다 이긴 다음, 해방 후에 거의 다 실패했습니다. 이 노선의 우리, 비록 이 노선의 분이 아니라 해도 이 곳을 찾는 분이라면 나름대로 열심히 믿었을 것이고 스스로 부족하다 생각해도 주변에서는 열심히 믿는다고 보실 분들입니다. 앞을 향해 부지런히 달려야 하는 것이 우리의 매일이고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지난 날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그냥 자꾸 앞으로만 나가기 쉽습니다. 첫 은혜, 절정의 신앙일 때 내가 하나님께 스스로 약속했고 내가 변치 않으리라고 했던 일들, 그런데 이후에 그렇게 되었는지 등을 살펴 보면 좋겠습니다.



* 그렇게 살펴 보신 다음에
뭔가 확실히 원인이 보인다면, 그리고 그 원인을 두고 해결하고 회개하고 다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과정에 나를 잘 다스리기 위해 음식이나 생활에 필요한 정도의 대처는 해도 병원의 치료까지는 배제하는 것이 좋겠다고 단정이 되신다면,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신중하시면 좋겠습니다.

암 중에는 급성 악성이 있습니다. 이 것은 사력을 다해야 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교통 사고에 응급 대처는 아무리 난리라 해도 그 때만 수습을 해놓으면 멀쩡한 상태로 돌아 옵니다. 그런데 폐암이나 간암 말기처럼 아주 까다롭고도 그 치료가 예측 불가하다면, 그런데 내가 그 원인을 확실하게 알기 때문에 이런 질병을 이렇게 주신 이유가 너무 명확하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 면을 회개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래서 이런 상황이 되었으니 주님 앞에 새로운 생활을 통해 죽든 살든 맡기겠다고 나설 수 있습니다.

암 중에는 비교적 온순하다는 것도 있습니다. 속도가 느리거나 치료가 가능한 종류를 말합니다. 이런 것은 믿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하나님께서 무겁게 돌아 서라는 경고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치료를 맡겨 놓고 일반적인 건강 생활을 하면서 신앙에 주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쉬운 암이라고 쉽게 생각하고 어려운 암이라고 포기하는 것도 사실 문제는 많습니다. 전립선암처럼 연세가 많아야 발병하는 경우는, 살아 온 평생을 먼저 돌아 보시면 나대로는 바쁘게 살았지만 실제로는 너무 멋모르고 달려만 온 것이 느껴진다면, 다시 살 날보다 이미 눈 앞에 다가 온 급박한 현실을 앞에 두고 회개를 한다면 현재 매일이 지난 날 그냥 살아 온 한 달이나 1년을 능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았다면, 히스기야가 그 즉시 딴 마음을 품듯 그럴 수 있는데 히스기야는 비록 최고는 아니지만 역사 전체를 통해 2등급은 되는 대단한 신앙가입니다.

공회는 비록 사람은 적지만 서로가 가깝게 잘 알고 지내며 또 평생을 서로 지켜 보면서 깊이 알고 지냅니다. 죽을 병을 두고 살려 달라 기도하여 회복된 분이, 그 이후에 살아 남았으므로 그 이전과 확실히 달라 지고 좋아 졌기 때문에 복이 되었다고 할 만한 분은 거의 없고, 대부분은 히스기야처럼 죽을 병 앞에 극히 조심하던 그 상태로 그냥 갔더라면 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 중한 질문이어서 많이 적고 있습니다.
공회 신앙의 중심에 계신 분들 중에는 의외로 암 진단을 받은 뒤 항암 치료는 배제하고 평소 병원에 다니는 정도의 일상 치료 상태로만 임종을 맞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또 항암 치료를 통해 극복을 하는 줄 알았는데 결국 고생만 하고 그냥 가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 종류를 두고는 구체적으로 이름을 적을 수 없어 좀 맴도는 안내가 되지만, 전체적으로 호전과 악화가 겹치는 분들은 치료든 또는 항암 치료를 배제했든 방향은 바르게 잡았다고 보입니다. 오르 내리도록 하면서 인생의 마지막을 점검하라는 주님의 따뜻하며 세심한 인도라고 생각합니다.

한 분을 소개하자면 1975년에 공회로 가입했다가 1980년경에 공회를 다시 떠나 합동에서 임종한 분입니다. 목회적 성공으로 말한다면 아마 잠실동교회를 빼고는 공회 교회들 중에 가장 성공한 경우였습니다. 세월이 지났고 70대가 되셨을 때 암을 진단 받았으나 끝까지 항암 치료를 받지 않고 가셨습니다. 그 가족이 이 노선과 목사님의 교훈을 너무 잘 아는 분들이지만 그 분의 마지막 자세가 어떤 차원인지는? 아마 모르지 않았을까 합니다. 공회 내적으로는 정경수 목사님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당당하게 맞으며 간다고 했습니다. 살려 주시려면 그 치료 없이도 살려 주실 것이고, 데려 가시려면 공연히 헛일만 하는 것이라 하며 이 글을 적는 직원에게 정 목사님은 평생 설교한 자기 교훈을 자기에게 가장 절박할 때 적용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함께 받은 이 노선의 교훈 중에서도 절정, 최후, 생사의 고갯길에서 이 교훈을 아는 사람들만 걸어 갈 수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죽을 병까지는 아니지만 고질병 난치병으로 잘 알려 진 여러 질병을 이른 나이에 3-4가지를 겪어 봤습니다. 이 말씀을 받은 지식 때문에 병원의 간단한 치료는 받았지만 정작 해결은 기도로, 또 서원을 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성도A 2025.11.21 09:47  
같은시기 초기위암 판정을받아 위내시경으로 시술받아(2번)1년에1번씩 진료  받아 약물치료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은나이많아내시경 못받고  시디촬영 피검사로진료 위암은 이러게 진료 받으면서 여생 을하니님이오라 뜻으로알고 주관적일까요? 2개의 중적환자로국가에 등록 되여 치료비5%로 냅니다 27년까지 입니다 전립선은 진료 받지 않고 있습니다 위암의사26년에 전립선쪽에 검사 하여주겠다고 하는데 .뜻.
담당 2025.11.22 07:31  
위암의 초기라면 답변자도 교인들에게 시술을 받도록 권합니다. 초기 위암은 실제로 그 것이 암인지도 애매한 점이 있습니다. 연세 때문에 내시경이 어렵다면 안 믿는 사람들도 의료인들 자기들끼리는 앞날을 그냥 받아 들이라고들 말합니다. 의사 직책상 일반 환자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는 큰 일이 나기 때문에 덕담이나 일반적으로만 말을 하지만 자기들끼리는 의료인들의 내심 이야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실 환갑이라는 61세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익숙해 져 있습니다. 온 마을에 환갑 잔치를 하는 분들은 참 드물었습니다. 모두가 언제 갈지 모르니 바짝 긴장하며 살았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이 없어 보여도 임금으로부터 어느 양아치든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살았으니 우리의 지난 날은 불신자도 신과 죽음 앞에 겸손했습니다. 지금 20년 30년을 더 사는 인생이 되다 보니 이제는 살 날이 많다 하여 평생을 대충 살고, 놀면서 살고, 즐기면서 사는 것이 대세입니다.

이런 면까지를 두루 감안하여 오늘의 하루가 지난 날의 한 달이나 1년을 넘어 서도록 조심한다면, 그런데 이 노선의 교훈은 그 깊이와 긴장감과 사명과 과제를 매 순간 단위로 제시해 놓았기 때문에 하루가 천년 같다 하신 말씀으로 다시 이 문답을 살피고, 이 글을 적는 사람의 자기 문제로까지 적용해 본다면 우리는 오늘 하루를 정말 주력해서 잘 살 수만 있다면 지난 1년과 지난 10년을 쉽게 넘어 설 수가 있고. 지금 별 일 없고 남들이 볼 때 무난하게 보이는 건강과 형편으로 살게 된다면 우리의 남은 날의 10년과 수십 년이 히스기야처럼 될 수가 있습니다. 다만 7계명 때문에 우리는 알면서, 또 가능한 범위가 있는 상황에서 자해나 염세를 할 수가 없어서 평소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은 하시면 좋겠습니다. CT 촬영, 이미 비용도 아주 일상적이 되어 있습니다. 또 파악을 하면서 기도하거나 대처하면 훨씬 낫습니다.
성도A 2025.11.22 10:04  
헬스운동을 30넌가까히  하였습니다 어느날 내마음속에"" 운동를 하여라''하는음성이 들여  하나님이  들여 주시는 음성으로 알고 더욱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잘못깨닥은 것인지요?
담당 2025.11.22 11:48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3가지 방법으로 개개인에게 직접 말씀을 합니다.
* 성경의 모든 기록은, 우리에게 직접 하시는 말씀입니다.
* 현실을 만들고 운영하면서, 환경을 통해 말씀합니다.
* 최종적으로 신앙 양심을 통해 성령이 감화합니다.

30년 전에 운동을 하게 될 때
당시 사회적으로 건강 문제가 뉴스에 자주 나오고 또 의료 보험이 활성화 되면서 누구든지 병원을 가게 되고 건강 검진을 하는 주변 사람을 접하게 되면, 평소 운동을 통해 건강 관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누구나 하게 됩니다. 신앙과 상관 없이 질문자 주변의 주위와 환경에서 운동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는데 이 것이 주님이 환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남들이 하고 또 방송에서 강조를 하니까 한다 라고 하면 불신자입니다. 세상 상식에 그칩니다. 그런 환경을 접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인체란 먹은 만큼 움직여야 하도록 만들어 두셨구나, 신앙도 말씀을 배우는 것은 먹는 것인데 먹은 만큼 움직이지 않으면 신앙 전반이 성인병을 향해 악화되겠구나 라고 대략 방향을 잡으면서 겉으로는 운동을 하고, 안으로는 신앙의 이치를 마음에 두면서 운동을 하셨다면 당시 사회의 여러 분위기 때문에 운동을 시작했다 해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운동하신 것이 됩니다.

두번째로는, 그냥 순수하게 성경을 읽는 중 잠6:6에서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보고 지혜를 얻으라' 여름에 예비하여 추수 때 양식을 모은다는 쉬운 말씀 속에서 내가 운동으로 준비하여 신앙에 사용할 귀한 몸을 노년까지 좋게 유지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는 환경에 의한 것보다 더욱 명확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세번째로는, 성경을 읽는 중이 아니고 또 주변에 환경으로 운동을 고려할 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정말 뜻밖에 '운동하라'는 말씀을 들었다면, 대개 첫번째의 환경에서 눈과 귀를 통해 머리에 들어 와 있던 기존 지식이 넘쳐 생각 영역으로 들어 오면서 평소 신령하게 살아 오려 했던 신앙의 본능을 자극했든 아니면 신앙의 본능이 기존 지식을 찾아서 그렇게 생각을 넣어 줬든 그 것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렇다고 내 마음에 떠오른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직접 인도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급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를 원해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노력도 해야 하지만 주관과 성령의 음성은 그 경계가 애매한데 내 속에 나온 생각을 성령의 음성으로 자꾸 몰아 가다 보면 나중에는 심각한 주관의 사람이 됩니다. 아주 잘 믿고 철저히 노력하는 분들 중에 이 면을 조심하지 않으면 스스로 하나님이 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리 될까 조심하다가 자기 마음을 통해 알려 주는 말씀을 대거 배척하다 보면 매마른 해골의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신앙 생활 중에 가장 어려운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위험한 순간에도 피할 길을 내주셨습니다.



지난 날에 하나님의 음성인지 애매했던 경우,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확신했던 경우, 아니라고 지나 쳤던 경우를 놓고 시간이 충분히 지나 간 다음에 다시 그 때를 돌아 보면 그 음성인지 오해였는지 등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 중에 어릴 때부터 성실해서 그냥 잘 믿어 온 분들은 특별한 체험이 좀 적은 편이고, 신앙과 아주 상관이 없던 분들이 극적으로 믿게 되면 빛과 어두움의 구별처럼 환한 체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범하게 그러나 늘 성실하게 믿어 온 분들일수록 극적인 체험이 적을 수 있지만 그래도 범위를 넓혀 잘 생각해 보면 반드시 하나님의 음성은 있었습니다.

좀 먼 과거로 가서라도 확실히 오해였던 경우와 확실히 음성이었던 경우를 먼저 생각하고 당시의 분위기 당시의 내면까지를 다시 더듬어 보시고, 그런 경험이 두세 개면 더 낫고 대여섯개라면 더욱 좋습니다. 이렇게 회상을 통해 더듬어 보면 그 과정에 심령이 밝아 지면서 운동하라! 음성이 환경에 영향을 받은 자기 본능이었는지 환경의 영향을 받았지만 신앙의 본능이었는지, 아니면 위에서 직접 내려 주신 것인지 구별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의 1957년 경 설교에 나온 대목입니다. 사례는 조금 다르지만 믿어 가다가 의심이 생기거나 애매하게 될 때는 과거 아주 또렷했던 경험을 자꾸 흔들고 더듬고 비교를 하다 보면 심령이 밝아지면서 최근의 애매한 일이나 30여 년 전의 기억이 애매하였다 해도 더 명확했던 때를 더듬고 당시의 음성을 회상한 다음에 다시 살펴 보면 좋겠습니다. 꿈을 통해 알려 주는 것을 예로 들 때는 '영몽'과 '주사야몽'으로 구별하여 가르쳤습니다. 꿈이지만 하나님이 직접 보여 주시는 경우는 낮에는 분주해서 잠을 잘 때 고요히 확실히 알려 주는 경우가 영몽이고, 평소 듣고 보고 느낀 것을 잠자는 중에 자기 본능이 상기하는 것이 주사야몽입니다. 꿈이 아닌 평소 생활 속에서도 믿는 사람에게는 말씀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잘 알아 듣고 순종을 잘하면 더 많이 더 세밀히 알려 주시고, 평소 알려 주셔도 예사롭게 넘어 가면 음성은 당연히 줄어 듭니다.


신앙의 신비로운 세계. 이런 세계를 처음 접할 때는 우연의 일치인가 생각하다가 겹치고 겹치다 보면 불건전한 신비주의도 아니고 그냥 합리화를 해서 갖다 붙이는 것도 아닌 그런 세계로 접어 들어 갑니다. 공회 노선이 복된 것은 이런 세계를 접할 때도 평소의 말씀이 교리적으로 성경적으로 신앙의 좋은 체험을 통해 바르고 명확하게 설명이 되어 있어 넘치지 않고 모자라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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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2목
  • 13932
    성도A
    2026.02.11수
  • 13931
    도봉
    2026.02.10화
  • 13930
    교인
    2026.02.10화
  • 13929
    배우는 이
    2026.02.05목
  • 13928
    성도A
    2026.02.04수
  • 13927
    학생
    2026.02.02월
  • 13926
    성도A
    2026.02.02월
  • 13925
    공회교인
    2026.01.23금
  • 13924
    학생
    2026.01.21수
  • 13923
    학생
    2026.01.16금
  • 13922
    반사
    2026.01.16금
  • 13921
    학생
    2026.01.15목
  • 13920
    반사
    2026.01.13화
  • 13919
    성도A
    2026.01.12월
  • 13918
    신학도
    2026.01.12월
  • 13917
    부족한교인
    2026.01.06화
  • 13916
    성도A
    2025.12.26금
  • 13915
    돌아온탕자
    2025.12.23화
  • 13914
    믿는 자
    2025.12.2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