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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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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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7 07:37
1. 마태복음25;31-46 제목----표준적 계명 사랑 설교에서 기본구원이 아니고 건설구원이라 하시면서 66권 말씀의 계명를 지켰어도 구원이 안된다고 하시는데 120년 동안에는 구원이 안된다는 말씀인지요
저는 제일 큰 선지자 상급의 구원이 안되지 심신의 구원이 되는 것으로 ......
2. 요한1서5;17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말씀에서 (죄의 값은 사망) 어떤 죄는 ......?
질문은 1982년 3월 21의 공회 제12 공과이며 다른 방문인 때문에 해당 공과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안내하겠습니다.
(공과)
1. 마25:31-46 본문은 형제가 6가지로 어려울 때 돕는 내용이다. 이 말씀은 기본구원을 받은 교인이 신앙을 건설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어려운 형제의 몸을 살핀 것이 아니라 심령을 도와야 한다. 육체를 살핀다 해도 심령 때문에 돕는 것이다.
2. 성경 말씀은 우리를 전반적으로 가르치나 불심판을 앞에 둔 우리가 지킬 신앙 성공 신앙의 구원이 따로 있다. 노아 홍수에는 방주 만드는 것이 표준 계명이다. 어떤 계명을 지켰다 해도 방주를 만들지 못하면 멸망이었다. 재림 때에도 성경의 다른 말씀을 다 지켰다 해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다른 사람의 심령이 어려울 때 돕는 이 사랑의 희생만 신앙 건설의 성공이 된다.
3. 형제의 신앙을 돕기 위해 수고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막바로 주님을 직접 대접한 것이 된다.
(1) 형제를 먹인 것은, 주님의 대속을 깨닫고 그 뜻을 잘 이루는 것으로 만족하게 돕는 것이고
(2) 마시게 한 것은, 성령의 감화 감동이 없어 애타는 사람에게 영감으로 살도록 돕는 것이고
(3) 나그네 영접은, 주님 바깥 세상을 헤매고 사는 사람에게 주님으로 살게 인도하는 것이다.
(4) 옷 입힌 것은, 주관으로 사는 행동을 버리고 구속의 사랑에 감격하여 행동하고 살게 하고
(5) 병든 자 방문은, 자기와 세상과 세상 지식의 사람을 하나님 천국 진리로 살게 하는 것이고
(6) 갇힌 자 돌본 것은, 세상의 욕심과 지식에서 놓여 진리와 영감으로 자유하게 하는 것이다.
(질문1)
120년간 홍수를 준비할 때의 구원은 어떻게 되는가?
주일을 실패하면 한 주간을 실패한다고 우리는 가르칩니다. 매일매일 바르게 산 행동은 그 행동 자체가 의의 기능으로 성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행동은 신앙의 건설입니다. 그러나 6일의 매 행동이 모여서 주일을 바르게 지켜야 하는데 주일을 실패했다면 전투는 이기고 전쟁에 진 것과 같습니다. 매월 월말 고사를 잘 친 것은 기록으로 따로 남습니다. 그러나 대입 시험에 떨어지면 대입은 실패입니다.
신사참배 환란 전에 전도하고 성경 일고 주일을 지킨 것은 모두 성화가 되었고 신앙 건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와 한국 교인에게 신사참배라는 대입 시험을 주셨는데 이 시험에 떨어진 사람은 더 큰 시대적 시험에 실패했으니 '시대적 환란'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평소 믿은 것, 평생 믿은 것이 신사참배 환란을 당하면서 총론적으로는 실패가 된 것입니다. 홍수를 준비한 120년의 평소 행위는 별도록 성공과 실패가 이미 결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주 전체의 심판을 홍수 심판과 불심판 2가지로 나누어 하나는 기말 고사로 하나는 졸업 고사로 준비해 두셨습니다. 노아는 기말 고사를 성공했고, 우리는 지금 불심판이라는 우주 최종의 시험을 치는 말세지말을 살고 있습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따라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난 것은 성공이고 잘한 것이고 천국에 상급과 자기 신앙의 실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벧후2:8에서 롯을 의롭다 했습니다. 소돔 전까지의 의를 말합니다. 그런데 롯의 최종 시험은 출발과 중간이 아니라 마지막에 있었습니다. 이런 면을 가지고 설교록에서는 개인 환란 사건 환란 시대 환란 우주적 환란으로 시험의 종류를 나누고 있습니다.
(질문2)
질문이 '저는 제일 큰 선지자 상급의 구원이 안되지 심신의 구원이 되는 것으로 ......'라고 하셨는데
고전15:41에서 해의 영광과 달의 영광과 별의 영광이 다르며 별과 별의 영광도 다르다 했습니다. 노아는 홍수를 이기고 천하를 심판했습니다. 역사 최고의 선지자이며 시대 최고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래도 홍수 후 술에 취해 함의 자손 전체를 잃었습니다.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만 보지 않고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를 우리는 나누어 구분합니다. 경제면은 충성했으나 기도면은 부족함을 우리는 따져 봅니다. 교회에서는 충성하고 위대했으나 가정 구원에는 실패하는 면도 우리는 따로 챙겨 봅니다. 몸과 마음도 우리는 구별하고, 심신의 기능도 요소에 따라 사안에 따라 일일이 개별적으로 챙겨 봅니다.
70년대까지는 아마 대입 시험이 본고사 한 번에 결판났습니다. 지금은 고1, 2, 3학년의 과목별 매일의 출결과 봉사 시간까지 점부 점수화를 시켜 합산을 합니다. 본고사 한 번에 결판 나던 것을 최종 시험이라 한다면 지금의 학생종합생활기록부는 성적과 생활과 3년 전부를 세분화 하는데 공회의 기능 구원 건설 구원 성화 구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질문3)
요일5:17에서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앞에서 설명한 내용과 같습니다. 죄는 작은 실수든 심지어 모르고 지은 죄라도 무조건 우리가 죽어야 하고 지옥으로 가야 합니다. 죄값은 분명히 사망뿐인데도 '사망의 죄'와 '아직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로 나누어 주셨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전 하와 혼자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미 부부 사이에 뭔가 틈이 보입니다. 이 틈을 타고 귀신이 얼른 유혹을 했습니다. 아담의 시야, 남편의 관리, 머리 되는 지도자의 범위를 벗어 나면 안 되는데 혼자 있었고 혼자 대화하고 혼자 판단하고 혼자 행동하도록 된 상태.. 이 것이 선악과를 먹은 죄보다 먼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선악과를 먹는 순간 하나님과 계약에 따라 무조건 즉각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기 이전에 진행 된 한 걸음 한 걸음, 한 순간 한 순간의 그 정신 그 마음 그 자세가 옳고 바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아담과 뭔가 좀 멀어 지는 듯한, 아담을 사모하는 그 간절함이 뭔가 조금 흐려 지는 그 자체로 아담과 하와가 죽을 죄는 아니었습니다.
하와가 보이지 않을 때 얼른 찾았어야 합니다.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는 이런 상태입니다. 선악과를 이미 먹어 버렸을 때는 가차 없이 쫓아 냈습니다. 구할 것도 없었습니다. 처벌만 남았고, 해결을 하려면 하나님이 사람 되어 지옥의 영원한 고통을 모두 청산해야 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선악과 이전과 이후를 두고 해석하면 좋겠습니다. 작은 것 하나하나가 의가 되고 죄가 됩니다. 그런데 작은 죄 하나하나가 쌓이고 자라서 그 다음에 별도의 다른 죄, 더 큰 죄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설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선악과를 먹은 죄는 '말씀을 어긴 죄'가 됩니다. 그런데 곧 이어 아담은 자기 손으로 옷을 만들어 입습니다. 이 행위는 '자기 마음대로 사는 불의의 죄'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찾을 때 숨어 버렸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불목, 원수 된 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이 추궁을 하실 때 아담은 하와 핑계, 하와는 뱀을 핑계 대며 회개의 소망을 버렸으니 이 것이 '절망'의 죄가 됩니다. 그래서 공회는 '예수님의 대속 = 구원 > 사죄 칭의 화친 소망'로 나누어 설명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면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 했기 때문에 선악과가 중심이고 생사를 나눈 죄가 되지만 선악과를 먹는 그 이전의 진행 과정과 이후의 수습 과정을 자세히 기록한 것은 오늘 우리가 기본구원은 받았지만 우리의 매일이 매일의 의와 죄로 나뉘면서 이 것이 쌓이며 한 주간의 의와 죄가 되고, 이 것이 쌓이면서 청춘의 날이 되고 장년의 날이 되고 노년의 세월을 형성합니다. 젊을 때는 참 꼿꼿하게 잘 믿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아주 엉망이 된 의인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또 평생을 참담하게 살다가 마지막 죽기 직전에 돌아 서서 십자가의 한편 강도처럼 주님과 그 날 낙원으로 들어 간 최고의 의인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양면을 보면서 우리는 매 순간도 잘해야 하고 동시에 이 것이 쌓여 지며 어떤 더 큰 시험과 성공을 만들지도 함께 보면 좋겠습니다. 공회의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은 천국을 가는가 마는가 라는 한 가지 큰 주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이미 천국을 가기로 되어 있는 우리의 매일과 함께 우리에게 한번씩 또는 인생에 한두 번 찾아 오는 결정적인 기회를 동시에 대처하고 잘 준비하도록 세밀하게 열어 주는 교리입니다.
(공과)
1. 마25:31-46 본문은 형제가 6가지로 어려울 때 돕는 내용이다. 이 말씀은 기본구원을 받은 교인이 신앙을 건설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어려운 형제의 몸을 살핀 것이 아니라 심령을 도와야 한다. 육체를 살핀다 해도 심령 때문에 돕는 것이다.
2. 성경 말씀은 우리를 전반적으로 가르치나 불심판을 앞에 둔 우리가 지킬 신앙 성공 신앙의 구원이 따로 있다. 노아 홍수에는 방주 만드는 것이 표준 계명이다. 어떤 계명을 지켰다 해도 방주를 만들지 못하면 멸망이었다. 재림 때에도 성경의 다른 말씀을 다 지켰다 해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다른 사람의 심령이 어려울 때 돕는 이 사랑의 희생만 신앙 건설의 성공이 된다.
3. 형제의 신앙을 돕기 위해 수고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막바로 주님을 직접 대접한 것이 된다.
(1) 형제를 먹인 것은, 주님의 대속을 깨닫고 그 뜻을 잘 이루는 것으로 만족하게 돕는 것이고
(2) 마시게 한 것은, 성령의 감화 감동이 없어 애타는 사람에게 영감으로 살도록 돕는 것이고
(3) 나그네 영접은, 주님 바깥 세상을 헤매고 사는 사람에게 주님으로 살게 인도하는 것이다.
(4) 옷 입힌 것은, 주관으로 사는 행동을 버리고 구속의 사랑에 감격하여 행동하고 살게 하고
(5) 병든 자 방문은, 자기와 세상과 세상 지식의 사람을 하나님 천국 진리로 살게 하는 것이고
(6) 갇힌 자 돌본 것은, 세상의 욕심과 지식에서 놓여 진리와 영감으로 자유하게 하는 것이다.
(질문1)
120년간 홍수를 준비할 때의 구원은 어떻게 되는가?
주일을 실패하면 한 주간을 실패한다고 우리는 가르칩니다. 매일매일 바르게 산 행동은 그 행동 자체가 의의 기능으로 성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행동은 신앙의 건설입니다. 그러나 6일의 매 행동이 모여서 주일을 바르게 지켜야 하는데 주일을 실패했다면 전투는 이기고 전쟁에 진 것과 같습니다. 매월 월말 고사를 잘 친 것은 기록으로 따로 남습니다. 그러나 대입 시험에 떨어지면 대입은 실패입니다.
신사참배 환란 전에 전도하고 성경 일고 주일을 지킨 것은 모두 성화가 되었고 신앙 건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와 한국 교인에게 신사참배라는 대입 시험을 주셨는데 이 시험에 떨어진 사람은 더 큰 시대적 시험에 실패했으니 '시대적 환란'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평소 믿은 것, 평생 믿은 것이 신사참배 환란을 당하면서 총론적으로는 실패가 된 것입니다. 홍수를 준비한 120년의 평소 행위는 별도록 성공과 실패가 이미 결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주 전체의 심판을 홍수 심판과 불심판 2가지로 나누어 하나는 기말 고사로 하나는 졸업 고사로 준비해 두셨습니다. 노아는 기말 고사를 성공했고, 우리는 지금 불심판이라는 우주 최종의 시험을 치는 말세지말을 살고 있습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따라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난 것은 성공이고 잘한 것이고 천국에 상급과 자기 신앙의 실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벧후2:8에서 롯을 의롭다 했습니다. 소돔 전까지의 의를 말합니다. 그런데 롯의 최종 시험은 출발과 중간이 아니라 마지막에 있었습니다. 이런 면을 가지고 설교록에서는 개인 환란 사건 환란 시대 환란 우주적 환란으로 시험의 종류를 나누고 있습니다.
(질문2)
질문이 '저는 제일 큰 선지자 상급의 구원이 안되지 심신의 구원이 되는 것으로 ......'라고 하셨는데
고전15:41에서 해의 영광과 달의 영광과 별의 영광이 다르며 별과 별의 영광도 다르다 했습니다. 노아는 홍수를 이기고 천하를 심판했습니다. 역사 최고의 선지자이며 시대 최고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래도 홍수 후 술에 취해 함의 자손 전체를 잃었습니다.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만 보지 않고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를 우리는 나누어 구분합니다. 경제면은 충성했으나 기도면은 부족함을 우리는 따져 봅니다. 교회에서는 충성하고 위대했으나 가정 구원에는 실패하는 면도 우리는 따로 챙겨 봅니다. 몸과 마음도 우리는 구별하고, 심신의 기능도 요소에 따라 사안에 따라 일일이 개별적으로 챙겨 봅니다.
70년대까지는 아마 대입 시험이 본고사 한 번에 결판났습니다. 지금은 고1, 2, 3학년의 과목별 매일의 출결과 봉사 시간까지 점부 점수화를 시켜 합산을 합니다. 본고사 한 번에 결판 나던 것을 최종 시험이라 한다면 지금의 학생종합생활기록부는 성적과 생활과 3년 전부를 세분화 하는데 공회의 기능 구원 건설 구원 성화 구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질문3)
요일5:17에서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앞에서 설명한 내용과 같습니다. 죄는 작은 실수든 심지어 모르고 지은 죄라도 무조건 우리가 죽어야 하고 지옥으로 가야 합니다. 죄값은 분명히 사망뿐인데도 '사망의 죄'와 '아직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로 나누어 주셨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전 하와 혼자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미 부부 사이에 뭔가 틈이 보입니다. 이 틈을 타고 귀신이 얼른 유혹을 했습니다. 아담의 시야, 남편의 관리, 머리 되는 지도자의 범위를 벗어 나면 안 되는데 혼자 있었고 혼자 대화하고 혼자 판단하고 혼자 행동하도록 된 상태.. 이 것이 선악과를 먹은 죄보다 먼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선악과를 먹는 순간 하나님과 계약에 따라 무조건 즉각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기 이전에 진행 된 한 걸음 한 걸음, 한 순간 한 순간의 그 정신 그 마음 그 자세가 옳고 바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아담과 뭔가 좀 멀어 지는 듯한, 아담을 사모하는 그 간절함이 뭔가 조금 흐려 지는 그 자체로 아담과 하와가 죽을 죄는 아니었습니다.
하와가 보이지 않을 때 얼른 찾았어야 합니다.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는 이런 상태입니다. 선악과를 이미 먹어 버렸을 때는 가차 없이 쫓아 냈습니다. 구할 것도 없었습니다. 처벌만 남았고, 해결을 하려면 하나님이 사람 되어 지옥의 영원한 고통을 모두 청산해야 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선악과 이전과 이후를 두고 해석하면 좋겠습니다. 작은 것 하나하나가 의가 되고 죄가 됩니다. 그런데 작은 죄 하나하나가 쌓이고 자라서 그 다음에 별도의 다른 죄, 더 큰 죄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설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선악과를 먹은 죄는 '말씀을 어긴 죄'가 됩니다. 그런데 곧 이어 아담은 자기 손으로 옷을 만들어 입습니다. 이 행위는 '자기 마음대로 사는 불의의 죄'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찾을 때 숨어 버렸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불목, 원수 된 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이 추궁을 하실 때 아담은 하와 핑계, 하와는 뱀을 핑계 대며 회개의 소망을 버렸으니 이 것이 '절망'의 죄가 됩니다. 그래서 공회는 '예수님의 대속 = 구원 > 사죄 칭의 화친 소망'로 나누어 설명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면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 했기 때문에 선악과가 중심이고 생사를 나눈 죄가 되지만 선악과를 먹는 그 이전의 진행 과정과 이후의 수습 과정을 자세히 기록한 것은 오늘 우리가 기본구원은 받았지만 우리의 매일이 매일의 의와 죄로 나뉘면서 이 것이 쌓이며 한 주간의 의와 죄가 되고, 이 것이 쌓이면서 청춘의 날이 되고 장년의 날이 되고 노년의 세월을 형성합니다. 젊을 때는 참 꼿꼿하게 잘 믿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아주 엉망이 된 의인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또 평생을 참담하게 살다가 마지막 죽기 직전에 돌아 서서 십자가의 한편 강도처럼 주님과 그 날 낙원으로 들어 간 최고의 의인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양면을 보면서 우리는 매 순간도 잘해야 하고 동시에 이 것이 쌓여 지며 어떤 더 큰 시험과 성공을 만들지도 함께 보면 좋겠습니다. 공회의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은 천국을 가는가 마는가 라는 한 가지 큰 주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이미 천국을 가기로 되어 있는 우리의 매일과 함께 우리에게 한번씩 또는 인생에 한두 번 찾아 오는 결정적인 기회를 동시에 대처하고 잘 준비하도록 세밀하게 열어 주는 교리입니다.
공과 담당으로, 질문 1에 대한 간단한 답변입니다.
1. 공과 제목의 의미
공과의 제목을 ‘표준적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표준이란, 어떤 목적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게 기준을 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해놓은 목적, 목표 그것에 맞는 기준이라야 하므로 거기 맞지 않는 것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영어학원에 취업할 사람이 국어 수학 과학 역사 등 다른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하고 잘해도 영어를 못 하면 영어학원에는 취업할 수 없습니다. 영어학원의 표준은 영어이기 때문입니다.
2. 질문하신 내용
노아 홍수 때 하나님께서 정하신 건설구원의 표준적 계명은 '방주'를 만들라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므로 방주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홍수 심판의 그때는 어떤 계명을 다 지켜도 방주를 만들지 않았으면, 적어도 방주 만드는 일에 함께해서 방주에 들어가야 구원이 되지 방주와 상관없는 것은 홍수 구원의 면으로는 건설구원 실패가 된 것입니다.
그때도 개인마다 혹은 가정마다 그때그때 해당된 하나님의 계명이 있었을 것인데 그런 계명 지킨 것이 다 헛일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어느 계명이든지 그때 지켜야 할 계명을 지켰으면 당연히 건설구원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계명을 다 지켰어도, 신구약 66권을 다 지켰어도 방주를 만들지 않았으면 ‘홍수에 구원 얻는’ 건설구원 면으로는 실패라는 뜻입니다.
반대로, 실제 그런 일은 없었지만, 이해를 위해서 가정한다면, 홍수 전에 계명을 하나도 지키지 못했어도 방주 만드는 그 일을 함께하고 방주에 들어갔으면 홍수에 멸망하지 않고 구원받았을 것이고 그 면의 건설구원은 성공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실 때 제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다 배반했고 도망쳤는데, 십자가에 달린 한편 강도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강도는 예수님의 죽으시는 최후 마지막에 예수님과 동행한 것이고 그 면의 건설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강도의 평생 강도 짓 한 것이 구원 될 수는 없습니다.
3. 당시 설교의 배경
질문하신 설교는 예수님 재림 때의 표준적 계명은 인간 구원의 ‘사랑’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예수님 대속을 말하고, 대속은 사활의 대속, 사죄 칭의 화친 소망입니다.
그때는 서부교회 주일학교 반사들의 활동이 한창 절정으로 치달을 때이고, 전국으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는 초반이었습니다. 반사 활동은 인간 구원이 최일선이고 신앙생활 하는데 비교할 것이 없을 만큼 모든 면으로 최고의 직분이었습니다. 그 반사들의 신앙의 힘을 주시는 말씀으로 표준적 계명으로 사랑을 강조했지만, 재림이 임박한 말세지 말 지금 가장 적합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1. 공과 제목의 의미
공과의 제목을 ‘표준적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표준이란, 어떤 목적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게 기준을 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해놓은 목적, 목표 그것에 맞는 기준이라야 하므로 거기 맞지 않는 것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영어학원에 취업할 사람이 국어 수학 과학 역사 등 다른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하고 잘해도 영어를 못 하면 영어학원에는 취업할 수 없습니다. 영어학원의 표준은 영어이기 때문입니다.
2. 질문하신 내용
노아 홍수 때 하나님께서 정하신 건설구원의 표준적 계명은 '방주'를 만들라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므로 방주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홍수 심판의 그때는 어떤 계명을 다 지켜도 방주를 만들지 않았으면, 적어도 방주 만드는 일에 함께해서 방주에 들어가야 구원이 되지 방주와 상관없는 것은 홍수 구원의 면으로는 건설구원 실패가 된 것입니다.
그때도 개인마다 혹은 가정마다 그때그때 해당된 하나님의 계명이 있었을 것인데 그런 계명 지킨 것이 다 헛일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어느 계명이든지 그때 지켜야 할 계명을 지켰으면 당연히 건설구원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계명을 다 지켰어도, 신구약 66권을 다 지켰어도 방주를 만들지 않았으면 ‘홍수에 구원 얻는’ 건설구원 면으로는 실패라는 뜻입니다.
반대로, 실제 그런 일은 없었지만, 이해를 위해서 가정한다면, 홍수 전에 계명을 하나도 지키지 못했어도 방주 만드는 그 일을 함께하고 방주에 들어갔으면 홍수에 멸망하지 않고 구원받았을 것이고 그 면의 건설구원은 성공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실 때 제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다 배반했고 도망쳤는데, 십자가에 달린 한편 강도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강도는 예수님의 죽으시는 최후 마지막에 예수님과 동행한 것이고 그 면의 건설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강도의 평생 강도 짓 한 것이 구원 될 수는 없습니다.
3. 당시 설교의 배경
질문하신 설교는 예수님 재림 때의 표준적 계명은 인간 구원의 ‘사랑’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예수님 대속을 말하고, 대속은 사활의 대속, 사죄 칭의 화친 소망입니다.
그때는 서부교회 주일학교 반사들의 활동이 한창 절정으로 치달을 때이고, 전국으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는 초반이었습니다. 반사 활동은 인간 구원이 최일선이고 신앙생활 하는데 비교할 것이 없을 만큼 모든 면으로 최고의 직분이었습니다. 그 반사들의 신앙의 힘을 주시는 말씀으로 표준적 계명으로 사랑을 강조했지만, 재림이 임박한 말세지 말 지금 가장 적합한 말씀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