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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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등지고 있었더니 후광같아 보였는지 예수님같다라고 친구가 말했습니다. 이런 말 해도 되냐고 해서 장난이나 조롱이 아니면 괜찮지 않을까 근데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말을 해도 됩니까?

담당 4 2025.10.18 06:13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
잠언 17장 28절 말씀입니다.

말은 행위에 속한 것입니다. 행위가 반복되면 그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말은 조심하는 것이 좋고, 행동도 조심해야 합니다. 말을 가볍게 하면 가벼운 사람이 됩니다. 말을 신중히 조심스럽게 하면 신중한 사람이 됩니다. 사람이 신중하면 신뢰를 받게 되고, 그 위에서 바른 신앙이 건설됩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은 우리 목적이고 소망이어서 좋은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을 닮는 것은 예수님의 걸어가신 생애인 죄를 멸하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의를 이루며,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외부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3계명이 있습니다. ‘하나님, 예수님’은 물론이고,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은 어떤 사람이나 상황에 빗대어 말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담당 2025.10.18 06:20  
* 앞에서 '칭찬'처럼 들릴 때 즉각 조심하고 경계해야 하는 자세, 특히 '예수님'의 이름이 나올 때 조심할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담당4 말씀을 먼저 잘 참고하시고, 그리고 나서 다음 글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절에 다니는 친구에게 부처 같다고 말한다면, 평소 그렇게 보인 면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부처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처 때문에 고기 먹는 것도 좀 조심을 하고 또 불교 이야기를 하는 것이 주변에 남다르게 보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의 그 말을 듣고 우쭐하게 되면 그 때부터는 이제 부처와 멀어지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돌중이 됩니다. 불교 욕을 하는 것이 아니고

유교를 믿는 사람은 꿈에 주자가 나타나야 비로소 유학이 점점 자기 생활 속에 자리를 잡는다고 좋아 합니다.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유학자답게 되어 간다는 격려나 표시라고 생각하여 더욱 노력하게 됩니다. 다만 그런 말을 듣기 위해서 행동만 조심하고 속으로는 유교와 멀어 지다가 조선 5백 년이 우습게 되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이 나라 자손들을 망쳤습니다.

불교와 유교는 우리에게 하나의 자연 상황입니다. 이 나라에 복음이 들어 오기 전에 먼저 있었던 풍습 중에 가장 고도의 세계였습니다. 불교와 유교에는 생명이 없지만 사람이 자기 정도 이상을 노력할 때 자라 가는 표시와 함께 좋은 점과 조심할 점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자연계시는 성경에 또렷하지 않은 분야를 참고하라고 우리에게 성경 해석의 기본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질문하신 분이 평소 신앙 생활을 남보다 조금 더 노력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 친구들 기준에서 보면 신앙 생활이 돋보였습니다. 잘 믿는다고 말로 광고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의 마음 속에 깊이 심겨 지지 않습니다. 평소 신앙 생활이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표시가 났고 주변 친구의 마음에 들어 있던 상황에 후광이 겹치니 친구 입에서 예수님 같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후광 때문에 들은 경험이 처음인지 모르겠지만 교회의 목회자나 기둥 교인들은 지난 날이나 현재도 한번씩 그런 말을 주변에서 듣습니다. 그 친구들 기준에서 그들보다 믿는 행동이 돋보였다는 것인데 마5:15에 우리를 산 위에 동네라 했으니 역광과 겹치면 예배당이 천성처럼, 교인들은 천사처럼,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보인다는 말을 들어야 사실 정상입니다.



여기서, 이제 우리는 큰 과제를 하나 안게 됩니다. 예수님처럼 보인다는 그 말이 나온 배경은 친구 눈에 평소에 잘 믿는구나 라고 감동을 준 것인데 혹 질문하신 분이 사람으로서 그냥 실수를 한번 할 수도 있지만 그럴 때 평소 나를 마음에 담아 둔 친구에게는 큰 실망과 함께 신앙을 꺾어 버리는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장난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말을 한 친구에게 나를 그렇게 봤다면 네 마음이 좋은 사람이라 뭐든지 좋게 보는구나 라고 하면 됩니다. 더 이상 말하면 오히려 이상해 집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듣는 순간 만사에 행동을 더욱 조심해서 내가 나를 절제의 신앙으로 자라게 하면 좋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신앙의 힘을 주니 주님이 기뻐 합니다.

그런데 내가 내면의 자기를 잘 믿도록 노력하는 일에 힘쓰지 않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라는 외면을 더 치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외식, 천주교처럼 바리새인처럼 겉만 좋아 보이고 속은 시들어 버리는 신앙이 됩니다. 동시에 교만이라는 것은 우리 신앙의 최종 순간을 기다리다가 조금 방심할 때 슬며시 끼어 들어 와서 우리를 주저 앉혀 버립니다. 친구의 말에 더욱 조심하고, 친구의 말이 나를 교만하게 만들지 않도록 늘 자기 내면의 원수를 잘 차단하시고, 그리고 남들이 칭찬을 할 때 너무 겸손하게 아니라 하다 보면 오히려 고등 교만이 시작 될 수 있으니 상대방에게 '사람이 좋으면 남을 좋게 본다더라'며 말을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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