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성 없는 이름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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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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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6 14:58
Albert Einstein 처럼 유대인도 현대에 와서는 성을 사용하기도 합니다만, 유대인의 성(last name) 없는 이름이 의미하는 것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성경의 이름)
성경에는 많은 이름들이 나오는데 하나님이 직접 지어 주신 이름과 사람이 직접 지은 이름이 섞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이름을 지어 주실 때 '성'을 붙이지 않았고, 그리고 당시 일반 세상이든 주변 환경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뜻은 따로 붙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믿는 사람의 가정에 태어 나는 아이나 교회나 심지어 세상 사업체의 이름을 지을 때도 주변에 무난하게 맞추되 담기는 뜻이 특별하면 좋습니다.
(역사의 이름)
성경의 기록을 보면 세상이든 교회든 성씨가 없고 대체로 이름만 표시합니다. 일반 세상 역사를 살펴 봐도 고대 사회로 갈수록 성씨는 없고 이름만 있습니다. 일본의 천황가는 아직도 성씨가 없습니다. 일본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 왔으니 이 땅 위에 사람들과 같이 맞추지 않습니다. 왕족이나 특별한 가문들은 특별해서 따로 표시를 내거나 비교할 필요가 없으니 성씨가 없었고 일반 사람은 한 공간에 갇혀 살다 보니 못나서 그럴 것도 없었습니다. 유랑자들이야 아무 개념도 없이 한 사람이 한 인생을 살고 가면 그 것으로 전부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성씨는 영국도 불과 1천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한국도 고려 시대 때가 되면서 일반화가 시작 되었습니다. 조선 말까지도 성씨 없는 사람은 많았습니다. 한국에 성씨 없는 이들에게 총독부가 20세기 들어 와서야 마지막으로 성씨를 만들어 준 사례도 많습니다.
(생활 속의 성씨)
성경으로 봐도 역사로 봐도 한국 우리와 여러 상황을 두루 살펴 봐도 고대로 가면 성씨가 필요 없고 현대로 내려 오면서 앞서고 뒤서며 성씨가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사람을 표시할 때 그 사람은 이름으로, 그 사람을 조금 더 잘 살펴 볼 때는 조상과 지역인데 한 마을에서 서로 보고 살다 보니 지역과 집안 표시가 필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결혼처럼 멀리 가야 하는 경우, 또는 난민이 되는 특별한 경우에만 살던 곳을 떠납니다. 새로운 곳에 가서 살면서 그 사람을 표시하는 방법은 어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입니다. 우리는 청주댁, 함안댁, 나주댁으로 사람을 표시합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제가 홍길동입니다. 큰 아이가 홍일동이고 둘째가 홍이동입니다.'라고 성씨와 이름을 다 말합니다. 아이들 이름에 성씨를 붙이는 것은 격식이며 우리는 '홍씨'라는 것을 강조하고 심어 놓는 반복 학습입니다. 그런데 오랜 만에 만난 삼촌에게 조카들이 자라 버려서 알아 보기 어려울 때 '삼촌, 이 아이가 일동이고 저 아이가 이동입니다.'라고 말을 하지 '삼촌, 이 아이가 홍일동이고 저 아이가 홍이동입니다.'라고 소개를 하면 뭔가 대단히 어색하거나 문제가 발생한 상황입니다.
(이름만 있던 시절)
이름만 사용하고 성씨가 없던 시절, 그 시대, 그 환경, 그런 생활이 오늘 보면 미개하다 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만든 원래에 조금 더 가까운 상태입니다. 한 사람이 결혼을 하고 가족을 형성하고 결혼만은 주변을 살피며 서로가 정해진 장소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며 점점 사방으로 뻗어 나갑니다. 이 것이 생명의 성장과 발전 과정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나니 필연적으로 하나님 주신 자기 현실을 벗어 나서 자기 중심으로 자기 뜻을 따라 자기가 성취하려는 자기의 별도 목적을 만든 다음에 추진을 하다 보니 가출이 출세가 되었고, 현실 도피가 도전이 되었으며, 망명이 신세계 개척자의 정신으로 포장 되었습니다. 겨자씨 나무로 자라가는 것이 산 믿음인데 철새들이 되어 세상을 떠도는 세상으로 점점 악화가 되었습니다.
이 악화 된, 이 분화 된, 이 원심력으로 흩어 지고 깨어 지고 파탄난 세상을 살아 가려니 사람마다 목에 패찰 명찰을 하나씩 달아야 했습니다. 성씨가 생긴 것입니다. 오늘도 구약도 세상은 그 지구 그 땅을 사용하지만 그 때는 성씨 없이도 불편이 없었고 오늘은 교회 교인들도 성씨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1장에 바벨탑을 쌓다가 분화 된 인간의 어지러움을 전제한 것이니다. 오늘의 각종 전문가, 자격증, 국적, 여권, 출입증, 경력들이 전부 진열대에 올려 진 상표며 상품을 소개하는 표딱지가 되었습니다. 계시록 13:18에서는 사단이 천하를 한 손에 틀어 쥐고 운영하는데 필요한 666입니다. 그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성씨를 삼가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이름들이 나오는데 하나님이 직접 지어 주신 이름과 사람이 직접 지은 이름이 섞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이름을 지어 주실 때 '성'을 붙이지 않았고, 그리고 당시 일반 세상이든 주변 환경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뜻은 따로 붙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믿는 사람의 가정에 태어 나는 아이나 교회나 심지어 세상 사업체의 이름을 지을 때도 주변에 무난하게 맞추되 담기는 뜻이 특별하면 좋습니다.
(역사의 이름)
성경의 기록을 보면 세상이든 교회든 성씨가 없고 대체로 이름만 표시합니다. 일반 세상 역사를 살펴 봐도 고대 사회로 갈수록 성씨는 없고 이름만 있습니다. 일본의 천황가는 아직도 성씨가 없습니다. 일본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 왔으니 이 땅 위에 사람들과 같이 맞추지 않습니다. 왕족이나 특별한 가문들은 특별해서 따로 표시를 내거나 비교할 필요가 없으니 성씨가 없었고 일반 사람은 한 공간에 갇혀 살다 보니 못나서 그럴 것도 없었습니다. 유랑자들이야 아무 개념도 없이 한 사람이 한 인생을 살고 가면 그 것으로 전부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성씨는 영국도 불과 1천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한국도 고려 시대 때가 되면서 일반화가 시작 되었습니다. 조선 말까지도 성씨 없는 사람은 많았습니다. 한국에 성씨 없는 이들에게 총독부가 20세기 들어 와서야 마지막으로 성씨를 만들어 준 사례도 많습니다.
(생활 속의 성씨)
성경으로 봐도 역사로 봐도 한국 우리와 여러 상황을 두루 살펴 봐도 고대로 가면 성씨가 필요 없고 현대로 내려 오면서 앞서고 뒤서며 성씨가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사람을 표시할 때 그 사람은 이름으로, 그 사람을 조금 더 잘 살펴 볼 때는 조상과 지역인데 한 마을에서 서로 보고 살다 보니 지역과 집안 표시가 필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결혼처럼 멀리 가야 하는 경우, 또는 난민이 되는 특별한 경우에만 살던 곳을 떠납니다. 새로운 곳에 가서 살면서 그 사람을 표시하는 방법은 어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입니다. 우리는 청주댁, 함안댁, 나주댁으로 사람을 표시합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제가 홍길동입니다. 큰 아이가 홍일동이고 둘째가 홍이동입니다.'라고 성씨와 이름을 다 말합니다. 아이들 이름에 성씨를 붙이는 것은 격식이며 우리는 '홍씨'라는 것을 강조하고 심어 놓는 반복 학습입니다. 그런데 오랜 만에 만난 삼촌에게 조카들이 자라 버려서 알아 보기 어려울 때 '삼촌, 이 아이가 일동이고 저 아이가 이동입니다.'라고 말을 하지 '삼촌, 이 아이가 홍일동이고 저 아이가 홍이동입니다.'라고 소개를 하면 뭔가 대단히 어색하거나 문제가 발생한 상황입니다.
(이름만 있던 시절)
이름만 사용하고 성씨가 없던 시절, 그 시대, 그 환경, 그런 생활이 오늘 보면 미개하다 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만든 원래에 조금 더 가까운 상태입니다. 한 사람이 결혼을 하고 가족을 형성하고 결혼만은 주변을 살피며 서로가 정해진 장소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며 점점 사방으로 뻗어 나갑니다. 이 것이 생명의 성장과 발전 과정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나니 필연적으로 하나님 주신 자기 현실을 벗어 나서 자기 중심으로 자기 뜻을 따라 자기가 성취하려는 자기의 별도 목적을 만든 다음에 추진을 하다 보니 가출이 출세가 되었고, 현실 도피가 도전이 되었으며, 망명이 신세계 개척자의 정신으로 포장 되었습니다. 겨자씨 나무로 자라가는 것이 산 믿음인데 철새들이 되어 세상을 떠도는 세상으로 점점 악화가 되었습니다.
이 악화 된, 이 분화 된, 이 원심력으로 흩어 지고 깨어 지고 파탄난 세상을 살아 가려니 사람마다 목에 패찰 명찰을 하나씩 달아야 했습니다. 성씨가 생긴 것입니다. 오늘도 구약도 세상은 그 지구 그 땅을 사용하지만 그 때는 성씨 없이도 불편이 없었고 오늘은 교회 교인들도 성씨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1장에 바벨탑을 쌓다가 분화 된 인간의 어지러움을 전제한 것이니다. 오늘의 각종 전문가, 자격증, 국적, 여권, 출입증, 경력들이 전부 진열대에 올려 진 상표며 상품을 소개하는 표딱지가 되었습니다. 계시록 13:18에서는 사단이 천하를 한 손에 틀어 쥐고 운영하는데 필요한 666입니다. 그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성씨를 삼가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