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심판과 사심판의 해석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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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심판과 사심판의 해석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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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11 1
: :
요한계시록 20:11-15 말씀은,
불택자인 불신자의 공심판을 설명한 내용인가요?
아니면 택자인 신자의 사심판을 언급한 말씀인지요?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담당 4 2025.07.16 14:21  
성경에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이라고 생각되는 많은 곳들이 건설구원도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성경의 요절이라고 알고 있는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신 말씀입니다.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멸망이라는 말씀으로 보면 기본구원에 속한 말씀 같지만, 믿는다는 말씀의 기준을 기본구원적인 믿음과 함께 믿음으로 사는 심신의 활동까지 포함하면 이 말씀은 건설구원을 내포하고 있는 말씀이 됩니다.


질문하신 계21:11~15절 말씀 역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함께 말씀하신 것으로 봐야 합니다. 11절의 크고 흰 보좌는 백보좌라고 합니다. 공심판입니다. 설교록에도 그렇게 나옵니다. 공심판은 택자와 불택자를 구별하여, 불택자는 지옥에 보내고 택자는 천국에 보내는 심판이 공심판입니다. 그런데,

그 공심판에 택자의 범죄한 심신의 기능도 같이 포함된다고 봐야 맞을 것 같습니다. 지옥에 보내는 심판이 불택자가 가는 지옥이 따로 있고 택자의 범죄한 심신의 기능이 가는 곳이 따로 있지 않고, 불택자를 지옥 보내는 시기와 택자의 범죄한 심신 기능의 요소를 따로 지옥 보내는 시기가 따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부활로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활은 두 번 있는데, 첫째 부활은 택자들의 부활입니다. 이 첫째 부활에 택자의 범죄한 심신의 기능 요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택자의 심신과 함께 의의 기능만 포함됩니다. 택자의 심신의 범죄한 기능은 여전히 음부에 있다가 천년 후 둘째 부활, 심판의 부활에 불택자들과 함께 지옥에 던져지게 됩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운다는 말씀 역시 같습니다. 생명이란 하나님과 연결인데,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것은 불택자는 물론, 택자가 범죄한 심신의 기능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 역시 공심판과 사심판을 같이 말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12~13절의 자기 행위를 따라서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은 당연히 택자에 대한 사심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도 다시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면, 불택자들의 행동 역시 그 행동에 따라서 심판이 달라진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즉 사후 세계 내세의 차이는 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지옥에도 세상에 사는 동안의 각 사람의 행위 정도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공의가 성립됩니다.
교인 2025.07.17 05:55  
위 답변을 근거로 재정리해 봤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  첫째부활과 둘째사망.

첫째부활 때 택자인 신자들(영+심신+의로운 행위)은 살아서 천년왕국에 들어간다.
그러나 불택자들과 택자들의 죄의 행위는 살아나지 못하고 그 천년이 차기까지 죽어 있게 된다.
왜냐하면 이 천년왕국에는 죄 같은 더러운 것들이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흰 보좌 앞에서 불택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된 유무에 따라 공심판 받는다.
택자들의 죄의 행위는 둘째 부활하여 책들인 행동록에 따라 사심판 받는다.
공심판과 사심판의 결과는 둘다 불못에 던져진다.

정리하면, 택자인 신자의, 의의 행위들은 첫째부활하여 둘째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
반면 택자인 신자의, 죄의 행위들은 둘째부활하여 반드시 둘째사망의 해를 받는다.
불택자인 불신자는 행동록보다, 먼저는 생명책을 근거하여 불못에 던져진다.

불택자인 불신자는 생명책에 명단이 없으므로 심신 자체가 몽땅 불못에 던져진다.
택자인 신자는 심신이 아닌, 심신이 움직인 산물인 죄의 행위가 둘째사망 곧 불못에 던져진다.
이를 공회에서는 '기능구원'이라 정의한다.

참고로, 택자란 창세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택정함을 입은 사람을 말한다.
불택자란 창세전에 하나님의 자녀를 위한 이용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음받은 사람을 칭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 죽임을 당한 애굽 병사들이 대표적인 불택자라 할 수 있다.

이사야 43: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담당 4 2025.07.17 11:19  
계시록 20:11~15의 말씀을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관점으로 질문하셨고, 그것에 대해서만 답변을 드렸습니다.
답변을 근거로 정리하신 내용은 정리하신 분의  개인적인 깨달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 뒤따르다가 죽임을 당한 애굽 병사들이 불택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을 '대표적인 불택자'라고 특별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교인 2025.07.17 15:06  
New
430년, 애굽 종살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애굽의 모든 장자를 전멸시켰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 때문에 죽임을 당한 이 애굽 장자들은 불택자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더하여, 출애굽을 방해했던 바로왕과 그 왕의 명령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했던 애굽 병사들도,
전멸 당한 애굽의 장자들처럼, 출애굽이라는 구속 역사에 이용된 속량물이라는 짐작을 해 봤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대표적인'  불택자라고 단정을 짓는다는 것은 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다만, 불택자에게 믿을지 말지 같은 선택권을 주님이 부여하시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교인 2025.07.18 08:08  
1988년 11월 설교록을 참고해 봅니다.

사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다 살아나기는 다 살아납니다. 믿는 사람은  앞에 살아나고 불택자들은  뒤에 살아나도 살아나기는 다 살아나 가지고 이 공심판에 재판을 다 받게 됩니다.

그런데 택한 자들 중생된 자들은 이 공심판에 재판을 제일 먼저 받고 그 다음에 불택자들이 이 재판을 받게 됩니다. 먼저 받는  것은 예수님이 이 공심판을 대신 받아서 이 공심판에 통과하는 그 의를 우리에게 입혀 주셔서 그 의를 가진  사람들은 이 공심판에는 재판을 받지 아니하고 예수님이 대신 재판 받으신  그것으로서 통과하게 됩니다.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요것으로서 결론을 지웠습니다. 그러면 여게  책이 두 종류가 있는데 한 종류는 '책에 기록된 대로 그 행위대로 심판받는다' 그러면 행위대로  기록된 책이기 때문에 행동록입니다. 한 책은 행동록.

행동록은 신자도 그 행동록에 행함이 기록되어 있고 불신자도 행함이  그 행동록에 낱낱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신,불신자의 행동이 기록되어 있는 책을 가리켜서 행동록이라, 책들에게 적혀 있는 대로, 행동록에 적혀 있는 대로 심판을 받는다. 그렇게 여게 말씀했습니다.

또 마지막에는, 생명책이 한 권 있는데 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은 다 불못에 던지우더라.

그러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은 언제 기록이 되는가? 그 사람이 나서 행동하는 그 행동에 따라서 기록이 되는가? 아닙니다. 그 사람이 나기 전에 벌써 그 생명록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기 전에 생명록에 기록하고 나기 전에 생명책에 기록해 놓은 자를 생명책에 기록 된대로 그대로 창조해서 세상에 나오게 되고 또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그대로 창조돼 가지고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이러니까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사람이 애쓴다고 기록되는 것도 아니고  또 애를 안 쓴다고 거게서 기록된 것이 삭제되는 것도  아닙니다 요것은 영원 전, 곧 이것을 가리켜서 다른 데서는 말하기를 택함을 받은 자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언제 갈지 모르는데 곧  불원간에 우리가 개적으로나 단체적으로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데 서게 되면 그 책에 기록된 대로 우리는  변동 못하고 심판을 받아야 될 우리들이기 때문에 오늘에 지금 문제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천국 가나 안 가나 하는 그런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 벌써 우리는 가기로 돼 가지고 있습니다. 안 갈래도 안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벌써  천국 시민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생각할 거는 이  행동록이 있는데 내 행동이, 마음의 행동 몸의 행동이 거게 다 기록돼  있고 빠진 것이 없이 다 기록 돼 있고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을 문제이니까 이것이 문제라.

우리가 앞으로 행동할 때에 내 행동이 반드시 행동록에 기록되고 그것이 사진에 박힙니다. 사진에 박혀, 단 둘이 어떻게 행동한 것이라도 그 행동이 다 사진에 다 박힌다 말이오. 사진에 다 박혀. 안 박히는 게 없어. 다 필름에 다 박혀요.

이러기 때문에 거게 나쁜 것이 기록이 되지 않도록 조심을 하고 또 한 가지는 이미 나쁘게 기록돼 있으면 그것을 해결을 지워야 됩니다. 해결지울 길이 있어. 그것을 싹 뭉캐서 없애서 지우지는 않아요. 지우지는 않지마는  그것이 도리어 칭찬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에게 고해서 '내가 이런 그 잘못을  저질렀으니까 이것을 용서해 주옵소서' 당신에게 고해서 용서 받으면 주님께서 그 죄를 회개하고 용서 받았으니까 주님께서 그걸 칭찬을 합니다. 칭찬을 해.

죄라 하는 거는 이상합니다. 죄라 하는 것은 죄를 지을 때는 수치스럽고 지을 때는 수치스럽고 계속 짓고 있을 때는 수치스럽지마는 그 죄를 일단  회개를 하고 완전히 돌아서게 되면 그 죄는 수치가 되지 않고 매우 영광이 되고 자랑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담당 4 2025.07.18 11:00  
제시하신 88.11.20.주일오후 말씀을 근거하면

윗글의 첫 답변 내용 중에 ‘생명책’에 관한 설명이 설교록과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설교록이 맞습니다. 답변자의 설명이 틀렸습니다. 현재까지 우리가 배운 교리가 그러합니다. 다만, 현재까지 그런 줄 알고 있으면서 틀린 답변을 그대로 두고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유는, 우리가 배운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이라는 정의 때문이고, ‘책에 기록’된다는 개념 때문입니다. 생명책과 또 다른 책인 행동록이 있고, 그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하셨는데, ‘책에 기록’된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하는 그 의미 때문에 세월을 두고 좀 더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교리란, 변하지는 않지만 발전할 수는 있기 때문입니다.
교인 2025.07.18 14:28  
설교록에서 첫 언급은 불택자인 불신자의 공심판이라 간단하게 말씀하시고
뒤이어 설명은 택자인 신자의 행위를 심사하는,  사심판을 주로 말씀하셔서
요한계시록 20:11-15절은 불택자의 공심판과 택자의 사심판을 둘다 주님이 말씀하신 내용인가 했습니다.

첫째부활 후 천년왕국을 들어가기 전에 신자의 사심판이 존재한다는 주장에 반하여
흰보좌의 공심판에서는 신자의 사심판도 함께 진행되는 것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결국 행동록에 의한 둘째사망 - 깨달음과 실상이 깊어질수록 죄와는 결별(청산)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담당 2025.07.18 12:38  
(생명록, 공심판 - 말세론의 순서)

* 사후의 세계
교리 중에는 당장 필요한 것이 있고 죽어 봐야 알 수가 있는 '소망 교리'도 있습니다. 세상이 끝나면 천국이 있다는 것, 천국의 영원 영생이 있다는 것, 예수님의 대속으로 택자만 가게 된다는 것. 이 정도만 같으면 같은 신앙입니다. 그 다음의 세부 사항은 자라 가면서 조금씩 더 깊이 알게 되는 차이도 있고, 주신 사명 때문에 다른 교리를 더 깊게 주시고 소망 교리는 간단히 알려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 답변의 순서
우선 '담당4'의 안내는 공회 교리를 잘 설명하시기 때문에 참고만 하고 있습니다. 누구 표현, 어떤 설명이 더 나을지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주 답변자가 글을 적으면 다른 답변자는 함께 지켜 봅니다. 틀린 것은 바로 지적하지만 연구 대상이거나 대화 중이면 지켜 봅니다. 


* 설교록 인용
설교록은 이 곳의 직원들이 10만 쪽을 평생 훑으며 연구하고, 또 120여 권을 출간했고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88.11.20. 표현은 말세 진행에 대하여 아주 중요한 말씀이어서 특히 잘 기억하고 또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 표현에 착오가 있었다면 '담당4'께서 출간 책임자였기 때문에 백 목사님께 직접 확인을 드렸을 것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이 부분은 설교록 출간과 별도로 이 곳 직원들이 목사님께 특별히 따로 여러 차례 대화한 주제였습니다. 설교록 곳곳에 이 부분에 대한 표현이 서로 다른 듯했기 때문입니다. 설교록에는 그런 부분이 가끔 있으며 이 곳의 직원들은 그런 부분을 거의 파악해 왔고 또 정리를 해왔습니다.


* 답변의 방식
이 곳의 답변은 질문에 따라 바쁘게 명쾌하게 안내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답변자의 일정에 따라 하루 정도 늦어 질 때도 있습니다. 또 어떤 답변은 질문자뿐 아니라 질문 내용을 지켜 보며 함께 궁금한 분들을 생각하면서 생각할 여지를 드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답변은 답이 필요하고 어떤 답변은 함께 연구가 필요하고 어떤 답변은 조금 생각할 여유를 가지면 좋은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답변이 아니라 일반적인 안내입니다.
침례교인 2025.07.19 08:54  
위 주장들에 대한 반론을 제기합니다.


1. 영원전에 지옥 가기로 정한 불택자를 창조한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은 무자비한 하나님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세상에 태어나서 믿을지 안 믿을지 본인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기회는 줘야 나중에 공심판 앞에 섰을 때 항변을 못하지, 태어나기도 전에 처음부터 원래 너는 지옥가기로 정해졌다고 한다면 이는 너무 불공평하게 악법을 만든 독재자처럼 처리하신 것입니다.


2. 성경은 믿은 후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고 죄를 지으면 천국에 못 들어가고 지옥간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죄지은 행위의 주체인 심신도 책임죄가 있으니 마땅히 육신은 멸한다고 하는 지옥형벌을 당연히 받아야 한다 생각합니다. 신자의 심신과 그 행위가 함께 불못에서 불탄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죄의 기능은 지옥에, 의의 기능은 천국에 들어가는 이 기능구원이라는 것은 성경을 너무 잘게 쪼개버린 억지 해석 같습니다.
담당 2025.07.19 11:47  
(억해라는 지적)
'성경을 너무 잘게 쪼개버린 억지 해석'이라는 지적에 대해 공회 노선이 교계와 본격적으로 접촉하기 시작한 1950년대부터 종종 들어 왔습니다. 어떤 분들은 너무 심오하다 하셨고, 어떤 분들은 윗글의 '침례교인'처럼 지적을 했습니다. 저희가 한번씩 들어왔기 때문에 낯설지 않은 표현이라는 점을 먼저 설명하면서

그 때마다 저는 삼위일체 교리는 성경을 너무 잘게 쪼갠 것이 아닐까 라고 반문을 합니다. 기독교 교리 중에 삼위일체만큼 주요하고 깊고 그리고 성경 인용이 많고 또한 반론과 논쟁이 많은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롬7장은 구약의 이혼 문제로 시작하다가  4절부터 나 한 사람의 내면을 세세히 분류하고 있습니다. 내 속의 욕심, 탐심으로 내면의 투쟁을 설명하다 양측의 투쟁과 그 결과 포로 된 자기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갈5:17로 가면 나의 이런 두 내면을 낱낱이 헤아렸는데 이렇게까지 구분을 해야 했나 할 정도입니다. 예를 든 15가지의 육체 소욕은 제일 끝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꼬리표를 달았으니 실제 몇 가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5가지 대표적인 우리의 내면 중에 우상 숭배 하나만 가지고 구약의 사례를 전부 살펴 보면 구약 성경에 거의 다 해당이 됩니다. 당 짓는 것과 분리는 따로 적었고 이런 말씀이 토씨 하나 정확무오하다는 교리 때문에 우리는 그냥 문학 작품의 표현으로 보지 않고 당 짓는 것과 분리를 따로 구별하게 됩니다. 너무 촘촘하게 나누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다 알 수는 없지만, 성경 전체를 1회독 하고, 그리고 또 2회 3회로 한번씩 추가하면서 이 말씀으로 나머지 말씀을 다시 읽고 나머지 모든 말씀으로 좀 애매한 곳을 들여다 보면 과거보다 조금씩 밝아 진다고 생각합니다. 인체를 하나로 보다가, 기관으로 보면 수십 가지가 있고, 호흡기 순환기 단위로 따로 다시 보면 그 것을 구성하는 것이 확대 일로가 됩니다. 인체보다는 우리의 마음이 더 세밀할 듯하고 심신이라는 물리의 세계보다 우리의 신앙의 세계는 더욱 그럴 듯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로 2천년을 수많의 학자가 들여다 보며 이 시간에도 이단의 칼을 들고 서로가 죽이는 혈투를 벌입니다. 인체보다 마음, 마음보다 신앙의 세계는 신령하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씀은 진리의 세계이고 하나님의 표현? 하나님의 전달? 하나님의 통고문이다 보니 자꾸 세밀히 살펴야 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기능 구원)
우리가 천국에 갈 때 우리의 15가지 생각, 행위, 그렇게 산 생애는 없어 질 수는 없고 아마 버리고 가야 할 듯합니다. 또 지난 날 말씀으로 순종한 그 행위도 내 속에는 성화의 실력, 성화 된 분야, 성화 된 은혜로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손양원 목사님을 천국에서 만나 뵙는 것은 명확한데 모든 것이 다 드러나는 그 세계에서 그 분과 저를 나란히 세워 두며 진심도 양심도 충성도 취향도 장점도 다 다를 듯합니다. 이 땅 위에서 말씀으로 자신의 심리 하나까지 다듬고 고치고 기르다 보니 모두가 황급히 퇴각하는데 홀로 남아 넉넉히 시대의 환란을 초월했습니다. 그 분 속의 기능과 제 속의 기능은 다를 듯합니다. 저도 그렇게 되면 제 생각은 저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할 듯합니다. 그러나 제 속에 있는 생애 애착욕은 요동 칠 듯합니다. 그리고 제 신앙의 의지를 잡아다 망명을 할 듯합니다. 이 것이 롬7장과 갈5장으로 미리 저를 살펴야 할 과제일 듯합니다.

그리고 저는 중생과 함께 말씀의 은혜를 몇 가지 확실히 받아 제 속에 비록 약하지만 빛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애 애착욕이 저를 붙들고 베드로처럼 십자가를 피할 때 히6:4에 해당 되는 제가 6절에서 다시 해결할 수가 없어 지옥으로 갈 것인가? 저의 생애 애착욕은 지옥으로 가겠지만 죽어도 말씀으로 살겠다고 끝까지 호소하던 제 신앙의 양심은 천국에서 영원토록 후회할 듯합니다. 그 때 생애 애착욕을 이겼어야 하는데 라고. 이렇게 분석하지 않게 되면 성경의 전체 해석은 너무 어지러워 질 듯합니다. 더 나은 해석, 더 나은 길, 더 나은 지도를 제시해 주신다면 열심히 배워 보겠습니다.
담당 4 2025.07.19 11:11  
1. 택과 불택

1, 2번의 질문이 다른데 안에 들어가면 같은 내용이 됩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그 자유의지의 선택과 행위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고 심판한다면, 하나님은 자존자 완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자유의지와 행위에 피동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람의 수준에서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인간의 틀에 가두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게 반론하시려면,
밥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쌀은 생명 있는 식물을 사람이 잔인하게 잘라서 잔인하게 빻아서 잔인하게 이빨로 씹어서 삼킵니다. 생선도 먹지 말아야 합니다.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잘 살고 있는 생명을 인간이 그물로 잡아서 잔인하게 칼로 회를 쳐서 잔인하고 징그럽게 내장을 다 끄집어내고 끔찍하게 끓는 물에 삶거나 구워서 씹어먹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을까요?

병이 들어도 치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균도, 바이러스도 생명입니다. 그것들도 살고자 하는데 끔찍한 약을 넣어서 잔인하게 죽이는 일을 하면 안 되지 않을까요? 모기도 바퀴벌레도 잡으면 안 됩니다. 그것들도 살려고 사람 피를 빨고 음식을 찾는데 그런 것들을 잔인하게 독한 약을 쳐서 죽이면 안 되지 않을까요?

꽃이 아름답다고 꺾지는 않겠지요? 화단에 잡초가 아무리 많아도 잔인하게 제초기로 썰거나 하지는 않겠지요? 채소도 드시지 않겠지요? 이런 것들도 자유롭게 생명을 유지하며 살 권리가 있는데?



2. 기능구원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인데 사람마다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은 아실 것입니다. 꼭 같은 사람인데 왜 사람에게 차이를 두는 것일까? 연봉 1천만원과 100억원은 1천배의 차이를 두는 것입니다. 100억 받는 사람은 머리가 두 개, 눈이 세 개, 귀가 다섯 개?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차이의 근거는? 그 사람의 기능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차이는 곧 기능의 차이입니다.

시각장애, 청각장애가 있습니다. 눈이 있는데 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할까? 보고 듣는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영어권의 사람들은 영어를 잘합니다. 한국 사람은 영어 하려면 10년 이상은 노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노력이란 무엇일까? 기능을 만드는 것입니다. 다 설명하려면 너무 많습니다.


자본주의는 시장경제 체제입니다. 실력껏 차지하라는 것입니다. 좋게 말하면 선의의 경쟁이고 그 본질은 약육강식의 동물의 왕국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평등을 부르짖습니다. 뒤로는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고 하면서 저거 잇속만 챙기고 어리석은 대중들을 이용해 먹습니다. 어느 것이 나을까?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지으실 때 평등하게 짓지 않으셨고 존재마다, 같은 존재라도 다 차이가 있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왜 사람은 사람으로 지으시고 짐승은 짐승으로, 식물은 식물로, 미생물은 미생물로 무생물은 왜 무생물로 지으셨을까? 꼭 같이 지어야 평등인데 왜 차이를 두셨을까? 사람은 꼭 같은 사람인데 왜 사람과 사람을 차이가 나게 지으셨을까? 천재와 바보는 왜 만드셨을까? 주인과 종은, 왕과 백성은 왜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나게 하셨을까?

영원한 천국의 기능 차이를 세상에서 보이고 계시는 것입니다. 기능 구원을 알지 못하면 천국의 건설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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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A
    2026.02.02월
  • 13925
    공회교인
    2026.01.23금
  • 13924
    학생
    2026.01.21수
  • 13923
    학생
    2026.01.16금
  • 13922
    반사
    2026.01.16금
  • 13921
    학생
    2026.01.15목
  • 13920
    반사
    2026.01.13화
  • 13919
    성도A
    2026.01.12월
  • 13918
    신학도
    2026.01.12월
  • 13917
    부족한교인
    2026.01.06화
  • 13916
    성도A
    2025.12.26금
  • 13915
    돌아온탕자
    2025.12.23화
  • 13914
    믿는 자
    2025.12.22월